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피해자와 시민들은 10년을 걸어왔습니다. 하지만, 아직 진실이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책임자에 대해 사회적 정치적 사법적 책임을 묻는 일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10년째를 맞이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운동, 피해자 권리 회복 운동, 보다 안전한 사회를 위한 운동, 앞으로 어떻게 이어가야 할까요?
‘국가책임 인정과 공식 사과’ 등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권고 이행 촉구
먼저, 정부와 국회에 사참위 권고 이행을 촉구해야 합니다. 사참위는 피해자와 가족들의 끈질긴 진상규명 운동으로 만들어낸 독립적인 국가조사기구입니다. 이 기구가 3년 6개월여의 조사활동을 통해 내놓은 보고서와 권고는 비록 우리가 바라는 모든 진실과 대책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 스스로 기억하고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소중한 결실입니다. 이 위원회의 권고를 우리 스스로 존중하지 않으면 국가와국회도 중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참위는 대통령에게 “세월호참사로 인한 국민 희생이 있었으며, 피해자를 포함한 민간인 사찰과 진상규명 방해 등 권리침해가 피해자 가족과 국민을 적대시하는 정책 기조에 따라 이루어진 반인권적 국가범죄였다는 점에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또한 아직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국가의 잘못에 관하여 추가적인 독립 조사 또는 감사를 실시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재발 방지와 피해자 권리 회복을 위해 각 국가기관이 해야 할 일들도 세세하게 권고했습니다. 사참위가 권고한 바를 정부와 국회가 이행하는지,우리가 권고 이행을 촉구하고 감시하고 관철해야 합니다.
비공개자료의 전면 공개 요구와 추가 진상규명
세월호참사의 온전한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봉인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기록물 공개와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세월호참사 관련 모든 자료의 공개가 필수적입니다. 해외 정보를 찾기 위한 노력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또한 지난 10년간 모은 진상규명 기록을 정비하고 공유 체계를 구축하여 앞으로의 이어갈 진상규명의 기반을 다지고 있습니다. 4.16연대와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국정원이 자행한 불법사찰 정보 공개 요구를 시작으로 비공개 자료의 공개와 추가적인 조사를 촉구하는 활동에 착수할 것입니다.
민간 진상규명 체계 구축과 진상규명 과제의 공론화
사참위 조사활동 종료가 진상규명의 끝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시민의 힘으로 진실을 찾아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밝혀온 진실을 알리고, 그 의미를 공유하며, 남은 과제를 공론화할 것입니다. 앞으로 진상규명을 어떻게 이어갈지 그 방향에 대한 의견 또한 다양합니다. 우리는 참사 피해자와 시민들이 진상규명에 관해 안전하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함께 진실을 밝혀나갈 시민 주체를 형성할 것입니다.
책임자 처벌의 완수와 사회적 정치적 책임 추궁
구조의무를 방기했던 해경지휘부는 무죄를 선고받았고, 진실을 은폐한 청와대 인사들에 대한 재판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피해자를 불법사찰한 범죄자들이 형이 확정되자마자 여봐란듯이 사면되고 복권되고 있습니다. 불처벌에 항의하고 끝까지 책임을 묻는 일을 멈출 수 없는 이유입니다. 특히 재난참사 예방과 대응의 지휘책임자들에게 사법적 책임을 묻고, 사회적 정치적 책임도 다하지 않은 채 ‘지도층’으로, ‘전문가’로 행세하지 못하도록 계속 목소리를 높여가야 합니다.
생명안전기본법과 중대재난참사 상설조사기구 설립
이후 벌어질 수도 있는 재난참사의 진상규명과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지속하기 위해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및 중대재난참사 상설조사기구의 설립 운동을 가속하고자 합니다.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상설적인 조사기구는 재난참사가 발생하기 전, 각 부문의 전문성과 조사 역량을 갖추고 관련 안전 제도를 점검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재난참사 발생 시 즉각 개입하여 책임기관의 증거은폐 시도를 원천 차단하고, 관행 및 사회규범을 포함한 사회구조적 조사와 이후 권고를 내놓아 재난참사 재발방지 역할을 하게 할 것입니다. 이미 발생한 재난참사의 진상규명 관련 조항을 통해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이지속될 지반을 만들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는데, 10.29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은 진상규명을 외치고 있지만, 세월호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는 그 호소를 외면하고 도리어 재난을 정치화하지 말라고 윽박지르고 있습니다. 진정성 있는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1년동안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바꾼 것은 무엇일까요? 정말 세상은 변화하고 있는 걸까요?
세월호참사 피해자들과 시민들이 만들어 온 변화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은 진실과 책임이 규명되지 않는 경제적 보상을 거부했고 시민들이 여기에 연대해 독립적인 조사와 수사를 요구하는 전에 없는 규모의 국민서명운동을 일으켰습니다. 2016년-17년 촛불항쟁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의 책임에 관한 문제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쟁점 중 하나였고, 국회가 초정파적으로 통과시킨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에 국민을 보호하지 않은 책임이 명시되었습니다. 비록 헌법재판소는 탄핵 결정 사유에서 국민을 구하지 않은 국가의 책임을 제외했지만, 대법원은 참사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확정했습니다. 모든 진상이 규명된 것은 아닙니다. 정권의 체계적인 은폐와 조사의 지연, 처음 시도해 보는 재난참사 조사에 따른 시행착오가 원인입니다. 그러나 조사 결과의 한계로 인해 진실과 책임을 향해 걸어온 우리의 발걸음, 우리가 써온 새로운 역사를 지우거나 훼손할 수는 없습니다.
세월호참사가 일깨운 재난참사 피해자들의 권리, 시민의 안전할 권리
세월호 참사는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를 일깨웠습니다. 4월 16일 이후 우리는 재난참사 피해자들의 권리가 무시당하고 짓밟히지 않게 하자고 다짐했습니다. 그 결과 재난참사 피해자의 추모와 기억에 관한 권리, 진실과 책임에 관한 권리, 치유와 회복에 관한 권리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일어나고 인식이 확장되어 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세월호참사뿐만 아니라 과거에 일어났던 재난참사 피해자들의 침해된 권리가 재조명되고, 매일매일 삶의 현장에서 직면하는 시민재난과 산업재해의 예방과 대책에 관해 시민과 노동자들이 주장할 수 있는 권리도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고 산업재해와 시민재난에 관한 제도들이 개선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는 존중받으면서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와 국가의 책무에 대해 새롭게 자각했습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습니다. 국회는 처리를 망설이고 있습니다. 이 책임을 외면하고 회피하려는 기업과 자본, 국가권력의 반대 때문입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 같은 참사가 반복되는데도, 정부는 진실을 감추고 책임을 전가하기에 급급합니다. 저들은 개선되지 않는 현실을 숙명으로 여기고 경쟁을 통해 각자 살아남으라고 부추기고 있지만,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국가를 만들고, 타인의 고통을 우리의 고통으로 여기고 침해된 권리를 함께 옹호하는 성숙한 민주공동체를 이루려는 목소리가 커져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시장과 권력은 바뀌기를 거부하고 있지만, 우리는 어제의 우리가 아닙니다.
아직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해경 지휘부와 컨트롤타워가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진실 은폐를 위해 피해자와 국민에게 자행된 국가폭력의 전모가 무엇인지 우리는 온전히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 우리에게 국민을 구조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국가는 없었고 오로지 진실을 감추고 회피하기 위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국민을 감시하고 핍박하는 국가만 있었다는 것 말입니다. 국가권력은 여전히 책임을 인정하고 진실을 모두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책임회피는 10.29 이태원 참사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책임자에 대한 불처벌에 항의하고 온전한 진실을 요구하는 일을 멈출 수 없는 이유입니다. 국가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지만 우리가 변했고 사회도 바뀌고 있습니다. 기억은 힘이 셉니다.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온전한 진실과 완전한 책임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여러 차례 독립적인 조사 기구를 설립에 조사와 재조사에 나섰지만, 진실이 속 시원히 밝혀진 것도 아닌 것 같고, 책임자 처벌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어떤 장애물들 때문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가로막혀 온 걸까요?
지난 10년간의 진상규명의 한계와 어려움
세월호 참사 직후 정부가 주도하여 진행한 조사와 수사는 부실과 왜곡, 축소와 은폐로 점철되었고, 그 후 이어진 독립적인 조사는 수많은 방해에 직면했습니다. 뒤늦게 독립적인 재조사와 재수사가 시작되었지만, 진실을 찾아나가는 데 여러 가지 장애물과 한계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우선 진상규명의 바탕이 되는 자료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증거가 사라지거나 은폐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국가는 대통령 기록물을 봉인했고, 당시 세월호 행적을 파악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해경 레이더 영상을 공개하지 않았으며, 정보경찰/국정원 등 정보기관은 자료를 감추거나 일부만 공개했습니다. 또 진상규명 노력을 ‘정쟁’이라고 매도하고 피해자의 정당한 진상규명 요구를 ‘피해자답지 않은 불순한 행동’으로 몰아세웠습니다. 1기 특조위에 대한 방해와 조기 해체에서 보듯 진상규명 활동 그 자체가 방해받기도 했습니다.
중대 재난 참사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기구가 국내에서 최초로 진행되었기에 갖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사참위는 특검 요청 권한, 청문회를 열 권한, 영장 청구를 요청할 권한 등이 있었지만 활동을 마칠때까지 권한을 온전히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주요 재판과 수사가 병행되어 주요 범죄 혐의의 공소시효에 쫓기는 상황 속에서 조사대상자가 진술/증언을 거부하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법률가 중심으로 구성된 재난조사위원회가 가지는 한계도 있습니다. 진상규명을 사법적 책임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사회구조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사회 전반을 향한 진단을 내리는 시야는 부족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재난참사 책임자 처벌의 한계와 어려움
사회적 참사는 시민의 안전을 우선하지 않는 국가권력, 공무원의 안일함과 부작위, 안전을 도외시하는 기업의 이윤추구, 그 밖에 사회의 부조리와 관행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합니다. 대형 참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와 국가의 책무를 명확히 하고, 정부 각급 기구가 그 책무를 부인하거나 말단에 떠넘기지 못하도록 책임을 묻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법부는 이러한 종합적인 시야나 기본권 보장의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보지 못하고 보수적인 법 해석 중심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세월호 참사에 책임이 있는 이들 중 해경지휘부나 재난대응 컨트롤 타워의 책임자들에게는 사법적 책임을 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법적 책임을 묻는 것만이 우리가 참사를 끝까지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아닐 것입니다. 사법적 책임을 묻는 것에만 국한할 경우, 마치 재판이 끝나면 관련 책임을 물을 기회가 온전히 끝난 것 같은 무력감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는 사법적 책임, 정치적 행정적 책임, 사회적 책임 등 다양한 방식이 있습니다. 사회적 정치적 책임을 묻는 일에서 우리가 거둔 성과와 한계를 잘 새겨보는것이 필요합니다.
