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정옥다예(4.16연대 활동가)
글: 현슬기(4.16연대 활동가)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상징색은 하늘색이다. 하늘과 비행을 떠올리게 하는 색이자, 맑고 안전한 하늘을 되찾겠다는 다짐으로 유가족들이 추모·연대의 표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의미에 맞춰 유가족 채운(가명) 님을 만나는 날, 4.16연대 활동가들은 하늘색 옷을 맞춰 입었다. 연대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채운 님의 티셔츠에는 ‘always be happy’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그 문장처럼 밝은 미소를 보이던 채운 님은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눈가가 자주 붉어졌다. 채운 님은 이번 참사로 어머니 바람(가명) 씨를 떠나보낸 막내딸이다.
“유난히 한가한 연말이었어요. 집 청소를 하고 이른 점심을 먹기 위해 나서는 길이었죠. 그러다 뉴스를 봤어요. 비행기는 다른 교통수단보다 안전하다고들 하잖아요. 그래서 무심코 뉴스를 흘려보냈는데, 엄마가 그 비행기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 느낌이 좋지 않았어요.”
무안공항으로 향하는 길, 뉴스에서 보도하는 사망자 수는 26명에서 179명으로 늘었다. “차에서 엄마의 사망 소식을 들었고, 미친 것처럼 헛웃음이 나왔어요. 그 뒤로는 기억이 잘 없어요. 공항은 아수라장이었고, 몸을 가누기 어려웠어요.”
너무 빨랐던 장례, 너무 빨리 사라진 관심
사고 직후 유가족들을 맞은 것은 수많은 질문이었다.
“기자들이 ‘후속 조치 과정 중에 뭐가 문제 같냐, 뭘 해줬으면 좋겠냐’고 물었어요. 저는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엄마만 살려달라’고 했죠.”
분향소는 서둘러 마련됐지만, 위패와 사진 결정 등 장례 절차 대부분은 유가족의 몫이었다.
“정신없는 와중에 위패 옆에 사진을 올릴지 말지, 어떤 사진을 올릴지 결정하라고 요구했어요. 그런 결정은 유가족이 감당할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 한참 후였다면 모를까, 참사 초반에 유가족이 무슨 정신이 있었겠어요. 그럼에도 우리 엄마 보러 와주실 분들 생각해서 사진을 고르는데 억장이 무너졌죠 ”
언론은 일주일 동안 유가족의 상처와 눈물을 집중 조명했으나 관심은 곧 사라졌다.
“언론은 더 비극적인 서사에 집중했어요. 일가족 사망, 어린 희생자, 그런 안타까움에 따라 주목도가 달라졌어요. 우리 가족은 특징이 없으니 몇 마디 물어보다가 가시더라고요.”
채운 님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없는 참사’라는 점이 더 빨리 참사를 잊히게 했다고 짚었다. 공항 인프라와 야생동물 관리, 안전 규정 등 여러 층위의 문제가 시간에 걸쳐 누적된 사건인 것에 더해 그사이 집권 정당도 여러 차례 바뀐 만큼 어느 한쪽을 향한 정쟁으로 소비되기 쉽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결과 국회에서는 여야가 진상규명을 제외한 지원 중심의 특별법에 신속히 합의했고, 정쟁이 붙지 않은 만큼 언론과 정치의 관심도 빠르게 가라앉았다.
“정쟁의 대상이 아니면 주목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에요. 무안이라는 지역성도 무시할 수 없죠. 서울이나 인천공항에서 일어난 사고였다면 더 많은 시민이 자기 일처럼 느꼈을 거예요.”
조사는 있는데 전체 그림은 없다
진상규명이 아닌 개선안 마련을 위한 조사만 있다
현재 조사는 국토교통부 산하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이하 사조위)가 맡고 있다. 채운 님은 이 조사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항공사와 공항은 국토부가 관리하잖아요. 결국 관리의 주체인 국토부에도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데 그걸 셀프 조사하는 건 상식에 맞지 않죠.”
게다가 사조위는 설치 근거법인 항공철도사고조사법에 따라 조사의 목적이 개선안 마련 및 안전권고 등에 있다.
