[진상규명][소식지] 진실을 찾는 우리, 서로를 존중하며 경청하는 사회적 주체

토론회 〈재난 참사, 진실을 외치다〉

진실을 찾는 우리, 서로를 존중하며 경청하는 사회적 주체

류현아(4.16연대 사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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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의 말 : 각 발제의 완결성에도 불구하고, 회고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발제자의 의도가 곡해된 부분이 있습니다. 자료집 원문을 참고 부탁드립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자리마다 불리던 노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그 가사처럼, 피해자와 연대하는 시민들에게 ‘진실’은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진상 규명은 피해자가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이자, 시민이 피해자 곁에 설 수 있는 길이며, 동시에 참사를 가장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수없이 ‘진상 규명’을 외쳐왔지만, 그 말에 담긴 깊은 뜻을 차분히 되새길 기회는 많지 않았다. 지난 8월 30일, 4·16 세월호 참사와 10·29 이태원 참사를 중심으로 “재난 참사에서의 진상 규명”의 의미를 짚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는 토론회 〈재난 참사, 진실을 외치다〉가 열렸다. 이 글은 각 발제의 취지를 존중하면서도 서로의 논지를 연결하고, 종합토론에서 오간 대화를 엮어 의미 있는 논점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재난참사 진상규명 운동, 어떤 배경에서 가능했나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태호 상임집행위원장은 “사회적 참사 진상 규명은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운동의 궤적 위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5·18 광주, 제주 4·3, ‘일본군 위안부’를 비롯한 과거사 진상 규명 운동은 피해자 중심 접근과 기억 투쟁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냉전시대의 국가주도 날림성장이 붕괴되던 1990년대 말,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백화점 참사 이후에는 권위주의 국가와 위기 사회에 대한 반부패 시민 저항이 이어졌고, 공익제보자보호와 정보공개, 독립적인 수사와 기소, 지휘부의 공동정범 적용 등 국가책임을 묻기 위한 논리와 제도의 기초를 쌓았다. 이어 2000년대 초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국가인권위 설립 운동과 반전평화 운동에서는 정부가 성역화한 ‘안보’ 개념에 문제를 제기하며, 인권 기반 접근의 안전 담론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어 삼성 반도체 직업병 투쟁,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개방 반대 운동 등, 신자유주의와 불평등 사회에 저항해온 수많은 사회운동들은 ‘이윤보다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구호를 만들었고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 연대의 광장을 열어왔다.
이처럼 축적된 다양한 사회운동과 각성이 밑거름이 되어, 피해자가 앞서는 진상규명 운동이 일어났고 650만 명의 국민 서명이라는 거대한 힘을 토대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하게 되었다.

국가 주도 진상조사의 한계 

박래군 4·16재단 운영위원장은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평가를 중심으로, 국가 주도의 조사기구가 가진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재난 참사 조사기구는 국가 대상 조사에서도 신뢰성을 확보해온 ‘민관합동 과거사 조사기구(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 모델을 참고했다. 과거사와 관련하여는 여야가 추천하여 인사를 꾸린다 해도, 전문성을 갖춘 인사가 추천되어 위원회의 정치색이 그리 짙지 않았다. 그러나 현 정권을 대상으로 하는 재난 참사 조사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정권의 방해에 부딪혔고 더욱 독립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또한 한시적 운영 조건은 조사 기획과 전문 인력 확보에도 큰 제약이 되었다. 이후 구성된 사참위도 같은 문제를 겪었다.
결국 신뢰 부족과 한시성은 소통 부재로 이어졌다. 위원회 내부는 물론 시민과의 소통도 충분하지 않아, 관련 부처의 비협조에 맞설 국민적 동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박 위원장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통해 상설적이고 독립적인 조사기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상조사 과정에서 배제된 피해자들

진상조사에서 소통과 경청은 재난 참사 피해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박성현 4·16재단 사무처장은 피해자들로부터 “우리가 이런 요구를 해도 되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고 밝혔다. 이는 제도가 구조적으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배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진실을 알 권리, 참여할 권리가 법에 명시되지 않은 한, 공무원들은 경청하지 않았고, ‘법에 없다’는 이유로 정당한 요구를 거절했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은 끊임없는 요구 끝에 특별법을 통해 진상조사 기구의 자문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었지만, 그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많은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되었고, 개별적으로 제공받은 정보는 다른 가족과 공유하기 어려웠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피해자들은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
민주적 진상조사의 ‘다른’ 가능성을 열다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전주희 연구원은 산재 유가족 진상 규명 운동을 사례로, 재난 참사 피해자와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민주적 진상조사의 가능성을 제안했다.
산업재해 유가족들은 오랫동안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지만, 2014년 세월호 참사 피해자의 활동과 시민사회의 호응이 힘이 되어 산재 유가족은 진상 규명 운동의 주체로 등장할 수 있었다. 유가족들은 거대 기업과의 ‘사적 합의’를 거부하고 은폐된 진실을 폭로했으며,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사회 의제로 부각시켰다. 2016년 구의역 김군 사망 사고를 기점으로 산업재해 진상 규명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다.
전 연구원은 산재 유가족과 시민이 참여한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작성된 진상조사 보고서 사례(대책위 또는 민관 합동으로 진행된 13건의 산재 피해 사례와 그로 인한 19건의 진상조사)를 발표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관료적·전문가 중심 조사는 역설적으로 구체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피해자를 소외시키는 반면, 민주적 진상조사는 피해자의 관점에서 구체성을 담보하고 사회적 확장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법적 근거가 없어도 유가족과 시민이 함께하는 시민대책위의 독자적 진상조사는 충분히 가능하며, 이를 통해 진실에 대한 법적 인정 없이도 사회적 인정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요한 것은 사건을 단순히 자료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서사로서 어떤 진실을 사회적으로 구성하고 인정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며, 그 과정의 주체는 피해자와 시민이라는 점이다.


