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십육일의약속[특집] 10주기 특별대담-4.16운동의 현재와 미래를 말하다

그날 이후, 우리는 변했고, 변화를 일으켰다

[10주기 특별대담] 4.16운동의 현재와 미래를 말하다


세월호참사 10주기는 완결이 아닌, 전환을 모색하는 시기다. 좋은 의미의 전환은 지난 시간을 잘 돌아보고 의미 있는 질문을 주고받을 때 생겨나는 게 아닐까.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연대를 통해 연결된 시민들은 세월호참사특별법 제정과 공식 조사기구의 활동을 비롯해 최근의 재난피해자연대 결성까지, 재난참사와 관련해 전례 없는 역사를 써왔다. 지난 10년을 돌이켜볼 때 꼭 짚어보아야 할 중요한 변화와 그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사월십육일의약속」 특별대담을 통해 10주기 이후 진상규명과 안전사회건설 운동의 갈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대담은 2024년 2월 13일 오전 10시, 416연대 회의실에서 열렸다.

 

[대담 참여자]

김선우(4.16연대 사무처장), 김순길(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사무처장),

랑희(4.16연대 운영위원, 인권운동공간 활 상임활동가), 박성현(4·16재단 나눔사업1팀장), 오지원(변호사, 전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피해자 지원 점검 과장,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사무처장)

 

[진행 및 정리]

박희정(사월십육일의약속 편집위원장)


 

 

10주기 앞에 선 마음

 

오지원: 제가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안산 화랑유원지에 설치된 합동분향소였어요. 아이들 영정사진이 너무 많았잖아요. 그걸 보며 당황스럽고 슬프고 무척 화가 났어요. 적어도 천일 정도는 세월호 관련 활동을 해야겠다 생각했었는데, 벌써 3,650일이 된 셈이잖아요. 진실을 최대한 밝혀보자고 힘을 모으고, 가족들이 쓰러지지 않게 우리가 버팀목이 되면서 10년을 맞이한 게 그나마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랑희: 도보행진을 알리는 포스터를 보면서 10년 전에 그 길을 걸었던 생각이 나요. 그때의 걸음과 올해의 걸음은 어떤 게 다를까. 4월 16일은 매년 돌아오는데 10주기라고 뭐가 특별히 달라야 할까 고민이 이리저리 커져요. 제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에 함께하고 있다보니 더 무거운 마음이 들어요. 윤석열 대통령이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지금, 피해자들이 처한 상황이 너무 안 좋으니까요.

 

김순길: 설마 이 싸움이 10년을 갈까 싶었는데, 정말로 여기까지 왔어요. ‘10년 동안 했으면 이제 세월호 가족들도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저도 처음에는 10주기라고 특별히 뭘 더 해야하나 싶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생각하니 고민이 깊어졌어요. 설날에 팽목항에 상차림을 하러 다녀왔는데, 엄마들이 가서 음식을 하는 건 이번을 끝으로 그만하기로 했어요. 챙겨야 할 남은 가족들이 집에 있는데, 명절 때마다 그 사람들을 버려두고 거기 가는 게 미안하더라고요. 마지막 상차림이라고 생각하니, 제가 남들 앞에서 잘 울지 않는데 울컥 눈물이 났어요. 팽목기억관을 지키는 시민들이 명절 상차림을 이어간다고 하시니 고맙고 죄송하죠. 오래 싸워오면서 가족들도 지치고, 이렇게 한계점에 도달하는 일들이 자꾸 생겨요. 여러 의미로 저한테는 10주기가 힘들게 다가와요. 그래도 힘을 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있습니다.

 

박성현: 10주기가 가까워지면서 가족들이 심정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돼요. 특히 형제자매들에게 마음이 많이 쓰여요. 버티기 힘든 고비를 수도 없이 넘었지만, 10년이라는 숫자가 주는 사회적 무게와 그 물리적 시간의 흐름 때문에 가지게 되는 특별한 어려움이 분명 있어요. 그래도 가족들이 잘 견디고 버티고 지혜로운 결정을 내릴 거예요. 긴 시간 곁에서 지켜보며 쌓아온 믿음이 있어요. 때로는 우리끼리만 이렇게 애쓰고 있는 건 아닐까 두렵기도 해요. 잊지 않겠다, 함께 행동하겠다 이야기해주신 수많은 시민들의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각자의 시민들이 선 자리에서 안전과 생명에 관해 화두를 던져주는 문제로 세월호참사가 여전히 그분들께 남아 있으면 좋겠어요.

