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십육일의약속우리는 국가를 바꾸는 길 위에 서 있다-사참위 보고서와 분석자료집 읽기를 제안하며

우리는 국가를 바꾸는 길 위에 서 있다-사참위 보고서와 분석자료집 읽기를 제안하며


미류

[지난해 9월 6일,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3년 6개월간의 활동을 끝내며 종합보고서를 발간했다. 4.16연대는 분석팀을 구성해 사참위 보고서를 집중 분석했다. 그 결과를 담은 자료집이 발간될 예정이다. 진상규명소위원회 보고서 분석에 함께 한 미류 활동가가 지금 우리가 사참위 보고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짚는다.]

“여기까지밖에 오지 못했다는 것이 가던 길을 멈춰야 하는 이유일 수는 없었다.”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집 『금요일엔 돌아오렴』(2015, 창비)에 썼던 문장을 다시 읽었다. 2014년 세월호특별법이 요구에 못 미친 채로 제정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8년이 흘러 사참위 보고서가 나온 후 우리의 마음도 비슷하지 않을까? 진실은 더 멀어지고 진실을 밝히는 투쟁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듯하지만 멈추고 싶지 않다. 10.29 이태원참사를 마주하며 좌절감만큼이나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 선명해진다. 그런데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 것일까?

작년 9월 발간된 사참위 보고서가 그 답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기회를 준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 이후 다른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사참위에 모두 떠넘기지 않았다. 사참위의 수고로 우리가 알게 된 것은 무엇이며 알고 싶어진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바꿔온 것은 무엇이며 바꾸고 싶어진 것은 무엇인지 말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이 글은 4.16연대의 사참위 보고서 분석 TF에 참여하며 진상규명소위 보고서를 읽은 나의 독후감이자 여기까지 온 우리 모두에게 바치는 뜨거운 헌사다.

 

이미 알던 이야기?

 

사참위 진상규명소위 보고서에 담긴 내용은 크게 세월호 침몰원인과 해경의 구조방기, 청와대의 진상규명 방해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세월호 침몰 원인은 독립적인 과제로 선체조사위원회에서도 조사된 바 있다. 그러나 선체조사위원회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내인설’과 ‘열린안’이라는 두 개의 보고서를 남겼다. 정확히 말하면 침몰 원인에 두 가지 결론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선박 자체의 문제로 급변침과 침몰이 이루어졌다고 결론 내리려고 할 때,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남아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사참위는 여기에서 출발해 추가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결론을 내리는 데 또다시 실패했다. 증개축으로 위험해진 세월호에 과적을 하고 심지어 고박도 제대로 하지 않고 다녔다는, 이미 알던 이야기에 멈춘 셈이다.

해경은 도대체 무엇을 했던가. 배가 침몰 중이라는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출동해 상황을 직접 목격했다. 상황실에서는 보고와 지시가 오갔다. 바꿔말하면 이렇다. 해경은 신고를 받았으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실패했고, 현장에 출동한 구조세력은 눈에 보이는 사람들만 구조했다. 해경 지휘부는 수백 명의 사람이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있음을 파악하지 못했고, 구조본부를 지휘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왜 그랬던 건데? 사참위가 해경의 교신 내용과 활동 내역을 시간대별로 거의 확인했으나 새롭게 들리는 이야기가 없는 것만 같다.

청와대가 진상규명을 어떻게 방해했는지에 관해서는 새로운 사실이 많이 밝혀졌다. 참사 당일 청와대는 구조와 수색에 관해 아무런 지시도 지원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국정원의 ‘140416(세월호) 수습방안’ 문건을 전달받았다. 경찰과 기무사도 합세하여 경쟁적으로 보고가 이어졌다. ‘정부 책임론으로 비화를 방지’해야 하며 ‘좌파 또는 외부세력이 개입하고 있으니 제압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유병언 회장에게 이목을 집중시키거나 보수우파 단체들을 동원하는 등 청와대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특조위를 파괴하기 위한 시나리오는 세월호 관계 차관회의를 통해 끊임없이 점검되고 추진되었다. 집요한 탄압을 기획하고 실행한 실체가 드러났다. 그런데 역시 부족한 느낌이다. 우리가 그 탄압과 맞서 싸우며 이미 직감한 것이기 때문이다.

