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변하지 않았어도 우리가 변했다
[진상규명] 7개의 질문으로 풀어본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운동
진상규명위원장 오민애
[세월호참사 10주기를 앞두고, 4.16연대는 시민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세월호참사 관련 조사결과를 중심으로 지난 10년동안의 진상규명은 어떤 흐름으로 이어져 왔는지, 우리의 성과는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는 자리입니다. 이를 통해 4.16연대는 앞으로 무엇을 더 해나가야 할지도 함께 고민합니다. 간담회에 참석한 4.16연대 진상규명위원장 오민애 변호사와 함께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둘러싼 질문을 풀어봅니다.]
Q1. 세월호참사 관련, 가장 납득할 수 없는 것이 아마 ‘해경이 왜 구하지 않았느냐’인 것 같습니다. 당일 해경이 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밝혀진 것은 무엇이며 더 밝혀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 해경이 ‘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관련 조사, 수사, 재판이 진행되면서 명확해진 것 같습니다. 사참위는 해경의 임무와 퇴선조치 권한, 시간대별 대응 등을 검토하며 해경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왜 구하지 않았는지, 구하지 않은 이유는 여전히 밝혀야 할 대상입니다.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해경이 현장에 출동을 했고, 현장에 출동한 123정을 통해 갑판이나 수면에서 승객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공유되면서, 승객 대부분이 배 안에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상황에 맞지 않는 명령과 요청이 오가던 상황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참사 당일 오전 9시 50분경까지의 상황에 대해서는 수사와 재판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됐지만, 그 이후 어떻게 대응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조사되거나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사참위 조사 결과 선체 전복 이후에 생존가능성을 염두에 둔 구조가 없었다는 사실은 확인됐지만, 왜 생존가능성을 배제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세월호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개인을 처벌할 수 있는가의 관점에서 사건이 구성됐습니다. 그렇다보니 해경지휘부를 구성하는 개인에게 어떤 의무가 있었고, 어떤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참사의 피해를 초래하게 됐는지를 밝히는데 초점을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월호참사 이전 해상사고에 어떻게 대비해왔는지, 구조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총체적으로 살펴서 그 원인을 규명하는 작업은 그 중 일부만 진행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Q2. 지난 2월, 해경지휘부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이 반복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생각까지 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 작년 6월에 사참위는 ‘해경지휘부가 충분히 급박성을 인식할 수 있었으며, 퇴선 조치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퇴선가능시간 또한 9:50이 아니라 10:17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의 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2월 7일, 해경지휘부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와 별반 다르지 않은 판결문과 함께 무죄 판결을 반복했습니다.
해경지휘부에 대한 무죄판결은, 앞으로 재난참사 현장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이들에게는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된다(혹은 최선을 다하지 말아야 한다)는 신호를, 지휘부 내지 책임자의 지위에 있는 이들에게는 현장의 상황을 잘 모르거나 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을수록 책임이 줄어들 수 있다는 신호를 주지 않을까 합니다. 법원은 세월호의 상황을 정확히 알기 어려웠고, 선장과 선원이 승객들을 두고 먼저 탈출한 상황을 예상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도 선장에게만 퇴선조치의 권한이 있었다고 보면서 해경이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단했습니다. 이는 현장의 상황을 알기 어렵거나 예측하기 어려우면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뜻이고, 따라서 지휘부에게 현장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아야 책임을 질 위험이 줄어든다는 인식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해경지휘부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곧 국가의 생명보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대별 해경의 대응이 밝혀진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생명보호를 위한 국가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였는가?’입니다. 국가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지 않았기에 국민의 희생이 발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고 그 책임을 다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이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무책임이 중첩하여 발생하는 재난참사의 성격을 밝히고, 그 성격에 맞게 안전 시스템을 재정비를 할 수 있도록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생명안전에 대한 국가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해경지휘부의 책임은 반드시 명확히 물어져야 합니다.