 

김선우: 지역별로 찾아다니면서 ‘10년의 사람들’을 모아달라, 그래서 이후 10년을 준비하는 10주기를 만들자고 말을 건네고 있는데, 시민들이 많이 반겨주시더라고요. 세월호 가족들이 밥 한 끼 대접한다고 하니까 참사 초기부터 활동하다 잠시 떠나계셨던 분들까지 다 모이시는 것 같아요. 이 힘이 기억과 약속의 실천으로 앞으로도 이어질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낸 첫 길

 

김순길: 긴 시간 동안 우리가 그렇게 노력했는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아직 미흡하다는 점에 참 많이 화가 나요. 그나마 징역형을 받은 사람들도 대통령이 사면해줬어요. 정부는 왜 변하지 않을까? 기득권을 가지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왜 변하지 않을까?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희생과 참사가 일어나야 우리 사회가 변할까? 그런 생각 하면 두렵죠.

 

김선우: 지난 10년을 돌아보자면, 진상규명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많겠죠. 그런데 우리가 그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해 왔던 과정은 의미 있고 훌륭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피해자들과 시민들이 함께 서명운동도 하고 농성도 하며 국가조사기구를 만들었잖아요. 그 국가기구가 제대로 활동도 못하고 문을 닫았을 때, 우리 스스로 조사기구를 만들기도 했고. 침몰 원인을 못 밝혔다, 구조 방기의 정확한 이유를 못 밝혔다고 말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가가 저지른 범죄 사실도 확인했고,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도 확인했어요. 그러한 성과를 잘 정리할 필요가 있어요. 시민들이 자부심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뭐라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함께 한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있었기에 이루어진 일인 거죠. 10년 동안 국가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시민은 달라졌어요.

 

오지원: 진상규명이 됐다, 안 됐다, 평가는 다양할 수 있어요. 설령 이 참사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보고서가 나왔다고 누구나 평가할만한 시점이 오더라도, 어떤 분들에게는 흡족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우리가 원하는 진상규명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결론을 찾는 것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점점 뚜렷해져요. 제가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 들어갈 때, 주위에서 실패할 거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한국 사회에서 재난에 대한 조사기구는 처음이라서 실패할 거라고. 10년 정도 지나고 나니까 ‘성과라는 건 도대체 뭘까?’라는 의문이 들어요. 세월호 특조위 활동할 때, 저는 당연히 그 성과가 ‘보고서’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특조위가 해산됐을 때, 그 성과가 좌절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척 아팠어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의미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의 마음을 느꼈고요. 하지만 이제는 피해자들이 쓰러지지 않고 목소리를 내고 우리가 연대하고 함께 기억하고 더 안전한 사회를 아이들에게 만들어 주고자 노력해 온 그 과정이 전부 성과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 우리 어른들이 반대하는 일부 어른들에 밀려 포기하고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특조위조차 만들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죄책감과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거라고 봐요. 그리고 결과 면에서도 아주 성과가 없는 것도 아니고요, 특조위나 사참위는 실은 ‘역사상 첫 시도’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어요. 조직은 불안정하고 권한도 별로 없고, 게다가 온갖 방해를 받았어요. 그 상황을 거쳐 종합보고서를 냈고, 그 안에 담긴 권고안이 지닌 큰 가치가 있는데, 일부 언론들이 ‘돈만 낭비했다’라는 프레임을 씌우면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이야말로 국가적 자원의 낭비죠.

 

랑희: ‘진상규명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저 또한 해보게 돼요. 저는 인권활동가로, 국가폭력과 관련된 사건들을 당사자의 입장에 서서 규명하는 일을 주로 해왔어요. 제가 접근할 수 있는 사실은 늘 제한적일 수밖에 없거든요. 1부터 100까지 낱낱이 밝혀지는 사실은 존재하기 힘들어요. 그 구멍 난 사실들을 가지고 ‘우리가 이 참사를 무엇이라고 이야기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써내려가는 과정이 진상규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우리가 세월호참사를 둘러싼 진상규명의 다양한 층위들을 충분하게 이야기 나누지 못했던 것 같아요.

