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절망적인 그날
‘그날’을 만들어낸 원인과 ‘그날’의 실패에 집중한
부끄럽고 참담한 실패의 기록!
다시 ‘그날’이 돌아왔다.
그동안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에 얼마나 다가갔는가?
그동안 드러난 참사의 진상은 우리 사회를 생명과 안전의 가치를 지향하는 곳으로 바꾸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가?
2016년 『세월호, 그날의 기록』으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토대를 놓은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기록팀)이 지난 10년 동안 쌓인 질문을 다시 던지며, 진실의 조각들을 모아 분석한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을 내놓았다. 이 책은 특히 2017년 선체 인양 후 이뤄진 선조위와 사참위의 침몰 원인 조사, 특별검사의 수사, 해경지휘부에 대한 검찰 특수단의 수사와 재판기록은 물론 브룩스벨(BrooksBell)과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MARIN) 등 해외 전문기관의 조사와 시험, 대한조선학회의 공식 의견 등 지난 10년 동안 쌓인 모든 자료를 새로운 관점으로 검토·분석했다.
선원들은 세월호를 “대한민국에서 제일 위험한 배”라고 불렀다. 기록팀은 그 이유를 정밀하게 추적해 세월호 침몰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정리했다.
세월호가 오른쪽으로 급선회하면서 왼쪽으로 기울어진 최초의 원인은 무엇이었나? 그 원인은 길이 145.6미터, 높이 14미터, 무게 6,825톤에 달하는 거대한 여객선을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이었나?
476명이 탄 여객선이 먼바다에서 급격하게 침몰했다면 참사는 불가피한 것이었나?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은 해경이 구조에 실패한 원인을 새로운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날 해경지휘부가 무슨 일을 했고 무슨 일을 하지 않았는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이유는 무엇인지 짚으며 가장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할 해경이 가장 무책임하게 행동해 결국 구조에 실패한 과정을 밝혔다. 누가 잘못했는가’라는 질문에서 멈추지 않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을 서술의 중심에 놓는다.
10년 동안 쌓인 기록을 토대로
그날로 돌아가서 쓴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은 정상적인 배였다면 작은 소동으로 끝났을 기계적 결함이 불과 101분 만에 침몰로 이어진 과정을 분석했다. 이와 함께 선조위와 사참위가 잠수함 충돌설을 기각하는 대신 번번이 애매모호한 답을 내놓은 과정을 정리하고 비판했다.
사참위가 실망스러운 결론을 내놓고 끝난 2022년, <진실의 힘>은 기록팀을 새롭게 구성했다. 국가 차원의 공적 조사가 진행될수록 오히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의 열망과 의지가 흐려지고 실망이 커지는 것을 보면서 『세월호, 그날의 기록』을 더 확장, 심화하고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을 제대로 정리해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증언과 기록을 통해 생생하게 재현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은 2014년 4월 16일 8시 49분 세월호가 급격히 우회전한 순간의 조타실 상황, 승객들을 버리고 가장 먼저 도주한 기관부 선원들의 대화, 해경 경비정을 본 선원들의 행동, 학생들의 문자대화와 동영상 내용뿐 아니라,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해경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담았다.
10시 35분, 가라앉아버린 배에 갇혀 있을 승객을 구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이 홍보에 필요한 ‘멋진’ 장면을 확보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린 해경 본청 경비안전국장과 서해청 상황담당관의 통화내용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해경의 민낯을 드러낸다.
본청: 아, 그러니까 진작 좀 내려서 그림이 됐어야 되는데 지금 그게 문제란 말이에요. 못 올라가면 우리가 올라가갖고 유도한 걸 보여줬어야 되는데.
서해청: 지시는 해놨는데 아직 이행을 안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본청: 지금 거기 승객들은 거의 다 나왔어요? 배에서?
서해청: 예, 그런데 지금 119에서 학생 하나가 안 나왔다고 119 쪽으로 전화가
왔다고 했는데 지금 확인이 안 되고 있습니다.
본청: 그러니까 그러면 대부분 다 나왔다는 얘기에요? 선내에는 없다는 얘기예요?
서해청: 예. 그전부터 계속 기울어지면서 사람이 나와 있었기 때문에, 내부 수색은
정확하게 안 했는데, 거의 다 나온 걸로 지금 확인이 되는데, 문이 안 열린다는 전화는 한 번 받았다고.(590쪽)
“대한민국에서 제일 위험한 배”의 탄생
세월호는 4월 16일 아침 무엇을 계기로, 또 어떤 조건의 연쇄 속에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기울어졌고 101분 만에 가라앉고 말았나? 2014년 4월 15일 화요일 밤, 마지막으로 인천항을 떠날 때 어떤 상태였나? 배의 무게중심은 얼마나 높았나? 화물과 평형수는 어떻게 실려 있었나? 배의 기관실은 어떻게 관리했나? 세월호는 출항해도 괜찮은 배였나?
