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소식지] 세월호가 던진 질문을 잊지 않는 교육 -김경옥

[특집]

세월호가 던진 질문을 잊지 않는 교육


김경옥


민들레가 성북으로 이사 온 지 10년이다. 평소 학교 밖을 선택한 또는 학교 밖으로 떠밀려 나온 아이들의 교육공간인 민들레는 드문드문 동네 사람들의 모임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주말이나 저녁 시간에는 크게 쓰일 일이 없는 민들레라 요긴하게 쓰이는 게 반갑고 기쁘다. 그러던 어느 날 전시공간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다. 세월호참사 이후 11년 동안 연극으로 그 이야기를 이어오던 이들이 아직 ‘미수습인 언어들’을 건져 올려, 다시 사람들과 생각을 정리하고 대화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민들레에 있는 교사와 아이들에게도 뜻 깊은 자리가 되지 싶어 제안이 끝나기 무섭게 전시 장소로 쓰이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거기에 더해 그럴싸한 전시 공간보다 민들레 공간이 대화와 교감을 나누기에 더욱 적절할 것 같다는 말을 듣고 보니, 뭐든 힘을 보태고 싶다는 맘이 들고 말았다. 세월호참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교육하는 사람으로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묵직하면서도 소중한 기억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만남 그래서 더 소중한 우리들


이번 전시장이 된 민들레 이야기를 하고 싶다.

먼저 출판사가 있었다. 1997년, 교육을 근본적으로 다시 봐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모여 담론을 만들고 세상과 널리 나누는 일을 하기 위해 만들었다. 『학교를 넘어서』라는 첫 책을 내고 나서 많은 사람이 찾아왔고 공부모임도 생겨났다. 『학교를 넘어서』의 주된 메시지는 ‘탈학교’였는데, ‘학교를 탈출하자’가 아니라, 학교라는 교육시스템의 한계를 지적하고, 그것을 넘어선 새로운 교육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의 ‘탈학교’였다. 이 얘기를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 매체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민들레』라는 격월간 잡지도 만들게 되었다. 민들레출판사는 말하자면 출판사라는 외피를 입었지만, 책을 내는 것보단 교육의 변화를 위한 운동을 하는 곳이었다.

 

그 무렵으로는 낯설고 도전적인 메시지를 발신하다 보니 공감하는 사람들끼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연대감 같은 걸 찐하게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출판사는 뜻하지 않게 일종의 아지트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아지트를 찾는 사람들 중에는 놀랍게도 청소년이 있었다. 학교에 대한 문제의식을 강하게 가진 청소년들이 어찌어찌 물어물어(당시는 인터넷 사양도 PC통신 수준이었으니 어떻게 찾아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해요) 출판사를 찾아온 거다. 걔 중에는 학교를 그만 둔 친구도 있고, 조퇴하고 오는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하나둘 모여든 아이들이 출판사 한쪽 구석, 정확하게 말하면 책상 뒤편의 낡은 소파에서 그냥 죽치고 있었다. 그냥 있으면 미안하니까 어른들이 바빠 보이면 뭐든 거들었다. 두 달에 한번 있는 『민들레』 발송 때면 컨베이어밸트 작업대처럼 테이블을 이어 작업대를 만들어서, 주소 쓰기에 봉투 붙이기, 우편번호 분류하기 같은 일을 어른과 아이가 뒤섞여 하곤 했다. 우체국도 같이 가고, 때론 원고 평도 하는 등 자연스레 협업이 이뤄졌다.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출판사 풍경과는 사뭇 달랐으니, 가끔 출판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 모습이 신선하고 따뜻했다고 소회를 밝히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출판사의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또렷한 역할을 가지고 만나지 않았다. 아무 역할이 없으니 의도도 없었다. 의도가 없다는 조건은 어른들과 청소년 둘 다 우정과 환대의 마음으로 서로를 오롯이 존재로 만날 수 있도록 했다.