Q3. 참사 이후, 청와대 주도로 이뤄졌던 진상규명 와해 시도 및 피해자 불법사찰과 같은 인권탄압 의혹이 제기되었고 현재 관련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재판에서 중요하게 봐야 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 참사 직후부터 참사의 진상과 책임을 감추기 위해 당시 청와대와 정부 각 부처, 기관들은 진상규명 방해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피해자는 권리보장과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목소리를 감추고 탄압해야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1기 특조위의 설립과정부터 조직적이고 단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은 사실로 하나씩 드러났습니다. 국정원, 기무사, 정보경찰 등 정보기관이 피해자 및 옹호자들을 사찰했고 인권을 침해했다는 의혹도 사참위 조사로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그 정보의 수요자로 청와대가 공모했음 또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관련 재판에서 공모지점은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각 공무원이 누구의 의지대로 수행하였는지는 재판장 안에서 뜨거운 쟁점입니다.
진상규명을 방해하는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 과정에 국가권력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피해자들을 어떻게 탄압했는지를 하나하나 밝히고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재차 확인하는 과정이자, 국가권력이 통제되지 않을 때 어떻게 남용될 수 있는지를 되새기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해야할지, 재난참사 상황으로부터 사회공동체가 건강하게 회복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권력과 외부의 방해없이 독립적이고 공정한 조사가 진행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4. 선조위에 이어 사참위까지 세월호의 침몰원인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지만, 단일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는데요. 관련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무엇이고 쟁점은 무엇인가요? 밝히기 위해 어떤 것이 더 조사되어야 할까요?
> 선조위에서 이른바 내인설과 열린안의 결론이 나온 이후, 사참위는 위 두가지 결론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사참위는 세월호의 CCTV 영상을 추가로 복원했고 타기장치의 고장(솔레노이드 밸브 철심 고착)의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세월호 좌현 외판에 발생한 가로 파단이 외부 충돌에 의한 것이라는 점, 좌현 핀 안정기 격납고 변형의 원인이 외력에 있다는 점을 밝히고자 했으나, 외력 외의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참위는 세월호 선체 외부 변형 및 손상의 원인이 수중체 접촉에 의한 외부충격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정도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참위가 침몰원인을 조사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조사를 담당한 조사관과 위원들 사이에 의견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만큼 침몰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입장과 과학적 논거, 이에 대한 검증의 필요성이 다시금 확인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조위와 사참위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침몰원인에 대해 지속적인 연구와 검증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Q5.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시민들의 염원이자 촛불혁명의 주요 구호 중 하나였습니다. 10년이 되어 되돌아보니, 진상규명과 참사의 해결이라는 것이 요원하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왜 진상규명을 외쳤을까요? 10년의 진상규명 과정을 통해 알게 된 것/얻은 것은 무엇일까요?
> 어떤 납득할 수 없는 일을 마주쳤을 때 우리는 자연스레 왜? 라는 질문을 떠올립니다. 우리가 그 일을 납득하고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하여 학습하고 나아가기 위한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거리에 나섰고 진상규명을 외쳤습니다. 천만서명운동은 특조위 등 조사기구를 설립하였고 시민들은 스스로 나서 진실을 알기 위한 공부를 하고 연구했습니다. 재난참사 피해자 및 옹호자가 직접 ‘진실을 알 권리’를 스스로 체득하고 구성해나가며 인권을 확장시킨 경험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국민의 생명보다 정권의 안위를 우선한 국가폭력의 전모를 확인했습니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는 것을 직접 겪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세월호참사의 진상을 제대로 밝히는 것이, 우리 사회가 세월호참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새기는 토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밝혀져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이를 요구해나가는 과정이 우리가 참사를 기억하는 중요한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무엇이 밝혀졌고 무엇을 밝혀야 하는지 정리하는 것과 함께, 그 과정에서 세월호참사 유가족, 피해자들과 시민들이 함께 이루어낸 많은 성과들이 있었고 우리는 세월호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 진상규명의 힘을 잃지 않고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는 기반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6. 10년을 지나보니, 바뀐 것이 없지만은 않습니다. 국가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는 달라졌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함께 해온 4.16운동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 진상규명과 안전사회를 위해 함께 해온 길은 우리 사회가 생명과 안전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할 필요성과 그 방향을 보여주었고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자가 직접 나섰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여 연대를 만들었습니다. 진실을 밝히고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기 위해서 모인 재난공동체는 꾸준히 지속되고 있으며 우리의 진실을 알 권리와 피해자 권리를 스스로 학습하며 확장해왔습니다. 또한 스스로 안전에 대한 권리(안전권)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국가에게 책임을 지도록 하기 위하여 실천해왔습니다.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 재발방지를 위해 제도를 정비하고 우리 사회공동체가 보다 안전하고 건강할 수 있기 위해 힘을 모으는 것, 이 모든 길이 4.16 운동의 발자취였습니다.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로 많은 분들은 슬픔과 함께 ‘바뀌지 않았다'는 좌절에 빠지기도 하였지만, 세월호 이후 발생하는 재난참사 피해자들에게 시민들과 세월호참사 피해자가 함께 만든 4.16운동은 권리실현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변화해왔습니다.
