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십육일의약속[탐방] 희망이 보이지 않아도 노란리본을 만들어요-광주 줌마리봉스

[탐방] 광주 줌마리봉스

희망이 보이지 않아도 노란리본을 만들어요


 

노란리본 공방 ‘줌마리봉스’는 광주광역시 주민 모임이다. 세월호참사 이후 배우이자 방송인 지정남 씨의 제안으로 광주 지역에 노란리본 공방이 하나둘씩 만들어졌다. 줌마리봉스도 그 흐름을 타고 활동을 시작했다. 첫 모임은 2014년 7월.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다. 주로 활동하는 회원의 연령대는 40~60대. ‘(아)줌마’라는 이름이지만 남성도 함께한다. 교사, 생협 조합원, 직장인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10년을 보내며 서로를 존경하게 되었다는 줌마리봉스의 아름다운 이야기와 만나보자.

 

작은 리본에 담긴 큰 세상

 

오경진: 줌마리봉스는 다양한 리본을 만들었어요. 가슴에 다는 리본, 가방에 다는 리본, 나무에 다는 큰 리본. 백남기 어르신을 추모하는 리본에는 검은색을, 사드 반대 투쟁에 함께하기 위해 파란색을 함께 섞어서 만들기도 했어요. 미얀마에 평화를 바라는 빨간 리본도 만들고요. 리본의 쓰임새에 따라 적절한 폭과 크기를 결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리본을 가방에 다느냐 가슴에 다느냐에 따라 적합한 크기가 다르거든요. 매년 3, 4월은 만들어야 하는 양이 많으니까 각자 한 공정씩 맡아서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처럼 돌아가기도 했어요. (웃음)

 

박춘애: 저는 교사예요. 학교에서 사회교육 주간에 학생들과 노란 리본을 만들어요. 이 작은 노란리본을 만드는 공정이 보기보다 꽤 복잡해요. 리본을 만들려면 에바(EVA)폼을 자르기부터 시작해요. 어느 정도의 폭으로 자르느냐에 따라 완성된 리본의 느낌이 달라져요. 띠처럼 길게 자른 후에 리본 모양으로 구부려야 하는데, 어떤 각도로 겹치느냐에 따라서도 리본 모양의 완성도가 달라지거든요. 본드를 발라 붙이는 작업 하나도 아이들마다 자기 방식이 있어요. 만드는 사람의 개성과 숙련도에 따라 같은 리본에도 차이가 생기는 거죠. 리본을 만드는 전 과정에 전문성이 녹아있어요. 리본을 만들면서 서로 이야기도 많이 나눠요. 전 과정이 교육적이죠. 줌마리봉스 같은 분들이 교육 현장에 결합해서 노란리본 만들기를 이끌어주시면 학교 교육이 훨씬 풍성해져요.

 

조재희: 세월호참사 일어나고 5년 정도는 밤을 새워가며 리본을 만들었어요. 7년 차부터는 수요가 많이 줄었어요. 5.18 전야제 때 부스를 하나 얻어서 노란리본을 나누는데, 어르신 한 분이 왜 5.18에 4.16 리본을 갖고 왔냐고 물으시더라고요. “노란 리본은 생명존중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세월호참사만이 아니라 모든 사회적 참사를 잊지말자고 말하는 노란 리본입니다”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그러면 나도 하나 주시오”하고 받아 가시더라고요. 2017년 봄에 세월호가 인양되고 목포신항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당시 급하게 노란 리본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왔어요. 지역 아이쿱생협에 함께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어요. 5천 개가 넘는 상당한 양이었는데, 조합원들이 한마음으로 참여해서 제때 만들어갈 수 있었어요. 정말 고마웠어요. 노란리본은 일일이 사람 손으로 만들거든요. 사람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잖아요.

 

사람이 온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

 

조계현: 줌마리봉스의 유일한 남자 회원입니다. (웃음) 줌마리봉스는 저에게 인연이고 숙명입니다. 진상규명이 끝날 때까지 함께해야 하는데 제가 죽기 전에 이 문제가 해결될지 모르겠네요. 그러니 숙명이지요. 세월호만큼은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책임감이 느껴졌어요. 10년을 한결같이 세월호를 기억했어요. ‘작심 3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이 뭐 하나를 길게 하기 어렵잖아요. 최소한 나한테 주어진 책임에만은 나태해지지 말자는 생각으로 살아가다보니 제 삶을 더 잘 살아가게 되더라고요.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었어요.

 

금인숙: 줌마리봉스가 10년이나 이어질 줄 몰랐어요. 처음에 속으로 ‘이 사람들이 몇 년 하다 말겠지’라고 생각했어요. 줌마리봉스와 함께한 10년은 많이 배우고 깨닫는 시간이었어요. 엄마로서도 사람으로서도 많이 성장했어요. 사람들이 모이면 남의 험담으로 대화가 흘러갈 때가 많은데 여기서는 좋은 말, 따뜻한 말을 많이 나눠요. 모임을 준비하는 조재희 선생님이 책에서 읽은 좋은 글을 준비해 같이 나눠주세요.

