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4.16생명안전공원 설계의 변(辯)

26
2월



2025년 2월 13일.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4.16생명안전공원 착공식이 열렸습니다. <세월호 피해지원법>에 명시된 ‘추모공원 조성 및 추모기념관 건립’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1년이 지나서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명존중과 안전사회 건설의 이정표가 될 4.16생명안전공원이 잘 만들어질 수 있도록, 4·16재단에서는 공원이 완공될 때까지 매월 공사가 진행되는 소식과 함께 다양한 분야에서 공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의 글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합니다.

 



4.16생명안전공원 설계의 변(辯)

‘4.16생명안전공원’ 설계공모의 제출물에는, 전례가 없는 ‘설계자의 변(辯)’을 필수적으로 요구했다. 설계자가 이 프로젝트에 임하는 태도까지 심사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주최 측의 의도였겠으나, 정작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요구로 인하여, 프로젝트에 임하는 우리 자신을 깊이 성찰하게 했고, 긴 시간이 걸렸고, 작업하는 동안 끊임없이 고쳐 써오다 마감 시간까지 손질을 거듭했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곳은 어처구니없는 ‘죽음’에 대한 진실에 응답하고, 개인의 슬픔에 예의를 갖추는 장소로 시작한다. 가까운 미래, 개인의 기억이 사회적 기억으로 승화되며, 이곳에서 생명과 정의에 대한 ‘가치들’이 토론되고, 실험되어 동시대 가치가 학술적, 예술적 그리고 윤리적 형식으로 생산되고 축적되며, 소비(참여/체험/향유/재생산)될 것이다.

(중략)

무성격의 평탄한 간척지에 언덕과 계곡, 들과 판으로 구성된 땅의 형국을 조영하여 ‘생명’의 이름을 갖는 장소성을 구축하고, 심어진 생명의 씨앗은 생생불식으로 자연화한 지형공간에 그것과 행복한 관계를 맺는 건축공간들을 관입한다. 공간드라마가 서사적으로 전개되는 ‘기억과 질문의 공간군’과 비선형적으로 배열되는 ‘창조적 생산의 공간군’을 병치한 다음 빛의 광장을 매개로 하나로 융합하며, 사유의 숲, 기억의 언덕, 들판과 대臺로 이어지며 호수에까지 확장된다. 모든 공간과 장소는 다의적 기능을 가지는 가변성이 극대화된 공간 형식을 가지며 그렇게 작동 가능하도록 물리적 기계적 장치가 장착된다. 따라서 이곳은 완결된 구축물이라기보다 모든 사람들이 참여를 통해 완성해가는 과정으로서의 장소이다. 따라서 독특한 상징적 조형물보다는 시야에 따라 선명한 회화적 풍경이 포착되어, 몸으로 이동하면서 지각하고 교감하는, 경험이 강조되고 시간이 디자인된 현상학적 미학을 추구한다.”고 한 다음, “여기서 ‘아픔’은 길이 된다.”라는 말로 끝맺었다.

우리의 의도를 잘 표현하는 글이라 여겼다. 여기서 다양한 행위들이 활발하게, 진지하게 벌어져서, 모든 이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위로하고, 그러한 행위들이 축적되어, 어떤 ‘길’이 제시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지금 이 글을 다시 읽으면서,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다. 현란한 문구와 현학적인 태도로,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오만함이 행간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실시설계가 시작되고, 유가족들을 뵙게 되면서, 이것이 다 허망한 꽹과리 소리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분들을 대할 때마다, ‘그것’은 마치 이글거리는 잉걸불 아니면, 손이 쩍쩍 달라붙는 드라이아이스와 같이 우리 감각의 한계 바깥이었다.

그날 이후, ‘매일 새벽에 잠들지 못해 일어나 사진을 거꾸로 볼 수밖에 없는’ 깊은 아픔을 당사자가 아니면 알 길이 없다. 이런저런 하잘것없이 보이는 작업과 격렬하게 저항한 그분들의 투쟁을 제삼자들은 이해하기 어렵고, 때로 어떤 사건이 상식을 넘어서는 것은 아마도 거기에 참여하면서, 거기에 열중하고 격렬하게 투쟁하는 자체에서 잠시나마 아픔에서 비켜가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가슴에 자식을 묻은 그 거대한 아픔과 슬픔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으며, 어떤 것으로도 위로될 수 없음을 절절히 체감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 지난 10여 년간, 위로의 말과 분노의 말로 진정성을 가지고 동참한 분들이 있었다. 사회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얼마간의 성과도 있었다지만, 연이어 터진 ‘이태원참사’,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참사’는 다시 우리를 절망에 빠지게 했다. 우리 사회는, 말없이 성실하게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사람들이 사라져가고,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어, 모든 신성함이 모독 되는 극단을 치닫고 있으니.