 

낡은 사회 허물기

 

오지원: 제가 유가족분들과 세월호참사 관련 재판의 판결문을 읽는 작업을 3년간 해서 곧 책을 내거든요. 제목을 ‘책임을 묻다’로 할까 싶어요. 우리는 국가의 책임을 묻고 싶어서 형사 절차를 다 거쳐봤는데, 한국 사회는 특히 고위 공무원들일수록 책임을 그냥 묻어줬어요. 예를 들어서 김기춘이 국회에 제출한 답변서를 허위로 작성했잖아요. ‘비서실에서 시시각각 보고를 해서 대통령이 대면보고 이상으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취지로 작성한 게 허위냐 아니냐를 가지고 재판이 5년 넘게 진행됐어요. 1, 2심에서는 유죄가 나왔는데 3심에서는 ‘생각합니다라고 했으니 개인 의견’이라고 하면서 사실관계를 허위로 쓴건 아니라고 무죄가 나왔어요. 1, 2심 재판부는 국가 공직자가 국회에 제출하는 답변서의 무게감에 주목했어요. 대통령이 실제 그 보고서를 읽었는지조차 확인하지 않고 답변서를 썼다면 그건 허위라고 인정했어요.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공직자로서의 지위, 책임을 고려했을 때 그 공적 의견 표명에 따른 책임을 져야한다고 본 거죠. 그걸 3심이 단 7쪽의 판결문으로 뒤집었거든요. ‘생각합니다’라고 붙였기 때문에 자기 개인 생각을 쓴 거라는 식으로 너무나 가벼운 판단을 내렸어요. 그간 국가가 주도해온 진상규명의 과정을 보면 한계가 뚜렷해요. 이번에 이태원 참사 관련해서도 윤석열 대통령이 수사 결과를 기다려 보라고 말했지만, 참사와 관련된 직접적인 책임을 거의 못 묻고 있잖아요. 세월호참사 관련 판결문들을 쭉 정리하다 보니 우리가 10년 동안 싸워온 것은 ‘낡음’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기춘 같은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를 두고 ‘국가와 역사를 수호해야 된다’고 말해요. 그들이 말하는 ‘국가와 역사’는 그냥 ‘대통령’이고 ‘본인들’이에요. 공감과 연민의 대상이 국민이고 약자가 아니라, 권력인 거예요. 우리가 이렇게 너무 낡고 민주주의에 맞지 않는 권력자들의 인식, 관행과 싸워야 하니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해요.

 

박성현: 그 낡음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다른 방식의 운동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최근 정부가 보여주는 모습은 그 변화 가능성에 회의감을 들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자를 위한 제도는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는 과정에서 새로운 운동의 흐름과 방향성이 떠오르지 않을까요. 세월호참사를 목격한 시민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세월호를 자기 주제로 삼아 질문을 던져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월호참사가 우리 사회에서 큰 반향을 낼 수 있었던 건 그런 이유일 거예요. 그걸 총화하거나 모으는 작업도 필요하죠.

 

김선우: 세월호참사 관련된 재판들은 거의 다 끝이 났어요. 특조위 관련된 재판만 남아 있는 상황이죠. 향후라도 사법적 판결을 제대로 묻기 위해서는 재판 결과를 정리하고, 그 한계도 좀 명확하게 지적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사회적 책임을 묻는 과정과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피해자, 시민, 전문가가 함께 연구하고 이야기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우선 과제라고 봅니다. 가족들과 논의하고 중장기 계획을 세워 추진하고자 합니다.

 

김순길: 10주기 이후에 진상규명을 어떻게 해나갈지 길을 찾기 위해, 피해자들이 객관적인 판단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도 지금까지 스스로 조사했던 자료, 수집한 관련 기록물들, 판결문 분석 등을 정리하는 작업을 중점적으로 해나가야겠죠. 그래야만 이전에 어떤 게 미흡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되는지가 나올 거라는 생각입니다.