 

그 무렵의 나는 출판사를 찾아온 청소년 한 명 한 명이 소중했다. 새로운 교육을 발해하는 근대교육시스템으로서의 학교를 주목하고 있었는데, 학교의 부조리를 몸소 경험한 당사자가 그곳을 박차고 나와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하는 활동의 정당성을 증명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중하고 귀했다. 그저 책상 위 문서를 만지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존재감을 갖도록 했다. 민들레에서 일하는 어른들은 대부분 그렇게 느끼고 있었던 듯하다. 아이들이 있어 다소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충족감을 느끼는 순간들이 더 많았다. 민들레를 찾아오는 이는 누구나 함께 새로운 교육의 길을 열어가는 동료라는 생각에, 환대하는 맘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청소년들은 우리보다 더 우리를 존중했다. 자신들의 목소리나 심경을 모른 척하거나 외면하거나 부정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어쩌다 찾아온 출판사에서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경청해 주고 공감해 주고 환대해 주니 그 만남이 참 소중하고 귀했다.

 

민들레를 찾아온 청소년은 대부분 학교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공부가 싫은 건 아닌데... 학교는 싫었다. 왜 싫은지 논리적으로 잘 말하지는 못했지만, 학교가 하라는 공부도 친구 관계도 싫었다. 무엇보다 선생이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믿음이 안 갔다. 그러다 보니 의논은커녕 대화 자체가 어려웠다. 누구에게도 ‘도와달라’고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의논할 수 없었던 시절, 결국 자기가 문제라며 자학하거나 자신의 감정이나 감각을 부정하며 혼자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무렵 학교와 불화하는 청소년들은 대부분 가족과의 격렬한 갈등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부모들은 자녀가 털어놓는 거부감을 수용하거나 공감하기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나무라기 일쑤였다. “그것도 못 견디면 어떻게 사회생활 할래?” “어쨌든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는 가야지” 하며 학교 가기를 강권했다. 가까운 이들의 이런 응대는 학교를 거부하는 청소년들의 자기부정감을 더욱 강화시켜 학교도 집도 그 어디도 마음 둘 곳 없는 상태로 전전하게 했다. 그러다 민들레가 발신한 ‘네 잘못이 아니고 학교라는 시스템 자체가 문제일 수 있다’는 메시지는, 구원의 말씀처럼 들렸다. 그들이 한걸음에 출판사로 달려온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아, 이런 책을 만든 사람들이라면 내 심정을 알아주겠지.” 하며.

 

그러고 보니, 당시 민들레출판사는 학교의 폭력을 피해 도망 나온 생존자들의 피난처였던 셈이다. 피난처로 온 청소년을 맞이하는 어른이나 서로가 서로에게 귀하고 소중한 사람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출판사는 좁고 불편한 작은 공간이었지만, 서로 따뜻하게 반겨주고, 솔직한 이야기가 오가는 아지트 역할을 해냈고, 거기서 일어나는 만남은 곧장 신뢰 관계로 나아간다.

 

그 뒤로도 출판사를 찾는 청소년은 계속 이어졌고 그들과는 체계적인 상담이나 교육과정은 없었지만 때때로 벌어지는 토론이나 대화로 아이들도 어른들도 서로 배우고 서로 지지하며 서로를 살려갔다. 이런 상황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탔고 찾아오는 청소년이 점점 늘어나면서 청소년 공간인 공간민들레를 만들었다. 시설도 자원도 부족하지만 서로 고립되지 않고 연결되어 배우고 성장하기를 애쓰는 마음은 충만한 곳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교육과정을 만들고 이후 오디세이학교도 하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그때의 만남과 관계의 원형을 놓치지 않으려 지금도 애쓰고 있다.

 

그리고 2014년 세월호와 오디세이 학교

 

오디세이 학교 이야기도 필요하겠다.