“이번 참사의 주요 원인으로 주목받는 철근 콘크리트 둔덕(로컬라이저 받침 구조), 조류 충돌 방지 활동 해태를 예로 들어볼게요. 사조위는 둔덕과 조류 충돌 가능성이 사고에 미친 영향을 ‘과학적·기술적’으로 분석하고 개선안을 제시하겠죠. 하지만, 죽음의 둔덕을 누가 허용하여 방치했으며, 심지어 중간에 더 단단하게 보강했는지에 대한 ‘법적책임’은 다룰 수가 없어요. 마찬가지로 그날 그곳에서 조류 활동을 파악하고 세 떼를 몰아내는 일을 누가 왜 방기했는지에 대한 조사도 없을 거고요.”
조사 인력이 항공기 정비와 관련된 인력 중심이라는 점도 문제다.
“조류 영향, 공항 관리시스템 및 행정적 적법성, 콘크리트 둔덕 문제 같은 현장 조건 역시 밝혀야 하는 대상인데, 이 중요한 영역의 조사의 대부분을 외주 용역에 의존해요. 그럼 이 위원회에서 조사를 주관할 이유가 왜 존재하는 거죠?”
정보 공개도 단편적이고 제한적이다.
“항공철도사고조사법에 따라 사고 조사에 영향을 미치거나 사생활 침해가 있다는 이유 등을 대며 블랙박스 정보를 충분히 안 줘요. 그런데 얼마 전 엔진 결함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는 조종사의 실수로 비칠 수 있는 비행 기록 관련 정보는 섣불리 공개하는 거예요. 나중에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를 제공해 죄송하다고 입장을 표명했지만, 이런 정보야말로 사고 조사에 영향을 미치거나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는데 신중해야 했던 거 아닐까요? 정보 공개, 비공개의 기준이 불명확하고 제멋대로 해석한다는 증거죠.”
ICAO 국제규범, ‘독립성’의 이름으로 독립을 잃다
항공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조사 방식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기준을 따른다. 사고 발생 국가가 주도적으로 사고 조사를 수행하며, 안전 개선과 재발 방지를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기술 분석과 자료 복원, 안전권고 발행 등을 수행하되, 형사 책임이나 배상 문제는 조사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이 규범이 현실에서는 구조적 한계를 동반한다는 점이다. 조사 결과는 ICAO에 보고되고 각국에 통보되지만, 권고사항은 법적 구속력이 없으며, 수용 여부도 해당 국가의 재량에 달려 있다. 사조위가 정부 산하에 있으면서도 ‘독립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이유이지만, 유가족으로서는 회의가 커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가 와서 설명해도 이해하기 어려워요. 전문가도 본인 소관만 잘 알 뿐이죠. 음성 기록 장치(CVR)나 비행기록장치(FDR)와 같은 블랙박스, 엔진 등 비행동력장치, 공항시설물 설계도 등... 그에 따라 책임 주체도 국가 또는 국내외 민간기업으로 달라지고, 검토할 적용법도 중대재해처벌법 또는 제조물책임법 등으로 달라져요. 국제소송(보잉사)과 국내소송(제주항공)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것인지도 불분명하고, 국내법에 우선한다는 ICAO 규정은 규범에 불과해 구속력이 없다는 해석도 있고, 일반인에게는 너무 어려워요. 정보는 조각조각인데 큰 그림을 그려주는 사람이 없어요. 결국 유가족이 비행기 엔진부터 법까지 다 공부해서 퍼즐을 맞춰야 하죠.”
채운 님은 자주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고 했다. “재난은 국가의 몫이라고 말하는데, 그 누구도 명확한 범위를 말해주진 않아요. 그저 수사적인 말뿐이에요. 유가족은 혼란스럽죠. ‘국가는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나’를 밝히는 것보다 ‘우리는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는가’를 반문하는 데에 때로는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때도 있어요. 유가족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며 시민들의 손가락질을 받아야만 했던 지난 참사의 과거 사례가 무겁게 다가옵니다.”
진실을 알아야 떠나보낼 수 있다
국회는 <1229 여객기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 생활·의료 지원과 심리 치유, 아이돌봄, 교육비 지원을 포함한 실질적 지원의 틀을 만들었다. 지원의 항목만 놓고 보면 세월호참사 이후 지난 11년 간의 경험이 제도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법의 중심이 피해 구제와 지원에만 머무르면서 참사의 원인을 규명할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 강제적 자료 제출, 공청회, 유가족의 절차적 참여 보장, 수사와 기소의 연계 등은 빠져있다. 그렇기에 채운 님과 유가족들은 “진상조사부터”를 반복해서 외칠 수밖에 없다. 지원은 출발점일 뿐,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을 묻는 공적 책무가 비어 있으면 유가족의 권리는 여전히 공백 속에 남는다.