 

책임을 묻다 

 

김순길: 우리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외쳤던 것은 재발을 막으려고 했기 때문이잖아요. 그러려면 그 원인을 찾아야 되는 거고, 그 원인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고위 공무원들이나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다 빠져나갈 수 있는 사회 관행이 유지되고 있어요. 과연 이런 상황에서 이 사람들이 바뀌겠냐는 거예요. 앞으로를 어떻게 전망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이 문제를 풀어가는 게 우리의 가장 큰 숙제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선우: 국가 책임을 묻는 게 특히 이제 사회적 재난 참사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잖아요. 저는 세월호 희생자들이 수학여행 가다가 배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못해서 사망한 사건’이라고 명시하는 게 명예 회복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피해자들이 원하는 진실이자, 진정한 추모와 애도로 가는 길이 아닌가. 사참위 권고에서도 국가 책임을 중요하게 얘기하고 있잖아요. 이 국가 책임을 묻는 과정이 저는 특히나 이 정부에서는 더욱더 중요한 일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지원: 세월호 관련된 재판에서 고위 공직자들은 거의 대부분 무죄를 받았어요. 형사 책임만 묻게 될 때, 무죄를 받는 순간 아무 책임이 없다는 오해가 발생해요. 게다가 사법적인 책임을 완벽하게 물을 수는 없잖아요. 형사 책임이라는 것 자체가 구성하기 너무 까다롭기도 하고. 그러면 우리가 책임 묻는 것을 포기해야 할 거냐? 그렇지 않아요. 형사 책임을 못 묻는다면, 형사책임보다 넓은 법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묻는 게 더 중요해지는 거죠. 사회적 책임을 묻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책임을 지라는 게 무조건 다 감옥에 가라는 말이 아니잖아요. 그 책임을 지는 자리에서 물러난다든지, 앞으로 어떤 식으로 하겠다고 실질적인 대안을 낸다든지. 그렇다면 그 사회적 책임을 누가 선언해 줄 거냐? 독립적 조사기구가 그 역할을 해야 하죠.

 

랑희: 재난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법을 새로 만들어서 조사기구를 어떻게 구성할 거냐 싸우는 데 시간을 다 보내고 있어요. 그러니 조사기구를 안정적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고 상설 조직을 만들어야 해요. 그게 사참위의 권고 사항이기도 했잖아요. 세월호 특조위와 선조위, 사참위의 경험이 잘 복기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사회에서 국가가 만든 조사기구는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아요. 조사기구가 피해자의 편에 있다고 얘기하면 편향이고 정치적이라고 비난받아요. 진상규명은 당연히 피해자 입장에 서야 하지, 피해를 유발한 사람 쪽에 설 수 없는데도. 그러니 조사기구에 들어간 사람들도 자신이 편향되었다고 비춰질까봐 부담을 갖고 당사자들과 거리를 두게 되는 거죠.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두고도 조사위원 추천을 여야 동수로 해야 한다거나 여당이 위원장 갖겠다고 하는 건, 자기들 마음대로 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내는 거잖아요. 진상규명이 중요하지 않은 거예요. 국가의 책임을 최소화하고 회피할 방법을 찾아내는 게 제일 중요하죠.

 

박성현: 생명안전기본법 안에도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조사기구 설치와 관련된 내용이 있어요. 작년에 재난참사 피해자들과 시민사회가 법 제정을 열심히 노력했으나 안됐어요. 올해는 꼭 생명안전기본법을 제정하고, 그 과정을 통해서 세월호참사와 관련된 과제들도 정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권리의 주체가 된 피해자, 그 곁의 사람들

 

박성현: 세월호참사 운동은 당사자 운동으로서의 가능성과 비전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세월호 가족들은 재난참사를 겪었던 피해 당사자들이 직접 자기 목소리를 내고 주체로서 수습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에 알려주었죠. 이를 통해 비슷한 일을 겪은 누군가가 용기 낼 장과 계기를 마련했어요. ‘재난피해자연대’가 그저 상상으로만 그치지 않고 실제로 발족했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권리센터 ‘우리함께’도 만들어졌어요.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라는 이름 안에 진상규명과 안전사회를 함께 고민하고, 유가족과 생존자를 아우르는 수평적 사고방식이 깃들어 있죠.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제안하는 바를 허투루 듣지 않고 같이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존경스러워요.

