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십육일의약속[4.16기억공간 소개] 광주 남구 세월호·이태원 참사 기억공간

기억의 빛은 모든 곳을 비춘다

광주 남구 세월호·이태원 참사 기억공간 ‘밤에도 빛나는 길’


글 박희정

푸른길 공원은 광주광역시 동구와 남구에 걸쳐있는 근린공원이다. 도심을 지나는 철도(경전선)가 폐선되면서 그 공간을 활용해 만들었다. 전체 4구간으로 나뉘어 있는 푸른길 공원의 허리께인 3구간에는 백운광장이 자리한다. 이곳은 광주 남부권의 중심지이자 전남 서남권으로 나가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1989년 백운고가도로의 설치로 쇠락했으나 2013년 남구청이 이전되고 2020년 고가도로가철거되면서 광주시민들이 자주 찾는 대표적 휴식 공간이 되었다. 이곳에 세월호참사와 이태원참사를 기억하는 장소가 있다. 노란 리본과 보라 리본이 나란히 서 있는 이곳은 참사가 발생했거나 피해지역이 아닌데도 기억공간을 설치했다는 점에서도 특별하지만, 무엇보다 광주 남구청이 구비를 투입해 조성하고 관리하는 기억공간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어두운 밤을 밝히는 마음

백운광장에서 기억공간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사람들의 출입이 많은 대형 아파트 단지 앞쪽에 각각 폭 1.2m, 높이 1.5m 크기의 두 리본이 나란히 서 있어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리본 조형물 옆에는 각 참사의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비석이 하나씩 놓여 있다.
이 기억공간은 ‘밤에도 빛나는 길’이라 불린다. 두 조형물이 어둠이 내린 저녁부터 다음 날 동틀 무렵까지 산책로를 환히 밝히는 등불 역할을 하는 까닭이다. 남구는 시민들에게 안전한 보행 환경을 제공하고, 안전사고가 다시는 발생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기억공간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밤에도 빛나는 길’은 지난해 9월 4일 제막식을 열었다. 원래 같은 자리에 2021년 3월부터 세월호 희생자 추모 공간이 조성되어있었는데, 이곳을 재정비하면서 이태원참사 추모 조형물도 함께 설치한 것이다. 세월호 추모 공간 조성과 재정비는 남구 시민들이 먼저 제안했다. 남구에는 ‘푸른길 촛불모임’을 비롯해 세월호참사 직후 하나둘 생긴 촛불모임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남구청이 시민들의 제안에 적극적으로 화답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기억공간은 만들어지지 못했을 테다.
‘푸른길 촛불모임’의 강경식 씨에 따르면, 재정비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김병내 구청장이 “이태원참사 추모 조형물도 함께 넣자”는 제안을 먼저 해왔다고 한다. 남구청에서는 지난해 5월경 광주에 거주하는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에게 연락해 세월호참사 조형물 설치계획을 전하며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에게도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물었다. 그 과정에서 유가족들은 ‘자식 잃은 부모’의 보편적 고통에 공감하려는 구청의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제막식에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많이 참석하셨는데, 추모비에 새겨진 이름을 쓰다듬으며 슬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모든 참사의 유가족들이 다르지 않구나 느꼈어요. 한편으로 이렇게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위로받으시는 모습을 보니 이 공간이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태원참사는 서울에서 발생했지만, 피해자는 전국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다. 광주·전남 지역에도 이태원 참사의 유가족들이 살고 있다.
내가 사는 곳에 나의 슬픔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이들이 있다면, 피해자들은 조금이라도 덜 외로울 것이다.

참사를 기억하는 일
두 리본이 마치 수호성처럼 어두운 밤길을 지켜주고 있지만, 지역 시민들은 지금 설치된 조형물만으로는 이 공간에 담긴 의미를설명해내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고민도 하고 있다. 기억공간 앞에서 추모행사를 열 때는 그 ‘빈자리’를 메꿀 메시지를 전하려 애쓴다. 기억공간을만들었다는 사실에 머물지 않고 기억공간의 형태와 내용에 대해서도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푸른길 촛불모임’을 비롯해 광주에는 여전히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과 안전사회를 향해 걷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 참사 직후 마을마다 촛불모임이 하나둘 생길 때 함께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긴 시간을 함께 활동해올 수 있었던 동력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 앞에서 차오른 분노, 안전한 사회를 꿈꾸는 마음”이었다고 말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가야 하니까.” 단순해 보이지만 지키기 어려운 원칙을 우직하게 이어올 수 있었던 데에는 행정의 뒷받침도 한몫했다. 광주 남구청은 시민모임이 추모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구청 차원에서도 추모 공간을 운영하거나 추모행사를 진행한다. 참사를 기억하는 일이 우리 사회를 안전하게 한다는 당연한 진실이 무시되는 현실에서 공공의 영역이 함께 그 가치를 지켜내려는 소중한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