그나마 우리에게 다가온 몇몇 사건들은 이 프로젝트의 향방을 지시하고 있었다. 12인의 작가들이 세월호, 그 잊지 못할 사건을 써 내려간 글들을 모은 책, 「눈먼 자들의 국가」를 비롯하여, 문학동네 2024 봄「RE MEM BER」로 이름한 특집 ‘그렇게 우리는 10년을 살았다’에 실린 일곱 분의 글이 우리의 사유를 끊임없이 성찰하게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진은영의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에 실린 시들, 경기도 미술관이 기획한 「우리가, 바다」에 출품한 아티스트 안규철의 〈내 마음의 수평선〉(세월호참사 10주기 추념전 ‘우리가, 바다’ 경기도 미술관 24.4.12∼7.14), 참사 1주기를 기하여 경동교회에서 그리고 2018년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10주기를 기하여 밀알학교 세라믹홀 등 세 번의 연주가 있었던, 작곡가 이건용의 칸타타 「정의가 너희를 위로하리라」가 중요한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우리가 비록, 그분들의 아픔과 슬픔에 온전히 다가갈 수는 없겠지만, 예술에 의지하여 정제된 슬픔을 만나고, 이것으로 설계의 통로, 바탕을 삼기로 했고, 그것이 그나마 가장 나은 길이라 판단했다.

이런 연유로 우리는 무엇보다 봉안당, 봉안함에 계획을 집중했다. 의견을 여쭈어 그렸고, 다시 의견을 물어 다시 그리기를 반복했다. 그 과정은 그리 수월하지 않았다. 때때로 의견충돌로 중지되기도 했고, 가까스로 합의한 대안이 예산의 벽에 부딪혀 다시 번복되기도 했다. 결과된 안이 모든 요구가 반영되어 모두들 만족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로서로 양보하는 태도로 타협한, 미흡하지만 최선의 대안이라 생각한다. 이 지난한 과정에 마음을 열고 협의에 헌신적으로 임하신 ‘416재단 기억과추모사업위원회’ 위원들과 특히 유가족이신 정부자 위원님, 박정화 위원님 그리고 이손건축 손진 소장님의 노고를 우리 모두 기억해야 한다.

처음 출발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기본적 개념은 동학농민운동 사발통문(沙鉢通文)의 주동자 서명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모든 봉안함을 차등 없이 원형으로 배열하여 바닥에 묻고, 낮은 비석을 세웠다. 이에 따라 봉안당 역시, 고대 로마의 만신당(萬神堂)이었던 판테온(Pantheon)이 그러하듯, 완전 도형의 원형평면에, 둥근 천창(oculus)을 가진 이형(異形)의 돔이었다.

여러 차례의 끈질긴 논의 끝에, 봉안함은 바닥에서 벽면으로 옮겨가, 각각 ‘폭39cm×넓이93cm×깊이58.56cm’의 발색 스테인리스 철판 상자에 투명 아크릴로 밀봉하기로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봉안당은 지름 40m, 높이 5.9m의 이형 돔이 되었다. 이 봉안함에 유골함과 더불어 유가족이 선정한 고인의 유물 일부가 안치될 것이다.

이 특별한 공간 봉안당은 추모의 공간이다. 여기서 정형화될 추모 의례뿐 아니라, 한국전통연희, 그리스 비극 그리고 이곳에서 생산된 창작 음악, 연극, 무용 등이 정기⋅비정기적 공연이 이루어지는 공연장으로 기능이 확대되기를 바란다.


<4.16생명안전공원 봉안시설의 낮과 밤 조감도>

 


 

** 4.16생명안전공원 건립 진행 과정을 사진으로 담아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



 

4.16생명안전공원의 2월 공사 현장 (2026.2.25.)

추운 겨울이 지나고 어느덧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지반을 정리하는 작업이 조금 더 수월해졌네요.

4.16생명안전공원은 작년부터 진행했던 PHC 파일공사를 완료하고 현재 흙막이 공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3월부터는 본격적으로 골조공사를 위한 기초작업이 이루어질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