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6 기억공간을 소개합니다] 강릉 세월호 추모 벽화
벽에 새긴 약속, 우리를 연결하다
지현탁
사월십육일의약속은 전국 곳곳에서 시민들이 스스로 만든 세월호 기억공간을 조명합니다. 저마다의 삶 속에서 참사와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4·16연대로 보내주세요. 이번 호에서는 강릉에서 세월호 추모 벽화를 그려온 청년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필자 지현탁 님은 강릉에서 대학을 다니며 지역과 인연을 맺었고, 참사 이후 청년 네트워크 활동을 통해 벽화 제작에 함께했습니다.
🌸첫 번째 벽화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무렵, 강릉에서는 ‘청년공동체 나루’라는 모임이 막 날개를 펴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청소년들이 목숨을 잃은 그날, 우리는 누구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담함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 일렁였습니다.
“청년으로서 강릉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에 연대하자.”
함께 활동하던 친구의 제안이었습니다. 첫 발걸음은 도보 행진이었고, 이어서 지역 플리마켓에 나가 참사의 진실을 알리며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음을 모은 일이, 추모 벽화였습니다.
첫 벽화는 2014년 11월, 서부시장 골목에 그려졌습니다. “뭔가 해보자”는 마음만으로 모였던 청년들에게 벽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어려움은 붓을 드는 일이 아니라, 그릴 ‘벽’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엔 “동네가 밝아지겠다”며 반기던 이들도, 주제가 세월호라는 걸 알면 고개를 저었습니다. 건물주를 직접 만나 수없이 설명하고 설득해야 했고, 허락을 받은 뒤에도 디자인을 두고 조율을 거듭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은 고단했지만, 그만큼 뜻깊었습니다. 벽을 얻기 위해 건물주와 마주 앉을 때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세월호 이야기를 나누었고, 주민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참사를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야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한 환경미화가 아니라, ‘기억의 공간’을 세우는 일이라는 것을.
그해 우리는 네 벽에 그림을 남겼습니다. 청년과 청소년 열네 명이 함께 붓을 들었고, “봄이 오면 다시 모여 그리자”는 약속을 남기고 헤어졌습니다.
2015년 4월, 약속대로 청년들은 명주동에 모여 다섯 개 벽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후 2017년, 2018년, 그리고 2025년 11주기까지, 강릉에는 다섯 차례의 추모 벽화가 탄생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지워진 그림도 있지만, 여전히 남아 우리 곁을 지키는 벽화들도 있습니다.
🎨벽화에 새긴 말들
2014년: 그럼에도 고개를 드는 희망
2015년: 잊지 않았다, 세월호 인양
2017년: 여기, 희망이 있다
2018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
2025년: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벽화를 시작하기 전, 우리는 늘 디자인에 담긴 뜻을 나누고 편지를 읽으며 마음을 모았습니다. 청소년들의 참여가 많았는데, 붓을 쥔 손끝에서 그들이 느낀 분노와 실망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강릉에 사는 사람으로서 내가 세월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 질문이 우리를 이 자리까지 이끌었습니다.저는 기획자로서,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월호라는 이름 아래 모이고 연결되는 순간을 곁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그 힘은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고, 동시에 우리 모두가 공유한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기억의 불씨
2023년 봄, 강릉에 대형 산불이 일어났습니다. 경포대 인근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고, 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그때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맨 먼저 달려와 주셨습니다. 피해 가족들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아이들과 함께 트라우마 회복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주셨습니다.
많은 벽화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그림 앞에 서면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되살아납니다. 누군가를 돌보고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힘, 바로 그 힘이 연대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어느새 4월은 제게 거울 같은 달이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가 외쳤던 기억과 다짐을 잊지 않고 있는가?”를 묻는 시간입니다. 강릉에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그 질문 속에서 찾아가고 있습니다.