“유가족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말이 조심스럽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진상규명이 절실한 이유가 특정인을 감옥에 보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엄마의 마지막에 관한 진실을 세세히 알고 싶어서예요. 가족들의 만류로 엄마의 마지막을 직접 확인하지 못한 부채감이 큽니다. 자초지종이라도 샅샅이 알아내야 이 원통함이 줄어들고 나중에 엄마를 봐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아요. 모든 걸 다 떠나 사랑하는 내 가족의 일인데, 그것도 생이별당한 연유나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채운 님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찾아봤다. 제주항공 참사 관련 발의 법안 20여 개 가운데 대부분은 재발 방지를 위한 법안이었다. 참사의 발생 이유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채로 재발 방지 법안이 먼저 나온 셈이다. “단편적인 재발 방지 대책만 가득하고 진상조사와 관련된 내용은 없어요.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를 알아야 재발 방지도 가능한 거잖아요.”
그래서 유가족들은 특별조사위원회를 요구한다. 수사권과 기소권, 자료 제출 명령권, 유가족의 참여와 정보 제공 및 조사 자료 열람권 등이 보장된 위원회다. “사조위를 국무총리 산하로 옮기는 건 대한민국 전체에 필요한 길이죠. 그런데 우리 사건을 지금 당장 독립적으로 조사하겠다는 건지는 말이 없어요.”
위로의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7월 16일, 대통령은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을 초대해 <기억과 위로, 치유의 대화> 간담회를 열었다. 채운 님은 그 자리에 함께하지 않았지만, 참석한 유가족들의 소감을 대신 전했다.
“지난 정부보다는 진일보했죠. 위로를 받은 분들도 있고요. 그런데 ‘그래서 무엇을 하겠다’가 뚜렷이 없었어요. ‘사조위 결과를 지켜보자’는 기존의 입장 그대로예요.”
국가가 마련한 ‘제주항공 피해자 지원 포털’에 대해서도 물었다.
“형식은 완벽해 보여요. 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문제가 많죠. 예를 들어, 진상조사 전담팀 없이 2차가해 전담팀만 있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나마 2차가해 전담팀조차도 실제 제도 개선은 추진된 게 없어 2차가해 게시물 삭제 요청 시 다른 건과 똑같이 심의에만 6개월이 걸리고 있어요. 플랫폼보다 중요한 건 ‘제도가 실제로 작동되는가’예요.”
지갑 속 엽서, 멈추지 않는 여행
인터뷰 이후, 채운 님은 인터뷰 팀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엄마 얘기를 더 할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이 들어요. 엄마에 대해서라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 아직은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가 봐요.”
장문의 메시지 사이엔 연필로 그린 그림엽서 사진이 함께 있었다.
“일하는 저 대신 엄마가 10년 동안 제 아이를 돌봐주셨어요. 지금 딸을 보고 있으면 엄마의 손길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가슴이 아려옵니다. 마지막으로 딸을 돌봐주시고 광주로 내려가던 날, 할머니를 참 많이 좋아하던 딸이 ‘할머니, 나 돌봐주느라고 고생 많았어. 할머니랑 헤어지는 건 속상하지만 이제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여행 마음껏 다녀’라며 건넨 그림이에요. 엄마는 지갑에 넣어 다니며 사람들에게 참 많이 자랑하셨어요.”
엽서 속 비행기에는 ‘ING AIRLINES’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채운 님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유난히 좋아했고, 매번 새로운 계획에 가득 차 소녀처럼 설레하던 엄마가 하늘나라에서도 179분과 함께 영원히 여행 중이시길 바라봅니다.”라는 말로 메시지를 마무리했다.