한편으로 세월호참사는 정말 많은 사회적 자본이 투여된 참사이기도 해요. 제가 10여 개 재난참사 피해단체들을 만나봤는데, 이 정도로 많은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하는 과정을 경험해 본 경우가 없어요. 세월호 가족들이 지닌 힘은 그 사회적 자본들이 유의미하게 작동한 결과이기도 한 거죠. 물론 당사자들이 중심을 잘 잡았기 때문에 그러한 사회적 자본들이 유의미하게 작동했을 거예요.

 

김순길: 맞아요. 저희가 항상 얘기하잖아요. 가족끼리만 했다면 지금까지 못 왔을 거라고. 많은 분들이 곁에서 함께해주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왔어요.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 2주에 한 번씩 확대운영위원회를 열어요. 처음에는 회의 때 고성도 오가고 막말도 오갔어요. 지금은 그런 모습이 크게 줄었죠. 셀 수 없이 많은 회의를 같이 해보면서 갈등을 조율하는 방법을 배워갔어요. 아이들이 같은 학교를 다녔지만 부모들끼리는 서로 생판 모르는 남이었잖아요. 각자 다른 성격에 살아온 환경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이만큼 왔다는 것은 굉장히 훌륭하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같은 부모지만 존경스러워요.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참 어려웠지만, 아이들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해주기 위해서 서로 다독이고 왔던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그런 과정에서 사회를 보는 인식도 많이 변했어요. 스스로 반성도 하게 되고. 안타까운 것은 긴 시간 싸워오면서 우리 곁에서 활동하던 시민들이 지치는 모습을 보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그분들이 상처받지 않을지 고민하게 돼요.

 

오지원: 세월호참사의 피해자분들이 이렇게 노력해 오시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게 가능했을까요. 너무 애쓰셨어요. 분노와 증오를 뿜어낼 수도 있었는데 피해자분들은 일찍부터 아이들을 위해 안전사회를 만들어야만 한다고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셨거든요. 그 힘으로 여기까지 왔고, 피해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바꾸는 데도 많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랑희: 제가 제일 오랫동안 곁에서 함께한 현장이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의 싸움이거든요.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13년을 싸웠는데요. 원하던 목표를 이루지는 못했어요. 어느 순간에 이 사람들이 너무 지쳐서 그만두고 싶은데 연대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못 그만두는 거 아닌가 걱정되더라고요. 한 번도 직접 물어본 적은 없어요. 13년을 투쟁으로 삶을 채운다는 건, 계속 흔들리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오늘은 이랬다가 내일은 저랬다가. 그래서 저는 어떤 현장이든 떠나고 싶으면 떠났다가,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선우: 2014년 4월 16일에 목격자가 되고 증인이 된 시민들은 세월호 가족들과 같이 싸울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면서 ‘애도 공동체’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게 지금까지 ‘기억 공동체’로 유지되고 있다고 봅니다. 시간이 흐르며 떠난 분들도 많지만, 여전히 세월호 가족들 옆에 있는 시민들이 많다는 점도 놓쳐서는 안되겠죠.

 

애도를 배우다 

 

박성현: 세월호참사는 우리 사회가 피해자의 존재를 섬세히 인식하게 만든 계기이기도 해요. 부모들의 슬픔에 가려진 형제자매의 아픔, 생존자라는 존재, 피해자를 지원하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에도 주목하게 되었죠. 피해자 안에는 실은 외국인도 있었죠. 같은 참사를 겪은 사람들 안에서도 혹시 더 소외되는 사람들이 없는지 살피고, 그들에 대한 지원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어요.

 

랑희: 저는 세월호참사와 함께 ‘애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시작됐어요. 살면서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없었거든요. 저뿐만이 아니라 세월호참사를 목격했던 수많은 시민들에게 애도에 대한 감각이 생겨났다는 게 지난 10년의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어요. 재난참사를 애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고 이렇게 저렇게 실천해보는 경험을 해본 거죠.