사회적 참사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참사의 원인을 확인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과 함께, 참사의 책임자, 특히 지휘책임자들에게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참사의 재발을 막을 수 있습니다. 검찰과 경찰, 사법기관이 제대로 작동하리라 기대하고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성역없이 책임을 물을 수 없음이 이미 참사 초기에 확인되었습니다. 책임자 처벌의 결과는 여전히 미흡하지만 그나마도 피해자와 시민들이 온전히 진실을 밝히고 응당한 책임을 묻기 위해 분투해 온 결과입니다. 세월호 참사에 책임이 있는 이들은 누구이며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요?
A1. 청해진해운 임직원과 한국해운조합 운항관리자 책임 관련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판결
세월호 선사였던 청해진해운은 수익 극대화를 위해 무리하게 선박을 증개축하는 등 침몰원인을 제공하였습니다. 보관운송업체인 우련통운은 화물을 과적하고 화물 고박이 불량한 채 출항시켰고, 운항관리자는 당시 관행에 따라 안전점검의 의무를 하지 않고 출항을 허락하였습니다.
이 재판은 선사가 여러 차례 지적된 선박의 구조적 문제를 고치지 않은 채 관행대로 증개축, 화물 과적, 부실 고박 등을 한 점, 안전 관련 훈련 과정을 미준수한 점을 참사의 중요한 원인으로 고려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항소심을 거치면서 우련통운이나 운항관리자 간부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며 결과 발생의 책임을 부정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운항관리자의 경우 이들의 전문성을 믿고 배를 타는 시민들에 대한 무책임이 아니라, 해경의 업무를 방해한 것에 초점을 두고 죄책을 물었습니다.
A2. 세월호 선원들의 구조책임과 관련한 살인, 업무상 과실 선박매몰죄 등 판결
세월호 침몰 과정에서 구조 의무를 방기한 채 탈출한 세월호 선원들에 대한 책임을 물은 판결입니다.
법원은 선원들이 모두 세월호의 복원성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세월호가 침몰할 것을 명확히 인식한 상태에서도 선내 대기하라는 안내방송 외에 승객들을 대피시키는 구조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은 채 먼저 탈출한 죄를 물었습니다. 2심에서 선장 이준석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가 인정되어 형량이 증가하였는데, 나머지 선원들은 모두 형량이 낮아졌습니다. 선장과 선원이 함께 구조체계를 이루는 만큼 선원들에게 그에 합당한 죄책을 묻지 못한 한계가 있습니다.
A3. 123정장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판결
123정은 세월호 침몰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소형정입니다. 123정장은 현장지휘관 (OSC) 자격을 부여받았으나, 세월호 교신 / 방송 장비 활용 / 육성을 통한 퇴선 유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123정장이 승객들에게 퇴선을 유도하지 않은 책임을 물으면서, “승객들에 대한 퇴선을 유도하게 하는 것은 반드시 훈련을 통해서만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당시 해경으로서 이행하여야 하는 기본 조치였다”며 퇴선의 권한이 선장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2심 법원은 해경지휘부와 선박안전관리자, 선사 등의 책임이 공동으로 작용한다(공동정범)는 점을 들어 123정장의 형량을 1년 감형하였습니다. 그러나 해경지휘부에 대한 사건에서는 이와 달리 판단되었습니다.
A4. 해경지휘부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판결
세월호참사 관련 해경지휘부의 책임을 묻는 작업은 늦게 시작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초 검경합동수사본부 수사를 맡은 광주지검에 해경지휘부의 혐의를 제외하라고 청와대가 압력을 넣었기 때문입니다. 해경지휘부에 대한 재판은 2019년 11월에 이르러서야 피해자와 국민의 직접적인 고소고발운동과 세월호 특별수사단의 수사로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2023년 11월, 대법원은 해경지휘부에 대해 무죄판결을 확정했습니다. 그 근거로 퇴선권한이 선장에게 우선한다는 점, 위급성 판단이 어려웠다는 점, 오인할 만한 보고가 있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2022년 6월 사참위는 ‘해경지휘부가 충분히 급박성을 인식할 수 있었으며, 퇴선 조치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퇴선 가능 시간 또한 9:50이 아니라 10:17으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법원은 국가조사기구의 조사 내용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판결을 내렸고, 123정장에 대한 판결에서 확인된 해경지휘부의 공동정범 책임 또한 증발하였습니다.
해경지휘부에 대한 무죄판결은, 앞으로 재난참사 발생 시, 지휘부 내지 책임자의 지위에 있는 이들에게는 현장의 상황을 잘 모르거나 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책임을 피할 수 있다는 잘못된 선례를 주지 않을까 합니다.
해경지휘부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곧 ‘생명 보호를 위한 국가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였는가?’라는 질문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상황 파악이 어려운 통신 체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구조체계, 구조구난 훈련의 미비 등, 국가시스템이 정상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의 희생이 발생한 것인지에 대해 우리는 질문해 왔고, 앞으로 그 책임을 다 하도록 하기 위해 이 싸움을 해 온 것입니다.
해경지휘부에 대한 사법적 추궁은 미완성으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사회구조적으로 무책임이 중첩하여 발생하는 재난 참사의 성격을 낱낱이 밝히고 그 성격에 맞게 안전 시스템을 재정비할 수 있도록, 생명안전에 대한 국가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앞으로도 해경지휘부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노력은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A5. 최초보고시간 관련 허위공문서 작성죄 판결
세월호참사의 골든 타임 시간에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아 인명피해가 컸다는 비난 여론이 크자,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은 국회 국정조사에서 대통령 최초 보고 시간을 조작하고 허위 증언을 하였습니다. 또한 청와대가 국가재난 상황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고 규정된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의 일부 조항을 무단으로 삭제하였습니다.
그러나 2023년 6월 김기춘의 대법원 무죄판결 등, 관련 책임자들은 전원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이와 같은 불처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항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진상규명이 빨리 되지 않으면 책임자가 얼마나 교묘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진실은 결코 감출 수 없습니다. 관련 조사/수사 과정을 통해, 우리는 국가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시스템이 무너져있었으며, 무능하고 무책임한 국가지도자는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법적 추궁 외에도 사회적 추궁과 국민의 심판은 지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A6.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조사방해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판결
이 재판은 청와대 관계자들과 해양수산부 등 정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특조위 조사방해의 진실을 밝히고 그 책임을 묻고자 한 재판입니다. 관련 재판은 해양수산부 자체 감사 및 수사 의뢰로 인한 5인에 대한 재판(조윤선, 윤학배 유죄 선고로 종료)과, 국민고소고발운동 및 특수단 기소로 인한 9인 재판(2심 진행 중)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9인에 대한 재판에서 2심 재판부는 전원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그 근거로 피고인들이 스스로 의지대로 행한 것이 아니라 이전에 확립된 청와대의 기조를 따른 것에 불과하며 실제 범죄에 관여했음을 인정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피고인들이 본인의 의지에 따라 실행하였다는 점은 언론보도와 수사, 사참위 조사 등을 통해 이미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실제 범죄행위에 의해 진상규명이 지연되며 고통받았던 것은 피해자들이기에, 이 재판이 피해자와 국민의 권리에 관한 재판임을 2심 재판부는 고려하여 판결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각 책임자가 어떻게 진상규명을 방해했는지, 그 과정에 국가권력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피해자들을 어떻게 탄압했는지를 밝히고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국가권력이 통제되지 않을 때 어떻게 남용될 수 있는지를 되새기는 과정입니다. 이 재판의 결과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지, 권력과 외부의 방해 없이 독립적이고 공정한 조사가 진행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A7. 국군기무사령부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 관련 판결
조사 및 수사를 통하여 국정원, 기무사, 정보 경찰 등 정보기관에 의하여 세월호참사 피해자 및 옹호자들이 철저히 사찰당하였고 인권이침해되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그 정보의 수요자로 VIP, 즉 청와대가 공모했음 또한 밝혀졌습니다.
2023년 12월 21일, 세월호 TF장인 김대열과 정보융합실장 지영관에 대한 선고에서, 2심 재판부는 국군이 국민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하면서까지 정치세력을 위해 헌신하여 국민들의 신뢰를 훼손하였다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하였습니다. 이는 사법부의 정의로운 판결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 이후 각 피고인은 상고했으나, 2024년 2월 갑작스레 상고를 취하하였고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특별사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2023년 광복절 특별사면을 포함하면, 현재 기무사 불법사찰 관련 책임자는 모두 사면된 것입니다.
사전에 사면 복권과 관련한 모종의 논의가 있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황입니다. 이러한 작태는 피해자들과 시민이 일궈온 성과를 무너뜨리고, 윤석열 정권이 말하는 국민통합이나 법치와 공정마저 붕괴시키고 있습니다. 국가가 책임자들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려, 재난참사 피해자 및 국민의 권리가 침해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을 이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법령과 훈령 상 대규모 재난 발생 시 대통령 및 국가안보실은 컨트롤타워로서 국가 차원의 자원을 동원하고, 협력 체계의 총괄과 지휘, 조정을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참사 당일 재난대응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참사 전인 2013년경 박근혜 정권이 행정안전부와 해양경찰청 개편을 거치는 과정에서 법령/매뉴얼 상 실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생겼는데, 이를 보완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여 국가위기관리 체계는 부실한 상태였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 대통령은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았고 관저에 머물렀습니다.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은 아직 오리무중입니다. 그 진실이 담긴 대통령 기록물은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직무대행을 맡은 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하여 30년간 봉인되었습니다.