상설적 재난조사기구, 더이상 늦출 수 없다

발제가 끝난 뒤 이어진 토론에서 이태호 상임집행위원장은 유가족과 시민의 독자적 진상 규명 활동을 지지하지만, 법적 인정이나 제도적 보장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권기반 접근’은 권리를 선언적 규범이 아니라 국가의 책무로 보는 접근이므로, 권리 운동은 법제화·체제화를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성현 사무처장 역시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이 특별조사위원회 설립을 위해 겪은 지난한 과정을 다른 재난 참사 피해자들이 반복해서 겪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하는 재난 참사 피해자나 미래의 참사 피해자에게 ‘진실을 알 권리’를 보장할 제도는 필수적이다.
이 위원장은 이를 진실의 항해에 비유하며, 특조위라는 ‘배’를 만들기 전에 ‘나무 심기’와 같은 서명 운동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통해 상설적이고 독립적인 조사 기구를 마련하는 등 제도화 노력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힘주어 말했다.
세월호의 과제는 무엇이며, 진상규명을 위한 동력은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토론은 “상설적 재난조사기구의 주체는 누구이며, 사회적 동력은 어떻게 형성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이는 시민의 힘을 응집시키고 법에 기입할 ‘세월호의 의미’에 대한 논의로 연결되었다.
대구 지하철 참사는 ‘지하철 안전’, 구의역·김용균 참사는 ‘위험의 외주화 반대’라는 분명한 과제를 남겼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어떤 과제를 남겼는가? 세월호 참사가 남긴 과제는 단순히 ‘선박·교통 안전’에 한정되지 않고, 보다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다만 그 보편성 때문에 서사와 의미가 모호해지거나 사회적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에 대해 김종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명쾌하게 답했다. “세월호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삶이 담겨 있었다”며, 여행을 떠난 학생들,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 직장인 선원들까지 모두의 일상이 배에 타고 있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가 남긴 핵심 과제는 “우리 일상의 안전”이라고 정의했다.
박성현 4·16재단 사무처장은 지난 11년간의 운동을 “경청과 존중을 실천하며 제도로 새기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1년간의 세월호 운동은 시민이 가만히 있지 않고, 피해 가족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과정이었다. 핵심은 “피해자가 나서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아니라, “피해자가 참여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구조”, 즉 소통을 기반으로 한 민주적 참여의 권리가 보장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의 진상규명은 어떻게 쓰여져야 하는가 

경청과 존중을 바탕으로 ‘일상의 안전’이라는 세월호가 남긴 의미를 법제도로 구현하는 동시에, 피해자와 시민이 참여하는 민주적 진상 규명을 논의할 수 있다. 전주희 연구원의 ‘계속 쓰여질 수 있는 진상조사’에 관한 발제는 그 힌트를 제공한다.
전 연구원은 “진상조사와 진상 규명은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진상조사가 사건의 사실을 파악하는 것이라면, 진상 규명은 진상조사를 넘어 정의, 회복, 치유의 관점에서 사회적 해석과 수용을 포함한다. 따라서 진상조사는 다양한 주체에 의해 반복적으로 쓰이고 재생산될 수 있으며, 새로운 시대의 관점에서 진상조사를 통해 서사를 창출하며 진상 규명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된다. 또한 이는 진상 규명이 ‘완전한 해결’이나 ‘법적·제도적 진상조사’와는 다르다는 점도 시사한다.
이태호 위원장은 “진상 규명을 지속하려면 피해자와 사회운동 내부의 공론장 형성과 합의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모든 피해자와 시민이 하나의 합의된 서사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공론장을 유지하는 것이 곧 진상 규명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위원장은 “세월호 가족 여러분, 너무 잘해오셨다”며 다양한 의견과 이견 속에서도 10년여 동안 긴장을 유지하며 쪼개지거나 갈라지지 않는 통합의 힘이야 말로 4.16 진상규명 운동의 힘이라고 짚었다.

나가며 :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피해자와 시민이 제도에만 의존하지 않고 서로 경청하고 존중하며 구체적 진실에 함께 나아가는 것이 진상 규명의 동력을 이어가는 핵심이다. 세월호 진상 규명 운동은 앞선 투쟁을 이어받아, 제도적 조사와 시민 주도의 조사를 반복하며 계속 발전해왔다. 앞으로도 진상 규명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지며 사회 속에서 진동할 것이다. 노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의 마지막 가사,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곧 진상 규명의 태도이자 방법을 의미한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며 경청하는 사회적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하며,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