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기억공동체 소개][소식지] 리본의 말들이 울려퍼지는, 토요일 저녁의 마로니에 -대학로 마로니에촛불

[4.16기억공동체 소개]

리본의 말들이 울려퍼지는, 토요일 저녁의 마로니에

10.29이태원참사 희생자 신애진 아빠 신정섭, 엄마 김남희


성냥불이 다 꺼진 자리에 : 아빠가 말하다

요즘도 가끔 안데르센이 쓴 동화 '성냥팔이 소녀’를 떠올립니다. 성냥을 켜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며 웃고 있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애진이가 웃으며 떠들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배시시 웃음이 나옵니다. 이내 미소가 눈물로 바뀝니다. 성냥불이 꺼지면 세상은 다시 암흑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걸음을 내디딜 용기도, 의지도 없습니다. 세상이 호흡을 멈추고 그 자리에 망연자실하게 굳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마로니에촛불을 만났습니다. 마음을 내어주기 위하여 모이고, 모여서는 외치고, 다시 각자의 길로 돌아갑니다. 마법과도 같은 두 시간이 토요일마다 피어납니다. 서울 혜화동에 있는 마로니에공원에는 마로니에 두 그루가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만, 토요일 저녁마다 피어나는 나무가 있습니다. 마로니에촛불이라는 이름의 나무랍니다. 그런데 그 나무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나무입니다.

이제 3년 차 신입에 불과한 저로서는 그 뿌리를 알지 못합니다. 그저 세월호 참사에 심장이 무너진 문화예술인이 기타를 둘러메고 공원에 앉아 노래를 부르며 울었고, 같은 마음이었던 이들이 모여서 마음을 내어놓고 나누기 시작했다는 전설 같은 말들을 조각조각 들었을 따름입니다. 어느 날인가부터는 노란 리본을 시민들에게 나누어 드리기 시작했겠지요. 벌써 12년이 다 되어가네요.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노란 리본의 물결을 기억합니다. 리본이 파도가 되어, 그 존재를 우리 역사에서 지워버린 그날, 마로니에촛불에서 나눈 리본들도 광장에 별이 되어 박혀 있었겠지요. 이런 이야기는 우리가 사랑하는 민중가수인 안계섭 님에게 물어보면 바로 알 수 있을 텐데, 신입이 말하려니 에두른 이야기가 되어버리네요. 계섭 님은 제가 처음으로 마로니에촛불을 찾아온 날에도 나무처럼 서 있었습니다.

“리본 나눔을 마치고 인사를 드리는데 지성 아빠가 우리를 안아주었다. 울컥했지만 가까스로 참고 밝게 웃으며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라고 인사드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아내에게 “어떻게 리본 가져가라고 외칠 수 있었어?”라고 물으니, 아내는 싱긋 웃고는 “오늘 밤이 참 좋았어”라고 말하고는 다음에 또 가자며 내 손을 잡았다. 아내의 얼굴에서 미소를 본 게 오랜만이었다. 그날 나는 리본 가져가시라는 말을 단 한 마디도 떼지 못했다.”

“아내와 나는 토요일 저녁이면 마로니에공원에 간다. “리본 가져가세요. 리본 무료 나눔하고 있습니다”라고 입을 떼는 데 100일이 걸렸다. 처음에는 가슴속에서는 말이 나오는데 차마 목을 넘지 못하고 입으로 나오지 못했다. 입을 떼고 나자,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생겼다. 조금은 더 세상과 다시 만날 준비가 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나눈 리본을 달고 다니는 이가 힘들 때는 리본이 위로의 말을 건네주기를 소망한다. 리본을 가져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내가 위로받듯이 말이다.” - 저의 책, 『특별한 날은 특별히 아프다』 중 ‘토요일 저녁은 마로니에공원에서’ 토요일 저녁마다 마로니에공원에 갑니다. 노랑, 보라, 주황, 초록, 하늘색 리본이 있고, 날이 좋으면 밤하늘의 별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경빈이, 지성이, 상은이, 애진이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리본이 하늘과 땅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집에 가는 버스에 몸을 실으면 제 마음이 충전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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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의 한숨에 닿은 온기 : 엄마가 말하다

처음 리본 나눔을 위해 소리 내어 외칠 때, 쉽게 입이 떼어지지 않았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리본을 가져가시라 말을 건네는 일엔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평소 강의실에서 항상 가장 뒤에 앉고,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늘 회피했던 제가 길을 지나는 낯선 이들에게 “리본 무료 나눔 합니다. 리본 가져가세요”라고 외치는 일은 무척이나 낯설고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11년이 넘도록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리본을 나눠 주시는 분들이 있었기에, 없던 용기까지 짜내어 가까스로 입을 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마로니에촛불에 스며들었습니다.

