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십육일의약속[특집2] 법학자와 함께 묻는 재난참사와 국가의 책무

법학자와 함께 묻는 재난참사와 국가의 책무

국민의 안전은헌법이 보장한 국가의 기본 의무

글 류현아(4.16연대 활동가)

재난참사를 애도하는 국민이 거리로 나와 구호를 외치는 일, 이제는 익숙한 광경이 되었으나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재난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시민의 상식으로 자리 잡은 역사 또한 길지 않다. 인식을 크게 변화시킨 계기를 꼽으라면 단연 11년 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참사일 것이다. 참사 직후, 국민들은 광장에서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그리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이는 명백하게 국가에 대한 요구였다.
11년간 쉬지 않고 외친 시민들의 요구는 국회를 움직였고, 국가는 간헐적으로 응답했다. 국가 차원의 조사위원회가 세 차례 만들어졌고, 재난안전법 정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트라우마 관련 법 등 법·제도는 변화했다. 이는 개인적 차원의 추모를 넘어, 죽음을 잊지 않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집단적 실천이었
다. 이처럼 세월호참사는 전 국민을 깊은 슬픔에 빠뜨렸지만, 동시에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감과 희생된 생명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켜 새로운 사회적 요구와 상식을 만들어 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재난참사에 대한 국가책임이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국가책임을 묻는 것은 얼마나 정당한가? 국가가 모든 재난참사에 책임을 져야한다면, 그 방식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세월호참사 11주기를 앞둔 지난 1월 22일, 그 답을 찾기 위해 세월호참사와 이태원참사 피해자 및 시민단체가 ‘재난참사에서의국가책임’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전문가들을 초청했다. 오늘은 그중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발제를 중심으로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모색하고자 한다.

국가책임의 근간 : 헌법, 재난안전법

이재승 교수는 재난참사에 대한 국가책임을 부정하는 논리들을 반박하며, 국가책임의 근거를 보다 확장하는 시도를 제안한다. 먼저, 재난참사에 관한 국가의의무는 헌법에 입각한다. 헌법 제34조 제5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재해예방의무는 국가의 선택/재량 사항이 아니라 헌법이 부여한 작위 의무이다. 이 헌법 규정은 재난안전법으로 구체화된다. 재난안전법 제 2조는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이 발생하였을 때 그 피해를 최소화하여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적인 의무임을 명확히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느 법원도 이 헌법 조항을 근거로국가의 책임을 전면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1)법원은 이를 단지 정책적 청사진으로 해석할 뿐, 국가가 이를 이행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재승 교수는 국가책임을 묻는각 재판의 과정에서 마주치는 한계들을 크게 두 양상으로 나누었다.

1) Henry Shue, Basic Rights, Princeton University Press, 2nd ed. 1996; Liora Lazarus, The Right to Security, pp. 423-441. https://doi.org/10.1093/acprof:oso/9780199688623.003.0024

과실책임론의 한계

재난참사에 대한 국가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질문은 “구체적인 행위가 있었을 때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 아니냐?”라는 물음이다. 현재형사재판과 민사재판은 대체로 행위책임론(과실책임론)에 입각하고 있어, 재난참사에 있어서도 원인이 되는 행위가 구체적일 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재승 교수는 이에 대해 반문한다. “국가의 행정과정에서 개별 공무원의 구체적인 잘못된 행위를 하나하나 특정하여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로 가습기살균제참사를 들 수 있다. 인체에 치명적인 위해를줄 가능성이 있는 성분을 포함한 공산품을 어떻게 분류하고, 어떤 안전성 기준을 적용할 것인지는 ‘정책적판단’이다. 이 정책적 분류 작업을 수행한 공직자의행위를 기존의 귀책주의 관점에서 따지기는 쉽지 않다. 이처럼, 행정적 역할이 세분화되고 관료화된 현대사회에서, 재난참사에서의 국가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귀책주의적 원리는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책임의 미적분