항공기 블랙박스는 사고 4분 7초 전 멈췄다. 기록은 멈췄으나, 진상조사는 이제 시작이다. 제대로 된 조사가 선행되어야 설명할 수 있고, 설명이 있어야 작별할 수 있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이들의 권리이자, 국가가 응답해야 할 책무다.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팔찌. 채운 님은 마음이 흔들릴 때 이 팔찌를 쓰다듬으며 숨을 고른다고 했다. (사진: 지니-4.16연대 활동가)
인터뷰: 정옥다예(4.16연대 활동가)
글: 현슬기(4.16연대 활동가)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상징색은 하늘색이다. 하늘과 비행을 떠올리게 하는 색이자, 맑고 안전한 하늘을 되찾겠다는 다짐으로 유가족들이 추모·연대의 표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의미에 맞춰 유가족 채운(가명) 님을 만나는 날, 4.16연대 활동가들은 하늘색 옷을 맞춰 입었다. 연대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채운 님의 티셔츠에는 ‘always be happy’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그 문장처럼 밝은 미소를 보이던 채운 님은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눈가가 자주 붉어졌다. 채운 님은 이번 참사로 어머니 바람(가명) 씨를 떠나보낸 막내딸이다.
“유난히 한가한 연말이었어요. 집 청소를 하고 이른 점심을 먹기 위해 나서는 길이었죠. 그러다 뉴스를 봤어요. 비행기는 다른 교통수단보다 안전하다고들 하잖아요. 그래서 무심코 뉴스를 흘려보냈는데, 엄마가 그 비행기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 느낌이 좋지 않았어요.”
무안공항으로 향하는 길, 뉴스에서 보도하는 사망자 수는 26명에서 179명으로 늘었다. “차에서 엄마의 사망 소식을 들었고, 미친 것처럼 헛웃음이 나왔어요. 그 뒤로는 기억이 잘 없어요. 공항은 아수라장이었고, 몸을 가누기 어려웠어요.”
너무 빨랐던 장례, 너무 빨리 사라진 관심
사고 직후 유가족들을 맞은 것은 수많은 질문이었다.
“기자들이 ‘후속 조치 과정 중에 뭐가 문제 같냐, 뭘 해줬으면 좋겠냐’고 물었어요. 저는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엄마만 살려달라’고 했죠.”
분향소는 서둘러 마련됐지만, 위패와 사진 결정 등 장례 절차 대부분은 유가족의 몫이었다.
“정신없는 와중에 위패 옆에 사진을 올릴지 말지, 어떤 사진을 올릴지 결정하라고 요구했어요. 그런 결정은 유가족이 감당할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 한참 후였다면 모를까, 참사 초반에 유가족이 무슨 정신이 있었겠어요. 그럼에도 우리 엄마 보러 와주실 분들 생각해서 사진을 고르는데 억장이 무너졌죠 ”
언론은 일주일 동안 유가족의 상처와 눈물을 집중 조명했으나 관심은 곧 사라졌다.
“언론은 더 비극적인 서사에 집중했어요. 일가족 사망, 어린 희생자, 그런 안타까움에 따라 주목도가 달라졌어요. 우리 가족은 특징이 없으니 몇 마디 물어보다가 가시더라고요.”
채운 님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없는 참사’라는 점이 더 빨리 참사를 잊히게 했다고 짚었다. 공항 인프라와 야생동물 관리, 안전 규정 등 여러 층위의 문제가 시간에 걸쳐 누적된 사건인 것에 더해 그사이 집권 정당도 여러 차례 바뀐 만큼 어느 한쪽을 향한 정쟁으로 소비되기 쉽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결과 국회에서는 여야가 진상규명을 제외한 지원 중심의 특별법에 신속히 합의했고, 정쟁이 붙지 않은 만큼 언론과 정치의 관심도 빠르게 가라앉았다.
“정쟁의 대상이 아니면 주목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에요. 무안이라는 지역성도 무시할 수 없죠. 서울이나 인천공항에서 일어난 사고였다면 더 많은 시민이 자기 일처럼 느꼈을 거예요.”
조사는 있는데 전체 그림은 없다
진상규명이 아닌 개선안 마련을 위한 조사만 있다
현재 조사는 국토교통부 산하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이하 사조위)가 맡고 있다. 채운 님은 이 조사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항공사와 공항은 국토부가 관리하잖아요. 결국 관리의 주체인 국토부에도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데 그걸 셀프 조사하는 건 상식에 맞지 않죠.”
게다가 사조위는 설치 근거법인 항공철도사고조사법에 따라 조사의 목적이 개선안 마련 및 안전권고 등에 있다.
