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는 감각이 우리의 몸에 새겨진다면
해초(항해자)
나는 투쟁의 한 방편으로 항해를 택했다. 평화운동의 직접행동을 경험하며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행진 속에서, 타인과 관계 맺는 일의 무게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에 포섭되지 않는 그 느리고 또렷한 결속이 바다 위에서도 그대로 일어나기를 바랐다.
나의 항해는 강정마을에서 시작되어 군사기지로 고통받는 동아시아의 작은 섬들을 잇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바다가 상징이나 개념이 아니라 몸에 닿는 구체적인 흐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의 세계는 한층 넓어졌다. 바다의 대부분이 주권이나 영유권에 묶이지 않는 ‘공해’(公海)라는 사실 또한 국가를 넘어서는 연대를 사유하게 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지난해 가자지구로 향하는 선단에 오르기 전, ‘한반도 평화통일 항해’에 참여하며 세월호 침몰 지점에 갔다. 이미 와본 곳이었지만, 바다에 대한 인식이 확장된 후 다시 마주친 이 바다를 나는 그제야 제대로 보았다. 몹시 험한 바다인 동시에 육지와 가깝고, 그 물길을 잘 아는 어부들의 배가 주변을 촘촘히 메우고 있었다. 그 선명한 대비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우리가 끝내 구하지 못한 생명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바다는 춥고 두려운 공간이다. 나에게 바다는 연결과 공존의 장소이기도 하다. ‘가자로 향하는 천 개의 매들린호’(TMTG) 선단에 동참한 활동가들은 대부분 아프리카나 아랍에서 유럽에 온 이주민이거나, 고립과 핍박의 역사를 지닌 소수 민족이었다. 그들과 친구가 되면서 멀게만 느껴지던 사건들이 서서히 나의 삶 안으로 스며들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감옥 안에서도 서로를 지켰고, “프리 팔레스타인!”을 외치며 희망을 놓지 않았다. 다음에 이곳에 올 누군가를 위해 벽에 배 그림과 함께 한국어로 연대의 편지를 남기고, 몰래 묵주와 약을 숨겨두기도 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너무나 평범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어서, 거대한 폭력의 구조 속에 개인의 삶이 얼마나 촘촘히 얽혀 있는지 깨달으며 막막함을 느꼈지만, 그 세부를 마주할수록 연대에 대한 이해는 오히려 깊어졌다. 우리는 추방 후 곧바로 다음 항해를 준비했다.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의 학살을 “먼 나라 이야기”라고 하고, 강정과 세월호의 투쟁을 보며 “지겹다”며 고개를 돌린다. 나는 그들이 ‘이곳’과 ‘저곳’을 잇는 감각을 잃었기에 그렇게 말한다고 생각한다. ‘평화’와 ‘공존’이라는 말이 낭만적인 수사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삶 속에서 생생히 감각되기를 바란다. 거대한 폭력과 그 안에 깃든 작은 이야기들을 넘나들며 사유할 때, 그리고 누군가의 얼굴과 이야기가 서로 이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세계를 살아있는 감각으로 마주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바다를 말하고, 다시 항해를 준비하는 이유다.

[특집]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는 감각이 우리의 몸에 새겨진다면
해초(항해자)
나는 투쟁의 한 방편으로 항해를 택했다. 평화운동의 직접행동을 경험하며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행진 속에서, 타인과 관계 맺는 일의 무게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에 포섭되지 않는 그 느리고 또렷한 결속이 바다 위에서도 그대로 일어나기를 바랐다.
나의 항해는 강정마을에서 시작되어 군사기지로 고통받는 동아시아의 작은 섬들을 잇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바다가 상징이나 개념이 아니라 몸에 닿는 구체적인 흐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의 세계는 한층 넓어졌다. 바다의 대부분이 주권이나 영유권에 묶이지 않는 ‘공해’(公海)라는 사실 또한 국가를 넘어서는 연대를 사유하게 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지난해 가자지구로 향하는 선단에 오르기 전, ‘한반도 평화통일 항해’에 참여하며 세월호 침몰 지점에 갔다. 이미 와본 곳이었지만, 바다에 대한 인식이 확장된 후 다시 마주친 이 바다를 나는 그제야 제대로 보았다. 몹시 험한 바다인 동시에 육지와 가깝고, 그 물길을 잘 아는 어부들의 배가 주변을 촘촘히 메우고 있었다. 그 선명한 대비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우리가 끝내 구하지 못한 생명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바다는 춥고 두려운 공간이다. 나에게 바다는 연결과 공존의 장소이기도 하다. ‘가자로 향하는 천 개의 매들린호’(TMTG) 선단에 동참한 활동가들은 대부분 아프리카나 아랍에서 유럽에 온 이주민이거나, 고립과 핍박의 역사를 지닌 소수 민족이었다. 그들과 친구가 되면서 멀게만 느껴지던 사건들이 서서히 나의 삶 안으로 스며들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감옥 안에서도 서로를 지켰고, “프리 팔레스타인!”을 외치며 희망을 놓지 않았다. 다음에 이곳에 올 누군가를 위해 벽에 배 그림과 함께 한국어로 연대의 편지를 남기고, 몰래 묵주와 약을 숨겨두기도 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너무나 평범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어서, 거대한 폭력의 구조 속에 개인의 삶이 얼마나 촘촘히 얽혀 있는지 깨달으며 막막함을 느꼈지만, 그 세부를 마주할수록 연대에 대한 이해는 오히려 깊어졌다. 우리는 추방 후 곧바로 다음 항해를 준비했다.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의 학살을 “먼 나라 이야기”라고 하고, 강정과 세월호의 투쟁을 보며 “지겹다”며 고개를 돌린다. 나는 그들이 ‘이곳’과 ‘저곳’을 잇는 감각을 잃었기에 그렇게 말한다고 생각한다. ‘평화’와 ‘공존’이라는 말이 낭만적인 수사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삶 속에서 생생히 감각되기를 바란다. 거대한 폭력과 그 안에 깃든 작은 이야기들을 넘나들며 사유할 때, 그리고 누군가의 얼굴과 이야기가 서로 이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세계를 살아있는 감각으로 마주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바다를 말하고, 다시 항해를 준비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