청와대의 책임 회피와 훈령 무단 변조
국회 국정조사에서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춘은 “청와대는 법적으로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김기춘 비서실이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등과 함께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 중 청와대의 재난위기 컨트롤타워 의무 명시 부분을 무단으로 변조하여 진실을 은폐하려 했던 것이 문재인 정부의 자체 조사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드러나기 시작한 거대한 국가폭력의 실체, 정보기구의 민간인 사찰과 여론공작
세월호참사 초기부터 청와대가 국정원, 기무사, 정보경찰 등 정보기관을 활용하여 피해자를 사찰하고 여론 공작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정부 자체조사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불법사찰의 정황이 드러나자, 진실을 온전히 밝히기 위해 피해 가족과 시민들은 청와대 앞에서 국가정보기구와 군의 사찰자료 전면 공개 등을 요구하는 청와대 앞 농성에 돌입했고, 문재인 대통령과 국정원장 등으로부터 국정원 자료 공개 약속을 얻어내었습니다. 국정원이 사찰 자료의 일부만 공개하고 전부를 내놓지는 않았지만, 제한된 정보를 통해서도 노골적이고 거대한 국가폭력의 실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국정원은 4월 16일 당일 ‘ 정부 책임론으로 비화를 방지’해야 한다고 보고했으며, 기무사는 세월호 피해 가족과 시민을 사찰하는 세월호 TF를 운영했고, 정보경찰 또한 촛불집회와의 연대를 우려하며 시민사회와 유족 동향을 청와대에 보고했습니다. 정보기관은 불법적으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피해 가족을 순수/강성으로 나누어 보고했고 불법 수집된 정보는 보수단체/보수 언론 등에 흘러가 유가족을 공격하는 데에 쓰였습니다. 또한 정권은 사회적 애도를 탄압하기 위해 시민단체 블랙리스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시국선언 참여 대학교수 명단 등을 작성하고 노란리본 계기수업을 하는 교사 등에 대한 조치를 논하는 등 권력을 남용하였습니다. 반대 여론을 위해 특별법 제정 반대 집회를 여는 보수단체에 부당하게 금액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특조위 조사방해를 위해 차관급 관계기관 대책회의 운영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피해자와 시민들이 온 힘을 다해 독립적인 특별조사위원회를 출범시키자,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관계기관 대책회의까지 소집해 특조위의 조사활동에 온갖 방해를 일삼았습니다. 설립 전부터 특조위 활동을 방해할 계획을 수립하고, 특조위와 피해자들을 ‘세금도둑’ 으로 매도하는 여론공작을 자행했습니다.
국회가 만든 법 조항을 대통령령(시행령)으로 무력화시키려 하고, 특조위의 예산과 재정을 일방적으로 축소했습니다. 특조위가 참사 당일 청와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조사할 것을 의결하자 여당 추천 특조위원들에게 전원 사퇴를 사주하는 등 성역 없는 조사를 방해했습니다. 결국 특조위는 주어진 조사 기간을 다 사용하지 못하고 불법 부당하게 종료되고 말았습니다. 이 모두가 계획된 방해 공작이었음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의 수사와 사참위 조사활동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국민을 구하는데 작동하지 않던 컨트롤타워, 진실 은폐 공작에는 체계적으로 작동
사참위는 국정원으로부터 일부 사찰 관련 정보를 받았으며 조사를 통해 사찰의 정황과 방식은 포착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부 공개된 정보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아직 범죄의 전모를 밝히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사 당일 국민을 살리는데 작동해야할 컨트롤타워는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피해자들을 핍박하기 위한 국가컨트롤타워는 집요하고 체계적으로 작동했다는 사실은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4.16연대와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국정원의 불법사찰에 관한 정보공개청구 운동을 준비 중이며, 관련 진상규명 작업을 통해 그 피해 정도와 범위를 밝히고 청와대와 국정원의 공모 사실을 찾아내고자 합니다.
세월호참사를 지켜본 국민들이 가장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해경이 승객들을 구하지 않은 것’이었을 것입니다. 왜 해경은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지, 왜 선원부터 구했는지, 선체 밖으로 탈출하거나 물에 빠진 승객들에 대해서 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 등 의문들이 진상규명 과제로 제기되었습니다. 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큰 쟁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참사 직후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참사 당일 현장에 출동했던 123정장 외에 다른 해경지휘부는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왜 선원부터 구조했는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수사과정에서 정권의 외압이 가해졌던 정황이 이후 조사과정에서 드러났습니다. 결국, 피해자들과 시민들이해경의 구조방기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민간차원의 조사작업을 벌였고, 지휘책임자의 처벌을 촉구하는 국민고소고발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와 수사 의뢰, 검찰특별수사단의 수사로 해경지휘부 11명이 기소되었습니다.
사참위 재조사로 퇴선 명령 내리지 않은 해경 지휘부의 책임 드러나
사참위는 먼저 해경의 조직과 임무, 퇴선조치 권한 등을 검토하고 시간대별 해경의 대응을 확인했습니다. 사참위는 법과 매뉴얼을 검토하여 해경이 위험단계에 따라 구조본부를 가동하고 구조계획을 세울 의무, 선내 상황을 파악하고 구조계획이 제대로 시행되는지 확인할의무를 지닌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같은 재조사를 바탕으로 사참위는 퇴선조치를 취하지 않은 책임이 현장 출동 해경뿐만 아니라, 해경 지휘부에게도 있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사참위는 선내 구조 및 당시 승객 위치를 검토하여 퇴선조치를 통하여 승객을 구할 수 있었던 마지막 시간이 기존 검경수사에 적용해왔던 9시 50분이 아니라10시 17분이라는 분석결과를 내놓았습니다. 퇴선조치를 통해 승객을 구할 수 있었던 시간이 27분가량 더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해경은 왜 구하지 않았나’, ‘구조시스템이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원인 규명은 미흡.
하지만, 사참위의 재조사는 ‘왜’ 승객 대부분이 배 안에 있다는 보고가 있었고 구조계획에 따른 퇴선조치가 시급한 상황이었음에도 상황에 맞지 않은 명령과 요청이 오갔는지, ‘왜’ 구조구난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하지 않았으며 기존 시스템의 한계는 무엇이었는지 등에 대해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체계적인 원인분석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구조받지 못하고 선체 밖으로 이탈한 승객에 대한 해경의 구조수습활동에 대해서도 충분히 조사하지 못했습니다. 123정장(현장구조세력)에 대한 재판이 사실상 종료된 이후에 재조사와 재수사가 뒤늦게 이루어져 새로운 진술이나 증거를 얻기 힘들었던 점도장애물이었습니다.
구조 방기와 책임의 윤곽은 드러났습니다. 해경지휘부가 구조계획을세우지 않고 현장세력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은 것 등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은 참사를 초래한 본질적인 원인입니다. 구조방기의 윤곽을 바탕으로 새롭게 질문을 구성하고 ‘왜’에 대한 답변을 찾아가는 작업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검경합동수사본부와 해양안전심판원 등 초기 조사를 통하여 선사가 수익을 우선하여 세월호를 불법 증개축하는 과정에서 세월호의 무게중심이 높아졌고 복원성이 취약해졌으며, 참사 당일 과도하게 화물을 적재하고 부실하게 고박한 뒤 수밀문과 맨홀을 열어둔 채 출항한 것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중고 선박인 세월호를 수입해 오는 과정에서 한국선급이 제대로 선급 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 화물하역 관계자가 과적 운항과 고박 불량을 방조했다는 사실, 운항관리자가 뇌물을 수수하고 운항 검사와 관리를 부실하게 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세월호 증개축, 운항 허가, 출항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불법과 부실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직접적인 침몰원인을 두고 내인설과 열린안으로 나뉘어진 선체조사위원회
세월호 인양과 더불어 선체조사위원회는 ‘낮은 복원성, 조타 장치 고장, 조타 미숙 등으로 인해 침몰했다’는 내인설과 상대적으로 낮은 복원성에도 불구하고 ‘급격한 침몰은 외력의 작용 없이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열린안이라는 두 가지 보고서를 내며 단일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짧은 조사 활동을 종료하고 말았습니다. 인양 초기에 미수습자 유골 수습과 유류품 수집이 우선시 되었고, 인양된 선체의 직립이 뒤늦게 이루어진 것도 조사 활동에 한계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사참위의 재조사 결과, ‘내부 조타장치 고장 가능성과 외부 충격 가능성, 모두 근거 불충분’
추가조사를 통해 침몰 원인을 보다 명확히 하는 과제는 사참위의 몫이 되었습니다. 사참위는 위 두 가지 결론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사참위는 내인설을 검증하며 타기 장치 고장(솔레노이드 밸브 철심 고착)으로 인해 세월호가 급선회했고 균형을 잃었을 것이라는 가설의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철심 고착 등의 변형은 침몰 당시가 아니라 침몰 이후 인양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일어났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 것입니다. 한편, 사참위는 세월호 좌현 외판에서 가로로 찢긴 부분과 좌현 핀 안정기가 비정상적으로 과도하게 회전하게 된 원인이 외력충돌로 인한 것인지 등 외력이 작용하였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각종 연구용역과 조사를 진행했으나 그 원인은 밝히지 못했으며, “외부 충격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정도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쾅’ 소리 나기 전에 왜 배가 이미 기울어지고 있었는지 규명되어야
여러 검증 끝에 사참위가 세월호의 CCTV 영상을 추가로 복원하며 ‘쾅’소리가 있기 전에 집기류가 떨어질 정도로 이미 급격하게 선체가 기울기 시작했음을 밝혀낸 것은 큰 성과입니다. 다만 ‘쾅’ 소리가 급횡경사의 원인인지, 횡경사의 결과인지에 대한 분석을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쾅’ 소리가 외력이 충돌하는 소리였는지, 선체 내부의 화물 등이 무너져 내리며 발생한 소리였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한편, 세월호 내부 CCTV 기록 저장장치(DVR)의 수거와 복원 과정에서 조작이 있었을 가능성을 두고 사참위가 특별검사의 수사를 요청한 것에 대해, 특별검사는 조작 증거가 없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침몰 원인을 찾아가는 길에서 잊지 말아야 할 또 다른 과제
침몰 원인을 재조사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사참위 내부의 이견이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침몰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조사보고서는 존재하는 이견들을 거칠게 미봉하는 정도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선조위와 사참위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침몰 원인에 관한 다각적인 자문과 조사 과정에서 제기된 질문들을 잘 정리하여 과학적 검증과 연구, 토론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전문가들간의 기술적인 논쟁의 대상으로 던져두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내부요인에 의한 것이든 외부 작용에 의한 것이든 세월호가 예상 밖으로 급격히 침몰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침몰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국내외의 선박안전기준이 강화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또 다른 참사를 막기 위한 안전기준과 점검의 강화, 운항환경의 개선 등에 대해서도 함께 모색되어야 합니다.
세월호참사 그 자체로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참사 이후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진실을 은폐하며 피해자와 시민에게 저지른 불법행위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 진상규명의 길이었습니다.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이룬 주된 질문들은 무엇인가요?
“세월호는 왜 침몰하였는가?”
