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십육일의약속[진상규명 1] 한없이 비루했던 자들의 귀환

한없이 비루했던 자들의 귀환

세월호 참사 유가족 등 민간인 불법사찰 관련자들의 귀환

변정필(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

2성 장군의 눈물

“주문, 피고인을 징역 1년에 처한다. 보석 결정을 취소한다.”

실형 선고에 고개를 떨군 투스타는 한없이 비루했다. 말을 잃고 재판장과 변호인을 번갈아 바라보기만 하던 투스타는, 재판장을 보고 어렵사리 입을 뗐다. “집행 유예아닌가요?” 재판장은 답했다. “실형입니다.” 군복을 입고 정자세로 서 있던 장군의 어깨가 들썩였다. ‘꺽, 꺽’ 울음을 삼키는 소리가 딸꾹질처럼 새어 나왔다. 쉰을 훌쩍 넘긴 장군의 뒷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세월호참사 당시 진도 등 광주·전남 지역을 담당했던 610기부무대장 소강원(전 기무사 참모장, 육군 소장)이다.
2019년 12월 24일, 용산 국방부 어귀에 있는 보통군사법원은 세월호 유가족 등 민간인 사찰 혐의로 기소된 소강원에게 이렇게 판결했다. “국민은 국가 기관에 의해 동향이 수집돼 상부에 보고될 거란 걱정 없이,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 (...) 국가에 대해 누구나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함에도, 분노와 슬픔에 빠진 세월호 유가족들이 정부를 비방하는 것은 아닌지 관심을 가지고 장기간 조직적으로 사찰하는 것은 범죄이다.” 법원은 이어 징역 1년 실형을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의 의무를 저버렸고, 부대원들이나 기무사령부 지휘부에 책임을 전가하는 등 반성하지 않고 있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 방청석, 노란 패딩을 입고 앉은 유가족이 애끊는 탄식을 내뱉었다. 희생자 엄마는 “어떻게 군법이 깃털처럼 가벼울 수 있느냐”며 가쁜 호흡을 눌렀다. 투스타 소강원은 끝내 세월호참사 희생자 가족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비루함에매듭이 하나 지어졌다고 생각했다.

종북, 반국가, 그리고 계엄
“저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2024년 12월 3일 용산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발표했다. 그리고 여인형 방첩사령관도 12.3 윤석열 내란 사태의 핵심에 함께 섰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여인형 사령관은 여의도 국회와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병력을 동원하고, 진입을 지시했으며, 홍장원 국정원 1차장에게는 국회의원을 포함한 체포 대상의 위치 파악도 요청했다.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는 세월호참사에서 민간인을 불법 사찰하고, 댓글 공작과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계엄 문건 작성을 한 것이 밝혀져,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8년 8월 국군안보지원사령부로 해편1)되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2022년‘지원’이라는 단어를 떼고, 옛 기무사 기능을 되살려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로 부활시켰다. 한 기무사 부대원의 말대로 부대의 해편이 “명예의 실추”이고, “원복은 퇴직 조치”여서 “너무도 억울”했다면, 방첩사로의 명칭 변경은 그야말로 ‘부활’이었다.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계엄령을 발표하며 윤석열 대통령은 아무렇지도 않게 “종북”, “반국가”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세월호참사 때도 그랬다. 기무사는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을 툭하면 “종북세(력)”, “반정부”, “불순세(력)”와 같은 단어에 연결 지었다.
기무사는 세월호참사가 테러 관련성이 미약하다고 판단하고도, 4월 21일에 “從北 좌파들이 反정부 선동 및 국론분열 조장 등 체제 안정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사망(실종)자 가족 대상 反정부 활동 조장 從北좌파 동정 확인”하겠다고 나섰다. 세월호참사가 일어난지 불과 5일, 땅으로 올라온 희생자가 겨우 65명일 때다.

