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소식지] 재난참사 피해자 대담 "더 이상 유가족이 특별법을 만들지 않는 사회가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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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참사 피해자 대담 <새 정부에게 바란다>

"더 이상 유가족이 특별법을 만들지 않는 사회가 오기를"

내란을 시도한 대통령은 탄핵되었으나, 내란 종식과 사회 대개혁이라는 과제가 남겨진 지금,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현재를 점검하고 평가하는 목소리가 각계에서 계속 울려 퍼지고 있다. 과연 우리에게 ‘다른’ 세상은 올 것인가.
‘빛의 혁명’의 계승자로 자칭한 이재명 대통령은 ‘빛의 광장’의 핵심 의제 중 하나였던 차별금지법 제정에는 “민생과 경제가 우선”이라는 말로 슬쩍 등을 돌렸다. 반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의제에는 취임 초기부터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7월 14일 청주 오송참사 2주기를 하루 앞두고 참사 현장을 방문한 데 이어, 7월 15일 국무회의에서는 참사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언행에 대해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무관용의 원칙으로 엄정 대응해 달라”고 주문했다. 또한 7월 1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기억과 위로, 치유의 대화’ 행사를 열어 세월호·이태원·오송 지하차도·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 200여 명을 초청해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정부를 대표해 참사의 발생과 대응에 있어서 국가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음을 공식 사과했다.

재난 참사 피해자들은 새 정부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어떤 기대와 우려를 안고 있을까. 이 사회를 향해 지금,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 네 분의 재난 참사 피해자를 모시고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대담 참여자

  • 김유진: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 (아버지 김덕원, 어머니 정선숙, 남동생 김강헌 씨를 잃음)
  • 송해진: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위원장 (고 이재현 군의 어머니)
  • 여국화: 화성 아리셀 참사 유가족 (고 이해옥 씨의 사촌언니)
  • 정부자: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추모부서장 (고 신호성 군의 어머니)


📝대담 진행 및 정리

  • 박희정: 사월십육일의약속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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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일 밤, 느닷없는 계엄 선포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올해 안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것이라 예상한 이는 없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파면까지 꼬박 4개월, 이어 대선까지 2개월여를 그야말로 혼돈 속에서 보냈습니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동시에, 스스로를 ‘세월호 세대’, ‘이태원 세대’라 부른 청년들이 변화의 주역으로 떠오르며 저항의 광장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당시를 돌아보면서 오늘의 이야기를 열어보려고 합니다. 세월호참사와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은 광장에 천막을 치고 줄곧 함께하셨는데요. 당시 어떤 마음으로 그 자리에 함께하셨나요?

정부자: 아시다시피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은 두 번이나 대통령 탄핵을 겪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문재인 대통령으로 바뀌었을 때는 이제는 진상규명이 될 것이라 큰 기대를 했습니다. 주변에서도 “조금만 기다리면 대통령이 알아서 해줄 거다”라고 말했지요. 그렇게 4년을 기다리다 결국 가족들이 청와대 앞으로 나가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한겨울에 삭발을 하고 단식과 노숙까지 했는데도 대통령은 끝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다 해주는 듯했습니다. 특조위도 열고, 선조위도 열리고, 사참위도 꾸리고, 보고서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정작 침몰 원인에 대한 결론은 내리지 못한 채 끝났습니다. 국민들 눈에는 “해줄 건 다 해주지 않았냐”는 인식이 퍼졌고, 더 이상의 진상규명 요구는 무리한 일이라는 비난만 돌아왔어요. 그런데 국민들과 함께 광장에서 목소리를 내면서 그동안 사회에 대해 느꼈던 서운한 마음이 조금은 달라졌습니다.
특히 청년들이 광장을 주도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2014년 참사 직후 전국 간담회를 다닐 때, 우리 아이들 또래 학생들이 찾아와 “우리는 뭘 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자기 꿈을 찾아 살아야 할 학생들이 왜 우리에게 미안해하며 울어야 했을까 늘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들이 이제 성인이 되어 “대한민국이 이래서는 안 된다”라며 목소리를 내고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니, 이제 우리가 앞장설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더 크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게 됐습니다.

