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의 벽에 가로막힌 화재 참사의 진실을 증언하다
피해자와 함께 쓴 백서로 돌아본 ‘12‧21제천화재참사’
정원옥

[제천화재참사는 2017년 12월 21일 충북 제천시 하소동 복합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총 29명이 사망하고 40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참사 후 긴 세월이 흘렀으나 피해자들은 참사의 진실규명과 책임 묻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난해 말, 『12‧21제천화재참사생명안전 피해자 백서』가 발간됐다. 백서 집필에 참여한 문화사회연구소 정원옥대표를 통해 백서 발간 배경과 그 의미를 들어본다.]
지난해 12월 21일은 12‧21제천화재참사(이하 제천화재참사) 7주기였다. 충북 제천시 하소동 체육공원 뒤편, 외진 야산자락에 자리 잡은 추모비 앞에서 조촐한 추모제가 열렸다. 쌓인 눈이 얼어붙고 칼바람이 부는 매서운 날씨였지만, 추모제 현장은 춥지만은 않게 느껴졌다. 어느덧 낯익은 얼굴이 된 제천화재참사 피해자들, 4‧16재단 직원들, 그리고 『12‧21제천화재참사 생명안전 피해자 백서』(이하 백서)의 집필진과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식장 입구에는 참석자들에게 나눠줄 백서를 담은 종이가방이 빼곡하게 놓여 있었다. 피해자단체 대표님들, 4‧16재단 직원들, 집필진이 5개월 동안 머리를 맞대고 만든 백서가 막 세상에 나온 참이었다. 백서를 만드느라 함께 고생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잔잔한 웃음꽃과 수다가 피어났다. 유가족대책위 민동일 대표님은 말수가 적은 편인데, 백서에 실린 참사 관련 사진과 글이 마음에 든다며 평소답지 않게 너스레를 떠셨다.
5개월 전만 해도 잘 모르는 사이였던 우리가 백서를 펼쳐보면서 함께 기뻐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감개무량하기도 했다. 라포(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 빠듯한 집필 기간, 수도권과 제천을 오가야 하는 문제 등 백서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잘 이겨낸 것이다. 추모제에 맞춰 백서를 발간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우리는 한 팀이었고, 5개월 동안 팀워크가 빛났다고 생각한다.
‘피해자 백서’ 발간이 절실했던 이유
왜 7주기 추모제에 맞춰 백서가 나와야만 했을까. 집필진은 그 이유를 용역사업의 수행사로 선정된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백서 집필은 4‧16재단이 발주한 용역사업이다. 4‧16재단은 여러 재난 참사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를 기반으로 백서를 발간함으로써 사회적 애도와 기억을 토대를 마련한다는 목적으로 ‘다시 쓰는기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첫 번째 사례로 ‘7‧18공주사대부고 병영체험학습 참사’가 선정되어 2023년 ‘피해자 백서’가 발간되었다. 제천화재참사는 ‘다시 쓰는 기록’ 사업의 두 번째 사례로 선정된 것이다.
고백하건대, 용역사업에 입찰하기 위해 제안서를 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제천화재참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언론에 보도된 정보와 몇 편의 논문을 통해서는 제천화재참사가 어떻게 해결되고 있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그런데도 백서 집필에 도전한 것은 피해자들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집필진의 다수가 국가폭력 및 재난참사 피해자를 대상으로 구술인터뷰를 해본 경험이 있는 연구자들이었다. 집필진은 인터뷰 대상자가 몇십 명이 되더라도 참여할 의사가 있는 모든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나설 만큼 열의가 높았다.
백서 집필 사업은 피해자간담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피해자들의 상황이 어떠한지 알기 위해서는 유가족대책위 김영조, 류건덕, 민동일 공동대표, 부상자협의회 한을환 대표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봇물터지듯 쏟아져 나온 이야기들을 듣고서야 집필진은 제천화재참사의 현주소를 파악할 수 있었다. 집필진에게 제천화재참사의 진실을 이해시키기 위해 직접 만든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설명하시다가 끝내 고개를 숙이고 만 대표님들의 붉은 눈시울을 잊을 수 없다. 지난 7년 동안 대표님들은 얼마나 많은 자리에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설명하고, 호소하고, 간청해야만 했을까. 피해자간담회는 7주기에 맞춰백서가 꼭 발간되어야만 하는 이유, 피해자 관점에서 제천화재참사의 진실을 담은 백서가 발간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모두 설명된 자리였다. 집필진은 피해자들이 말하는 진실에 귀 기울이고 정성을 다해 쓰겠다는 약속 외엔 달리 드릴 수 있는 말이없었다.