 

오경진: 삶에 스승이 될 사람을 만나는 게 참 어렵잖아요. 보통 사람과 사람 간 관계는 계산적이기 쉬워요. 줌마리봉스에 와서 살면서 처음으로 닮고 싶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스승이자 동지를 만난 느낌이죠. 제가 힘든 일이 있어서 그걸 사람들한테 얘기하면 보통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고 들거든요. 줌마리봉스 분들은 먼저 결론 내리지 않고 일단 제 말을 충분히 들어주세요. 저 스스로 자리를 찾아갈 때까지 기다려주시는 거예요.

 

양선화: 모임을 꾸린 조재희 님이 리더십이 있어요. 팽목항까지 자전거로 가는 순례가 있었는데 언니가 하자고 제안해서 같이 다녀왔거든요. 하는 동안에는 정말 힘들었지만 마치고 나니 뿌듯했어요. 제가 나서서 하는 성격은 아닌데, 이렇게 이끌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같이 할 수 있었어요.

 

조재희: 저야말로 다른 분들 덕에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어요. 정현종 시인의 시에 그런 말이 있어요. 사람이 온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모든 사람이 다 내 마음 같지는 않지만, 그중에서 한두 사람이라도 나와 마음을 나눠주면 엄청난 힘이 되거든요. 제가 뭘 한다고 하면 지지해주고, 또 잘못하는 일이 있다면 그걸 돌아볼 수 있게 해준 이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있어서 10년을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처럼 앞으로도

 

박춘애: 세월호는 우리가 평생 안고 가야 할 슬픔의 숙제예요. 세월호참사 이후에 학교에서는 4.16교육과정도 만들고 4.16을 추모하는 행사도 열어요. 4.16교육과정에 담고자 했던 게 생명, 평화, 안전이잖아요. 그런데 또다시 159명의 청년들이 이태원에서 죽는 참사가 일어났어요.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어요. 학교 현장에서 선생님들이 아무리 생명, 평화, 안전 교육을 시켜도 우리 사회 자체가 안전하고 평화롭고 정의롭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의 삶을 담보할 수 없어요. 아이들이 조심해서 될 일이 아닌 거예요.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정치의식을 고양하고 민주시민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공부시켜야 하는 게 맞잖아요. 그런데 현재 우리 교육에서는 정치교육을 못 하게 되어 있어요. 교사에게 정치행동권이 없잖아요. 그러니 행동하기가 조심스럽고, 할 수 있는 말도 한정될 수밖에 없어요.

윤석열 정부가 하는 걸 보면 과연 우리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나 회의가 들어요. 그렇다고 여기서 멈추면 안 되죠. 이게 될까 싶어도 누군가는 말하고 누군가는 싸워야 하는 거 아니야? 줌마리봉스는 그런 마음으로 여전히 노란리본을 만들어요. 사실 힘들어요. 사람들에게 지지받지 못한다는 느낌도 들고. 세월호 유가족과 이태원 유가족도 그런 마음이시겠죠. 5.18도 진실을 밝히는 싸움이 40년을 넘겼는데 아직 발포자가 누군지도 모르잖아요. 5.18 유가족들이 말씀처럼 지치지 않고 가야만 하고, 그것이 결국에는 역사를 바꾸는 힘이 될 거예요.

 

조재희: 시국촛불이 토요일마다 다시 촛불을 들고 있어요. 그래서 노란리본을 들고 나가볼까 하는데, 이제 체력이 달린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2014년에는 한 달에 두세 번 서울에 올라갔는데, 어떻게 그렇게 했나 싶어요.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요. 열심히 활동해온 사람들과 이런 이야기도 나누어볼 때가 아닌가 싶어요. 세월호 10년이라는 시간이 사람들에게 무거움으로 다가오는 거 같아요. 저는 10년이라고 해서 새롭게 뭔가를 해본다기보다는 그냥 제 자리에 있으려고 해요. 꼬부랑 할머니가 될 때까지 기억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어요. 많이는 못하더라도 꾸준히 리본을 만들 거예요.

 

금인숙: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리본을 찾는 곳이 있을까?’ 물음표가 생길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노란리본은 다른 사람에게 주기 위해서만 만드는 게 아니에요. ‘세월호를 기억하겠다’라는 우리 마음을 잘 실천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기도 해요.

 

오경진: 10년 전이면 지금 중학교 3학년이 여섯 살 때예요. 그 아이들은 세월호의 참사에 대해 저희와는 다른 감정을 느낄 거예요. 4월 16일은 국가가 시민의 안전을, 특히나 자라나는 청소년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기억의 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날을 가장 생생히 기억하는 우리가 잊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어야 해요.

 

양선화: 세월호참사가 하루빨리 해결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거 같아요. 앞으로 혹시라도 이러한 참사가 일어난다면 책임감 있게 대응하는 정부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같이 함께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