송해진: 이태원 참사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 불과 다섯 달 만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앞으로 임기가 4년 넘게 남아 있으니 진상규명이 가능할까, 막막했습니다. 솔직히 유가족들 마음속에는 이런 생각이 있어요.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그가 용산으로 오지만 않았다면, 이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억장이 무너지고 분노가 치밀지만, 우리는 당장 특별법을 만들고 정부의 협조를 얻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그 말을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12월 3일 계엄 사태 전에도 윤석열 퇴진과 탄핵을 외치는 집회가 이어졌어요. 사실 누구보다도 그 자리에 가고 싶었던 사람들이 이태원참사 유가족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갈 수가 없었죠.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통과시키려면 여야 합의가 필요한데, 퇴진이나 탄핵을 입 밖에 내는 순간 바로 정치적 편향으로 낙인찍히니까요. 그래서 탄핵 광장은, 참아왔던 말들을 처음으로 마음껏 털어낼 수 있는 자리였죠.
저는 원래 사회 문제나 정치 이슈에 관심이 많던 사람이었는데, 참사를 겪으면서는 오히려 그런 일에 둔감해졌어요. 아이를 잃은 슬픔과 절망이 너무 컸으니까요. 그래도 아이를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유가족협의회 활동을 이어왔는데, 계엄 사태가 터지고 나서는, ‘이러다 정말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연대 집회에 나가도 마음이 움직여서라기보다 ‘해야 하니까 한다’는 쪽이 컸습니다. 계엄 사태 앞에서는 달랐어요. 정말 두려움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고, 매주 추운 날에도 가족들과 함께 행진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리셀 참사의 경우, 참사가 일어난지 6개월 남짓된 시점이었습니다. 12.3 내란 사태는 아리셀 참사 피해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여국화: 당시 아리셀 참사 피해자들은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에스코넥 본사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수사 결과, 참사의 배경에는 불법 파견과 군납 비리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회사 측은 사과 한마디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유가족협의회가 교섭 요구안을 여섯 번이나 제출했지만, 한 번도 답이 없었기에 결국 10월 10일부터 천막 농성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12월 3일에 계엄사태가 일어나면서 저희가 계획했던 일들은 모두 엉망이 되었어요. 사측과의 교섭 일정도 계속 뒤로 밀리고, 연대해 주시던 분들도 탄핵 광장에 나가셔야 했죠. 저희도 당연히 광장에 가고 싶었지만,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내국인이잖아요. 저만 중국인입니다. 아리셀 참사의 희생자 대부분이 이주노동자였거든요. 당시 집회에 나가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강제 추방당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두려움이 컸습니다. 특히 중국인을 향한 혐오가 심했던 시기라, 저희는 탄핵 광장에 발도 들이지 못했습니다.
저희에게 일어난 참사만으로도 마음을 추스르기 힘든데, 이런 상황까지 겹치다 보니 울분을 어디에 쏟아야 할지 몰랐어요. 게다가 이재명 대통령이 재난 참사 유가족들을 만나는 자리에도, 아리셀은 ‘산재 피해 가족’이라는 이유로 빠졌습니다. 다 같은 참사를 겪은 유가족인데, 여기서도 차별받는다는 생각에 정말 속상했죠.

 