세월호의 개괄적인 출항 배경은 초기 조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선체 인양 이후, 선조위는 ‘왜 급속도로 세월호가 복원성을 상실했는지’ 등에 초점을 맞추어 조사를 진행하였으나, 단일한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내인설’과 ‘열린안’, 두 가지 침몰원인을 내놓으며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사참위는 관련 조사과제를 이월 받아 결론을 종합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해경은 왜 세월호에 탑승한 승객을구하지 않았는가?”
참사 직후에는 현장지휘 책임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했던 해경, 정권의 수사외압, 특조위 조사활동 방해 등으로 인해 해경이 구조와 수습 과정에서 저지른 잘못을 철저히 조사하지 못했습니다. 해경의 구조방기 원인을 묻는 작업은 사참위(2018.12)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다뤄졌습니다. 사참위는 ‘해경에게는 법률/매뉴얼 상 어떤 의무가 있었는지’, ‘해경이 그 의무를 다했는지’, ‘왜 퇴선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 ‘침몰 전후 구조와 수습 과정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등을 과제로 삼고 진상을 규명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세월호참사 당일 컨트롤타워는무엇을 해야 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
당시 대통령은 세월호가 침몰한 후에도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렇게 구하기 힘든가요?’라며 상황에 맞지 않는 질문을 했고, 이후 세월호참사를 뒤늦게 인지한 것으로 알려져 수많은 의혹을 낳았습니다. 우리는 재난참사 발생 시 대통령과 청와대에 컨트롤타워로서 어떤 의무가 있는지, 세월호참사 당시 청와대와 대통령이 컨트롤타워로서 적절하게 대응하였는지를 밝히고자 하였습니다.
“세월호참사 이후 국가는 어떻게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방해했는가?”
정부의 방해로 인해 특조위가 조기 종료되고 난 뒤, 검찰수사 및 재판과정, 사참위의 조사 등을 통해 특조위 설립 및 운영 과정에 당시 정권의 조직적인 방해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세월호참사 이후 국가는 피해자를 위로하고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국정원 등 정보기관들을 이용하여 불법사찰하고 핍박한 사실 또한 밝혀졌습니다. 국가가 진실을 은폐하고 불법 사찰한 전모는 무엇인지, 이를 지시하고 실행한 것은 누구인지, 어떤 책임이 있는지를 밝히고자 하였습니다.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피해자가 앞서고 많은 시민이 그 곁에서 함께 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역경과 승리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10년의 진상규명 운동은 어떤 발자취를 거쳐왔나요?
세월호참사가 다른 참사와 다른 점은 피해자가 앞장서고 시민이 함께하여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을 피해자의 권리로 선언하고 진상규명 국민 운동을 전개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납득하기 어려운 초기 수사 결과와 세월호 특조위의 와해
세월호참사 직후 검경합동수사본부, 국회 국정감사, 감사원 감사, 해양안전심판원 조사 등, 전반적인 세월호참사 관련 초기 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두 달간 수사 끝에,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승무원들, 수익을 우선하여 침몰의 징조를 외면한 선사, 과적 운항과 고박 불량을 방조한 화물하역 관계자, 뇌물을 수수하고 운항 검사와 관리를 부실하게 한 한국선급, 운항관리자 등 총 38명을 기소하였습니다. 그러나 검경합동수사본부의 수사는 국가의 책임보다 주로 선사와 감독기관에 맞추어졌습니다. 정권의 수사외압으로 인하여 참사 당일 현장에 출동했던 123정장 외에 해경지휘부는 기소되지 않았습니다. 감사원 감사와 국정조사도 ‘지휘부와 재난 컨트롤 타워인 청와대에 대해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감사원은 청와대를 조사하지 않았고 국정조사(국회 청문회)도 청와대 조사 여부를 두고 논란을 빚다가 중단된 후 다시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조사/수사 결과를 납득할 수 없었던 피해자와 시민은 독립적인 조사와 수사를 요구했고 세월호참사 특별법이 제정되어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2015년에 발족했습니다. 하지만 특조위는 출범부터 정권의 비협조에 직면했고, 참사 당일 대통령 업무 적정성에 대한 조사를 막으려는 정부와 여당의 방해공작 끝에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조기에 해체되었습니다.
세월호의 인양과 선체조사위원회
특조위가 사실상 강제로 종료된 후에도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끈질기게 지속되었습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4.16세월호참사 국민조사위원회>입니다. 참사 피해자, 시민단체 활동가, 연구자, 특조위 조사관 출신들이 모여 중단된 특조위 활동의 자료와 판례들을 수집, 정리, 분석하면서 민간 차원의 진상규명 노력을 이어갔습니다.
미수습자를 온전히 수습하고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은 선체의 인양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모아졌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지연되어 왔던 세월호 선체의 인양을 앞두고, 2016년 4월 총선으로 새롭게 구성된 국회는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를 제정했습니다. 이 특별법에 따라 세월호 인양과 함께 미수습자를 수습하고 선체 침몰 원인을 조사하기 위한 선체조사위원회가 2017년 3월 구성되었습니다. 선체조사위원회는 침몰원인 조사에 관한 독립적인 국가조사기구였습니다. 준비기간을 제외하고 총 1년 1개월 동안 미수습자 유해조사와 선체 조사활동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침몰원인을 하나로 결론내리지 못하고 내인설과 열린안으로 나누어진 보고서를 작성하고 종료하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운동과 진실 은폐에 대한 저항이 커져가던 중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고,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이어진 촛불 집회 끝에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었습니다. 세월호참사 당일 대통령이 국민을 구하지 않은 책임이 탄핵 사유로 인정되지는 않았으나, 탄핵 결정 과정에서 대통령에게 국민의 생명과안전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하였습니다.
촛불을 통해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기무사 개혁위원회, 기무사 의혹 군 특별수사단, 국정원 개혁위원회, 국방 사이버 댓글조작사건 TF 등 정보기구, 경찰 등의 과거 잘못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권력기구의 세월호 참사 관련 민간인 사찰 문제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기무사 관련 책임자들이 군 법원에 기소되었습니다. 그러나 국정원 개혁위원회는 세월호 관련 민간인 사찰에 관한 조사를 국정원 자체 조사에 맡겼고 국정원 직원은 아무도 고발되거나 기소되지 않았습니다. 정보 경찰의 경우에는 세월호참사 관련해서 경찰 자체적인 조사조차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은 세월호참사 당시 청와대에서 대통령 최초보고 시간을 조작하였다는 의혹과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재난대응 컨트롤타워임을 부인하기 위해 대통령 훈령인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을 무단으로 사후 변조하였다는 의혹을 밝히고자 검찰에 수사 의뢰 하였습니다. 해수부도 자체 감사를 거쳐 박근혜 정권 당시 해수부의 세월호 특조위 조사방해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과 국민고소고발운동
박근혜 정권 탄핵 이후 국가가 개입된 조직적인 진실 은폐의 사례들이 하나둘씩 드러나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에서 강제로 종료된 특조위를 부활시키자는 취지로 제2기 특조위 구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 운동이 펼쳐졌습니다. 그 결과로 세월호참사와 가습기살균제참사를 조사하기 위한 독립적인 조사기구에 관한 특볍법이 제정되었고,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가 발족하였습니다. 사참위는 2018년 12월에 조사 활동을 개시하여 2022년 6월까지 3년 6개월간 조사 활동을 펼친 후 진상규명, 피해지원, 안전사회 건설에 관한 세 권의 보고서와 종합보고서를 발간하고 정부와 국회가 이행해야 할 권고사항을 발표했습니다.
한편, 피해자들과 시민들은 사참위를 통한 독립적인 ‘재조사’ 뿐만 아니라, 사건 초기 정권의 입맛에 따라 졸속으로 이루어졌던 검경합동수사를 대신할 독립적인 ‘재수사’를 촉구하는 국민고소고발운동에 착수했습니다. 이런 노력은 2019년 11월 검찰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 구성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검찰 특수단은 1년 2개월의 수사를 벌여 해경지휘부 11명과 특조위 활동을 방해한 9명을 불구속 기소하였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그외 언론 외압, 수사 외압,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등에 대해서는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우리가 열어온 진상규명의 길
지난 10년 동안 이루어진 진실을 향한 작은 전진들은, 공개된 기록의 한 조각일지라도 피해자들이 국회와 정부를 상대로 국민서명과 의견서 전달, 집회와 시위, 농성 등 갖은 노력을 기울여 요구한 끝에 성취된 것입니다. 어느 하나도 국가기구와 법제도가 순탄하고 상식적으로 작동하여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없는 슬픔과 절망 속에서 온몸으로 길을 열어온 피해자들, 그리고 함께 연대하고 행동해 온 수많은 시민들이 열어왔습니다.
세월호참사가 발생한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추모와 기억에서 멈추지 않고, 진상규명을 위한 거대한 움직임을 만들어 왔습니다. 피해자와 시민이 함께 한 최대의 재난참사 진상규명 운동으로 읽혀지고 있는데요. 이 진상규명 운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결심
2014년 4월 16일, 국민 모두가 뉴스를 통해 지켜보는 가운데 세월호는 침몰하였고 구할 수 있었던 시민 304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정부는 생존자 명단도, 추가구조 가능성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실종자 가족들에게 무책임과 거짓말로 일관했습니다. 재난 참사 대응 관련 국가 시스템이 엉망임이 드러나자, 실종자 가족들은 ‘실종자 학부모 대책본부’(이후 유가족대책위)를 스스로 조직해 요구사항을 정리하고 면담을 요청하는 등 행동에 나섰습니다. 참사 한 달 만에 검찰은 납득할 수 없는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세월호참사 당시 승객들이 긴급 대피해야 할 시간에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이 울려펴졌다는 것이 알려지자, 피해 가족들은 참사의 온전한 진실을 밝혀야 할 필요성을 느꼈으며, 시민들 또한 목격자이자 운이 좋아 살아남은 생존자로서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직접 나서 안전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출발점으로 진상규명을 외쳤습니다.
피해자와 시민이 함께하다
가족대책위는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논의하고 2014년 5월 6일 안산에서 세월호 특별법 서명운동을 시작했습니다. 5월 22일에는 600여 개 단체가 함께하는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가 출범하여 전국적인 서명운동을 진행했고,피해자들의 국회 농성, 전국순회버스 등을 거쳐 650만 명의 서명을 모아 ‘세월호참사 특별법’을 청원 입법하게 됩니다. 피해자와 시민의 노력으로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첫걸음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피해자와 시민들은 10년을 걸어왔습니다. 하지만, 아직 진실이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책임자에 대해 사회적 정치적 사법적 책임을 묻는 일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10년째를 맞이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운동, 피해자 권리 회복 운동, 보다 안전한 사회를 위한 운동, 앞으로 어떻게 이어가야 할까요?