“이번 참사의 주요 원인으로 주목받는 철근 콘크리트 둔덕(로컬라이저 받침 구조), 조류 충돌 방지 활동 해태를 예로 들어볼게요. 사조위는 둔덕과 조류 충돌 가능성이 사고에 미친 영향을 ‘과학적·기술적’으로 분석하고 개선안을 제시하겠죠. 하지만, 죽음의 둔덕을 누가 허용하여 방치했으며, 심지어 중간에 더 단단하게 보강했는지에 대한 ‘법적책임’은 다룰 수가 없어요. 마찬가지로 그날 그곳에서 조류 활동을 파악하고 세 떼를 몰아내는 일을 누가 왜 방기했는지에 대한 조사도 없을 거고요.”
조사 인력이 항공기 정비와 관련된 인력 중심이라는 점도 문제다.
“조류 영향, 공항 관리시스템 및 행정적 적법성, 콘크리트 둔덕 문제 같은 현장 조건 역시 밝혀야 하는 대상인데, 이 중요한 영역의 조사의 대부분을 외주 용역에 의존해요. 그럼 이 위원회에서 조사를 주관할 이유가 왜 존재하는 거죠?”
정보 공개도 단편적이고 제한적이다.
“항공철도사고조사법에 따라 사고 조사에 영향을 미치거나 사생활 침해가 있다는 이유 등을 대며 블랙박스 정보를 충분히 안 줘요. 그런데 얼마 전 엔진 결함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는 조종사의 실수로 비칠 수 있는 비행 기록 관련 정보는 섣불리 공개하는 거예요. 나중에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를 제공해 죄송하다고 입장을 표명했지만, 이런 정보야말로 사고 조사에 영향을 미치거나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는데 신중해야 했던 거 아닐까요? 정보 공개, 비공개의 기준이 불명확하고 제멋대로 해석한다는 증거죠.”
ICAO 국제규범, ‘독립성’의 이름으로 독립을 잃다
항공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조사 방식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기준을 따른다. 사고 발생 국가가 주도적으로 사고 조사를 수행하며, 안전 개선과 재발 방지를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기술 분석과 자료 복원, 안전권고 발행 등을 수행하되, 형사 책임이나 배상 문제는 조사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이 규범이 현실에서는 구조적 한계를 동반한다는 점이다. 조사 결과는 ICAO에 보고되고 각국에 통보되지만, 권고사항은 법적 구속력이 없으며, 수용 여부도 해당 국가의 재량에 달려 있다. 사조위가 정부 산하에 있으면서도 ‘독립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이유이지만, 유가족으로서는 회의가 커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가 와서 설명해도 이해하기 어려워요. 전문가도 본인 소관만 잘 알 뿐이죠. 음성 기록 장치(CVR)나 비행기록장치(FDR)와 같은 블랙박스, 엔진 등 비행동력장치, 공항시설물 설계도 등... 그에 따라 책임 주체도 국가 또는 국내외 민간기업으로 달라지고, 검토할 적용법도 중대재해처벌법 또는 제조물책임법 등으로 달라져요. 국제소송(보잉사)과 국내소송(제주항공)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것인지도 불분명하고, 국내법에 우선한다는 ICAO 규정은 규범에 불과해 구속력이 없다는 해석도 있고, 일반인에게는 너무 어려워요. 정보는 조각조각인데 큰 그림을 그려주는 사람이 없어요. 결국 유가족이 비행기 엔진부터 법까지 다 공부해서 퍼즐을 맞춰야 하죠.”
채운 님은 자주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고 했다. “재난은 국가의 몫이라고 말하는데, 그 누구도 명확한 범위를 말해주진 않아요. 그저 수사적인 말뿐이에요. 유가족은 혼란스럽죠. ‘국가는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나’를 밝히는 것보다 ‘우리는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는가’를 반문하는 데에 때로는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때도 있어요. 유가족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며 시민들의 손가락질을 받아야만 했던 지난 참사의 과거 사례가 무겁게 다가옵니다.”
진실을 알아야 떠나보낼 수 있다
국회는 <1229 여객기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 생활·의료 지원과 심리 치유, 아이돌봄, 교육비 지원을 포함한 실질적 지원의 틀을 만들었다. 지원의 항목만 놓고 보면 세월호참사 이후 지난 11년 간의 경험이 제도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법의 중심이 피해 구제와 지원에만 머무르면서 참사의 원인을 규명할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 강제적 자료 제출, 공청회, 유가족의 절차적 참여 보장, 수사와 기소의 연계 등은 빠져있다. 그렇기에 채운 님과 유가족들은 “진상조사부터”를 반복해서 외칠 수밖에 없다. 지원은 출발점일 뿐,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을 묻는 공적 책무가 비어 있으면 유가족의 권리는 여전히 공백 속에 남는다.