탄핵 반대 국면을 주도했던 극우 개신교 세력들이 중국인 혐오를 이용한 데 이어 일부 정치인들까지 가세했습니다. 혐오는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확산되었고, 그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느낀 공포는 매우 컸으리라 생각됩니다. 한편 광장에서는 혐오와 차별 문제가 중요한 의제로 부상하며 ‘내란 종식’과 ‘차별금지법 제정’을 함께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여국화 님의 말씀은 생명과 안전, 민주주의와 평등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의제임을 다시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한편,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는 내란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발생했습니다(2024년 12월 29일). 국민들이 받은 충격도 컸지만,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김유진: 저희는 광장에 설 힘 자체가 없었습니다. 사고기가 여행지에서 돌아오는 여객기였잖아요. 가족끼리 여행을 떠난 분들이 많아 한 가족에서 서너 분, 많게는 아홉 분이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시신을 찾는 데만 일주일 넘게 걸렸어요. 제 경우는 가족을 떠나보내는 게 처음인데, 세 사람의 장례를 한꺼번에 치러야 했습니다. 저 아니면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으니 링거를 맞으면서 겨우 버텼어요.
그렇게 장례를 치르고 난 유가족들을 모아 참사 2주 만에 추모식을 했습니다. 정말 화려하게 치러졌어요. 저희가 원한 것도 아닌데, 장례를 마쳐야 국회에서 특위(12·29 여객기 참사 진상규명과 피해자 및 유가족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위원회)가 출범할 수 있다면서 말입니다. 그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다음 주에는 추가 시편(시신 조각)이 나와 합동 장례를 또 치렀어요. 그 후 49재라고 추모식을 하고, 새해 첫날이라고 또 추모식을 하고….
밖에서 보면 유가족들을 계속 추모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행사마다 불려 다니며 슬픔에 잠겨 울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100일이 지나자 100일 추모식을 했고, 이어 12·29 여객기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됐습니다(2025년 4월 7일). 진상규명에 관한 내용은 빠진 채로요. 유가족들과는 제대로 소통되지 않은 채 당시 대표 몇 명의 의견만 반영해 처리된 것이었어요. 그때부터 모든 언론에서 저희 소식은 사라졌습니다. 지방지에도 한 줄 기고조차 실리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유례없이 조용한 유가족이 돼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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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는 외부에서 보면 사고 수습이 비교적 잘 된 사례처럼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항공기는 국제기구를 통해 조사가 이루어져 객관적인 조사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김유진: 정부에서는 정말 잘 수습된 참사처럼 포장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항공 사고는 국가적 위상이 달린 문제니까요.
사고 초기 처음 결성된 임시 유가족 집행부가 시민단체나 재난 참사 유가족등 모든 만남과 연대를 거절했습니다. 정부는 책임 있는 참사수습의 의지를 보였고 다른 참사와는 다르다는 기조를 강조했습니다. 정부는 시신 인도를 서둘렀고요. 시민사회와 유가족의 연대를 막은 거죠. 여러 참사를 겪으면서 유가족들의 패턴을 정확히 알고 있거든요. 이후에 유가족들의 방향은 바뀌었지만, 이미 저희에게 도움을 줄 곳은 없었습니다. 사고 현장인 무안공항은 수도권에서 멀어서 기자들도 잘 찾아오지 않습니다. 지역적으로, 사회적으로도 고립되었죠.
항공사고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협약에 따라 국가별로 자국 내 항공사고 원인 조사를 수행하는 독립적인 사고조사위원회를 설치하게 되어 있어요. 한국은 국토교통부 산하에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이하 사조위)가 있어요. 그러니 특별법에 조사위원회를 넣을 필요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결국 참사 백일만에 통과된 특별법은 정확한 명칭과 진상 규명이 빠진 「12·29 여객기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 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조위는 사고 예방을 위한 것이지, 책임자 처벌 관점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더군요. 게다가 이 국제 규정은 권고 사항입니다. 강제력이 있는 법이 아닌 거죠. 정부는 이러한 점을 방패막이로 삼아요. 예를 들어 규정에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라고 돼 있으면, “정보를 공유할 수 없다”고 해석하는 식입니다.
또 항공 사고는 보상금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인식도 있습니다. 민간 항공 사고라 보상 주체가 명확하고, 진상 조사를 위한 세계적인 규정과 기구도 있으니 국회의원들도 ‘사고조사중이니 지켜보자’ 라고 핑계 대기 좋죠. 지원에 대해선 여야할 것 없이 우리는 할 일을 다했다는 식이에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는 한국 주관으로 미국, 프랑스 사고 조사 당국 등과 합동조사단을 구성했다고 해요. 그런데 사조위는 7월 19일 무안공항에서 중간 조사결과를 발표하려고 했습니다. 그 내용은 조종사 과실로만 모든 원인을 몰아가는 식이었어요. 조류 충돌로 엔진이 손상됐는데, 조종사가 화재가 발생한 엔진이 아닌 다른 엔진을 잘못 껐다는 겁니다. 조종사가 엔진을 잘못 껐다는 근거도, 당시 두 엔진 중 어느 엔진이 손상이 더 컸는지 어떠한 증거도 없이 당초 사고 원인으로 지목됐던 콘크리트 둔덕형 로컬라이저에 대한 내용은 언급조차 없었습니다. 무안공항 안전 관리·운영 주체인 국토교통부와 한국공항공사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거죠.
국회 특위 활동이 원래 6월 말일까지였는데, 종료 직전에 올해 말까지로 연장되는 법안이 통과됐어요. 그런데 오늘(8월 7일 기준)까지 저희는 특위 위원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요. 8월 말에 첫 특위가 열리는데. 게다가 그 첫 특위에 유가족을 참가시킬지 안 시킬지도 아직 결정을 안 했다는 거예요. 유가족 참여 없는 참사 특위라니요? 정부가 재난 방지 시스템을 발전시킨 게 아니라, 재난 참사 유가족 대응 시스템만 발전시킨 겁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피해자들이 특별법 개정을 통한 진상규명을 정부에 요구하고 계신 배경이지요.