‘국가책임 인정과 공식 사과’ 등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권고 이행 촉구
먼저, 정부와 국회에 사참위 권고 이행을 촉구해야 합니다. 사참위는 피해자와 가족들의 끈질긴 진상규명 운동으로 만들어낸 독립적인 국가조사기구입니다. 이 기구가 3년 6개월여의 조사활동을 통해 내놓은 보고서와 권고는 비록 우리가 바라는 모든 진실과 대책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 스스로 기억하고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소중한 결실입니다. 이 위원회의 권고를 우리 스스로 존중하지 않으면 국가와국회도 중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참위는 대통령에게 “세월호참사로 인한 국민 희생이 있었으며, 피해자를 포함한 민간인 사찰과 진상규명 방해 등 권리침해가 피해자 가족과 국민을 적대시하는 정책 기조에 따라 이루어진 반인권적 국가범죄였다는 점에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또한 아직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국가의 잘못에 관하여 추가적인 독립 조사 또는 감사를 실시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재발 방지와 피해자 권리 회복을 위해 각 국가기관이 해야 할 일들도 세세하게 권고했습니다. 사참위가 권고한 바를 정부와 국회가 이행하는지,우리가 권고 이행을 촉구하고 감시하고 관철해야 합니다.
비공개자료의 전면 공개 요구와 추가 진상규명
세월호참사의 온전한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봉인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기록물 공개와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세월호참사 관련 모든 자료의 공개가 필수적입니다. 해외 정보를 찾기 위한 노력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또한 지난 10년간 모은 진상규명 기록을 정비하고 공유 체계를 구축하여 앞으로의 이어갈 진상규명의 기반을 다지고 있습니다. 4.16연대와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국정원이 자행한 불법사찰 정보 공개 요구를 시작으로 비공개 자료의 공개와 추가적인 조사를 촉구하는 활동에 착수할 것입니다.
민간 진상규명 체계 구축과 진상규명 과제의 공론화
사참위 조사활동 종료가 진상규명의 끝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시민의 힘으로 진실을 찾아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밝혀온 진실을 알리고, 그 의미를 공유하며, 남은 과제를 공론화할 것입니다. 앞으로 진상규명을 어떻게 이어갈지 그 방향에 대한 의견 또한 다양합니다. 우리는 참사 피해자와 시민들이 진상규명에 관해 안전하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함께 진실을 밝혀나갈 시민 주체를 형성할 것입니다.
책임자 처벌의 완수와 사회적 정치적 책임 추궁
구조의무를 방기했던 해경지휘부는 무죄를 선고받았고, 진실을 은폐한 청와대 인사들에 대한 재판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피해자를 불법사찰한 범죄자들이 형이 확정되자마자 여봐란듯이 사면되고 복권되고 있습니다. 불처벌에 항의하고 끝까지 책임을 묻는 일을 멈출 수 없는 이유입니다. 특히 재난참사 예방과 대응의 지휘책임자들에게 사법적 책임을 묻고, 사회적 정치적 책임도 다하지 않은 채 ‘지도층’으로, ‘전문가’로 행세하지 못하도록 계속 목소리를 높여가야 합니다.
생명안전기본법과 중대재난참사 상설조사기구 설립
이후 벌어질 수도 있는 재난참사의 진상규명과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지속하기 위해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및 중대재난참사 상설조사기구의 설립 운동을 가속하고자 합니다.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상설적인 조사기구는 재난참사가 발생하기 전, 각 부문의 전문성과 조사 역량을 갖추고 관련 안전 제도를 점검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재난참사 발생 시 즉각 개입하여 책임기관의 증거은폐 시도를 원천 차단하고, 관행 및 사회규범을 포함한 사회구조적 조사와 이후 권고를 내놓아 재난참사 재발방지 역할을 하게 할 것입니다. 이미 발생한 재난참사의 진상규명 관련 조항을 통해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이지속될 지반을 만들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는데, 10.29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은 진상규명을 외치고 있지만, 세월호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는 그 호소를 외면하고 도리어 재난을 정치화하지 말라고 윽박지르고 있습니다. 진정성 있는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1년동안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바꾼 것은 무엇일까요? 정말 세상은 변화하고 있는 걸까요?
세월호참사 피해자들과 시민들이 만들어 온 변화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은 진실과 책임이 규명되지 않는 경제적 보상을 거부했고 시민들이 여기에 연대해 독립적인 조사와 수사를 요구하는 전에 없는 규모의 국민서명운동을 일으켰습니다. 2016년-17년 촛불항쟁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의 책임에 관한 문제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쟁점 중 하나였고, 국회가 초정파적으로 통과시킨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에 국민을 보호하지 않은 책임이 명시되었습니다. 비록 헌법재판소는 탄핵 결정 사유에서 국민을 구하지 않은 국가의 책임을 제외했지만, 대법원은 참사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확정했습니다. 모든 진상이 규명된 것은 아닙니다. 정권의 체계적인 은폐와 조사의 지연, 처음 시도해 보는 재난참사 조사에 따른 시행착오가 원인입니다. 그러나 조사 결과의 한계로 인해 진실과 책임을 향해 걸어온 우리의 발걸음, 우리가 써온 새로운 역사를 지우거나 훼손할 수는 없습니다.
세월호참사가 일깨운 재난참사 피해자들의 권리, 시민의 안전할 권리
세월호 참사는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를 일깨웠습니다. 4월 16일 이후 우리는 재난참사 피해자들의 권리가 무시당하고 짓밟히지 않게 하자고 다짐했습니다. 그 결과 재난참사 피해자의 추모와 기억에 관한 권리, 진실과 책임에 관한 권리, 치유와 회복에 관한 권리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일어나고 인식이 확장되어 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세월호참사뿐만 아니라 과거에 일어났던 재난참사 피해자들의 침해된 권리가 재조명되고, 매일매일 삶의 현장에서 직면하는 시민재난과 산업재해의 예방과 대책에 관해 시민과 노동자들이 주장할 수 있는 권리도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고 산업재해와 시민재난에 관한 제도들이 개선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는 존중받으면서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와 국가의 책무에 대해 새롭게 자각했습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습니다. 국회는 처리를 망설이고 있습니다. 이 책임을 외면하고 회피하려는 기업과 자본, 국가권력의 반대 때문입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 같은 참사가 반복되는데도, 정부는 진실을 감추고 책임을 전가하기에 급급합니다. 저들은 개선되지 않는 현실을 숙명으로 여기고 경쟁을 통해 각자 살아남으라고 부추기고 있지만,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국가를 만들고, 타인의 고통을 우리의 고통으로 여기고 침해된 권리를 함께 옹호하는 성숙한 민주공동체를 이루려는 목소리가 커져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시장과 권력은 바뀌기를 거부하고 있지만, 우리는 어제의 우리가 아닙니다.
아직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해경 지휘부와 컨트롤타워가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진실 은폐를 위해 피해자와 국민에게 자행된 국가폭력의 전모가 무엇인지 우리는 온전히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 우리에게 국민을 구조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국가는 없었고 오로지 진실을 감추고 회피하기 위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국민을 감시하고 핍박하는 국가만 있었다는 것 말입니다. 국가권력은 여전히 책임을 인정하고 진실을 모두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책임회피는 10.29 이태원 참사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책임자에 대한 불처벌에 항의하고 온전한 진실을 요구하는 일을 멈출 수 없는 이유입니다. 국가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지만 우리가 변했고 사회도 바뀌고 있습니다. 기억은 힘이 셉니다.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온전한 진실과 완전한 책임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여러 차례 독립적인 조사 기구를 설립에 조사와 재조사에 나섰지만, 진실이 속 시원히 밝혀진 것도 아닌 것 같고, 책임자 처벌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어떤 장애물들 때문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가로막혀 온 걸까요?
지난 10년간의 진상규명의 한계와 어려움
세월호 참사 직후 정부가 주도하여 진행한 조사와 수사는 부실과 왜곡, 축소와 은폐로 점철되었고, 그 후 이어진 독립적인 조사는 수많은 방해에 직면했습니다. 뒤늦게 독립적인 재조사와 재수사가 시작되었지만, 진실을 찾아나가는 데 여러 가지 장애물과 한계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우선 진상규명의 바탕이 되는 자료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증거가 사라지거나 은폐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국가는 대통령 기록물을 봉인했고, 당시 세월호 행적을 파악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해경 레이더 영상을 공개하지 않았으며, 정보경찰/국정원 등 정보기관은 자료를 감추거나 일부만 공개했습니다. 또 진상규명 노력을 ‘정쟁’이라고 매도하고 피해자의 정당한 진상규명 요구를 ‘피해자답지 않은 불순한 행동’으로 몰아세웠습니다. 1기 특조위에 대한 방해와 조기 해체에서 보듯 진상규명 활동 그 자체가 방해받기도 했습니다.
중대 재난 참사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기구가 국내에서 최초로 진행되었기에 갖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사참위는 특검 요청 권한, 청문회를 열 권한, 영장 청구를 요청할 권한 등이 있었지만 활동을 마칠때까지 권한을 온전히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주요 재판과 수사가 병행되어 주요 범죄 혐의의 공소시효에 쫓기는 상황 속에서 조사대상자가 진술/증언을 거부하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법률가 중심으로 구성된 재난조사위원회가 가지는 한계도 있습니다. 진상규명을 사법적 책임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사회구조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사회 전반을 향한 진단을 내리는 시야는 부족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재난참사 책임자 처벌의 한계와 어려움
사회적 참사는 시민의 안전을 우선하지 않는 국가권력, 공무원의 안일함과 부작위, 안전을 도외시하는 기업의 이윤추구, 그 밖에 사회의 부조리와 관행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합니다. 대형 참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와 국가의 책무를 명확히 하고, 정부 각급 기구가 그 책무를 부인하거나 말단에 떠넘기지 못하도록 책임을 묻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법부는 이러한 종합적인 시야나 기본권 보장의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보지 못하고 보수적인 법 해석 중심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세월호 참사에 책임이 있는 이들 중 해경지휘부나 재난대응 컨트롤 타워의 책임자들에게는 사법적 책임을 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법적 책임을 묻는 것만이 우리가 참사를 끝까지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아닐 것입니다. 사법적 책임을 묻는 것에만 국한할 경우, 마치 재판이 끝나면 관련 책임을 물을 기회가 온전히 끝난 것 같은 무력감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는 사법적 책임, 정치적 행정적 책임, 사회적 책임 등 다양한 방식이 있습니다. 사회적 정치적 책임을 묻는 일에서 우리가 거둔 성과와 한계를 잘 새겨보는것이 필요합니다.