2주가 지난 4월 29일에는 “일부 불순세가 南南갈등과 국론분열을 조장하고 희생자가족 선동”하고 있으니 “국가적 위기 상황을 직시하고, 사령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판단한 기무사 3처의 주요 업무는간첩과 테러 대응이었다. 게다가 ‘계엄’이라는 두 글자에도 기시감이 들었다.
“시위 규모 급속 확산시 국가비상사태 및 계엄령 선포 조기 검토” “경찰진압 능력을 초월하는 최악의 상황 가정 및 Low-key 유지下 사전 준비” 이 내용은 기무사 3처에서 2014년 7월 말 작성한 「對정부전복 업무 수행 방안」 문건 일부다. 세월호참사 직후인 4월부터 실종자 가족을 ‘요주의’ 대상으로 삼았으니, “反정부 선동”인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요구가 확산 일로였던 7월, 기무사의DNA는 본능적으로 ‘계엄’을 떠올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국가의 적’은 누구인가 
2014년 7월 9일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안보실장, 경호실장, 국방장관에게 중요 보고를 다녀온 직후 현안업무 회의를 열었다. 이날 이재수는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정보기관이야. 옛날 같으면 일일이 공작할 사항이야. 실종자 11명 중 단원고 학생이 5명이면 이들 학부모에 대한 성향 파악을 하면서 일대일로 맨투맨을 붙이든 종교계를 동원하든, 국정원을 동원하든 타협방안을 강구 해야 한다.”
실종자 가족 성향을 파악하라는 지시가 사령부에서 예하부대로 전파되자, 소강원이 부대장으로 있었던 610기무부대는 즉각 실종자 가족의 개인별 성향을 분석하여 개인별 성향을 각각 표로 만들어 ‘강성/중립’으로 적시하고 ‘주요 언동 내용’과 함께 사령부에 보고했다. 이 모든 과정은 불과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610기무부대장 소강원은 보고서 하나만으로는 부족했다고 생각했는지, 보고자에 본인 이름을 포함한 후 다시 보고서를 작성했다. ‘ᄂ○○, ᄋ○○가 가족들을 대표하여실종자 전원 수습 요구 등 강경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고, 해군 준장 박동우의 의견을 인용하여 ᄂ○○과 ᄋ○○을 설득하면 실종자 수색 중단 선언을 끌어낼 수 있으며, ‘실종 학생 가족들의 친족 및 지인을 활용’해야 한다는 방안을 사령부에 제공했다.
조사하면서 이런 식으로 쓰인 기무사, 특히 610기무부대의 보고서와 이메일은 차고도 넘쳐났다. 소강원은 서울중앙지검 조사에서도 비루함을 숨기질 못했다. 소강원은 세월호 사건과 관련한 사령부의 부서와 인원이 많은데도 “예하 부대장에 불과한 저부터 구속한 사실에 대하여, 공정성, 형평성에 대하여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제가 세월호사태의 원흉이 된 것에 대하여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며 진술을 거부하기도 했다.
소강원의 부하였던 기무부대원 구○○은 서울중앙지검 진술조사에서 “청와대에서 본다는 자부심으로” 개인 시간까지 투자해 가며 열심히 일했다며, “저희가 그곳에 보직된 것은 저희의 선택이 아니었다. 군인을 천직으로 알고 살았는데 이미 사법처리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저희의 선택이 아니었다는 점을 참작해달라”고 청했다. “사령부에 작성한 문건들을 보니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라고도 했다. 많은 기무부대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과 37기 동기였던 이재수가 ‘4성 장군으로 승진하기 위해 무리하게’ 민간인 사찰이라는 불법행위를 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없이 비루했던 자들의 귀환
잠시 착각할 뻔했다. 해편된 기무사의 비루함 때문에. 불법 사찰 가담자들의 한없이 가벼웠던 비루함 때문에. 기무사만 귀환한 것은 아니었다.
소강원은 2023년 8월 14일,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았다. 특별사면 대상이 되려면 형이 확정되어야 한다. 소강원은 2022년 서울고등법원에서 유가족 사찰 혐의로 징역 1년을 확정받고, 곧장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런데 돌연 한 달 만에 상고를 취하해 2월 형을 확정시켰다. 의문이 제기됐다. 세월호TF장이었던 손정수 대령도, 현장지원팀장 박태규 대령도 사면·복권됐다. 2024년 설에는 세월호 사찰을 주도했던 김대열 소장과 지영관 소장도 복권 처분을 받았다. 소강원은 광복절 특사에 이어 이번에는 복권까지 되었다. 이로써 당시 310기무부대장이었던 김병철을 제외하고, 세월호참사 민간인 사찰 혐의로 기소된 기무사 간부 6명 중 5명이 모두 사면·복권됐다.

610기무부대 소속으로 2014년 7월 9일 소강원과 함께 실종자 가족 성향 보고서를 썼던 구○○도 돌아왔다. 이번엔 방첩사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구○○은 2018년 기무사 해편 때 퇴출되었다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방첩사 수사인력 보강 인원으로 선발돼 2023년 4월 복귀했다. 2024년 11월 방첩수사단 내 수사조정과장에 부임하여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회로 향하던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관들을 통솔하는 역할을 맡기로 돼 있었다.

이제까지 사법부는 세월호참사에서 불법 사찰을 한 기무사를 두고, 지휘부에 한정해 개인의 ‘일탈행위’에 불과하다고 봤다. 법리 적용의 한계를 핑계 삼아 사찰에 가담한 기무사 하급자들은 불법 사찰의 공범이 아니라, 지휘부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에 따른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은 기무사를 방첩사로 부활시키고, 이들을 복권했다. 우리 사회는 왜 이 중대한 국가 폭력을 끝까지 물고 늘 어지지 못했을까. 한없이 비루했던 자들의 귀환은 바로 그 결과다.


1) 解(풀 해)와編(엮을 편), 해체해서 다시 편성한다는 뜻. 다시 말해 당시 기무사는 조직의 해체에 가까운 개편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