조사기구, 수사기관, 법원을 통한 진상 및 책임규명은 한계가 있었지만, 이는 4.16 운동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지난 10년동안의 4.16운동을 되새겨보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나갈지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7. 세월호참사 10주기 이후, 우리는 어떻게 진상규명 및 4.16운동을 이어나가야 할까요? 지금, 우리의 과제는 무엇일까요?
세월호참사 및 그 이후 피해자 권리 침해 등 범죄에 대한 국가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안전할 권리가 있으며, 국가가 이를 위한 책임과 의무를 지닌다는 것을 분명히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사참위의 권고가 제대로 이행되는지 점검하고,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의 근거법률 제정, 피해자 지원에 관한 법제 정비 등 안전사회를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는 제도개선 또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불법사찰, 진상규명와해, 언론 외압 및 수사 외압 관련 지난 국가의 잘못에 대한 추가적인 진상규명 조치도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진상규명을 지속하기 위하여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지 공론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0년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위해 수사와 조사, 재판이 하나의 중요한 축을 형성했었다면, 이후에는 그 과정에서 다루지 못하거나 다루지 않았던 사안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상규명의 경우 조사기구, 수사기관, 법원에서의 사건 진행과정과 결과에 대한 평가와 함께 그 과정에서 확인되지 못했던 과제를 정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참사 당일 선체 전복 이후의 구조상황을 포함하여 구조구난 작업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고, 참사 직후 검찰수사에 대한 외압, 정보기관의 활동 등 자료 접근조차 사실상 불가능했던 사안도 있습니다. 침몰원인에 대해서는 조사기구에서 확인된 자료와 결과를 토대로 토론과 검증이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국가는 변하지 않았어도 우리가 변했다
[진상규명] 7개의 질문으로 풀어본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운동
진상규명위원장 오민애
[세월호참사 10주기를 앞두고, 4.16연대는 시민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세월호참사 관련 조사결과를 중심으로 지난 10년동안의 진상규명은 어떤 흐름으로 이어져 왔는지, 우리의 성과는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는 자리입니다. 이를 통해 4.16연대는 앞으로 무엇을 더 해나가야 할지도 함께 고민합니다. 간담회에 참석한 4.16연대 진상규명위원장 오민애 변호사와 함께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둘러싼 질문을 풀어봅니다.]
Q1. 세월호참사 관련, 가장 납득할 수 없는 것이 아마 ‘해경이 왜 구하지 않았느냐’인 것 같습니다. 당일 해경이 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밝혀진 것은 무엇이며 더 밝혀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 해경이 ‘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관련 조사, 수사, 재판이 진행되면서 명확해진 것 같습니다. 사참위는 해경의 임무와 퇴선조치 권한, 시간대별 대응 등을 검토하며 해경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왜 구하지 않았는지, 구하지 않은 이유는 여전히 밝혀야 할 대상입니다.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해경이 현장에 출동을 했고, 현장에 출동한 123정을 통해 갑판이나 수면에서 승객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공유되면서, 승객 대부분이 배 안에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상황에 맞지 않는 명령과 요청이 오가던 상황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참사 당일 오전 9시 50분경까지의 상황에 대해서는 수사와 재판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됐지만, 그 이후 어떻게 대응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조사되거나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사참위 조사 결과 선체 전복 이후에 생존가능성을 염두에 둔 구조가 없었다는 사실은 확인됐지만, 왜 생존가능성을 배제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세월호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개인을 처벌할 수 있는가의 관점에서 사건이 구성됐습니다. 그렇다보니 해경지휘부를 구성하는 개인에게 어떤 의무가 있었고, 어떤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참사의 피해를 초래하게 됐는지를 밝히는데 초점을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월호참사 이전 해상사고에 어떻게 대비해왔는지, 구조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총체적으로 살펴서 그 원인을 규명하는 작업은 그 중 일부만 진행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Q2. 지난 2월, 해경지휘부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이 반복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생각까지 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 작년 6월에 사참위는 ‘해경지휘부가 충분히 급박성을 인식할 수 있었으며, 퇴선 조치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퇴선가능시간 또한 9:50이 아니라 10:17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의 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2월 7일, 해경지휘부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와 별반 다르지 않은 판결문과 함께 무죄 판결을 반복했습니다.