 

박성현: 인천 추모관이 운영되는 걸 보면서 한국사회 공무원들이 추모관을 바라보는 관점을 알게 됐어요. 프로그램과 사업을 할 돈은 절대 지급하지 않고 인건비와 건물을 운영할 수 있는 비용만 지급하거든요. 그러니까 추모관은 사회적 학습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4.16생명안전공원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4.16재단으로 확성기가 달린 차를 타고 와서 시위를 해요. 애도가 그저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일로 인식되고, 사회적 애도를 통해 이 사회가 성장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보니까, 추모공원을 그저 무서운 대상, 땅값이 떨어지는 문제로만 생각하는 현실이죠. 그러한 현실에서 가족들이 마을 안에서 이웃을 만나는 활동을 굉장히 열심히 해오셨어요. 서로 손에 잡히는 관계가 되는 게, 지역사회가 그 사람의 아픔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데 매우 중요한 조건인 것 같아요. 얼굴을 마주하고, 음식을 나누고, 서로 손을 잡는 관계가 형성되면서 애도의 과정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구나라는 보게 되거든요. 저희는 그 과정을 계속 지켜보고 지지해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한 제주에 세워진 기억관, 아이들을 슬프게 맞이했던 팽목을 지키는 기억관, 세월호가 있는 목포, 그리고 서울시의회 앞에 있는 기억공간을 지키는 데 많은 품이 들어가요. 가족들이 일주일에 3일씩 팽목에 내려가고 계시는데, 정말 힘든 일이에요. 그런데도 그 각각의 장소가 지닌 의미를 보존하고,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사회적 학습의 현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당사자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변화를 체감해요. 4.16생명안전공원이 지금 여러 절차 때문에 착공이 지연되고 있지만, 오히려 이 공간을 활용해 어떻게 희생자들을 기억하게 할 것인가, 그리고 이 참사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되는 시점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김순길: 우리 사회가 추모나 애도에 대한 학습이 안 되어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4.16생명안전공원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호국영령들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우리더러 ‘너희가 나라를 지키다 죽었냐’고 막말을 하는데, 그 사람들도 국가폭력으로 인한 희생이 그저 개인의 문제라고 오래 학습되어왔기 때문이 아닐까요. 세월호참사로 인한 기억공간의 중요성을 시간이 갈수록 더 크게 느껴요. 얼마 전 팽목기억관에 갔을 때, 어떤 부부를 만났어요. 참사 당시 아이들을 수습하는 과정에 함께 한 자원봉사자들인데, 당연히 지금쯤이면 팽목에 제대로 된 기억공간이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대요. 너무 화가 나고 슬프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수많은 참사가 그동안 이렇게 묻혔겠구나 몸으로 느끼고 있어요. 세월호참사뿐만이 아니라 다른 재난참사들도 애써서 찾아보지 않아도 시민들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김선우: 기억공간을 저는 계속 유지하는 것도 국가와 지자체가 책임지는 자세라고 생각해요. 공간 유지를 넘어 어떤 콘텐츠를 그 안에 만들 거냐도 중요한 문제인데, 지금은 기억공간들이 곳곳에 그냥 흩어진 채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걸 연결하고 잘 정리해 나가는 일이 필요하겠죠. 또 우리의 노력으로 인해 정부와 지자체가 만든 안전체험관 같은 시설도 있단 말이죠. 그걸 그냥 덩그러니 두지 말고, 그런 공간도 시민들에게 기억과 교훈을 남길 수 있게 만드는 것 또한 우리의 몫이지 않겠나 싶습니다.

 

다시, 걷다 

 

김순길: 10주기를 앞두고 진실·책임·생명·안전을 위한 도보행진을 시작해요. 세월호 가족들과 시민들이 10주기 앞두고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준비하면서 피해자들이 진실을 찾기 위해 걸었던 길을 이번에는 우리가 거꾸로 거슬러 걸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안녕하십니까’라는 이름인데, 그걸 짓는 데도 굉장한 토론을 했어요. 어쨌든 우리가 10년을 함께 해왔잖아요. 그래서 시민들에게도 여러분들은 안녕하신지 묻고 그분들도 또 우리에게 안녕을 묻자는데 이야기가 모였어요. 2월 25일 세월호 제주기억관에서 출발해 3월 16일 서울시의회 앞 기억공간에 도착하는 일정입니다. 부모들의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잘 걸을 수 있을지 걱정되지만, 시민들이 함께해주시니 믿고 걸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