오디세이 학교는 세월호참사가 계기가 되어 만들어진 새로운 교육모델이다. 2014년, 4월 세월호참사를 겪고 교육하는 사람들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왜 가만히 있었을까?” “뭐가 중할까?”... 그렇게 세월호참사 이후의 교육을 말하는 이들이 늘었다. 그러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도 했다. 여러 가지가 필요하겠지만...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하고, 1년제 전환학교를 만들기로 했다. 서울교육청과 민간이 머리를 맞대고 찾은 대안이었다. 서울의 고등학교 1학년 중에서 희망자를 받기로 했다. “나는 지금 입시공부가 아닌 다른 걸 해보고 싶어요.” “인생에 대해, 잘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어요.” 하는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 <오디세이 학교>의 탄생이다. 2015년 5월에 45명의 학생과 처음 시작해 2025년 11기 학생들이 함께하고 있다.

 

“사람들은 정말 다른 것 같다. 그래도 같이 맞추고 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안다.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을 줄이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배우고 싶다. 음..., 나는 소수자에게 관심이 많다. 그들의 상황이나 생각이 궁금하다. 다수가 아니어서 목소리가 크지 않지만 그래도 자기 의견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도 하고 그들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활동을 프로젝트로 하고 싶다.”

 

“목표를 ‘찾은’ 사람이 되고 싶다. 목표 없이 살아왔다. 놀고 싶으면 놀고 게임하고 싶으면 게임하고... 그렇게 살았는데 그러면 안 될 거 같다. 체험의 날 와서 보니 분위기가 굉장히 자유로웠다. 선배들 말로는 과제도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특이한 것도 많다고 했다. 동아리도 우리가 만들 수 있고... 여기서 목표를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동체 생활에서 지혜롭게 소통하는 걸 배우고 싶다. 학생회 일을 하면서 의견 충돌이 많았다. 지혜롭게 풀고 싶었는데, 잘 안됐다. 어떻게 하면 그런 실력을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나에게 교장 선생님이 추천해주셨다. 너한테 딱 맞는 학교다, 하시며.”

 

위의 이야기들은 오디세이학교 신입 지원자 면접에서 지원한 학생들이 털어놓은 바람들이다. 이 밖에도 ‘다양한 생각과 관점을 가지고 싶다.’ ‘발표랑 말을 잘하고 싶다.’ ‘공부 습관을 키우고 싶다.’ ‘토론이나 발표에 대한 울렁증이 있다. 안 그러고 싶다.’ ‘많은 경험을 쌓고 싶다.’ ‘아직 내가 뭘 좋아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겠다. 뭐가 잘 사는 건지 알고 싶다.’ ‘중3 때 내 모습이 맘에 안 들었다. 그런 나를 바꾸고 싶다.’ ‘평소 혼자 이런저런 생각 많이 한다. 오디세이 친구들은 나랑 비슷한 사람들도 있을 거 같다. 고민도 나누고 도전도 해보고 싶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본다. 당당하고 싶다’ ‘대화를 많이 하면서 소통 능력을 키우고 싶다.’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어른들이 볼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무기력하게 사는 듯 보여도 누구 한 명 빠짐없이 자신의 삶에 의욕적이다. 이들은 입시교육이라는 폭력에 맞서 새로운 선택을 한 아이들이다. 민들레가 만나는 새로운 아이들이다.

 

서울의 중3 아이들이 지원하는 오디세이학교는 서울시교육청이 설립한 고교 1학년을 위한 전환학년제로 각종학교의 틀을 가지고 있다. 서울교육청이 설립한 학교지만 교육과정과 내용은 민들레를 포함해 제도 밖에서 활동해 온 대안학교와 공교육 교사의 협업으로 만들어졌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5개의 교실은 같은 교육철학과 교육원리와 교육행정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만, 저마다 다른 주체가 제 나름의 색깔과 방식으로 교육활동을 하고 있다. 이 ‘낯설고 작은’ 그렇지만 대단히 혁신적인 교육시스템은 2026년에도 이어지겠지만, 고교학점제나 5등급제 등 입시교육의 올가미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럼에도 세월호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며, 뭐가 중요한 것인지를 놓치지 않으려 오늘도 애쓰고 있다.

