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열일곱 살 이태은, 윤다빈이 말하는 영화 <너와 나>
내가 걷는 이 길을 걸었을 너를 기억해
박내현
거리를 가득 메운 술렁이는 사람들, 친구들과 과자를 고르고 옷을 입어보고 머리를 자르며 내일 수학여행을 떠날 생각에 가득 들뜬,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학생들의 모습. 그리고 한산한 버스 안, 혼자 탄 여고생의 모습과 함께 세월호 구조 소식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작년 10월 개봉한 영화 <너와 나>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로 여고생인 하은과 세미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두 사람과 친구들은 학교와 공원, 안산역 앞에서 함께 한 시간을 아프도록 그립게 보여준다. 10년이 흐른 안산, 이제 하은과 세미처럼 고등학생이 되는 청소년들에게 세월호는 어떤 의미일까. <너와 나>를 관람한 열일곱 살 이태은, 윤다빈을 만났다.
<너와 나>는 어떻게 보게 되었나요?
(태은) 저는 엄마가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에서 일하신 적이 있어요. 정식으로 개봉하기 전에 제작 발표회를 했는데, 그때 엄마랑 같이 봤어요. 이번에 영화관에서 개봉했을 때는 다빈이랑 같이 봤어요.
(다빈) 저는 태은이가 보자고 해서 사전에 아무런 정보 없이 보게 되었어요.
영화를 보기 전에도 세월호 관련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태은) 저는 엄마가 관련한 일을 하셔서 사실 일상에서 매우 깊숙하게 세월호를 만났던 것 같아요. 유가족분들과도 자주 뵙고 이런저런 행사나 교육에도 자주 갔어요.
(다빈) 태은이가 얘기해줘서 이번에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4·16재단이 함께 여는 ‘4.16꿈숲학교’ 겨울교실을 간 게 처음이었어요. 아, 그리고 초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녔는데 그때 4월이 되면 노란리본 만들기를 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 행사나 교육을 통해 세월호를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태은) ‘만약 나에게 일어나면 어떻게 대처하지? 그리고 내가 혹시 잘못되면 우리 가족들은 어쩌지?’ 그런 생각을 해요.
(다빈) ‘4.16꿈숲학교’에 갔는데 교육 전에 묵념을 하더라고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묵념을 해본 거였어요. 좀 신기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어요.
(태은) 모든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항상 묵념을 하거든요.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한다는 의미도 있고 기억하자는 의미도 있다고 알고 있어요. 사실 평소에 국가의 큰 행사 아니면 묵념을 할 일이 없으니까 친구들에게는 어색한 일이었을 텐데 아무 말 없이 함께 해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영화 속 하은과 세미, 그리고 친구들과 달리 두 사람은 다툰 적이 없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니다가 안산으로 이사 온 다빈에게 등하교를 같이하자고 먼저 제안한 건 태은. 둘은 그렇게 중학교 시절을 함께 보냈고, 이제는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2015년 초등학교에 진학한 두 사람이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서는 수학여행이나 졸업여행이 사라졌다.
(다빈) 중학교 때 다시 가려고도 했는데 또 코로나가 터졌잖아요? 그래서 못 갔죠. 후배들은 수학여행을 간다고 하더라고요. 저희도 고등학교에서는 갈 거라고 들었어요. 첫 수학여행인 거죠. 별일 없으면.
(태은) 주변 친구들하고는 세월호에 대해 얘기하기 어렵지만 ‘4.16꿈숲학교’를 통해서 만난 친구들하고는 가끔 그런 얘기를 해요. 만약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희생자가 아니라 생존자가 되면 어떨 것 같냐. 이런 일이 있으면 자기가 대통령이든 누구든 꼭 만나서 해결하겠다는 친구도 있어요. 세월호가 많이 잊혔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깝다가도 또 그런 얘길 나누면 안심이 되기도 하고 그래요.
한동안 ‘안산’은 단원고, 그리고 세월호로 이어지는 단어였다. 하지만 지금은 외국인이 많이 사는 동네라는 인식이 더 크다고 한다.
(태은) 영화 속에 안산이 등장하잖아요. 저한테는 익숙한 곳이거든요. 와동체육관 앞 운동장이라든가 하천이라든가 안산역도 그렇고요. 저에게 익숙한 공간들이 분명히 희생자들에게도 익숙한 공간이었을 거고. 그런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다빈) 다들 한 번씩은 이 영화를 보면 좋겠어요. 학교에서 시험 끝나고 남는 기간에 틀어줘서 다 함께 봐도 좋을 것 같고요. 너무 무겁고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저희랑 비슷한 사람들이 나오니까 이렇게 세월호를 알아가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세월호는 두 사람에게 가까우면서도 낯선 단어다. 수학여행을 사라지게 한 사건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묵념을 해본 경험이다. 태은은 <너와 나>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해”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오는 부분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뭔가 그대로 뚝 끝내버리지 않고 여운을 남겨주기 위해 만든 장면인 것 같았다고 한다. 아마 세월호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시간이 지나 희미해진 부분들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낯설지도 모르지만 그대로 끝나지 않고 분명 남아있는 사건.
영화 속 세미의 편지는 “너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립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기억하겠다는 말. 세월호는 아직 우리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남아있다. 이젠 잊혔을지도 몰라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세월호를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영화 <너와 나>를 함께 보자고 말해주고 싶다.