사회적 참사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참사의 원인을 확인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과 함께, 참사의 책임자, 특히 지휘책임자들에게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참사의 재발을 막을 수 있습니다. 검찰과 경찰, 사법기관이 제대로 작동하리라 기대하고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성역없이 책임을 물을 수 없음이 이미 참사 초기에 확인되었습니다. 책임자 처벌의 결과는 여전히 미흡하지만 그나마도 피해자와 시민들이 온전히 진실을 밝히고 응당한 책임을 묻기 위해 분투해 온 결과입니다. 세월호 참사에 책임이 있는 이들은 누구이며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요?
A1. 청해진해운 임직원과 한국해운조합 운항관리자 책임 관련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판결
세월호 선사였던 청해진해운은 수익 극대화를 위해 무리하게 선박을 증개축하는 등 침몰원인을 제공하였습니다. 보관운송업체인 우련통운은 화물을 과적하고 화물 고박이 불량한 채 출항시켰고, 운항관리자는 당시 관행에 따라 안전점검의 의무를 하지 않고 출항을 허락하였습니다.
이 재판은 선사가 여러 차례 지적된 선박의 구조적 문제를 고치지 않은 채 관행대로 증개축, 화물 과적, 부실 고박 등을 한 점, 안전 관련 훈련 과정을 미준수한 점을 참사의 중요한 원인으로 고려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항소심을 거치면서 우련통운이나 운항관리자 간부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며 결과 발생의 책임을 부정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운항관리자의 경우 이들의 전문성을 믿고 배를 타는 시민들에 대한 무책임이 아니라, 해경의 업무를 방해한 것에 초점을 두고 죄책을 물었습니다.
A2. 세월호 선원들의 구조책임과 관련한 살인, 업무상 과실 선박매몰죄 등 판결
세월호 침몰 과정에서 구조 의무를 방기한 채 탈출한 세월호 선원들에 대한 책임을 물은 판결입니다.
법원은 선원들이 모두 세월호의 복원성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세월호가 침몰할 것을 명확히 인식한 상태에서도 선내 대기하라는 안내방송 외에 승객들을 대피시키는 구조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은 채 먼저 탈출한 죄를 물었습니다. 2심에서 선장 이준석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가 인정되어 형량이 증가하였는데, 나머지 선원들은 모두 형량이 낮아졌습니다. 선장과 선원이 함께 구조체계를 이루는 만큼 선원들에게 그에 합당한 죄책을 묻지 못한 한계가 있습니다.
A3. 123정장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판결
123정은 세월호 침몰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소형정입니다. 123정장은 현장지휘관 (OSC) 자격을 부여받았으나, 세월호 교신 / 방송 장비 활용 / 육성을 통한 퇴선 유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123정장이 승객들에게 퇴선을 유도하지 않은 책임을 물으면서, “승객들에 대한 퇴선을 유도하게 하는 것은 반드시 훈련을 통해서만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당시 해경으로서 이행하여야 하는 기본 조치였다”며 퇴선의 권한이 선장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2심 법원은 해경지휘부와 선박안전관리자, 선사 등의 책임이 공동으로 작용한다(공동정범)는 점을 들어 123정장의 형량을 1년 감형하였습니다. 그러나 해경지휘부에 대한 사건에서는 이와 달리 판단되었습니다.
A4. 해경지휘부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판결
세월호참사 관련 해경지휘부의 책임을 묻는 작업은 늦게 시작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초 검경합동수사본부 수사를 맡은 광주지검에 해경지휘부의 혐의를 제외하라고 청와대가 압력을 넣었기 때문입니다. 해경지휘부에 대한 재판은 2019년 11월에 이르러서야 피해자와 국민의 직접적인 고소고발운동과 세월호 특별수사단의 수사로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2023년 11월, 대법원은 해경지휘부에 대해 무죄판결을 확정했습니다. 그 근거로 퇴선권한이 선장에게 우선한다는 점, 위급성 판단이 어려웠다는 점, 오인할 만한 보고가 있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2022년 6월 사참위는 ‘해경지휘부가 충분히 급박성을 인식할 수 있었으며, 퇴선 조치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퇴선 가능 시간 또한 9:50이 아니라 10:17으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법원은 국가조사기구의 조사 내용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판결을 내렸고, 123정장에 대한 판결에서 확인된 해경지휘부의 공동정범 책임 또한 증발하였습니다.
해경지휘부에 대한 무죄판결은, 앞으로 재난참사 발생 시, 지휘부 내지 책임자의 지위에 있는 이들에게는 현장의 상황을 잘 모르거나 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책임을 피할 수 있다는 잘못된 선례를 주지 않을까 합니다.
해경지휘부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곧 ‘생명 보호를 위한 국가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였는가?’라는 질문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상황 파악이 어려운 통신 체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구조체계, 구조구난 훈련의 미비 등, 국가시스템이 정상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의 희생이 발생한 것인지에 대해 우리는 질문해 왔고, 앞으로 그 책임을 다 하도록 하기 위해 이 싸움을 해 온 것입니다.
해경지휘부에 대한 사법적 추궁은 미완성으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사회구조적으로 무책임이 중첩하여 발생하는 재난 참사의 성격을 낱낱이 밝히고 그 성격에 맞게 안전 시스템을 재정비할 수 있도록, 생명안전에 대한 국가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앞으로도 해경지휘부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노력은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A5. 최초보고시간 관련 허위공문서 작성죄 판결
세월호참사의 골든 타임 시간에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아 인명피해가 컸다는 비난 여론이 크자,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은 국회 국정조사에서 대통령 최초 보고 시간을 조작하고 허위 증언을 하였습니다. 또한 청와대가 국가재난 상황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고 규정된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의 일부 조항을 무단으로 삭제하였습니다.
그러나 2023년 6월 김기춘의 대법원 무죄판결 등, 관련 책임자들은 전원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이와 같은 불처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항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진상규명이 빨리 되지 않으면 책임자가 얼마나 교묘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진실은 결코 감출 수 없습니다. 관련 조사/수사 과정을 통해, 우리는 국가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시스템이 무너져있었으며, 무능하고 무책임한 국가지도자는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법적 추궁 외에도 사회적 추궁과 국민의 심판은 지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A6.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조사방해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판결
이 재판은 청와대 관계자들과 해양수산부 등 정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특조위 조사방해의 진실을 밝히고 그 책임을 묻고자 한 재판입니다. 관련 재판은 해양수산부 자체 감사 및 수사 의뢰로 인한 5인에 대한 재판(조윤선, 윤학배 유죄 선고로 종료)과, 국민고소고발운동 및 특수단 기소로 인한 9인 재판(2심 진행 중)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9인에 대한 재판에서 2심 재판부는 전원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그 근거로 피고인들이 스스로 의지대로 행한 것이 아니라 이전에 확립된 청와대의 기조를 따른 것에 불과하며 실제 범죄에 관여했음을 인정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피고인들이 본인의 의지에 따라 실행하였다는 점은 언론보도와 수사, 사참위 조사 등을 통해 이미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실제 범죄행위에 의해 진상규명이 지연되며 고통받았던 것은 피해자들이기에, 이 재판이 피해자와 국민의 권리에 관한 재판임을 2심 재판부는 고려하여 판결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각 책임자가 어떻게 진상규명을 방해했는지, 그 과정에 국가권력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피해자들을 어떻게 탄압했는지를 밝히고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국가권력이 통제되지 않을 때 어떻게 남용될 수 있는지를 되새기는 과정입니다. 이 재판의 결과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지, 권력과 외부의 방해 없이 독립적이고 공정한 조사가 진행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A7. 국군기무사령부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 관련 판결
조사 및 수사를 통하여 국정원, 기무사, 정보 경찰 등 정보기관에 의하여 세월호참사 피해자 및 옹호자들이 철저히 사찰당하였고 인권이침해되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그 정보의 수요자로 VIP, 즉 청와대가 공모했음 또한 밝혀졌습니다.
2023년 12월 21일, 세월호 TF장인 김대열과 정보융합실장 지영관에 대한 선고에서, 2심 재판부는 국군이 국민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하면서까지 정치세력을 위해 헌신하여 국민들의 신뢰를 훼손하였다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하였습니다. 이는 사법부의 정의로운 판결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 이후 각 피고인은 상고했으나, 2024년 2월 갑작스레 상고를 취하하였고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특별사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2023년 광복절 특별사면을 포함하면, 현재 기무사 불법사찰 관련 책임자는 모두 사면된 것입니다.
사전에 사면 복권과 관련한 모종의 논의가 있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황입니다. 이러한 작태는 피해자들과 시민이 일궈온 성과를 무너뜨리고, 윤석열 정권이 말하는 국민통합이나 법치와 공정마저 붕괴시키고 있습니다. 국가가 책임자들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려, 재난참사 피해자 및 국민의 권리가 침해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을 이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부재했던 재난대응 국가 컨트롤타워
법령과 훈령 상 대규모 재난 발생 시 대통령 및 국가안보실은 컨트롤타워로서 국가 차원의 자원을 동원하고, 협력 체계의 총괄과 지휘, 조정을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참사 당일 재난대응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참사 전인 2013년경 박근혜 정권이 행정안전부와 해양경찰청 개편을 거치는 과정에서 법령/매뉴얼 상 실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생겼는데, 이를 보완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여 국가위기관리 체계는 부실한 상태였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 대통령은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았고 관저에 머물렀습니다.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은 아직 오리무중입니다. 그 진실이 담긴 대통령 기록물은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직무대행을 맡은 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하여 30년간 봉인되었습니다.