보고서를 읽고 나면 의문이 든다. 우리가 바라던 진상규명이 이런 것이었나? 아니야, 부족하다. 그런데 뭘 더 밝혀야 하는 거지? 다시 막막한 벌판에 선 느낌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떠나온 자리로 다시 돌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잊지 않겠다고, 진실을 밝히겠다고,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진실이 무엇일지 알 수 없어도 굳게 약속했던 그때를 떠올리며.

 

다르게 읽어야 할 이야기

 

사참위는 세월호 침몰 원인에 관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추가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외부 물체와의 충돌로 침몰했을 가능성은 더 희박해졌다. 세월호가 외부 물체와 충돌했다면 최소한 충돌의 흔적, 충돌로 인한 상호작용, 충돌한 물체가 설명되어야 한다. 사참위는 외력에 의한 손상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9가지 흔적에 대해 조사했으나 좌현 핀 안정기나 외판 파단 등의 흔적은 침몰과 이후 인양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설명될 수도 있다.

물론 외력에 의해 손상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급변침을 일으킬 만큼의 힘으로 부딪쳐 세월호에 남은 흔적만큼의 변형을 일으킬 크기와 모양을 가진 물체를 현실에서 상상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부딪친 물체가 있다면 그 역시 심한 손상을 입고 어딘가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만약 외부 물체와 충돌했다면 어떤 물체가 9천 톤에 달하는 세월호를 침몰시키고 그 순간 사라졌다는 사실이 설명되어야 한다.

결론을 내릴 법한데도 사참위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세월호 침몰에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되물어야 했다. 뭍에서 멀지도 않은, 겉에서 보기에 잔잔해 보이는 바다에 304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가라앉아야 했다는 사실이 도대체 이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의도를 상상하는 것이 차라리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게다가 국가가 누군가를 죽이고도 숨기거나 잡아떼고 변명해온 역사는 현재진행형이지 않은가. 어떤 설명도 명쾌하지 않으니 의혹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여기에 재난조사가 길잡이가 되어주지 못했다.

우리 모두 재난조사의 방법론에 익숙하지 않았다. 침몰원인을 두고 ‘복원성’이 첨예한 쟁점이 되었던 것도 그런 이유다. 세월호 참사 당시 복원성은 추정치로밖에 알 수 없다. ‘기울어진 배가 다시 평형 상태로 돌아오려는 성질’인 복원성은 같은 무게라도 화물이 어디에 실렸는지에 따라 달라지므로 정확히 계산할 수 없다. 침몰 원인을 밝히기 위한 여러 조사나 실험도 마찬가지다. 제외할 수 있는 사실들을 실마리 삼아 가능성이 가장 큰 설명으로 좁혀가야 한다. 그러나 열린안은 ‘결론을 확정할 수 없다’는 점에만 주목하며 배제할 수 있는 것조차 붙들어두었다. 이렇게는 어떤 조사로도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사참위는 외력 충돌의 가능성을 높이고 내인설의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조사 내용은 오히려 외력충돌의 불가능성을 더욱 드러낸다. 사참위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지만 우리는 결론을 내릴 수 있고, 내려야 한다. 그래야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구조적 원인을 밝히는 재난조사

 

해경이 구조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권한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수난구호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규칙과 매뉴얼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되었다. 해경 지휘부는 사고 인지 후, 지휘부에서만 수집할 수 있는 정보를 입수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현장에 나간 해경들에게 무슨 상황이냐 물어보는 데 그쳤다. 현장은 현장대로 그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정보를 구해 지휘부에 신속히 보고하지 않았다.

물론 재난구조활동은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하기 전에 이미 시작되어야 한다.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지휘는 사고를 인지한 순간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해경 지휘부는 사고 인지 이후 유효한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 본청 상황실은 123정에서 볼 수 없는 메신저로만 지시를 내렸다. ‘그렇게 빨리 침몰할 줄 몰랐다’는 해경 지휘부의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어떤 재난도 사망 시각을 예고하지 않는다. ‘해경이 구하지 않았다’는 평가는 전혀 과하지 않다.

재난조사는 해경이 구조에 실패한 원인을 밝혀야 했다. 그러나 사참위 보고서는 해경이 기본적인 의무조차 이행하지 않았으며 상황 인지와 전파 등 재난대응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결론에서 멈췄다. 당시 상황을 그저 진단했을 뿐 원인 분석은 시작하지도 못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밝히기 위한 질문은 이제 시작이다.