[리뷰] 열일곱 살 이태은, 윤다빈이 말하는 영화 <너와 나>
내가 걷는 이 길을 걸었을 너를 기억해
박내현
거리를 가득 메운 술렁이는 사람들, 친구들과 과자를 고르고 옷을 입어보고 머리를 자르며 내일 수학여행을 떠날 생각에 가득 들뜬,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학생들의 모습. 그리고 한산한 버스 안, 혼자 탄 여고생의 모습과 함께 세월호 구조 소식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작년 10월 개봉한 영화 <너와 나>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로 여고생인 하은과 세미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두 사람과 친구들은 학교와 공원, 안산역 앞에서 함께 한 시간을 아프도록 그립게 보여준다. 10년이 흐른 안산, 이제 하은과 세미처럼 고등학생이 되는 청소년들에게 세월호는 어떤 의미일까. <너와 나>를 관람한 열일곱 살 이태은, 윤다빈을 만났다.
<너와 나>는 어떻게 보게 되었나요?
(태은) 저는 엄마가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에서 일하신 적이 있어요. 정식으로 개봉하기 전에 제작 발표회를 했는데, 그때 엄마랑 같이 봤어요. 이번에 영화관에서 개봉했을 때는 다빈이랑 같이 봤어요.
(다빈) 저는 태은이가 보자고 해서 사전에 아무런 정보 없이 보게 되었어요.
영화를 보기 전에도 세월호 관련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태은) 저는 엄마가 관련한 일을 하셔서 사실 일상에서 매우 깊숙하게 세월호를 만났던 것 같아요. 유가족분들과도 자주 뵙고 이런저런 행사나 교육에도 자주 갔어요.
(다빈) 태은이가 얘기해줘서 이번에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4·16재단이 함께 여는 ‘4.16꿈숲학교’ 겨울교실을 간 게 처음이었어요. 아, 그리고 초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녔는데 그때 4월이 되면 노란리본 만들기를 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 행사나 교육을 통해 세월호를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태은) ‘만약 나에게 일어나면 어떻게 대처하지? 그리고 내가 혹시 잘못되면 우리 가족들은 어쩌지?’ 그런 생각을 해요.
(다빈) ‘4.16꿈숲학교’에 갔는데 교육 전에 묵념을 하더라고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묵념을 해본 거였어요. 좀 신기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어요.
(태은) 모든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항상 묵념을 하거든요.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한다는 의미도 있고 기억하자는 의미도 있다고 알고 있어요. 사실 평소에 국가의 큰 행사 아니면 묵념을 할 일이 없으니까 친구들에게는 어색한 일이었을 텐데 아무 말 없이 함께 해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영화 속 하은과 세미, 그리고 친구들과 달리 두 사람은 다툰 적이 없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니다가 안산으로 이사 온 다빈에게 등하교를 같이하자고 먼저 제안한 건 태은. 둘은 그렇게 중학교 시절을 함께 보냈고, 이제는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2015년 초등학교에 진학한 두 사람이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서는 수학여행이나 졸업여행이 사라졌다.
(다빈) 중학교 때 다시 가려고도 했는데 또 코로나가 터졌잖아요? 그래서 못 갔죠. 후배들은 수학여행을 간다고 하더라고요. 저희도 고등학교에서는 갈 거라고 들었어요. 첫 수학여행인 거죠. 별일 없으면.
(태은) 주변 친구들하고는 세월호에 대해 얘기하기 어렵지만 ‘4.16꿈숲학교’를 통해서 만난 친구들하고는 가끔 그런 얘기를 해요. 만약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희생자가 아니라 생존자가 되면 어떨 것 같냐. 이런 일이 있으면 자기가 대통령이든 누구든 꼭 만나서 해결하겠다는 친구도 있어요. 세월호가 많이 잊혔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깝다가도 또 그런 얘길 나누면 안심이 되기도 하고 그래요.
한동안 ‘안산’은 단원고, 그리고 세월호로 이어지는 단어였다. 하지만 지금은 외국인이 많이 사는 동네라는 인식이 더 크다고 한다.
(태은) 영화 속에 안산이 등장하잖아요. 저한테는 익숙한 곳이거든요. 와동체육관 앞 운동장이라든가 하천이라든가 안산역도 그렇고요. 저에게 익숙한 공간들이 분명히 희생자들에게도 익숙한 공간이었을 거고. 그런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다빈) 다들 한 번씩은 이 영화를 보면 좋겠어요. 학교에서 시험 끝나고 남는 기간에 틀어줘서 다 함께 봐도 좋을 것 같고요. 너무 무겁고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저희랑 비슷한 사람들이 나오니까 이렇게 세월호를 알아가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세월호는 두 사람에게 가까우면서도 낯선 단어다. 수학여행을 사라지게 한 사건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묵념을 해본 경험이다. 태은은 <너와 나>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해”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오는 부분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뭔가 그대로 뚝 끝내버리지 않고 여운을 남겨주기 위해 만든 장면인 것 같았다고 한다. 아마 세월호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시간이 지나 희미해진 부분들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낯설지도 모르지만 그대로 끝나지 않고 분명 남아있는 사건.
영화 속 세미의 편지는 “너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립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기억하겠다는 말. 세월호는 아직 우리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남아있다. 이젠 잊혔을지도 몰라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세월호를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영화 <너와 나>를 함께 보자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