 

대체로 열일곱 살 무렵은 세상에 대한 관심이 폭발할 때다. 혼란 속에서 자기 문제에 몰두하던 사춘기가 지나면서 그들의 시선은 바깥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거기에 더해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때이기도 하다. 내가 책임져야 할 것 같은데, 도대체 인생이란 게 뭐고, 그걸 책임진다는 건 또 무엇인지, 그러려면 나는 지금 뭘 해야 하는지, 무엇 하나 또렷하게 보이지 않아 불안하고 두려워지는 때기도 하다. 뭔가를 해야 하긴 하는데, 학교도 집도 제대로 도와주지 않아 화만 나는 때기도 하다. 국어 영어 수학 등급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아 혼자 동굴로 들어가는 때이기도 하다. 이런 혼돈의 시간을 보내는 열일곱 청소년들에게,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건 너무 당연하다. 혼자 동굴에서 풀지 말고 다 같이 생각하고 정리해보기를 권하는 것이 오디세이의 1년이다. 익숙한 트랙에서 벗어나 잠시 옆길로 빠져나와 다른 시공간을 경험함으로 자신의 모습과 나아갈 방향을 더욱 정확하게 볼 수 있도록 돕는다.

 

대한민국 서울의 열일곱 고1 학생 대부분은 누구도 가르치지 않았지만 절로 배운 게 있으니, 공부도 인생도 결국 혼자 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경쟁 상대고, 공부는 골방에서 홀로 분투해야 하는 고독한 작업으로 여긴다. 협동이나 협력 활동을 여러 번 해봤지만 혼자 하는 것보다 더 외롭고 힘들어 이젠 그만했으면 한다. 많은 경우 내 노력과 재능에 무임승차하는 사람을 경계하거나, 나 때문에 졌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을 피해 숨죽이고 있어야 했으니까. 오디세이를 찾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렇게 지내야 하는 것에 잘 모르겠지만 어떤 불편함을 느낀 아이들이 모인 셈이었다. 이런 아이들과 1년 동안 전환의 교육으로 ‘함께! 배우기’를 해내려고 했다. 공부는 모름지기 함께할 때 더욱 깊고 풍성해지고, 그래서 나는 궁금하면 누구에게든 묻고 그리고 배우려 들면 된다는 진리를 경험하기를 바랐다. 다가올 세상이 어떤 세상일지도 모르고, 나는 어떤 사람으로 서 있을지도 모르지만, 배우기를 멈추지 않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씩씩하게 내 존엄을 지키며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교육일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디세이는 이제 11년차에 접어들었고, 여전히 부족하고 채워야 할 게 많다.

 

“너의 밤은 내가 가질게”와 “내 밤을 왜 니가 가져?”

 

<밤은 내가 가질게>라는 단편소설집이 있다. 안보윤 작가의 작품집으로, 언제 여명이 틀지 모르는 칠흙 같은 어두운 밤을 그저 견뎌야 하는 인간들에 관한 이야기다. 어둡고 답답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연약한 인간들의 이야기기도 하지만 서로 의지하며 기어이 저 멀리 동이 터오는 광경을 어깨 걸고 바라보는 인간들의 서사도 담겨있다. 지난해 민들레에서는 <밤은 내가 가질게>를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그렇게 맘먹게 된 까닭은 작가 안보윤 씨의 짧은 신문 칼럼 덕분이었다.

