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십육일의약속[4.16기억공간 소개]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우리가 길을 낼게, 세상의 좋은 말들이 빛을 잃은 곳에서부터

우리가 길을 낼게, 세상의 좋은 말들이 빛을 잃은 곳에서부터

[4.16기억공간 소개]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김도미

 

억수같이 비가 내렸다. 반대편 차선에서는 수시로 물보라가 넘어왔고 차량 뒤꽁무니는 끔뻑거리는 비상등이나 겨우 보였다. 겁이 났다. 올해만 화재와 침수로 사람들이 도로에서 목숨을 잃었고, 늘 그랬듯 ‘예견된 인재’라는 해설이 덧붙었다. 9년의 시간이 무색하도록 세월호가 호명되는 재난의 시대에,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4.16가족협의회)를 방문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무엇이어야 할까. 복잡한 마음으로 들어선 단원구 초지동에서, 노란 리본 조형물이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생존학생 장애진 씨의 아버지이자 가족협의회 총괄팀장인 장동원 씨가 첫 방문을 상세하게 안내해주었다.

 

연대의 콜라주

 2018년 5월 안산 화랑유원지에 있던 정부합동분향소가 철거되면서 4.16가족협의회는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가건물 한 채만 덩그러니 있는 빈 땅이었다. 4.16 생명안전공원이 완공되면 이전할 것을 기약하며, 임시로 컨테이너를 몇 개 놓아 가족협의회 사무실과 모임 공간으로 쓰기 시작했다.

“컨테이너를 들여다 놓으니까 쥐색이라서 우중충한 거예요. 도움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민예총의 이영구 작가가 스케치를 해주고 시민들이 와서 페인트칠을 했어요. 며칠 걸리겠다고 예상했는데, 시민들이 그 뙤약볕 아래서 불평불만 한번 없이 하루 만에 다 마쳤어요.”

4.16가족협의회의 구석구석에는 세월호 가족과 시민들의 연대활동이 퀼트처럼 자리하고 있다. 진입로에서 가장 먼저 보았던 노란 리본 조형물은 시민들이 만들어 기증한 것이다. 안으로 들어와 중앙쯤에 나란히 위치한 조형물 중 노란 리본은 광화문에 있던 것이고, 신주욱 작가가 그린 배 모양의 조형물은 기억식에서 사용한 것을 가져왔다. ‘서울기록원과 안산시의 서고에 더 들일 수 없을 만큼 기록물이 많다’더니, 정리되어 쌓인 물품들이 컨테이너 창으로 언뜻언뜻 보였다.

147개 가정, 80여 명의 회원이 이곳을 꾸준히 드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250개의 꿈이 지금 여기 청(소)년들의 꿈을 응원해

 가족협의회 공간 중 유일하게 컨테이너가 아닌 건물이 꿈숲학교다. 꿈숲학교는 ‘250명 아이들의 꿈을 기억하고, 지금을 살아가는 청소년들과 청년들의 꿈을 응원하는 공간’이라는 소망을 담아, 지난 5월 유니세프 청소년 지원금으로 완공되었다. 가족들의 제안으로 청소년들에게 안전사회의 가치를 알려온 ‘늘풂학교’ 교육 프로그램이 올해 행정안전부 예산 삭감으로 사라지면서 ‘꿈숲 여름학교’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열렸다.

천장이 탁 트여 시원해 보이는 건물의 1층에는 워크숍과 회의 등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이, 2층에는 간단한 주방시설과 교육실이 마련되어있다. 넓은 벽을 채우고 있는 것은 세월호 가족들과 시민들의 바람을 담은 작품들이다. 4.16엄마공방과 4.16목공방의 작품들이 ‘기억상점’이라는 이름으로 한쪽에 전시되어있고, 손끝이 아리도록 매듭으로 피운 꽃과 나비가 날아다닌다. 250명 아이들의 꿈이 250개의 유리배에 실려 별빛처럼 내리고 있다. “4.16 생명안전공원을 반대하는 분께서 우연히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꿈숲학교를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희도 슬프고 그런 게 뭐가 좋겠어요. 아이들이 가진 빛이 있는데, 250명 아이들의 꿈이 있는데요. 저희가 세계에 유례없이 아름다운, 누구나 찾을 수 있는 봉안 시설을 만들거다 하고 말씀을 드리죠.”

4.16생명안전공원의 착공 시기가 늦어지는 사이, 지역의 일부 단체가 “언제까지 국민들에게 슬픔을 강요할 거냐”는 주장을 하며 공원 건립반대 서명운동을 벌이는 중이다. 꿈숲학교의 안팎을 가득 채운 메시지들은, 9년이 다 되도록 모양을 달리하면서 세월호 가족들을 괴롭히는 마타도어(근거없이 누군가를 모략하는 흑색선전)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다.

 

엮어 만들고 노래하며, 저문 세상에서 만들어가는 길

 지역사회에서, 나아가 한국사회에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살아가기 위한 4.16가족협의회의 노력은 이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다양한 가족 동아리 사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4.16가족봉사단은 구례 수해와 강릉 산불과 같이 전국의 재난 재해에 손을 보태고 지역의 아프고 소외된 곳을 찾아다니며 시민사회의 마음을 두드린다. 최근에는 이주민 가정에 소방용품 나눔을 시작했다. 화재감지기와 소화기를 트럭에 가득 싣고 가장 바쁘게 누비는 활동이 되었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 연탄을 사서 난방이 여의치 않은 가정들에 전달하는 활동도 꾸준히 해왔다. 가족들이 직접 나서 생명안전공원 설립을 반대하는 시민들을 만나고 설득할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4.16엄마공방에는 매듭팀과 퀼트팀, 최근에는 화장품을 만드는 팀이 있다. 공방은 세월호 참사 후 피해자들에 대한 폄훼가 극심해져 나가서 밥도 사먹기 어려울 지경으로 공격받던 엄마들이 모여 시작되었다. 2015년에는 아빠들이 모여 목공방을 시작했다. 공방 내부에는 그간 만들어온 작품들이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다. 공예의 종류도 다양해서, 이것저것 시도해 온 시간을 짐작게 했다.

