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소식지] 도서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 "어딘가에서 잊혀져가는 그를 기억하라"

도서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 

"어딘가에서 잊혀져가는 그를 기억하라"

박솔비(세월호참사 생존자)

세월호참사 생존자들의 말하기 모임인 ‘돛자리’를 통해 이로아 작가님의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은 2023년 발생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물론 다른 참사로 읽어도 무방하다)의 생존자로 추정되는 주인공 이연서와, 남겨진 사람들이 참사와 함께 살아가는 과정을 다룬 작품으로 제15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평소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즐겨 읽었던 데다, 참사를 주제로 한 소설은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에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다. 책에는 친구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할까, 참사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줄까, 혹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평범한 일상을 담고 있을까.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며, 긴장과 기대를 안고 첫 장을 펼쳤다.
이 책의 주인공은 세월호 참사 당시 나와 비슷한 나이의 청소년이다. 나와 같은 ‘생존자’이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내가 겪은 참사와는 너무 멀지도, 완전히 닿아 있지도 않은 적절한 거리감을 느끼게 해 주어 오히려 좋았다. 책장을 넘길수록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었다.

“사람들 말대로 내가 이상한 애가 되어 버렸다면 어떡하지.” (64p)

“나는 잊을 수 없었다. 내가 잊을 수 없다면 차라리 잊히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걸었다.” (107p)

주인공 연서의 이야기를 읽으며, 세월호참사 1주기 무렵의 우리가 떠올랐다. 나는 주변 사람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괜찮아 보이려 애썼다. 내 상태를 솔직히 마주하지 못하고,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며 주변 상황에만 신경 썼다. 모든 것이 서툴러 자신을 부정하며 애써 피하려 했던 시절이었다. 나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어설픈 배려로 서로를 더 불편하게 만들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당시 나는 평범했던 일상이 변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인정하지 못했다. 혼란스러웠던 우리의 모습이 연서의 모습과 겹쳐졌다.

“그날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내가 같은 사람일 수는 없었다.”(119p)

나는 이 문장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부정과 혼돈의 시간을 지나던 연서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왝왝이’를 찾아가며, 참사가 남긴 깊은 상처 속에서 달라진 자신과 마주한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두렵고 힘겹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그 길은 때로 요동치고, 잠시 잔잔해지다가, 다시금 거센 파도처럼 덮쳐오지만, 결국 자신을 더 단단하고 안전하게 하는 시간임을 느낄 수 있다.
연서도, 연서의 친구들도, 연서의 아버지와 교사도 우리와 같은 시간을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을 통해 각자의 입장이 지닌 차이를 이해하게 되었고, 내 과거와 현재, 미래와도 자연스레 연결해 볼 수 있었다. 참사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독자도 참사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배울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기억한 순간, 나도 기억했어.” (133p)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으면 돼.” (150p)

어딘가에서는 잊혀가는 ‘왝왝이’였을지도 모르는 나에게 용기를 준 것처럼, 책 속 ‘기억’은 위대하며, 기억을 통해 우리가 연대할 수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세월호 참사 당시 나는 생존자였지만, 앞으로 다른 참사에서는 희생자, 유가족, 혹은 제3자가 될 수도 있다. 내가 겪은 참사에 갇히지 않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시민으로서, 또 다른 ‘왝왝이’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다.
책을 덮고 나니, 나는 묻게 된다. 과연 그날 이후 우리 사회는 변했을까? 앞으로 또 다른 참사가 생긴다면, 수많은 ‘왝왝이’들이 안전하게 우리 곁으로 나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