 

칼럼은 작가가 고등학교 북콘서트에 참가하며 느낀 단상을 기록한 것이었다. 작가는 자신의 소설 속에 나오는 “밤은 내가 가질게”라는 대사를 화제로 학생들과 말을 주고 받는데.... 이 대사는, 자기도 제대로 챙기지 못해 항상 지청구를 듣는 소설 속 주인공이 어찌어찌 밤톨이라는 유기견을 집으로 데리고 오게 되는 장면에서 나오는 말이다. 유기견을 보호한다고 가둬둔 철창에서 개를 데리고 나오다, 이전 주인이 달아준 ‘밤톨이’라는 이름표를 떼며 중얼거린다. “이젠 넌 토리야, ‘밤’은 내가 가질게.” 하고.


이 대사를 두고, 작가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소설의 상황과는 상관없이 “누군가 당신에게 ‘밤은 내가 가질게’라고 말해온다면 당신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어요?” 하고. 그러자 학생들은 진지하거나 무겁거나 재치 있거나 경쾌한 답들을 적어냈는데, 대답 중에 이런 대답이 있었다. “내 밤을 왜 네가 가져?”

 

세상에, 이토록 당당한 목소리라니!

작가는 당시 소설을 쓰면서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말이 무얼지 고심했다. 힘들어하는 타인에게 위로하며 손을 내밀 때, 무례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들을 다정다감하게 감쌀 수 있는 대사는 과연 무엇일지 밤이고 낮이고 궁리했다. 세상이 험하면 험할수록 사람들이 지치면 지칠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부드러움 뿐이고, 위로와 배려와 무한한 애정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밤은 내가 가질게”는 그런 고심 끝에 나온 대사였다. 그러다 한 고등학교에서 “내 밤을 왜 네가 가져?”라는 당찬 말과 만난 것이다.

 

작가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에겐 자신을 다잡는 단단한 마음도 필요하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좌절과 고난 속에 내던져지더라도, “나는 그것을 이겨낼 수 있을 거야” 하며 자신을 믿는 마음을 우선 세울 것! 그 마음에서 출발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밤을 왜 네가 가져? 나는 얼마든지 내 밤을 낮으로 바꿀 수 있어.”, 작가는 한 학생이 들려준 이 단단한 말을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되새김질하며, 야무지고 씩씩한 그들의 시대를 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단단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봐야겠다 마음먹은 소회를 칼럼에서 털어놓았다. 나는 작가의 이 칼럼을 읽고 <밤은 내가 가질게>를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어졌다. 지금 민들레에서나 오디세이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겐 “너의 밤은 내가 가질게.”라는 한마디가 필요하지만, 차차 “내 밤을 왜 니가 가져? 나는 얼마든지 내 밤을 낮으로 바꿀 수 있어.” 하고 말하기를 바라는 맘 때문이었다.

 

학교라는 구조적 폭력을 힘들어하며 출판사를 찾아온 청소년과 만난 이후 지금 내가 만나는 아이들도 시대도 많이 달라졌다. 입시교육이라는 트랙에서 뛰어내려 자신을 찾아보고 싶다며 오디세이학교를 찾아온 고1 아이들 그리고 스스로를 인정 못해 마음이 힘든 학교 밖 아이들이 2025년 12월에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다.

우리가 타고 있는 배는 여전히 흔들리고, 그 배에 탄 우리도 날마다 흔들거리고 있다. 연약한 상태로 크든 작든 상처받고 휘둘리고 비난당하기도 하며,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는 듯 위태롭기도 하다. 그럴 때 누군가는 “내 밤을 왜 니가 가져? 나는 얼마든지 내 밤을 낮으로 바꿀 수 있어.” 하고 말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네 밤은 내가 가질게.” 해주기도 하면 좋겠다. 어두운 밤길을 나서며 옷깃을 여미듯 단단하게 챙긴 내 맘도, 누군가를 다독이는 따뜻한 맘도 민들레에서 다 공기처럼 떠다니면 좋겠다. 우리는 그런 민들레 속에서 나도 모르게 절로 ‘너의 밤은 내가 가질게’와 ‘내 밤을 왜 네가 가져’, 둘 다를 배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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