긴 싸움의 끝이 절망이라면
제천화재참사는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고, 참사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유가족을 찾아 위로했던 장면도 뇌리에 남아 있다.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 대부분의 관심에서 곧 멀어졌다. 민주당이 여당인 정부에서 일어난 참사고 대통령까지 현장을 찾았다고 하니 잘 해결되겠거니, 다들 믿었을 수도 있다. 피해자들 또한 초기에는 참사가 어렵지 않게 해결이 될 것으로 보았다. 참사 발생 직후 실시된 소방합동조사에서 소방지휘부의 부실한 초동대처로 인해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는 사
실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제천화재참사의 원인은 다음의 세 가지로 꼽힌다. 첫째, 건물의 내‧외부 불법 건축. 둘째, 건물관계자들의 안전불감증 및 보호의무 위반. 마지막으로 소방의 무능한 대응이다. 이 가운데 제천화재참사의 피해 규모를 키운 책임은 소방의 무능한 대응에 있었다고 할 것이다.
제천화재참사 당시, 소방지휘관은 ‘한 번 돌아봄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고, 119상황실로부터 2층 여자목욕탕의 요구조자가 있음을 전달받고도 소방대원들에게 전파하지 않았다. 비상구를 통한 2층으로의 진입, 2층 외벽 유리 파괴를 통한 구조 등 인명구조를 위한 적극적인 조치 또한 취하지 않았다. 건물 밖 가족들은 2층 유리창을 깨 달라고 절규했지만, 소방관들이 유리를 깨고 진입한 것은 구조대가 도착하고도 37분이나 지나서였다. 29명의 희생자 가운데 19명의 희생자가 2층에서 나왔을정도로 2층의 피해가 컸는데, 참사 이후 확인한 2층 여자목욕탕에는 화염의 직접적인 피해가 없었다. 소방지휘부의 무능으로 2층 유리창을 제때 깨지 못한 것이 유가족들에게는 가장 큰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다. 이렇듯 소방지휘부의 책임이 명확해 보였지만, 지난 7년 동안 참사는 피해자들이 기대했던 방향으로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소방지휘부를 대상으로 한 형사소송에서도, 충청북도를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소송에서도 패소했다. 진실규명도, 책임자의 처벌도, 배‧보상도 이뤄지지 못했다. 대규모 인명피해를 낳은 제천화재참사에 대해 충청북도는 한 번도 공식적으로 사과한 적이 없다. 이러한 과정이 피해자들에게는 자신이 목격하고 경험한 참사의 진실이 계속 무시되고 부정당하는 고통의 반복일 수밖에 없다.
7년 동안 싸운 결과가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고, 해결할 수 있는 길마저 더는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고 한다면, 피해자들의 분노와 억울함은 어디에서 풀어야할까? 법적으로 해결할 길이 막혔을 때, 참사가 남긴 과제는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는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끝나지도 않았다는 것을 어디에, 어떻게 표시해야 하는 걸까?
4‧16재단이 백서를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 피해자단체 대표들은 쉽사리 찬성할 수 없었다고 한다. 백서를 제작하면 제천화재참사가 해결되어 종료된 것으로 인식하게 될 것을 걱정해서다. 대표들이 4‧16재단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참사의 진실을 밝힐 길이 막힌 상태에서 피해자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기록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류건덕 대표는 피해자의 목소리가 곧 진실이라고 했다. 민동일 대표는 피해자 내부의 다른 목소리들까지도 있는 그대로 모두 기록해달라고 요청했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데 해결할 길마저 사라졌을때,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목소리가 세상에 들리게 하는 것은 참사 해결의 길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참사의 해결을 가로막은 겹겹의 벽
지난 7년 동안 제천화재참사 피해자들이 결코 조용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공동 대표들은 생업을 포기하였을 정도로 참사 해결에 매달려왔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한 채 제천화재참사가 끝난 것으로 잊히고 있는 것에 대해 피해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피해자들은 제천화재참사가 민주당 정부하에서 발생한 사건이고, 도지사가 민주당 출신이었기 때문에 사건의 해결에 비협조적이었으며, 책임 인정도, 사과도 하지않았다고 말한다.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제천화재참사가 해결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소방 전문가들의 침묵도 한몫했다. 소방 전문가들은 소방지휘부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재판부에 자기 이름을 걸고 진실을 증언하는 것은 모두 거부했다.