사참위가 새롭게 밝힌 사실 중에도 그 실마리가 있다. 세월호가 침몰한다는 신고가 해경에 접수될 때 ‘사람이 바다에 빠졌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내용은 그 후 사라져버렸다. 신고를 접수한 122상황실 요원은 “최대한 빠진 그 사람을 그래도 좀 구조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거 좀 조치 좀 취해주십시오”라고 선원에게 요청했다. 해경이 출동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다급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머리가 텅 비어서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을 잊고” 말았다. “실장에게 보고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사람이 빠진 내용에 대해 보고를 못했다.”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나에게 있다. 책임이 있다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달라졌을까? 참사 당시 해경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 단언하기 어렵다. 오히려 해경이라는 조직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공무원들을 키워내는 조직이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위 사실은 112상황실 요원의 책임인 동시에 그의 행위에 영향을 미친 해경의 책임이다. 해경 지휘부는 당일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무책임을 길러낸 조직에 대해서도 책임져야 한다.

해경이 실패한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조사과제를 적절히 설정하여 문제를 짚어야 한다. 참사 당시만 들여다보는 것을 넘어서 해경 조직의 역사와 관행, 직급 간 위계, 조직문화, 교육과 훈련 등을 살펴야 한다. 조직 안에서 어떤 업무에 우선순위가 부여되고 포상되는지, 어떤 잘못은 용인되고 어떤 잘못은 징계되는지, 그뿐만 아니라 정부 조직 간 관계에서 해경이 어떤 지위나 비중을 가져왔는지까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의 없이 진실 없다

 

‘해경은 왜 구조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에는 재난조사로 해소되지 않는 과제가 있다. 구조에 실패한 책임을 어떻게 물어 정의를 세울 것이냐는 문제다. 최근의 항소심 판결까지 해경 지휘부는 무죄로 남아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해경 지휘부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납득 되지 않는다. 해경 지휘부에게 잘못을 물을 수 없는 건 진상규명이 안되었기 때문일까? 해경 지휘부 무죄 판결은 진실보다 정의에 관한 문제다. 그런데 정의가 지연되는 이유를 단지 검찰이나 법원이 소극적이라는 데서만 찾아야 할까? 해경 지휘부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되었다. 이 죄목이 과연 재난참사에서 국가 책임을 따지는 데 충분한가 질문할 시점이다.

업무상과실치사상죄는 공무원뿐만 아니라 사인(私人) 간의 관계에서도 적용된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업무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이유로 누군가 사망했으며, 그럴 수 있다는 점을 예견할 수 있었을 때 인정된다. 어떤 사망은 피하거나 손쓰기 어려운 상황에서 안타깝게 발생하기도 하므로 그 책임이 특정한 개인에게 과도하게 지워지지 않게 하는 것 역시 중요해진다. 그런데 바로 이점을 책임회피의 방패로 삼는 일이 벌어진다. 해경 지휘부나 10.29 이태원참사 책임자들 모두 하나같이 ‘예견하기 어려웠다’는 주장을 펼친다.

‘최초 인지 시각’이 쟁점이 되는 이유다. ‘최초 인지 시각’이 책임의 기준이 된다면 책임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쏠리게 된다. 현장에 가깝게 있을수록, 신고를 접수하는 업무를 맡을수록 더 일찍 인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꼬리 자르기’가 반복되고, 더 많은 권한을 가진 사람이 더 적은 책임을 지는 일이 반복된다.

재난 대응은 국가의 기능이며 이는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진다. 보고가 늦었더라도 그 시점부터 시작되는 책임이 있다. 시스템의 문제로 보고가 늦어졌다면, 그 책임은 상급자일수록 더 크게 져야 한다. 상급자일수록 더 포괄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더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할 의무와 권한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멀리 나아왔으나 법은 제자리에 있는 듯하다. 검찰과 법원의 적극성을 기대하는 것에 머물지 말고 법 자체를 질문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이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책임의 무게를 깨달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안전사회를 방해한 국가

 

우리는 재난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밝히는 사회적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이라는 막막한 여정을 시작했다. 잘못이 있어도 처벌되지 않는 법의 한계가 우리를 가로막았다. 청와대에 관한 조사에 관해서는 여기에 더해 또 눈여겨볼 지점이 있다.