올해는 4·16재단 기억 프로젝트로 추모의 밤, 벽화 프로젝트, 그리고 사라진 벽화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시민들의 반응이 좋아 9월에 다시 한 번 전시를 엽니다. 9월 6일 토요일부터 20일까지, 사라진 벽화를 원화로 다시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그린 그림들과 나란히 걸어둡니다. 이 기억의 연결은 우리를 또 어떤 길로 이끌게 될까요?

[4·16 기억공간을 소개합니다] 강릉 세월호 추모 벽화
벽에 새긴 약속, 우리를 연결하다
지현탁
🌸첫 번째 벽화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무렵, 강릉에서는 ‘청년공동체 나루’라는 모임이 막 날개를 펴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청소년들이 목숨을 잃은 그날, 우리는 누구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담함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 일렁였습니다.
“청년으로서 강릉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에 연대하자.”
함께 활동하던 친구의 제안이었습니다. 첫 발걸음은 도보 행진이었고, 이어서 지역 플리마켓에 나가 참사의 진실을 알리며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음을 모은 일이, 추모 벽화였습니다.
첫 벽화는 2014년 11월, 서부시장 골목에 그려졌습니다. “뭔가 해보자”는 마음만으로 모였던 청년들에게 벽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어려움은 붓을 드는 일이 아니라, 그릴 ‘벽’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엔 “동네가 밝아지겠다”며 반기던 이들도, 주제가 세월호라는 걸 알면 고개를 저었습니다. 건물주를 직접 만나 수없이 설명하고 설득해야 했고, 허락을 받은 뒤에도 디자인을 두고 조율을 거듭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은 고단했지만, 그만큼 뜻깊었습니다. 벽을 얻기 위해 건물주와 마주 앉을 때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세월호 이야기를 나누었고, 주민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참사를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야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한 환경미화가 아니라, ‘기억의 공간’을 세우는 일이라는 것을.
그해 우리는 네 벽에 그림을 남겼습니다. 청년과 청소년 열네 명이 함께 붓을 들었고, “봄이 오면 다시 모여 그리자”는 약속을 남기고 헤어졌습니다.
2015년 4월, 약속대로 청년들은 명주동에 모여 다섯 개 벽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후 2017년, 2018년, 그리고 2025년 11주기까지, 강릉에는 다섯 차례의 추모 벽화가 탄생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지워진 그림도 있지만, 여전히 남아 우리 곁을 지키는 벽화들도 있습니다.
🎨벽화에 새긴 말들
2014년: 그럼에도 고개를 드는 희망
2015년: 잊지 않았다, 세월호 인양
2017년: 여기, 희망이 있다
2018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
2025년: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벽화를 시작하기 전, 우리는 늘 디자인에 담긴 뜻을 나누고 편지를 읽으며 마음을 모았습니다. 청소년들의 참여가 많았는데, 붓을 쥔 손끝에서 그들이 느낀 분노와 실망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강릉에 사는 사람으로서 내가 세월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 질문이 우리를 이 자리까지 이끌었습니다.저는 기획자로서,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월호라는 이름 아래 모이고 연결되는 순간을 곁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그 힘은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고, 동시에 우리 모두가 공유한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기억의 불씨
2023년 봄, 강릉에 대형 산불이 일어났습니다. 경포대 인근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고, 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그때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맨 먼저 달려와 주셨습니다. 피해 가족들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아이들과 함께 트라우마 회복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주셨습니다.
많은 벽화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그림 앞에 서면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되살아납니다. 누군가를 돌보고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힘, 바로 그 힘이 연대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어느새 4월은 제게 거울 같은 달이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가 외쳤던 기억과 다짐을 잊지 않고 있는가?”를 묻는 시간입니다. 강릉에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그 질문 속에서 찾아가고 있습니다.
올해는 4·16재단 기억 프로젝트로 추모의 밤, 벽화 프로젝트, 그리고 사라진 벽화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시민들의 반응이 좋아 9월에 다시 한 번 전시를 엽니다. 9월 6일 토요일부터 20일까지, 사라진 벽화를 원화로 다시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그린 그림들과 나란히 걸어둡니다. 이 기억의 연결은 우리를 또 어떤 길로 이끌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