2018년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에서는 제천화재참사를 다루었다. 피해자들은 그알의 파급력도 너무나도 컸다고 말한다. 그알은 제천화재참사의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방의 대응 실책이라는 사실은 약화시켰고,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피해자들은 소방관의 처벌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소방지휘부의 잘못을 인정하라는 것이었는데, 피해자들의 정당한 요구는 ‘열심히 일하는 소방’을 공격하는 것으로 비난받았고 피해자들을 고립시키는 역할을 했다. 한편으로, 피해자들은 제천화재참사가 수도권으로부터 거리가 먼 지역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해결이 쉽지 않았다고도 생각한다. 피해자들이 보기에 정치권에서도, 언론에서도, 심지어 시민사회마저도 제천화재참사의 해결에 관심이 없었다. 세월호참사는 10년이 흘렀어도 시민단체만이 아니라 시민 주도의 다양한 모임들이 피해자가족협의회와 연대하고 있는데, 제천화재참사의 경우는 단 하나의 시민사회단체도 결합되어 있지 않다. 지난 7년 동안 대한변호사협회 내 ‘생명존중재난안전특별위원회’ 소속의 홍지백 변호사가 유일한 조력자였다. 이렇듯 참사의 해결은 결코 순리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제천화재참사는 참사의 해결이 정치적, 사회적, 지역적인 요인들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방인’의 목소리에 응답하기
지난 1월 24일 제천화재참사 유족 지원을 위한 충청북도의 조례 제정이 끝내 무산되었다. 지난해 9월 충청북도가 발의한 조례안이 충청북도의회에 의해 부결되었는데, 또다시 ‘셀프 부결’된 것이다. 조례안이 최종 폐기되면서 유족 지원을 위한 제도적 근거 마련은 더 어려워졌다. 이제 우리는 제천화재참사를 어떤 사건으로 기억할것인가.
제천화재참사로 어머니를 잃은 안세민 씨는 한국 사회에서 참사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것의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이방인이 된 느낌”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피해자에 대한 혐오를 못 들은 척 삼켜야 하고, 국가와 사회가 배척하더라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목소리를 더는 외면하지 말아야한다. 너무나 억울할 뿐만 아니라, 이방인이 된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피해자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제천화재참사를 기억하는 한 방법이 되어야 할 것이다.
『12‧21제천화재참사 생명안전 피해자 백서』 보기
겹겹의 벽에 가로막힌 화재 참사의 진실을 증언하다
피해자와 함께 쓴 백서로 돌아본 ‘12‧21제천화재참사’
정원옥
[제천화재참사는 2017년 12월 21일 충북 제천시 하소동 복합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총 29명이 사망하고 40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참사 후 긴 세월이 흘렀으나 피해자들은 참사의 진실규명과 책임 묻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난해 말, 『12‧21제천화재참사생명안전 피해자 백서』가 발간됐다. 백서 집필에 참여한 문화사회연구소 정원옥대표를 통해 백서 발간 배경과 그 의미를 들어본다.]
지난해 12월 21일은 12‧21제천화재참사(이하 제천화재참사) 7주기였다. 충북 제천시 하소동 체육공원 뒤편, 외진 야산자락에 자리 잡은 추모비 앞에서 조촐한 추모제가 열렸다. 쌓인 눈이 얼어붙고 칼바람이 부는 매서운 날씨였지만, 추모제 현장은 춥지만은 않게 느껴졌다. 어느덧 낯익은 얼굴이 된 제천화재참사 피해자들, 4‧16재단 직원들, 그리고 『12‧21제천화재참사 생명안전 피해자 백서』(이하 백서)의 집필진과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식장 입구에는 참석자들에게 나눠줄 백서를 담은 종이가방이 빼곡하게 놓여 있었다. 피해자단체 대표님들, 4‧16재단 직원들, 집필진이 5개월 동안 머리를 맞대고 만든 백서가 막 세상에 나온 참이었다. 백서를 만드느라 함께 고생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잔잔한 웃음꽃과 수다가 피어났다. 유가족대책위 민동일 대표님은 말수가 적은 편인데, 백서에 실린 참사 관련 사진과 글이 마음에 든다며 평소답지 않게 너스레를 떠셨다.
5개월 전만 해도 잘 모르는 사이였던 우리가 백서를 펼쳐보면서 함께 기뻐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감개무량하기도 했다. 라포(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 빠듯한 집필 기간, 수도권과 제천을 오가야 하는 문제 등 백서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잘 이겨낸 것이다. 추모제에 맞춰 백서를 발간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우리는 한 팀이었고, 5개월 동안 팀워크가 빛났다고 생각한다.