김유진: 특별법 개정을 위해 국회의원과도 만났어요. 유가족들은 우선 순위로 진상 규명 네 글자만큼은 꼭 넣고 싶다고 하니, 그분께서는 현실적으로 힘들 것 같다며 저희를 역으로 설득하시더라고요.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이 너무 어렵고 지난한 과정이라 결국 유가족들의 진만 빠지는 일이 될 거라고. 어떤 선택과 판단을 해야 할지…. 막막하고, 무력감을 크게 느낍니다.

 

세월호 참사는 특별법을 통해 비로소 단일 재난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 기구가 운영된 첫 사례였습니다. 이는 기존의 수사·조사만으로는 진실을 밝히기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특별법 제정 과정 자체가 큰 벽이었죠. 그 뒤로도 같은 어려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정부자: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유가족들이 안해본 일이 없어요. 단식, 삭발, 도보행진…. 국민 서명을 받으러 전국에 안 다닌 곳이 없이 다녔어요. 국회에 특별법 제정을 청원하는 서명에 무려 650만 명이 참여할 정도로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특별조사위원회가 시작되었지만, 그 출발부터 정부와 여당의 방해를 받으며 결국 강제 종료되었습니다.
어렵게 세월호를 인양하고, 선체조사위원회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까지 마쳤는데도 침몰원인에 대해 결론을 못내렸어요. 그런데 참사 10주기가 지나고 나니까 조용해지더라고요. 사참위가 침몰 원인에 대해 선조위 때처럼 결론을 열어둔 채로 끝낸 건, 유가족들 보고 그냥 죽으라는 얘기예요. 죽을 때까지 마음의 감옥에서 살라는 거죠. 이렇게는 살 수 없잖아요. 안타깝게 희생된 분들을 위해서라도 진상규명은 꼭 해야 합니다. 희생만 있고 진실은 밝혀지지 않는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이건 국가가 끝까지 해결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송해진: 윤석열 정부 시절에는 너무 깜깜했거든요. ‘이 시간을 어떻게 버텨야 하나, 특별법을 과연 만들어야 할까. 안 만드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의견까지 나왔습니다. 가족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많았지요. 지금 정부에서 굳이 특별법을 만든다고 해도, 강제 조사 권한이 부족한 특조위가 구성된다면 과연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우려였죠. 그래서 어떤 가족들은 ‘차라리 탄핵 투쟁에 집중하자’고 말씀하시기도 했어요. 이재명 대통령께서도 그 부분을 어느 정도 공감해 주신 것 같습니다. ‘경청의 자리’ 이후에 합동수사팀이 새로 꾸려졌습니다. 이전보다는 조금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기기도 했어요. 특별법 개정도 필요한 부분이 있어 정부와 협의 중인데 잘 풀리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원맨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그 뒤에 윤석열 정권이 들어설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이번에 새로운 정부에서 정말 많은 변화가 이루어진다 해도, 다음 정권에서 다시 말짱 도루묵이 돼버린다면 그게 과연 무슨 의미일까 싶습니다.

김유진: 참사의 형태는 다르더라도 오직 진상 규명만이 유가족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참사가 세월호참사는 해수부, 이태원참사는 행안부, 12.29 제주항공참사는 국토부와같이 정부 부처가 관련된 경우가 많아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는 국토부 산하인데, 참사를 키운 대표적인 원인인 공항의 로컬라이저에 대해 구조적으로 ‘셀프조사’를 진행하고 있어요. 이에 유가족들은 진상 규명을 위해 사조위를 독립시키라는 요구를 하고 있구요. 미국은 NTSB라는 연방교통안전위원회가 육상, 항공, 해상 등 모든 종류의 교통사고를 조사하고 있어요. 세월호참사가 일어났을 때 NTSB처럼 독립적인 기구를 설립했다면 이러한 불신은 없었을 거라 생각입니다.

 

재난·산재 참사 피해자들이 국가적 재난의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는 독립 조사기구를 상설적으로 세울 것을 요구한 것이 이미 문재인 정부 때 일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피해자들의 고통만 가중되는 상황입니다.
아리셀대책위에서는 지난해 9월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1차 보고서>를 내셨잖아요. 올해 경기도는 참사 1주기에 맞춰 종합보고서를 발간하면서 유가족 인터뷰와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의 문제 제기도 함께 다뤘습니다. 피해자 중심의 접근을 했다는 걸 강조했는데 어떻게 보셨나요?

