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십육일의약속내 아이를 넘어, 우리의 아이들을 위한 동네를 일구다

[탐방] 건건대림아파트 주민회 아름드리

내 아이를 넘어, 우리의 아이들을 위한 동네를 일구다


박희정

 


문만 닫으면 서로 딴 세상인 아파트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더구나 그곳이 참사가 할퀸 마을이라면? 4.16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결성된 안산시의 주민모임 ‘아름드리’는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볼 만한 답 하나를 보여준 곳이다.

 

아픈 부모들의 밥을 챙기다

“4·16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안전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마을의 문화생활에 이바지한다는 게 저희의 활동 목표예요. 주되게는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와 마을 축제를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아름드리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모임을 이끄는 이연우 씨의 말이다. 아름드리의 시작은 소박한 마을 축제를 열기 위해 연우 씨를 비롯한 다섯 명의 엄마가 모였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마을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작은 놀이터를 만들어보자는 꿈을 막 꾸기 시작했을 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가슴이 불탄 듯 아파 슬피 울던 엄마들이 무언가 행동에 나선 것은 그해 가을이었다.

2014년 11월 7일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고, 11월 11일 실종자 수색이 종료된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은 진상규명을 제대로 이루어내어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전국을 돌면서 시민들과 만났다. 다섯 엄마도 용기를 내 간담회를 신청했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펑펑 울고 난 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십시일반 돈을 모으고 장을 봐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협)로 밥과 반찬을 해 방문하기 시작했어요. 사람이 살려면 가장 기본적인 게 음식이지만, 자식 잃은 부모들에게 밥을 먹는 일처럼 괴로운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 마음을 알 것 같으니 나설 수밖에 없었어요.”

모두 이런 활동을 난생처음 해본 이들이었다.

“음식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 줄도 몰랐어요. 집에 있는 김치냉장고 통이며 밥솥을 그대로 들고 갔어요. 가면서도 걱정이 태산이었어요. 우리가 만든 게 과연 맛은 있을까. 이거밖에 못 해드려서 죄송했어요.”

한두 번 하다 그만두기는 싫어서 스스로 약속을 정했다.

“가협에서 운영위원회 하실 때 맞춰서 한 달에 두 번씩 갔어요. 대학교 새내기 100여 명이 4·16 순례할 때 잘 곳이 없다고 해서 지역에서 공간을 빌려서 재우고 100명분 밥을 해서 먹이기도 했어요.”

그런 활동 속에서 엄마들은 ‘내 아이’를 넘어 ‘우리 동네의 아이들’로 시선을 옮기게 되었다.

“공동주택들이 대부분 부녀회나 노인회 중심으로 운영돼요. 어린이를 위한 게 없어요. 반월동은 특히나 노인을 위한 사업이 많은 곳이에요. 도농복합 도시거든요. 아이들은 나라에서 돈 주잖아, 이런 식이죠. 그래서 아이들을 챙겨보자고 아파트 동아리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정말 어마어마하게 욕을 먹었어요. 기존에 활동하던 분들이 저희가 돈 뺏으러 왔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아름드리 엄마들이 아파트 전 세대의 연령대별 비율, 거주 비율을 다 조사했어요. 어린이가 있는 집이 60%였어요. 현재 예산 집행의 문제점 지적하고 거의 ‘전투’를 치렀죠. 정말 어렵게 아파트 동아리에 등록됐어요.”

 

연결의 장을 만들다

아름드리는 마을 축제를 열 때마다 가협과 꼭 함께했다.

“생명안전공원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면서 그런 자리를 더 많이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가족들이 주민들에게 진실을 제대로 설명할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 축제, 4.16공방과 함께하는 문화프로그램에 아이들 손을 잡은 엄마들이 많이 오셨어요. 자연스럽게 가협 활동이나 생명안전공원, 별이 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민들에게 전할 수 있었죠.”

아름드리는 별이 된 아이들의 생일과 명절 상차림 활동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마을밴드를 통해 아낌없이 마음을 나눠주는 모습을 보며 아름드리 회원들은 더욱 힘을 낸다.

“코로나로 한동안 주춤했지만 2022년에는 2019년도 수준으로 활동을 늘렸어요. 아파트 울타리를 벗어나 마을 분들과 더 넓게 만나는 해였어요. 가협 분들이 마을 분들에게 ‘기억할게요, 응원할게요’라는 말을 많이 들으셨대요. 정말 큰 힘이 되었대요.”

이연우 씨는 매년 한 해 사업계획을 세울 때가 되면 아름드리 회원들에게 물어본다. 힘든 일인데 계속할 거냐. 5명에서 시작한 아름드리는 12명으로 늘어났지만, 활동의 규모도 그만큼 커졌기에 참여하기에 부담이 적지 않다.

“대답이 한결같아요. 당연히 해야죠, 라고 해요. 아름드리 회원 모두, 생명안전공원 첫 삽을 뜰 때까지는 가협 분들과 마을 분들이 연결될 자리를 꾸준히 만들어가야한다고 생각해요. 반월동은 안산에서도 내로라하는 보수 지역이거든요. 참사 초기 노란 깃발과 플래카드 달기를 했을 때 매일 그걸 끊는 사람이 있었어요. 저희는 매일 그걸 바꿔 달았죠. 생명안전공원에 대해서도 아이 엄마들까지 ‘그거 납골당 아니냐?’고 말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진 분위기를 느껴요. 함께 말하는 과정이 이래서 필요하구나 싶어요.”

갈등을 무릅쓰고 섞이고 말하기를 포기하지 않을 때, 더디더라도 변화는 시작된다. 스스로 일군 진실을 손에 쥐고, 아름드리는 올해도 힘차게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