‘피해자 백서’ 발간이 절실했던 이유
왜 7주기 추모제에 맞춰 백서가 나와야만 했을까. 집필진은 그 이유를 용역사업의 수행사로 선정된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백서 집필은 4‧16재단이 발주한 용역사업이다. 4‧16재단은 여러 재난 참사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를 기반으로 백서를 발간함으로써 사회적 애도와 기억을 토대를 마련한다는 목적으로 ‘다시 쓰는기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첫 번째 사례로 ‘7‧18공주사대부고 병영체험학습 참사’가 선정되어 2023년 ‘피해자 백서’가 발간되었다. 제천화재참사는 ‘다시 쓰는 기록’ 사업의 두 번째 사례로 선정된 것이다.
고백하건대, 용역사업에 입찰하기 위해 제안서를 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제천화재참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언론에 보도된 정보와 몇 편의 논문을 통해서는 제천화재참사가 어떻게 해결되고 있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그런데도 백서 집필에 도전한 것은 피해자들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집필진의 다수가 국가폭력 및 재난참사 피해자를 대상으로 구술인터뷰를 해본 경험이 있는 연구자들이었다. 집필진은 인터뷰 대상자가 몇십 명이 되더라도 참여할 의사가 있는 모든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나설 만큼 열의가 높았다.
백서 집필 사업은 피해자간담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피해자들의 상황이 어떠한지 알기 위해서는 유가족대책위 김영조, 류건덕, 민동일 공동대표, 부상자협의회 한을환 대표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봇물터지듯 쏟아져 나온 이야기들을 듣고서야 집필진은 제천화재참사의 현주소를 파악할 수 있었다. 집필진에게 제천화재참사의 진실을 이해시키기 위해 직접 만든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설명하시다가 끝내 고개를 숙이고 만 대표님들의 붉은 눈시울을 잊을 수 없다. 지난 7년 동안 대표님들은 얼마나 많은 자리에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설명하고, 호소하고, 간청해야만 했을까. 피해자간담회는 7주기에 맞춰백서가 꼭 발간되어야만 하는 이유, 피해자 관점에서 제천화재참사의 진실을 담은 백서가 발간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모두 설명된 자리였다. 집필진은 피해자들이 말하는 진실에 귀 기울이고 정성을 다해 쓰겠다는 약속 외엔 달리 드릴 수 있는 말이없었다.
긴 싸움의 끝이 절망이라면
제천화재참사는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고, 참사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유가족을 찾아 위로했던 장면도 뇌리에 남아 있다.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 대부분의 관심에서 곧 멀어졌다. 민주당이 여당인 정부에서 일어난 참사고 대통령까지 현장을 찾았다고 하니 잘 해결되겠거니, 다들 믿었을 수도 있다. 피해자들 또한 초기에는 참사가 어렵지 않게 해결이 될 것으로 보았다. 참사 발생 직후 실시된 소방합동조사에서 소방지휘부의 부실한 초동대처로 인해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는 사
실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제천화재참사의 원인은 다음의 세 가지로 꼽힌다. 첫째, 건물의 내‧외부 불법 건축. 둘째, 건물관계자들의 안전불감증 및 보호의무 위반. 마지막으로 소방의 무능한 대응이다. 이 가운데 제천화재참사의 피해 규모를 키운 책임은 소방의 무능한 대응에 있었다고 할 것이다.
제천화재참사 당시, 소방지휘관은 ‘한 번 돌아봄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고, 119상황실로부터 2층 여자목욕탕의 요구조자가 있음을 전달받고도 소방대원들에게 전파하지 않았다. 비상구를 통한 2층으로의 진입, 2층 외벽 유리 파괴를 통한 구조 등 인명구조를 위한 적극적인 조치 또한 취하지 않았다. 건물 밖 가족들은 2층 유리창을 깨 달라고 절규했지만, 소방관들이 유리를 깨고 진입한 것은 구조대가 도착하고도 37분이나 지나서였다. 29명의 희생자 가운데 19명의 희생자가 2층에서 나왔을정도로 2층의 피해가 컸는데, 참사 이후 확인한 2층 여자목욕탕에는 화염의 직접적인 피해가 없었다. 소방지휘부의 무능으로 2층 유리창을 제때 깨지 못한 것이 유가족들에게는 가장 큰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다. 이렇듯 소방지휘부의 책임이 명확해 보였지만, 지난 7년 동안 참사는 피해자들이 기대했던 방향으로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소방지휘부를 대상으로 한 형사소송에서도, 충청북도를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소송에서도 패소했다. 진실규명도, 책임자의 처벌도, 배‧보상도 이뤄지지 못했다. 대규모 인명피해를 낳은 제천화재참사에 대해 충청북도는 한 번도 공식적으로 사과한 적이 없다. 이러한 과정이 피해자들에게는 자신이 목격하고 경험한 참사의 진실이 계속 무시되고 부정당하는 고통의 반복일 수밖에 없다.