여국화: 저는 아직 안 봤어요. 아직 볼 준비가 안 됐어요. 언젠가는 보려고 받아놓기는 했는데, 엄두가 안 납니다. 지금도 사촌 여동생이 너무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납니다. 사고 후에 동생의 사체 사진을 얼떨결에 보게 됐어요. 육안으로는 제 동생이라고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그 사진을 보고 더 화가 났어요.
우리 아리셀 참사 같은 경우는 아직 다섯 가족이 합의를 안 했어요. 그중 세 가족은 반쪽 합의만 했고요. 악플을 엄청 많이 받았어요. “너희는 중국인이니까 중국 가서 보상받아라.” “너희는 돈만 주면 다 되잖아.” 그런데 저희 중에 돈 얘기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돈 준다고 해서 내 가족이 다시 살아납니까?
책임자들이 보여주는 태도를 보니 더 화가 나는 거예요. 제대로 된 책임자라면 사고가 일어나자마자 유가족들을 먼저 찾아와 사죄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뻔뻔하게 아버지라는 사람은 아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그 아들은 돌아가신 분들께 뒤집어씌우기에 바쁘고. 아리셀 측은 사과와 대화 대신 유족들과의 개별 합의를 하려고 했어요. 국적에 따라, 비자에 따라 다른 보상합의안을 제시했어요.
저희가 중국 사람들이다 보니 한국 법을 잘 알겠어요? 재판에 가면 용어들이 어려워서 알아듣지도 못할 때가 많아요. 솔직히 졸음이 올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반드시 그 자리에 있어야 해요. 유가족들이 법정에 자리 잡고 있음에도 판사가 사측 편의를 많이 봐주고 있다는 게 눈에 보이거든요. 책임자 박순관 아리셀 대표와 그의 아들 박중언 총괄본부장은 구속되어서 재판받다가 마지막 재판에서 검찰이 아리셀 대표 박순관에게 징역 20년, 총괄본부장인 아들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는데, 아직 선고가 나오지 않아 불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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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참사 대응을 단계별·영역별로 구분해 바라보는 시선에 익숙합니다.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피해 회복, 그리고 기억과 추모. 그러나 피해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모든 과정은 통합적으로 이루어질 때에만 진정한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피해와 회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고민 또한 더욱 깊어져야 합니다.
지난 8월 13일 대통령실이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국가가 책임지는 기본 사회 구축에 힘쓰겠다”는 표현과 함께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재난 대응 시스템 고도화 등 안전 관련 과제가 포함되었습니다. 이러한 약속이 그저 말잔치로 끝나지 않기를, 그 누구보다 참사 피해자들이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새 정부에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한마디씩 부탁드립니다.