참사는 사건 전 과정에서 각 관련자의 개별 행위가 합쳐져 발생한다. 동시에 개별 행위와 결정들이 서로 누적되고 영향을 미치며 참사라는 전체적인 형상을 만들어 낸다. 이에 대해 이재승 교수는 참사의 책임을묻기 위해 ‘미분’과 ‘적분’의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고주장한다. 즉, 개별 행위를 분석해 책임을 묻는 미분의 방식과 사건의 구조적 배경과 누적된 요인을 살펴 총체적 책임을 묻는 적분의 방식이 적절히 조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 분류에 따르면 세월호참사 당시, 해경 지휘부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식의 질문이 필요했다. 첫째, 미분적 방식으로 해경 지휘부가 수행해야 했던개별 의무(구조 계획 수립, 정보 파악, 임경빈 군 신속이송, 퇴선 지시 전달)를 다하지 않았는지를 따지는것. 둘째, 적분적 방식으로 해경의 조직문화 및 구조적 시스템의 문제를 검토하는 것이었다.
먼저, 해경 지휘부는 개별 의무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음에도 형사·민사 재판에서 책임을 인정받지 않았다. 무죄의 근거로 ‘현장에 없었으므로 직접적인 행위책임이 없고’ ‘예견이 불가능했다’는 논리가 적용되었다. 하지만 지휘부는 언제나 현장에 없으며 현장지 휘관만큼 예견할 수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대응 시스템을 마련하고, 대책을 수립하며, 다양한 세력을 동원하기 위하여 압도적인 권능과 책임을 갖는다. 현장에 없다 하더라도 그들이 해야 했을 중요한 개별 주의 의무를 간과한 해석이었다.
반대로, 해경지휘부가 지닌 총체적인 책임을 고려하여 해경 내 관료주의적 조직문화가 위기 대응을 어렵게 만든 점, 사전에 승객 구조 대응 훈련 시스템이 부재했던 점, 재난 상황에서 지휘 체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한 점에 관한 총체적 책임을 물어야 했지만이에 대해서도 물어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미분적방식의 개별 책임과 적분적 방식의 조직적 책임이 모두 부정되며,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이태원참사 관련 재판에서 각 방식이 책임의 크기를 상쇄시키는 양상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헌법재판소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탄핵 심판에서 “이태원참사는 특정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정부 기관의 통합대응 역량 부족으로 인한 총체적 결과"라며 책임을 부정했다.2) 애초 이상민을 법정에 세운 목표 자체가 총체적 시스템에 관한 적분의 책임을 묻는 것이었다고 한다면, 개별 책임을 묻는 미분의 책임 방식이 근거가되어선 안 되었다.
결국, 개별 책임을 지우려 하면 구조적 문제가 거론되고, 구조적 책임을 지우려 하면 개별 행위자의 책임이 희석되면서 결국 책임이 공중으로 사라지는 기이한결과가 반복되었다. 이는 책임묻기의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함을 시사한다.
2) 헌법재판소 2023.7.25. 선고 2023헌나1 결정.

새로운 책임의 모양

세월호참사, 가습기살균제참사, 이태원참사와 같이 생명보다 경제적 이익을 우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참사, 관료주의와 행정적 과오에 따라 발생한 사회적참사는 비교적 국가책임에 대한 증명이 쉽다. 실상 그 근거가 명확하여 귀책주의적 법리 안에서도 국가책임을 요구할 수 있음에도 국가는 귀책사유를 부인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고 국가책임을 온전히 규명하는 데 한계를 겪고 있다. 이에 대해 이재승 교수는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국가책임을 확장하기 위한 새로운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우리는 반드시 ‘죄’ 혹은 ‘특정 행위’가 있어야만 국가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이재승 교수는 국가책임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국가의 잘못’이 분명하지 않은 극한의 상황까지 고려하여 새로운 국가책임의 개념을 제시한다.3)
독일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는 『죄의 문제』에서 죄(Schuld)와 책임(Haftung)을 구별하며, 개인이 직접 죄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국가적 과오에대한 정치적 책임은 집단적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고 보았다.4) 이를 재난참사의 맥락에서 적용해보면 ‘죄’는 국가의 명백한 과실을 전제로 한 배상 책임을 의미하며, ‘책임’은 잘못이 특정되지 않더라도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새로운 유형의 책임을 의미한다. 더불어 이재승 교수는 일반적으로 국가의 잘못이 없다고 여겨지는 재난참사(지진, 대홍수, 거대 태풍 등)와인류 전체의 책임에서 비롯되는 재난(기후위기와 전염병)이 발생한 경우에서도 한 사회의 부패, 빈곤, 권위주의의 정도에 따라 재난 대응 능력 취약성이 결정되는 점을 고려할 때 그 책임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국가책임을 ‘잘못’이라는 원인에 의해 물을 것이 아니라 ‘피해자와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목적에서 찾을 때 새로운 모양의 국가책임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구조적 불의의 해결과 피해회복을 향해