해경지휘부에 대한 무죄판결은, 앞으로 재난참사 현장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이들에게는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된다(혹은 최선을 다하지 말아야 한다)는 신호를, 지휘부 내지 책임자의 지위에 있는 이들에게는 현장의 상황을 잘 모르거나 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을수록 책임이 줄어들 수 있다는 신호를 주지 않을까 합니다. 법원은 세월호의 상황을 정확히 알기 어려웠고, 선장과 선원이 승객들을 두고 먼저 탈출한 상황을 예상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도 선장에게만 퇴선조치의 권한이 있었다고 보면서 해경이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단했습니다. 이는 현장의 상황을 알기 어렵거나 예측하기 어려우면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뜻이고, 따라서 지휘부에게 현장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아야 책임을 질 위험이 줄어든다는 인식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해경지휘부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곧 국가의 생명보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대별 해경의 대응이 밝혀진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생명보호를 위한 국가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였는가?’입니다. 국가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지 않았기에 국민의 희생이 발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고 그 책임을 다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이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무책임이 중첩하여 발생하는 재난참사의 성격을 밝히고, 그 성격에 맞게 안전 시스템을 재정비를 할 수 있도록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생명안전에 대한 국가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해경지휘부의 책임은 반드시 명확히 물어져야 합니다.
Q3. 참사 이후, 청와대 주도로 이뤄졌던 진상규명 와해 시도 및 피해자 불법사찰과 같은 인권탄압 의혹이 제기되었고 현재 관련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재판에서 중요하게 봐야 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 참사 직후부터 참사의 진상과 책임을 감추기 위해 당시 청와대와 정부 각 부처, 기관들은 진상규명 방해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피해자는 권리보장과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목소리를 감추고 탄압해야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1기 특조위의 설립과정부터 조직적이고 단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은 사실로 하나씩 드러났습니다. 국정원, 기무사, 정보경찰 등 정보기관이 피해자 및 옹호자들을 사찰했고 인권을 침해했다는 의혹도 사참위 조사로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그 정보의 수요자로 청와대가 공모했음 또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관련 재판에서 공모지점은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각 공무원이 누구의 의지대로 수행하였는지는 재판장 안에서 뜨거운 쟁점입니다.
진상규명을 방해하는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 과정에 국가권력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피해자들을 어떻게 탄압했는지를 하나하나 밝히고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재차 확인하는 과정이자, 국가권력이 통제되지 않을 때 어떻게 남용될 수 있는지를 되새기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해야할지, 재난참사 상황으로부터 사회공동체가 건강하게 회복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권력과 외부의 방해없이 독립적이고 공정한 조사가 진행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4. 선조위에 이어 사참위까지 세월호의 침몰원인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지만, 단일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는데요. 관련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무엇이고 쟁점은 무엇인가요? 밝히기 위해 어떤 것이 더 조사되어야 할까요?
> 선조위에서 이른바 내인설과 열린안의 결론이 나온 이후, 사참위는 위 두가지 결론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사참위는 세월호의 CCTV 영상을 추가로 복원했고 타기장치의 고장(솔레노이드 밸브 철심 고착)의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세월호 좌현 외판에 발생한 가로 파단이 외부 충돌에 의한 것이라는 점, 좌현 핀 안정기 격납고 변형의 원인이 외력에 있다는 점을 밝히고자 했으나, 외력 외의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참위는 세월호 선체 외부 변형 및 손상의 원인이 수중체 접촉에 의한 외부충격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정도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참위가 침몰원인을 조사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조사를 담당한 조사관과 위원들 사이에 의견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만큼 침몰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입장과 과학적 논거, 이에 대한 검증의 필요성이 다시금 확인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조위와 사참위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침몰원인에 대해 지속적인 연구와 검증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Q5.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시민들의 염원이자 촛불혁명의 주요 구호 중 하나였습니다. 10년이 되어 되돌아보니, 진상규명과 참사의 해결이라는 것이 요원하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왜 진상규명을 외쳤을까요? 10년의 진상규명 과정을 통해 알게 된 것/얻은 것은 무엇일까요?