만드는 일엔 재주도 흥미도 없는 가족들은 연극을 했다. “자식 잃은 부모가 무슨 연극이냐”며 손사래를 쳤던 가족들이 벌써 5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합창단 단원이 되어서 시민들을 향해,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의 손을 맞잡고 노래도 부른다. 합창단의 컨테이너는 가족들이 직접 그리고 칠했다. 4.16가족협의회 활동을 유튜브로 송출하는 4.16TV 또한 별도의 방송 제작 공간을 두고 있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동아리 활동에 대해 가족들은 자부심이 크다. 흔한 말로 동아리 활동이 ‘아픔을 잊게 해주어서’는 아니다.

“재난 참사 피해자의 아픔을 치유한다는 말, 저는 별로예요. 가슴에 묻으라고 하는데… 어떻게 묻어요? 가족협의회 동아리는 세 가지 원칙, 기억, 약속, 책임이라는 것을 가족들이 지키자, 우리 사회가 지켜내도록 하자고 모인 공동체인 거예요.”

 

아이들이 지켜보는 곳에서 고민하는 내일

 사무실은 고양이 집과 꽃나무 화분들이 먼저 사람을 반긴다. 4.16가족협의회 활동의 실무를 담당하는 공간으로, 추모사업과 진상규명, 회원관리, 대외협력 등에 관한 부서로 나누어져 있다. 다른 사단법인들처럼 이사진을 두는 대신 활동의 가장 바탕이 되는 동아리와 각 반 단위의 대표들, 이 대표단들의 상급 대표 기구들이 의결권을 가지고 활동을 정한다. 아래에서 위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다.

4.16가족협의회는 지속가능한 활동 조건을 만들어가기 위해 재정사업팀을 구성했다. 재정 마련을 위한 방편의 하나로 공방에서 제작한 기억물품을 판매하는 ‘기억상점’을 열었다. 사무실 오른편에 있는 임원실에는 기억상점을 운영하는 애진 엄마 김순덕 씨의 책상도 하나 있다. 예산을 절약하기 위해서다. 상점을 운영하려니 인스타그램도 해야하고 엑셀도 해야하는데, 상품을 포장해 배송하는 것도 모자라 연극도 하고 있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어떤 공간을 제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장동원 총괄팀장은 대강당을 꼽았다. “강당에 아이들이 있어요. 명절마다 차례를 지내고, 한 달에 한 번씩 가족 회의도 강당에서 열리고 사업보고와 활동보고도 마찬가지예요. 시민들과 연대하는 자리도 그렇고요.” 별도의 회의실에도 아이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세월호 참사 이전에 다녀온 단체여행 사진들이라 거의 모든 아이들이 나온 사진이다. 세월호 가족들은 아이들이 있는 이곳에서 고민한다. 어떻게 해야 진상규명과 안전사회라는 남은 과제들을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어떻게 ‘함께’ 헤쳐갈지를.

 

기억하고 행동하는 재난참사 피해자들의 거점

 세월호 참사는 하나의 상징이자 현실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세월호와 4.16가족협의회는 근래 일어난 재난 참사에 빠짐없이 호명되면서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 및 지원책 마련, 재난 조사와 보도 원칙 등에 관한 선례를 만들어왔다. 그 어깨가 무겁기도 할 것이다. 당장 방문 다음날인 24일에 이태원 참사 300일 시민추모대회 참석이 예정되어 있었다.

“내일은 열여덟 분이 가시네요. 우리도 할 일이 많지만 되도록 함께하려고 해요. 가족을 잃은 사람의 아픔을 아니까… 같이 가자. 헤쳐간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같이 헤쳐가자. 그런 뜻이에요.“

세월호 가족들에게 이태원 참사는 큰 충격이었다. 가족을 잃은 아픔을 아는 두 참사의 피해자들이 서로 마주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사회에서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은 늘 그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물음에 시달린다.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이 ‘세월호처럼’ 정쟁에 휘말리는 게 아닐까 조심스러워한 것도 당연했다.

“저희는 때를 기다렸어요. 그 마음을 이해하니까. 그렇게 해서 나중에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과 사무처장, 저(총괄팀장) 세 사람이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를 만나게 된 거예요. 이후에도 여러 차례 간담회를 했고요.

기억의 공간을 없애려는 국가폭력을 막아서는 투쟁이 세월호 투쟁이기도 했다. 활동을 할 수 있는 안정된 거점의 필요성은 가족협의회에 방문한 다른 재난참사 가족들도 공감하는 바다. 바로 그 점에서 가족협의회는 세월호를 넘어 한국 사회의 재난참사 피해자들의 거점이기도 하다. ‘세월호 이후 한국사회는 바뀌어야 한다’는 구호가 무색하게 또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은 결국 초지동에 있는 색색의 컨테이너에 도착할 것이다. 세상 좋은 말의 빛이 다 바래도, 거짓된 소문으로 덧칠되어도, 끝내 이곳에서 길을 내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