손에 리본을 쥐고 나눔을 하면서 성냥팔이 소녀를 생각했습니다. 추운 겨울 모두가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족과의 오붓한 저녁을 꿈꾸며 스쳐 가는 길에서 혼자 외로이 성냥을 팔며 곱은 손을 호호 불던 성냥팔이 소녀가 꼭 저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쁘게 차려입고 손을 잡고 가는 연인들, 친구들과 연극을 보러 가는 젊은이들, 누군가가 기다리는 곳으로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을 향해 “리본 무료 나눔 합니다. 사회적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리본 가져가세요”라고 이야기하는 저의 모습이 서글퍼지는 날도 있었습니다.

들뜬 발걸음으로 환하게 웃으며 지나가는 이들을 바라보며 진상규명을 외치고, 참사를 기억하라고 외치는 제 모습이 ‘정말 딱! 성냥팔이구나’라는 생각에 잠기는 날에는 여지없이 소리는 작아지고, 한숨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움츠러드는 그 순간 제 등에 닿는 손의 온기가 저를 구렁텅이에서 끌어올려 주었습니다. “애진 어머니~”라고 큰 소리로 부르며 다가오는 숙인 님, “힘내세요!”라고 말해주는 계섭 님과 재문 님, 리본 만들기에 열중하다가도 고개 들어 방긋 웃어주는 유라 님, 그리고 낭랑한 목소리로 “무료 나눔이니까요, 가방에 예쁘게 달아주세요~”라고 외치는 혜영 님의 씩씩함에 한숨은 쏙 들어갔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스스로를 애처롭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함께해 주는 마로니에 식구들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12년이 되도록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 주는 시민들이 있고, 이태원 참사도 함께 기억해 줄 이들이 있으니까요. 함께할 수 있으니까... 이제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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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연대

사회적 참사를 기억하는 것은 결국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 더 이상 불행한 참사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참사를 잊지 않는 것, 희생자를 기억하는 건 우리의 미래를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요?”, “어떻게 연대해야 할까요?” 유가족으로서 시민들을 만날 때면 이런 질문을 자주 받곤 합니다. 하지만 막상 분명하게 대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촛불의 그림자처럼 마음속엔 답이 어른거릴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마로니에촛불을 만나며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기억의 출발은 일상에서 시작한다는 걸요. 지하철에서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을 보면 힘이 납니다. 거리에서 누군가 팔에 차고 있는 보라색 팔찌를 보면 눈물이 핑 돌고요. 손이 손에게 건네는 리본에는 잊지 않겠다는 마음, 함께 하겠다는 정성이 담겨있습니다.

리본을 가방에 다는 작은 행동은 기억할 뿐만 아니라 생명안전사회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입니다. 저는 리본이 건네는 말들을 마로니에촛불에서 리본을 나누며 배웠습니다. 리본을 나눌 때마다 슬픔을 받아 안는 시민들을 만나기에 길에서, 지하철에서 가방에 달린 리본을 보면 어찌나 반가운지 저절로 미소가 피어납니다.

마로니에촛불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알아주는 이 하나 없어도 토요일 저녁이면 나무가 되어 서 있습니다. 기억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외치는 사람들, 걸음을 잠시 멈추고 리본을 가져가는 시민 모두가 마로니에촛불입니다.

글을 마치며 고백할게요. 마로니에촛불은 애진이 없는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저희들의 어둠에도 따스한 빛이 되어준답니다.

두 그루의 마로니에 나무 아래, 이제는 외롭지 않은 성냥팔이 소녀와 소년이 리본을 나누며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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