> 어떤 납득할 수 없는 일을 마주쳤을 때 우리는 자연스레 왜? 라는 질문을 떠올립니다. 우리가 그 일을 납득하고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하여 학습하고 나아가기 위한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거리에 나섰고 진상규명을 외쳤습니다. 천만서명운동은 특조위 등 조사기구를 설립하였고 시민들은 스스로 나서 진실을 알기 위한 공부를 하고 연구했습니다. 재난참사 피해자 및 옹호자가 직접 ‘진실을 알 권리’를 스스로 체득하고 구성해나가며 인권을 확장시킨 경험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국민의 생명보다 정권의 안위를 우선한 국가폭력의 전모를 확인했습니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는 것을 직접 겪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세월호참사의 진상을 제대로 밝히는 것이, 우리 사회가 세월호참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새기는 토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밝혀져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이를 요구해나가는 과정이 우리가 참사를 기억하는 중요한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무엇이 밝혀졌고 무엇을 밝혀야 하는지 정리하는 것과 함께, 그 과정에서 세월호참사 유가족, 피해자들과 시민들이 함께 이루어낸 많은 성과들이 있었고 우리는 세월호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 진상규명의 힘을 잃지 않고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는 기반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6. 10년을 지나보니, 바뀐 것이 없지만은 않습니다. 국가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는 달라졌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함께 해온 4.16운동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 진상규명과 안전사회를 위해 함께 해온 길은 우리 사회가 생명과 안전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할 필요성과 그 방향을 보여주었고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자가 직접 나섰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여 연대를 만들었습니다. 진실을 밝히고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기 위해서 모인 재난공동체는 꾸준히 지속되고 있으며 우리의 진실을 알 권리와 피해자 권리를 스스로 학습하며 확장해왔습니다. 또한 스스로 안전에 대한 권리(안전권)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국가에게 책임을 지도록 하기 위하여 실천해왔습니다.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 재발방지를 위해 제도를 정비하고 우리 사회공동체가 보다 안전하고 건강할 수 있기 위해 힘을 모으는 것, 이 모든 길이 4.16 운동의 발자취였습니다.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로 많은 분들은 슬픔과 함께 ‘바뀌지 않았다'는 좌절에 빠지기도 하였지만, 세월호 이후 발생하는 재난참사 피해자들에게 시민들과 세월호참사 피해자가 함께 만든 4.16운동은 권리실현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변화해왔습니다.
조사기구, 수사기관, 법원을 통한 진상 및 책임규명은 한계가 있었지만, 이는 4.16 운동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지난 10년동안의 4.16운동을 되새겨보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나갈지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7. 세월호참사 10주기 이후, 우리는 어떻게 진상규명 및 4.16운동을 이어나가야 할까요? 지금, 우리의 과제는 무엇일까요?
세월호참사 및 그 이후 피해자 권리 침해 등 범죄에 대한 국가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안전할 권리가 있으며, 국가가 이를 위한 책임과 의무를 지닌다는 것을 분명히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사참위의 권고가 제대로 이행되는지 점검하고,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의 근거법률 제정, 피해자 지원에 관한 법제 정비 등 안전사회를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는 제도개선 또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불법사찰, 진상규명와해, 언론 외압 및 수사 외압 관련 지난 국가의 잘못에 대한 추가적인 진상규명 조치도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진상규명을 지속하기 위하여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지 공론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0년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위해 수사와 조사, 재판이 하나의 중요한 축을 형성했었다면, 이후에는 그 과정에서 다루지 못하거나 다루지 않았던 사안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상규명의 경우 조사기구, 수사기관, 법원에서의 사건 진행과정과 결과에 대한 평가와 함께 그 과정에서 확인되지 못했던 과제를 정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참사 당일 선체 전복 이후의 구조상황을 포함하여 구조구난 작업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고, 참사 직후 검찰수사에 대한 외압, 정보기관의 활동 등 자료 접근조차 사실상 불가능했던 사안도 있습니다. 침몰원인에 대해서는 조사기구에서 확인된 자료와 결과를 토대로 토론과 검증이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