이재승 교수는 이와 같은 국가책임의 새로운 근거를 사회적 연대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아이리스 영(Iris Young)의 ‘사회적 연결 모델’과 데이비드 밀러(David Miller)의 ‘구제책임(remedialresponsibility)’ 개념을 제시한다.5) 미국 정치이론가 아이리스 영(Iris Young)은 불의(부정의)는 사회 전체의 구조적 관계 속에서 발생하며,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일정한 책임이 있음을 전제로, 사회적 연대 속에해결되어야 한다는 모델을 제시한다. 영국 정치이론가 데이비드 밀러는 구조적 불의를 해결하기 위하여 법적·도덕적 의무에 의한 책임 이행이 아닌 다양한 기준(원인, 능력, 이익, 협약, 과거 행위 등)을 함께 고려해 ‘구제(해결)’를 중심으로 책임을 논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러한 모델을 국가책임론에 적용한다면, 재난참사로 인한 부담을 사회가 함께 나누는 것이 국가책임의 본질이 될 수 있다.
재난참사 이후 형성되는 재난 공동체는 이러한 사회적 연대의 대표적인 사례이다.6) 세월호참사 이후, 피해자 가족들과 시민들은 단순한 피해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국가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연대적 책임을 구현해왔다. ‘십시일반의 연대 책임’은 귀책사유가 없는 책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국가책임은 죄의 유무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안전과 회복을 위한 필수적인 연대의 역할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3) 필자의 이러한 책임론의 구상은 이재승, “군인의 자살과 책임법리의 재구성”, 민주법학 제83호(2023.11), pp. 11-51
4) 카를 야스퍼스/이재승(옮김), 죄의 문제, 앨피, 2014, 116쪽 이하
5) Iris Marion Young, Responsibility for Justice, Oxford U.P., 2011, p. 95 / David Miller, National Responsibility and Global Justice, Oxford U.P., 2007, 81쪽 이하
6) Rebecca Solnit, A Paradise Built in Hell: The Extraordinary Communities that Arise in Disaster, Penguin, 2009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안전권을 보장하라

위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국가책임을 전제할 때, 우리는 재난참사에 대해 국가가 어느 정도의 책임을 져야한다고 요구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이재승 교수는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까지”라고 명쾌하게 답한다.
이 주장의 근거는 2000년 유엔(UN) 사회권위원회가 건강권에 대한 일반 논평에서 제시한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에 대한 권리’(사회권규약 제12조 제2항, 이하 건강권)에서 찾을 수 있다.7) 여기서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이라는 이정표는 절대적이고 조건 없는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건강을 악화시키는모든 원인으로부터 국가가 개인을 보호할 수는 없다.
이는 국가가 국민의 건강권을 위해 실현 가능한 최대한의 정책과 제도를 마련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의미한다.8)
이 개념을 안전권에 적용한다면, 개별 시민의 안전을 절대적으로 보장할 수는 없더라도, 국가는 자연적·인공적 위험으로부터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이 원칙이 곧바로 국가책임(특히 배상책임)의 확정적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새로운 국가책임의 정도에 대한 이정표를 제시하며 최소한 공식사과, 배상기준, 법률, 매뉴얼, 정책 등 국가책임의 최저 기준을 논의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이정표로 삼을 수 있다.
안전한 사회는 온다

세월호참사 10주기를 앞둔 지난 2023년 11월, 해경지휘부가 전원 무죄를 선고받고, 피해자 권리 침해에 대한 국가의 사과마저 외면되는 현실을 보며, 우리는 때때로 거리에서 외쳐온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이라는 구호가 어떤 의미였는지 허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구호들은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우리의 안전에 대해 국가에 책임을 묻는 첫걸음이었다.
재난참사는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상식이 된 변화가 거기에서 시작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안전권에 대한 이해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국가책임을 둘러싼 논의도 확장되고 있다. 당신은 왜 재난참사가 국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가? 국가는 어떻게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는가? 1월 22일, 토론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을 펼쳤던 그 순간들은, 결국 말뿐인 것처럼 느껴졌던 안전 사회를 완성하는 퍼즐 한 조각을 맞추는 과정이었으리라 믿는다.

7) John Twigg, THE RIGHT TO SAFETY: SOME CONCEPTUAL AND PRACTICAL ISSUES, Benfield Hazard Research Centre, Disaster Studies Working Paper, 9 December 2003, p.7, https://www.ucl.ac.uk/hazard-centre/sites/hazard_centre/files/wp9.pdf
8) General Comment No. 14: The right to the highest attainable standard of health(art. 12) adopted at the Twenty-second Session of the Committee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on 11 August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