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페이지][소식지] 고생했고, 고맙습니다. 뒷일은 우리가 맡습니다 -고 김관홍 잠수사 10주기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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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했고, 고맙습니다. 뒷일은 우리가 맡습니다.”

고 김관홍 잠수사 10주기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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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세월호 기억의 숲'에 세워진 고 김관홍 잠수사 동상

김관홍 잠수사는 1973년 6월 20일 서울특별시 은평구에서 태어난 토박이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1996년부터 잠수사로 활동하며 다양한 현장을 누볐다. 아내와 세 자녀를 둔 가장인 그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참사 현장으로 향했다. 정부는 500명의 잠수사가 구조 작업 중이라고 발표했으나, 실제 현장에는 그를 포함한 민간잠수사 25명이 전부였다. 해경으로부터 세월호 도면이나 수중 환경에 대한 정보조차 제대로 듣지 못한 채 사투를 벌여야 했다.

수색 과정에서 물살에 휩쓸려 정신을 잃는 등 수많은 위기에 직면했으나, 그는 다친 몸을 이끌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구조 활동을 펼친 민간잠수사들은 2014년 7월 10일, 해경으로부터 일방적인 철수 통보를 받고 현장에서 쫓겨났다.

생전에 김관홍 잠수사는 자신을 ‘애국자’나 ‘영웅’으로 부르는 것을 거부했다. 우리 사회 공동체의 일원이자 잠수사라는 직업인으로서 소명의식을 다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 마음이 지극히 평범한 ‘인간다움’이 되길 바랐던 김관홍은 2016년 6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약이 없으면 잠을 못 자고 화 조절이 안 됐습니다. 그러다 7월경 유가족분들을 만났어요. '고생했고, 고맙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과 치료제를 끊었습니다. 그 한마디 덕분이었습니다.” - 2015년 12월 16일, 제1차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 증언 중


차가운 바다보다 더 시린 현실을 견뎌낸 '인간 김관홍'을 기억하며

4.16민간잠수회 사무국장 김상우

김관홍 잠수사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덧 10년이 되었습니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시간은 다시 그날의 바다로 되돌아갑니다. 차가운 물속에서 한 명이라도 더 찾기 위해 몸을 던졌던 관홍이, 그리고 바다보다 더 차가운 현실 속에서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던 '인간 김관홍'을 떠올립니다.

관홍이는 구조 현장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잠수했습니다. 그로 인해 잠수병을 얻어 몸 상태는 최악이었지만 끝까지 현장을 지켰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국회와 청문회장에 섰습니다. 그 자리는 여전히 숨 가쁜 사투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압력과 침묵의 벽 앞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당시 정부는 구조 수색 실패의 책임을 민간잠수사들에게 전가하려 했습니다. 그 부당함 앞에서 관홍이는 해경이 건넨 감사장을 찢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분노이자, 진실을 외면하는 현실을 향한 절박한 외침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뒷일을 부탁한다”라는 한마디는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가슴에 더 깊게 울립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진상규명, 온전히 회복되지 못한 명예, 그리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우리에게 남긴 부탁이자 동시에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2020년 5월, 민간잠수사를 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대상에 포함하는 ‘고 김관홍법’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완전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고, 그나마 이어지던 의료 지원마저 2023년 법 개정 이후 대부분 끊긴 상태입니다.

슬픈 기억은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되어야 합니다. 생명이 존중받고 다시는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는 세상을 향해, 관홍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멈추지 않고 연대하며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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