여국화: 저희는 외국인이라는 처지라서 더 뭉치기가 힘들었어요. 이모가 저도 모르게 자식의 죽음에 대해 합의를 해버렸습니다. 처벌불원서에 사인까지 했더라고요.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이모한테는 잘했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울화가 치밀었어요. 이모가 자식을 잃고 스트레스가 크다보니까 예전에 교통사고 후유증이 도졌어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6개월 이상 있으면 국민건강보험에 의무가입해야 되는데, 소득이 없는 상태여서 큰 부담이 됐어요. 여러모로 버티기가 힘들었던 거죠.
한국에 와서 외국인으로 일을 하면서 저는 벌써 산재로 가족 두 명을 잃었습니다. 제 남편도 벌써 세 번이나 산재를 당했어요. 마지막에는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절단해야 할 정도로 큰 사고였어요. 시동생들도 손가락을 다쳤습니다. 그런데 또 이모네 딸을 그렇게 온전치 못한 모습으로 보내야 하는 아픔까지 겪게 되었어요.
에스코넥은 정규직과 파견직, 내국인과 외국인을 차별했어요. 리튬 전지는 전용 소화기로만 꺼지는데, 당시에는 일반 소화기를 분사하니 불이 더 커졌어요. 방화 시트도 있었는데 일용직 노동자들은 그 존재조차 몰랐습니다. 회사에서 아무런 교육을 해주지 않았으니까요. 비상구도 일용직과 정규직을 차별했어요. 비상구라면 비상시에 누구나 쉽게 열려야 하는데, 거기는 아이디 카드나 지문 인식을 해야만 열렸습니다. 그것도 앞으로 당겨야만 열린다고 하더라고요. 심지어 그 비상구 위치조차 몰랐고, 결국에 외국인 노동자들은 창문조차 없는 안쪽에 몰려 고립돼서 돌아가신 겁니다.
게다가 희생자들의 ‘목숨값’도 차별했어요. 그래서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유가족협의회는 차별 없는 피해 보상을 요구했습니다. 희생자 모두에게 정규직 임금을 적용하고 중대재해에 따른 책임을 인정하는 배·보상을 하라고요. 사람은 누구나 같은 목숨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죽고 싶어서 출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김유진: 각 참사를 보면 공통점이 있어요. 막을 수 있는 사고, 줄일 수 있는 사고였다는 점이에요. 참사가 발생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아니라는 점도 마찬가지고요. 수많은 경고들이 있었고 그것들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묵인된 시간과 작은 실수들이 쌓여 결국 참사가 발생합니다. 이 패턴이 계속되고 있잖아요. 참사의 크기만큼 책임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 책임이 너무 작다 보니까 이게 계속 되풀이되는 거예요. 위험을 관리하는 비용을 내느니 사고가 일어났을 때 목숨값 조금 물어주고 일하는 사람을 부속품처럼 갈아 끼우면 되는 거니까. 참사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책임을 제대로 묻는 게 필요합니다.
또, 재발 방지 대책도 필요하지만 피해 지원을 끝까지 책임져주는 국가의 책임이 필요해요. 한번 유가족은 평생 유가족이에요.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세월호참사도 피해자 의료지원이 10년뿐이라면서요. 911은 평생이라고 해요. 국가가 다 끝까지 책임을 져야죠. 임기응변식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이 세워지면 좋겠어요.

정부자: 세월호 유가족들은 지금도 고민이에요. 추모시설이나 기억공간 같은, 우리가 벌려놓았지만 완성하지 못한 일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또 가족들이 가장 바라는 진상규명 문제도 여전히 열려 있는 채로 둥둥 떠다니는 상황이에요.
5년 후면 우리도 급속도로 늙어갈 거예요. 마음부터가 지쳐서 더 이상 누구에게 이걸 얘기하고 싸우고, 다시 과제를 꺼내놓을 힘이 있을까 싶어요. 그래서 저는, 이 문제를 잘 해결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게 이재명 대통령 때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서는 믿음이 약간 있어요.
선생님과 일반인 희생자 분들은 추모관이 다 만들어져서 모셔져 있고 학사 일정으로 수학여행에 갔던 아이들이 돌아올 공간(4.16생명안전공원)을 지금 만들고 있는데요. 안타깝게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서 그래도 가족인 우리가 목소리를 내줘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야 희생자가 덜 억울할 것 같아요. 이 사회가 희생자를 대우하는 게 좀 달라질 것 같아요. 그 변화를 발판삼아서 우리 미래 세대 우리의 모두가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 안전한 사회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송해진: 유가족이 되어 보니 ‘진상규명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자주 하게 됩니다. 특조위가 조사를 시작했는데, 어떤 결과 보고서가 나와야 ‘진상규명이 됐다’고 납득할 수 있을까. 특정한 윗선이 형사처벌을 받았다고 해서, ‘아, 이제 진상규명이 끝났네’ 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유가족이나 사회 전체가 공통의 상식에 부합한다고 여길 수 있는 결과여야 합니다. 사고 당일 길 위에서 있었던 일 뿐만 아니라, 왜 그날, 그 이전과 이후에 그렇게밖에 대응하지 못했는지 밝히는 것이 특조위의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납득할 수 있는 최종 보고서가 나오고, 그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진상규명이란 게 단순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원인을 밝히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원인을 파악하는 이유는 미래가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거든요. 이전의 사회와는 다른 변화가 만들어져야, 그게 희생자들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 되는 거죠.
행정부가 노력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한 국가라는 공동체가 운영되는 데에는 여러 부분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잖아요. 그 부분들이 함께 방향을 잘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분명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테니까요.
그런 점에서 세월호 어머님들이 그동안 너무나 잘해 주셨고, 저희 이태원 가족들도 이제 올해부터 진상규명 과정을 밟아갑니다. 또 이후에 다른 아픔을 겪은 모든 참사 피해자분들과 함께 갈 수 있도록, 시민들과 함께 활동하고 연대하고 공감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과정들이 결국 우리 사회 인식을 조금씩 바꾸어 가는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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