“유가족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말이 조심스럽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진상규명이 절실한 이유가 특정인을 감옥에 보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엄마의 마지막에 관한 진실을 세세히 알고 싶어서예요. 가족들의 만류로 엄마의 마지막을 직접 확인하지 못한 부채감이 큽니다. 자초지종이라도 샅샅이 알아내야 이 원통함이 줄어들고 나중에 엄마를 봐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아요. 모든 걸 다 떠나 사랑하는 내 가족의 일인데, 그것도 생이별당한 연유나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채운 님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찾아봤다. 제주항공 참사 관련 발의 법안 20여 개 가운데 대부분은 재발 방지를 위한 법안이었다. 참사의 발생 이유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채로 재발 방지 법안이 먼저 나온 셈이다. “단편적인 재발 방지 대책만 가득하고 진상조사와 관련된 내용은 없어요.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를 알아야 재발 방지도 가능한 거잖아요.”
그래서 유가족들은 특별조사위원회를 요구한다. 수사권과 기소권, 자료 제출 명령권, 유가족의 참여와 정보 제공 및 조사 자료 열람권 등이 보장된 위원회다. “사조위를 국무총리 산하로 옮기는 건 대한민국 전체에 필요한 길이죠. 그런데 우리 사건을 지금 당장 독립적으로 조사하겠다는 건지는 말이 없어요.”
위로의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7월 16일, 대통령은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을 초대해 <기억과 위로, 치유의 대화> 간담회를 열었다. 채운 님은 그 자리에 함께하지 않았지만, 참석한 유가족들의 소감을 대신 전했다.
“지난 정부보다는 진일보했죠. 위로를 받은 분들도 있고요. 그런데 ‘그래서 무엇을 하겠다’가 뚜렷이 없었어요. ‘사조위 결과를 지켜보자’는 기존의 입장 그대로예요.”
국가가 마련한 ‘제주항공 피해자 지원 포털’에 대해서도 물었다.
“형식은 완벽해 보여요. 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문제가 많죠. 예를 들어, 진상조사 전담팀 없이 2차가해 전담팀만 있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나마 2차가해 전담팀조차도 실제 제도 개선은 추진된 게 없어 2차가해 게시물 삭제 요청 시 다른 건과 똑같이 심의에만 6개월이 걸리고 있어요. 플랫폼보다 중요한 건 ‘제도가 실제로 작동되는가’예요.”
지갑 속 엽서, 멈추지 않는 여행
인터뷰 이후, 채운 님은 인터뷰 팀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엄마 얘기를 더 할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이 들어요. 엄마에 대해서라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 아직은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가 봐요.”
장문의 메시지 사이엔 연필로 그린 그림엽서 사진이 함께 있었다.
“일하는 저 대신 엄마가 10년 동안 제 아이를 돌봐주셨어요. 지금 딸을 보고 있으면 엄마의 손길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가슴이 아려옵니다. 마지막으로 딸을 돌봐주시고 광주로 내려가던 날, 할머니를 참 많이 좋아하던 딸이 ‘할머니, 나 돌봐주느라고 고생 많았어. 할머니랑 헤어지는 건 속상하지만 이제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여행 마음껏 다녀’라며 건넨 그림이에요. 엄마는 지갑에 넣어 다니며 사람들에게 참 많이 자랑하셨어요.”
엽서 속 비행기에는 ‘ING AIRLINES’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채운 님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유난히 좋아했고, 매번 새로운 계획에 가득 차 소녀처럼 설레하던 엄마가 하늘나라에서도 179분과 함께 영원히 여행 중이시길 바라봅니다.”라는 말로 메시지를 마무리했다.
항공기 블랙박스는 사고 4분 7초 전 멈췄다. 기록은 멈췄으나, 진상조사는 이제 시작이다. 제대로 된 조사가 선행되어야 설명할 수 있고, 설명이 있어야 작별할 수 있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이들의 권리이자, 국가가 응답해야 할 책무다.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팔찌. 채운 님은 마음이 흔들릴 때 이 팔찌를 쓰다듬으며 숨을 고른다고 했다. (사진: 지니-4.16연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