7년 동안 싸운 결과가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고, 해결할 수 있는 길마저 더는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고 한다면, 피해자들의 분노와 억울함은 어디에서 풀어야할까? 법적으로 해결할 길이 막혔을 때, 참사가 남긴 과제는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는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끝나지도 않았다는 것을 어디에, 어떻게 표시해야 하는 걸까?
4‧16재단이 백서를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 피해자단체 대표들은 쉽사리 찬성할 수 없었다고 한다. 백서를 제작하면 제천화재참사가 해결되어 종료된 것으로 인식하게 될 것을 걱정해서다. 대표들이 4‧16재단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참사의 진실을 밝힐 길이 막힌 상태에서 피해자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기록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류건덕 대표는 피해자의 목소리가 곧 진실이라고 했다. 민동일 대표는 피해자 내부의 다른 목소리들까지도 있는 그대로 모두 기록해달라고 요청했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데 해결할 길마저 사라졌을때,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목소리가 세상에 들리게 하는 것은 참사 해결의 길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참사의 해결을 가로막은 겹겹의 벽
지난 7년 동안 제천화재참사 피해자들이 결코 조용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공동 대표들은 생업을 포기하였을 정도로 참사 해결에 매달려왔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한 채 제천화재참사가 끝난 것으로 잊히고 있는 것에 대해 피해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피해자들은 제천화재참사가 민주당 정부하에서 발생한 사건이고, 도지사가 민주당 출신이었기 때문에 사건의 해결에 비협조적이었으며, 책임 인정도, 사과도 하지않았다고 말한다.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제천화재참사가 해결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소방 전문가들의 침묵도 한몫했다. 소방 전문가들은 소방지휘부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재판부에 자기 이름을 걸고 진실을 증언하는 것은 모두 거부했다.
2018년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에서는 제천화재참사를 다루었다. 피해자들은 그알의 파급력도 너무나도 컸다고 말한다. 그알은 제천화재참사의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방의 대응 실책이라는 사실은 약화시켰고,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피해자들은 소방관의 처벌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소방지휘부의 잘못을 인정하라는 것이었는데, 피해자들의 정당한 요구는 ‘열심히 일하는 소방’을 공격하는 것으로 비난받았고 피해자들을 고립시키는 역할을 했다. 한편으로, 피해자들은 제천화재참사가 수도권으로부터 거리가 먼 지역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해결이 쉽지 않았다고도 생각한다. 피해자들이 보기에 정치권에서도, 언론에서도, 심지어 시민사회마저도 제천화재참사의 해결에 관심이 없었다. 세월호참사는 10년이 흘렀어도 시민단체만이 아니라 시민 주도의 다양한 모임들이 피해자가족협의회와 연대하고 있는데, 제천화재참사의 경우는 단 하나의 시민사회단체도 결합되어 있지 않다. 지난 7년 동안 대한변호사협회 내 ‘생명존중재난안전특별위원회’ 소속의 홍지백 변호사가 유일한 조력자였다. 이렇듯 참사의 해결은 결코 순리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제천화재참사는 참사의 해결이 정치적, 사회적, 지역적인 요인들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방인’의 목소리에 응답하기
지난 1월 24일 제천화재참사 유족 지원을 위한 충청북도의 조례 제정이 끝내 무산되었다. 지난해 9월 충청북도가 발의한 조례안이 충청북도의회에 의해 부결되었는데, 또다시 ‘셀프 부결’된 것이다. 조례안이 최종 폐기되면서 유족 지원을 위한 제도적 근거 마련은 더 어려워졌다. 이제 우리는 제천화재참사를 어떤 사건으로 기억할것인가.
제천화재참사로 어머니를 잃은 안세민 씨는 한국 사회에서 참사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것의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이방인이 된 느낌”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피해자에 대한 혐오를 못 들은 척 삼켜야 하고, 국가와 사회가 배척하더라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목소리를 더는 외면하지 말아야한다. 너무나 억울할 뿐만 아니라, 이방인이 된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피해자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제천화재참사를 기억하는 한 방법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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