청와대가 주도한 진상규명 방해 공작에 연루된 고위공직자 중 일부는 기소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이들은 직권남용이나 허위공문서작성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러한 법이 보호하려는 대상은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 문서에 대한 공공의 신용이지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가 아니다. 그러니 설령 이들이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피해자에게 사과해야 할 이유를 모르게 되고 형량이 어떻든 정의가 이루어졌다고 하기 힘들다.

박근혜 정부에게 안전은 ‘국가의 안전’이었을 뿐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그들에게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박근혜는 취임 직후 안전행정부를 만들 정도로 안전을 강조했다.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에 이어 불량식품을 4대악으로 꼽았을 때 모두 뜨악했다. 그러나 이 리스트는 박근혜 정부의 일관성을 보여준다. ‘불량’한 것을 가려내겠다는 의지다. 폭력을 저지르는 ‘불량한 시민’은 ‘불량식품’처럼 솎아내야 한다. 그래야 국가의 안전이 지켜진다.

국가에 순종하지 않는 시민은 불량한 시민이다. 국가에 책임을 따져 묻는 것은 종북세력이나 하는 일, 진상규명 요구는 “일부 불순세력의 남남갈등 국론분열 조장”에 다름없었다. 국민은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국가의 ‘잠재적 적’이었다. 집회 시위 관리는 철저히 하면서 인파 관리는 하지 않았던, 그러면서 희생자의 마약 중독만 의심한 이태원참사를 낳은 경찰의 모습이다.

피해자의 권리,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를 보장할 제도와 시스템이 필요하다. 누가 집권하는지에 따라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다면 그건 시스템이 없다는 말과 다름없다. 부처 이름에 ‘안전’을 붙였다 뗐다 붙였다 한들 안전에 대한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재난안전 관련 부서가 거의 모든 부처와 지자체에 있지만 전문성도 없고 순환보직으로 겨우 유지되는 실정이다. 승진에 도움이 안 되니 기피 업무가 되고 억지로 앉은 자리다 보니 목표도 없이 시간만 때운다. 그러니 재난참사가 발생했을 때 자신이 져야 하는 책임도 모르는 공직자가 태반이다.

 

멈춰야 할 이유가 없다

 

세월호참사는 우리 사회가 처음으로 ‘재난참사’를 직면하게 한 사건이다. 세월호참사를 통해서야 우리는 앞선 재난참사들이 어떻게 잊히고 진실과 정의가 부서져 왔는지 깨닫게 되었다. 재난참사 피해자를 권리의 주체로 보게 된 것 역시 세월호참사 이후다. 검찰이나 경찰이 정의를 자처하며 수사에 나서는 것과 다른 독립적 기구의 재난조사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재난참사가 우연이나 불운이 아닌, 조사되어 밝혀져야 할 사건이며 그로부터 변화의 과제를 찾을 때 우리의 권리도 지켜진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구의역 사고나 김용균의 죽음 이후 독립적 조사기구가 구성되기도 했다. 사참위 보고서가 부족한 듯 보일지 몰라도 첫 독립적 재난조사의 의의가 지워져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온 변화다.

권리를 지킬 줄 아는 사회라야 재난참사를 막을 수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박근혜가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는 파면 결정에 멈춰있다.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가 무엇인지, 박근혜 정부가 말하던 안전과 우리가 말하려는 안전이 어떻게 다른지 밝혀가야 할 때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 대한 탄핵심판도 예정되어 있다.

재난참사 피해자에게 공무원을 일대일 매칭해 지원하는 것으로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 국가 책임이 끝나지 않는다. 피해자가 모일 권리, 설명을 요구할 권리, 진상규명에 참여할 권리 등이 국가에 의해 부정되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배워온 것을 국가도 배울 수 있도록, 국가를 바꿔야 한다.

사참위 보고서 이후의 이야기를 우리가 쓰기 시작할 때다. 이야기가 어디에서 멈췄는지 궁금하다면 사참위 보고서를 읽어도 좋다. 보고서가 재난조사의 한계 속에서 쓰인 탓에 잘 읽히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4.16연대가 발간한 자료집은 꼭 읽자. 제자리가 아닌, 우리의 자리를 살피기 위해서다. 국가를 바꾸자니, 어쩌자는 건가 묻고 싶을 것이다. 그걸 지금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다만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국가를 쓰러뜨렸던 기억을 잊지 말자. 우리는 다른 국가를 세우는 일 앞에 잠시 멈춰있었을 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시작된 다른 감각과 연대의 기억은 우리 몸에 새겨져 사라지지 않았으니,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