청와대의 책임 회피와 훈령 무단 변조
국회 국정조사에서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춘은 “청와대는 법적으로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김기춘 비서실이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등과 함께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 중 청와대의 재난위기 컨트롤타워 의무 명시 부분을 무단으로 변조하여 진실을 은폐하려 했던 것이 문재인 정부의 자체 조사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드러나기 시작한 거대한 국가폭력의 실체, 정보기구의 민간인 사찰과 여론공작
세월호참사 초기부터 청와대가 국정원, 기무사, 정보경찰 등 정보기관을 활용하여 피해자를 사찰하고 여론 공작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정부 자체조사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불법사찰의 정황이 드러나자, 진실을 온전히 밝히기 위해 피해 가족과 시민들은 청와대 앞에서 국가정보기구와 군의 사찰자료 전면 공개 등을 요구하는 청와대 앞 농성에 돌입했고, 문재인 대통령과 국정원장 등으로부터 국정원 자료 공개 약속을 얻어내었습니다. 국정원이 사찰 자료의 일부만 공개하고 전부를 내놓지는 않았지만, 제한된 정보를 통해서도 노골적이고 거대한 국가폭력의 실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국정원은 4월 16일 당일 ‘ 정부 책임론으로 비화를 방지’해야 한다고 보고했으며, 기무사는 세월호 피해 가족과 시민을 사찰하는 세월호 TF를 운영했고, 정보경찰 또한 촛불집회와의 연대를 우려하며 시민사회와 유족 동향을 청와대에 보고했습니다. 정보기관은 불법적으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피해 가족을 순수/강성으로 나누어 보고했고 불법 수집된 정보는 보수단체/보수 언론 등에 흘러가 유가족을 공격하는 데에 쓰였습니다. 또한 정권은 사회적 애도를 탄압하기 위해 시민단체 블랙리스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시국선언 참여 대학교수 명단 등을 작성하고 노란리본 계기수업을 하는 교사 등에 대한 조치를 논하는 등 권력을 남용하였습니다. 반대 여론을 위해 특별법 제정 반대 집회를 여는 보수단체에 부당하게 금액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특조위 조사방해를 위해 차관급 관계기관 대책회의 운영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피해자와 시민들이 온 힘을 다해 독립적인 특별조사위원회를 출범시키자,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관계기관 대책회의까지 소집해 특조위의 조사활동에 온갖 방해를 일삼았습니다. 설립 전부터 특조위 활동을 방해할 계획을 수립하고, 특조위와 피해자들을 ‘세금도둑’ 으로 매도하는 여론공작을 자행했습니다.
국회가 만든 법 조항을 대통령령(시행령)으로 무력화시키려 하고, 특조위의 예산과 재정을 일방적으로 축소했습니다. 특조위가 참사 당일 청와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조사할 것을 의결하자 여당 추천 특조위원들에게 전원 사퇴를 사주하는 등 성역 없는 조사를 방해했습니다. 결국 특조위는 주어진 조사 기간을 다 사용하지 못하고 불법 부당하게 종료되고 말았습니다. 이 모두가 계획된 방해 공작이었음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의 수사와 사참위 조사활동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국민을 구하는데 작동하지 않던 컨트롤타워, 진실 은폐 공작에는 체계적으로 작동
사참위는 국정원으로부터 일부 사찰 관련 정보를 받았으며 조사를 통해 사찰의 정황과 방식은 포착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부 공개된 정보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아직 범죄의 전모를 밝히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사 당일 국민을 살리는데 작동해야할 컨트롤타워는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피해자들을 핍박하기 위한 국가컨트롤타워는 집요하고 체계적으로 작동했다는 사실은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4.16연대와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국정원의 불법사찰에 관한 정보공개청구 운동을 준비 중이며, 관련 진상규명 작업을 통해 그 피해 정도와 범위를 밝히고 청와대와 국정원의 공모 사실을 찾아내고자 합니다.
꼬리자르기식 조사와 수사에 대한 독립적인 재조사-재수사 요구
세월호참사를 지켜본 국민들이 가장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해경이 승객들을 구하지 않은 것’이었을 것입니다. 왜 해경은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지, 왜 선원부터 구했는지, 선체 밖으로 탈출하거나 물에 빠진 승객들에 대해서 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 등 의문들이 진상규명 과제로 제기되었습니다. 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큰 쟁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참사 직후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참사 당일 현장에 출동했던 123정장 외에 다른 해경지휘부는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왜 선원부터 구조했는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수사과정에서 정권의 외압이 가해졌던 정황이 이후 조사과정에서 드러났습니다. 결국, 피해자들과 시민들이해경의 구조방기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민간차원의 조사작업을 벌였고, 지휘책임자의 처벌을 촉구하는 국민고소고발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와 수사 의뢰, 검찰특별수사단의 수사로 해경지휘부 11명이 기소되었습니다.
사참위 재조사로 퇴선 명령 내리지 않은 해경 지휘부의 책임 드러나
사참위는 먼저 해경의 조직과 임무, 퇴선조치 권한 등을 검토하고 시간대별 해경의 대응을 확인했습니다. 사참위는 법과 매뉴얼을 검토하여 해경이 위험단계에 따라 구조본부를 가동하고 구조계획을 세울 의무, 선내 상황을 파악하고 구조계획이 제대로 시행되는지 확인할의무를 지닌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같은 재조사를 바탕으로 사참위는 퇴선조치를 취하지 않은 책임이 현장 출동 해경뿐만 아니라, 해경 지휘부에게도 있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사참위는 선내 구조 및 당시 승객 위치를 검토하여 퇴선조치를 통하여 승객을 구할 수 있었던 마지막 시간이 기존 검경수사에 적용해왔던 9시 50분이 아니라10시 17분이라는 분석결과를 내놓았습니다. 퇴선조치를 통해 승객을 구할 수 있었던 시간이 27분가량 더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해경은 왜 구하지 않았나’, ‘구조시스템이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원인 규명은 미흡.
하지만, 사참위의 재조사는 ‘왜’ 승객 대부분이 배 안에 있다는 보고가 있었고 구조계획에 따른 퇴선조치가 시급한 상황이었음에도 상황에 맞지 않은 명령과 요청이 오갔는지, ‘왜’ 구조구난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하지 않았으며 기존 시스템의 한계는 무엇이었는지 등에 대해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체계적인 원인분석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구조받지 못하고 선체 밖으로 이탈한 승객에 대한 해경의 구조수습활동에 대해서도 충분히 조사하지 못했습니다. 123정장(현장구조세력)에 대한 재판이 사실상 종료된 이후에 재조사와 재수사가 뒤늦게 이루어져 새로운 진술이나 증거를 얻기 힘들었던 점도장애물이었습니다.
구조 방기와 책임의 윤곽은 드러났습니다. 해경지휘부가 구조계획을세우지 않고 현장세력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은 것 등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은 참사를 초래한 본질적인 원인입니다. 구조방기의 윤곽을 바탕으로 새롭게 질문을 구성하고 ‘왜’에 대한 답변을 찾아가는 작업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불법 증개축으로 복원성 취약했던 세월호
검경합동수사본부와 해양안전심판원 등 초기 조사를 통하여 선사가 수익을 우선하여 세월호를 불법 증개축하는 과정에서 세월호의 무게중심이 높아졌고 복원성이 취약해졌으며, 참사 당일 과도하게 화물을 적재하고 부실하게 고박한 뒤 수밀문과 맨홀을 열어둔 채 출항한 것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중고 선박인 세월호를 수입해 오는 과정에서 한국선급이 제대로 선급 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 화물하역 관계자가 과적 운항과 고박 불량을 방조했다는 사실, 운항관리자가 뇌물을 수수하고 운항 검사와 관리를 부실하게 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세월호 증개축, 운항 허가, 출항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불법과 부실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직접적인 침몰원인을 두고 내인설과 열린안으로 나뉘어진 선체조사위원회
세월호 인양과 더불어 선체조사위원회는 ‘낮은 복원성, 조타 장치 고장, 조타 미숙 등으로 인해 침몰했다’는 내인설과 상대적으로 낮은 복원성에도 불구하고 ‘급격한 침몰은 외력의 작용 없이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열린안이라는 두 가지 보고서를 내며 단일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짧은 조사 활동을 종료하고 말았습니다. 인양 초기에 미수습자 유골 수습과 유류품 수집이 우선시 되었고, 인양된 선체의 직립이 뒤늦게 이루어진 것도 조사 활동에 한계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사참위의 재조사 결과, ‘내부 조타장치 고장 가능성과 외부 충격 가능성, 모두 근거 불충분’
추가조사를 통해 침몰 원인을 보다 명확히 하는 과제는 사참위의 몫이 되었습니다. 사참위는 위 두 가지 결론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사참위는 내인설을 검증하며 타기 장치 고장(솔레노이드 밸브 철심 고착)으로 인해 세월호가 급선회했고 균형을 잃었을 것이라는 가설의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철심 고착 등의 변형은 침몰 당시가 아니라 침몰 이후 인양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일어났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 것입니다. 한편, 사참위는 세월호 좌현 외판에서 가로로 찢긴 부분과 좌현 핀 안정기가 비정상적으로 과도하게 회전하게 된 원인이 외력충돌로 인한 것인지 등 외력이 작용하였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각종 연구용역과 조사를 진행했으나 그 원인은 밝히지 못했으며, “외부 충격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정도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쾅’ 소리 나기 전에 왜 배가 이미 기울어지고 있었는지 규명되어야
여러 검증 끝에 사참위가 세월호의 CCTV 영상을 추가로 복원하며 ‘쾅’소리가 있기 전에 집기류가 떨어질 정도로 이미 급격하게 선체가 기울기 시작했음을 밝혀낸 것은 큰 성과입니다. 다만 ‘쾅’ 소리가 급횡경사의 원인인지, 횡경사의 결과인지에 대한 분석을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쾅’ 소리가 외력이 충돌하는 소리였는지, 선체 내부의 화물 등이 무너져 내리며 발생한 소리였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한편, 세월호 내부 CCTV 기록 저장장치(DVR)의 수거와 복원 과정에서 조작이 있었을 가능성을 두고 사참위가 특별검사의 수사를 요청한 것에 대해, 특별검사는 조작 증거가 없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침몰 원인을 찾아가는 길에서 잊지 말아야 할 또 다른 과제
침몰 원인을 재조사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사참위 내부의 이견이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침몰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조사보고서는 존재하는 이견들을 거칠게 미봉하는 정도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선조위와 사참위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침몰 원인에 관한 다각적인 자문과 조사 과정에서 제기된 질문들을 잘 정리하여 과학적 검증과 연구, 토론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전문가들간의 기술적인 논쟁의 대상으로 던져두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내부요인에 의한 것이든 외부 작용에 의한 것이든 세월호가 예상 밖으로 급격히 침몰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침몰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국내외의 선박안전기준이 강화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또 다른 참사를 막기 위한 안전기준과 점검의 강화, 운항환경의 개선 등에 대해서도 함께 모색되어야 합니다.
세월호참사 그 자체로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참사 이후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진실을 은폐하며 피해자와 시민에게 저지른 불법행위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 진상규명의 길이었습니다.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이룬 주된 질문들은 무엇인가요?
“세월호는 왜 침몰하였는가?”
세월호의 개괄적인 출항 배경은 초기 조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선체 인양 이후, 선조위는 ‘왜 급속도로 세월호가 복원성을 상실했는지’ 등에 초점을 맞추어 조사를 진행하였으나, 단일한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내인설’과 ‘열린안’, 두 가지 침몰원인을 내놓으며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사참위는 관련 조사과제를 이월 받아 결론을 종합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해경은 왜 세월호에 탑승한 승객을구하지 않았는가?”
참사 직후에는 현장지휘 책임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했던 해경, 정권의 수사외압, 특조위 조사활동 방해 등으로 인해 해경이 구조와 수습 과정에서 저지른 잘못을 철저히 조사하지 못했습니다. 해경의 구조방기 원인을 묻는 작업은 사참위(2018.12)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다뤄졌습니다. 사참위는 ‘해경에게는 법률/매뉴얼 상 어떤 의무가 있었는지’, ‘해경이 그 의무를 다했는지’, ‘왜 퇴선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 ‘침몰 전후 구조와 수습 과정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등을 과제로 삼고 진상을 규명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세월호참사 당일 컨트롤타워는무엇을 해야 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
당시 대통령은 세월호가 침몰한 후에도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렇게 구하기 힘든가요?’라며 상황에 맞지 않는 질문을 했고, 이후 세월호참사를 뒤늦게 인지한 것으로 알려져 수많은 의혹을 낳았습니다. 우리는 재난참사 발생 시 대통령과 청와대에 컨트롤타워로서 어떤 의무가 있는지, 세월호참사 당시 청와대와 대통령이 컨트롤타워로서 적절하게 대응하였는지를 밝히고자 하였습니다.
“세월호참사 이후 국가는 어떻게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방해했는가?”
정부의 방해로 인해 특조위가 조기 종료되고 난 뒤, 검찰수사 및 재판과정, 사참위의 조사 등을 통해 특조위 설립 및 운영 과정에 당시 정권의 조직적인 방해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세월호참사 이후 국가는 피해자를 위로하고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국정원 등 정보기관들을 이용하여 불법사찰하고 핍박한 사실 또한 밝혀졌습니다. 국가가 진실을 은폐하고 불법 사찰한 전모는 무엇인지, 이를 지시하고 실행한 것은 누구인지, 어떤 책임이 있는지를 밝히고자 하였습니다.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피해자가 앞서고 많은 시민이 그 곁에서 함께 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역경과 승리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10년의 진상규명 운동은 어떤 발자취를 거쳐왔나요?
세월호참사가 다른 참사와 다른 점은 피해자가 앞장서고 시민이 함께하여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을 피해자의 권리로 선언하고 진상규명 국민 운동을 전개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납득하기 어려운 초기 수사 결과와 세월호 특조위의 와해
세월호참사 직후 검경합동수사본부, 국회 국정감사, 감사원 감사, 해양안전심판원 조사 등, 전반적인 세월호참사 관련 초기 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두 달간 수사 끝에,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승무원들, 수익을 우선하여 침몰의 징조를 외면한 선사, 과적 운항과 고박 불량을 방조한 화물하역 관계자, 뇌물을 수수하고 운항 검사와 관리를 부실하게 한 한국선급, 운항관리자 등 총 38명을 기소하였습니다. 그러나 검경합동수사본부의 수사는 국가의 책임보다 주로 선사와 감독기관에 맞추어졌습니다. 정권의 수사외압으로 인하여 참사 당일 현장에 출동했던 123정장 외에 해경지휘부는 기소되지 않았습니다. 감사원 감사와 국정조사도 ‘지휘부와 재난 컨트롤 타워인 청와대에 대해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감사원은 청와대를 조사하지 않았고 국정조사(국회 청문회)도 청와대 조사 여부를 두고 논란을 빚다가 중단된 후 다시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조사/수사 결과를 납득할 수 없었던 피해자와 시민은 독립적인 조사와 수사를 요구했고 세월호참사 특별법이 제정되어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2015년에 발족했습니다. 하지만 특조위는 출범부터 정권의 비협조에 직면했고, 참사 당일 대통령 업무 적정성에 대한 조사를 막으려는 정부와 여당의 방해공작 끝에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조기에 해체되었습니다.
세월호의 인양과 선체조사위원회
특조위가 사실상 강제로 종료된 후에도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끈질기게 지속되었습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4.16세월호참사 국민조사위원회>입니다. 참사 피해자, 시민단체 활동가, 연구자, 특조위 조사관 출신들이 모여 중단된 특조위 활동의 자료와 판례들을 수집, 정리, 분석하면서 민간 차원의 진상규명 노력을 이어갔습니다.
미수습자를 온전히 수습하고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은 선체의 인양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모아졌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지연되어 왔던 세월호 선체의 인양을 앞두고, 2016년 4월 총선으로 새롭게 구성된 국회는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를 제정했습니다. 이 특별법에 따라 세월호 인양과 함께 미수습자를 수습하고 선체 침몰 원인을 조사하기 위한 선체조사위원회가 2017년 3월 구성되었습니다. 선체조사위원회는 침몰원인 조사에 관한 독립적인 국가조사기구였습니다. 준비기간을 제외하고 총 1년 1개월 동안 미수습자 유해조사와 선체 조사활동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침몰원인을 하나로 결론내리지 못하고 내인설과 열린안으로 나누어진 보고서를 작성하고 종료하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운동과 진실 은폐에 대한 저항이 커져가던 중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고,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이어진 촛불 집회 끝에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었습니다. 세월호참사 당일 대통령이 국민을 구하지 않은 책임이 탄핵 사유로 인정되지는 않았으나, 탄핵 결정 과정에서 대통령에게 국민의 생명과안전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하였습니다.
촛불을 통해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기무사 개혁위원회, 기무사 의혹 군 특별수사단, 국정원 개혁위원회, 국방 사이버 댓글조작사건 TF 등 정보기구, 경찰 등의 과거 잘못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권력기구의 세월호 참사 관련 민간인 사찰 문제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기무사 관련 책임자들이 군 법원에 기소되었습니다. 그러나 국정원 개혁위원회는 세월호 관련 민간인 사찰에 관한 조사를 국정원 자체 조사에 맡겼고 국정원 직원은 아무도 고발되거나 기소되지 않았습니다. 정보 경찰의 경우에는 세월호참사 관련해서 경찰 자체적인 조사조차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은 세월호참사 당시 청와대에서 대통령 최초보고 시간을 조작하였다는 의혹과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재난대응 컨트롤타워임을 부인하기 위해 대통령 훈령인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을 무단으로 사후 변조하였다는 의혹을 밝히고자 검찰에 수사 의뢰 하였습니다. 해수부도 자체 감사를 거쳐 박근혜 정권 당시 해수부의 세월호 특조위 조사방해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과 국민고소고발운동
박근혜 정권 탄핵 이후 국가가 개입된 조직적인 진실 은폐의 사례들이 하나둘씩 드러나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에서 강제로 종료된 특조위를 부활시키자는 취지로 제2기 특조위 구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 운동이 펼쳐졌습니다. 그 결과로 세월호참사와 가습기살균제참사를 조사하기 위한 독립적인 조사기구에 관한 특볍법이 제정되었고,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가 발족하였습니다. 사참위는 2018년 12월에 조사 활동을 개시하여 2022년 6월까지 3년 6개월간 조사 활동을 펼친 후 진상규명, 피해지원, 안전사회 건설에 관한 세 권의 보고서와 종합보고서를 발간하고 정부와 국회가 이행해야 할 권고사항을 발표했습니다.
한편, 피해자들과 시민들은 사참위를 통한 독립적인 ‘재조사’ 뿐만 아니라, 사건 초기 정권의 입맛에 따라 졸속으로 이루어졌던 검경합동수사를 대신할 독립적인 ‘재수사’를 촉구하는 국민고소고발운동에 착수했습니다. 이런 노력은 2019년 11월 검찰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 구성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검찰 특수단은 1년 2개월의 수사를 벌여 해경지휘부 11명과 특조위 활동을 방해한 9명을 불구속 기소하였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그외 언론 외압, 수사 외압,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등에 대해서는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우리가 열어온 진상규명의 길
지난 10년 동안 이루어진 진실을 향한 작은 전진들은, 공개된 기록의 한 조각일지라도 피해자들이 국회와 정부를 상대로 국민서명과 의견서 전달, 집회와 시위, 농성 등 갖은 노력을 기울여 요구한 끝에 성취된 것입니다. 어느 하나도 국가기구와 법제도가 순탄하고 상식적으로 작동하여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없는 슬픔과 절망 속에서 온몸으로 길을 열어온 피해자들, 그리고 함께 연대하고 행동해 온 수많은 시민들이 열어왔습니다.
세월호참사가 발생한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추모와 기억에서 멈추지 않고, 진상규명을 위한 거대한 움직임을 만들어 왔습니다. 피해자와 시민이 함께 한 최대의 재난참사 진상규명 운동으로 읽혀지고 있는데요. 이 진상규명 운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결심
2014년 4월 16일, 국민 모두가 뉴스를 통해 지켜보는 가운데 세월호는 침몰하였고 구할 수 있었던 시민 304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정부는 생존자 명단도, 추가구조 가능성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실종자 가족들에게 무책임과 거짓말로 일관했습니다. 재난 참사 대응 관련 국가 시스템이 엉망임이 드러나자, 실종자 가족들은 ‘실종자 학부모 대책본부’(이후 유가족대책위)를 스스로 조직해 요구사항을 정리하고 면담을 요청하는 등 행동에 나섰습니다. 참사 한 달 만에 검찰은 납득할 수 없는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세월호참사 당시 승객들이 긴급 대피해야 할 시간에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이 울려펴졌다는 것이 알려지자, 피해 가족들은 참사의 온전한 진실을 밝혀야 할 필요성을 느꼈으며, 시민들 또한 목격자이자 운이 좋아 살아남은 생존자로서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직접 나서 안전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출발점으로 진상규명을 외쳤습니다.
피해자와 시민이 함께하다
가족대책위는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논의하고 2014년 5월 6일 안산에서 세월호 특별법 서명운동을 시작했습니다. 5월 22일에는 600여 개 단체가 함께하는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가 출범하여 전국적인 서명운동을 진행했고,피해자들의 국회 농성, 전국순회버스 등을 거쳐 650만 명의 서명을 모아 ‘세월호참사 특별법’을 청원 입법하게 됩니다. 피해자와 시민의 노력으로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첫걸음이 이루어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