청해진해운이 18년 된 낡은 선박을 일본에서 도입하며 서류의 수치를 조작하고, 무리하게 증개축한 과정, 운항 허가, 시험운항, 실제 운항과 4월 15일 밤 출항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검토해서, 선원들 스스로 “대한민국에서 제일 위험한 배”라고 부를 만큼 세월호가 위험하고 취약하게 된 경위를 하나하나 짚었다.
증개축 내역이 바뀔 때마다 도면을 수정하고, 신성선박설계가 한국선급에서 교체 도면을 재승인받는 일이 반복됐다. 너무 “여러 번”이었다. … 도면 승인 과정이 번거로워지자 청해진해운은 “승인이 되지 않은 도면”으로 증개축을 진행해버렸다. (224-225쪽)
증개축과 복원성계산서 승인 후에도 운항관리규정 승인, 운항할 때마다 해야 하는 복원성 계산, 화물량 확인, 고박 상태 검사 등 위험한 배가 사고를 일으키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운항관리규정 승인 과정은 해경을 접대하는 자리로 변질되고, 화물량과 고박 상태 검사, 복원성 계산은 배 바깥에서 육안으로 대충 흘수선만 확인하는 것으로 무력화됐다. 결국 청해진해운이 이익을 내기 위해 화물을 과적하고 그 대신 평형수를 빼내는 방식으로 운항하는 것을 잡아낼 수 없었다.
세월호가 4월 15일에 출항하기까지 있었던 일은 승객의 생명을 걸고 하는 모래뺏기 놀이와 같았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모래더미 가운데 꽂아놓은 막대기가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야금야금 모래를 자기 쪽으로 빼내는 놀이였다. 청해진해운과 하청업체들, 한국선급, 한국해운조합과 운항관리자, 선장과 선원, 해경 등은 승객 수백 명이 타는 배를 가운데 올려두고 주위의 모래를 빼내듯이 배를 변형시키고, 과도하게 화물을 싣고, 서류를 꾸미고, 규제를 무력화했다. … 위험한 놀이를 끝낼 위치에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국 놀이는 막대기가 쓰러질 때까지 계속됐다.(788쪽)
세월호는 왜 침몰했나?
세월호가 오른쪽으로 급격히 선회하면서 왼쪽으로 기울어진 직접 원인은 기계적 결함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침몰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 기록팀의 평가다. 정상적인 배였다면,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은 배가 약간 기울어진 채 크게 원을 그리며 선회하는 정도의 소동으로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제 힘으로는 물 위에 떠 있지도 못하는 “배 아닌 배”는 작은 고장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오른쪽으로 빠르게 선회하면서 왼쪽으로 과도하게 기울어졌고, 부실하게 고박한 화물들이 함께 쏠리면서 복원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세월호가 101분 만에 빠르게 침몰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열려 있는 배”였다는 점이다. 수밀문과 맨홀을 열어놓은 채 운항하던 선원들이 그 상태로 방치하고 빠져나간 것이 빠른 침몰의 원인이자 “304명의 생사를 가른 결정적 순간 중 하나”였다.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은 세월호 침몰의 책임을 4월 16일 아침에 고착된 솔레노이드 밸브에 물을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일본에서 들여온 배를 결국 그런 상태가 되도록 만들고 4월 15일 밤 지극히 위험한 상태에서 출항시킨 후 수밀구획을 열어두는 등 관행적으로 선체를 관리한 조직과 제도에 더 큰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잠수함 충돌설’, 근거가 있나?
“열린안” 또는 “외력설”이라고도 불린, 미상의 수중물체가 세월호에 충돌해서 배를 쓰러뜨리고 사라졌다는 이 주장은 근거가 있는 것이었나?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은 결국 잠수함 충돌을 의미하는 이 주장이 과연 믿을 만한 것이었는지, 객관적 증거와 사실에 기초한 의혹이었는지 하나하나 따져 물은 다음, 잠수함 충돌설은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강조한다.
세월호를 전복시킬 만한 큰 힘을 가하면서도 세월호 외판이나 핀안정기를 크게 망가뜨리지는 않는 잠수함, 세월호를 우현으로 빠르게 회전시키는 동시에 좌현으로 빠르게 기울게 만드는 잠수함, 오래 누적된 복원성 문제를 가려버릴 만큼 명확한 충돌의 증거를 남긴 잠수함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 세월호를 침몰시킨 잠수함은 오직 상상의 세계에서 존재했을 뿐 컴퓨터가 가상(假想)으로 만들어낼 수조차 없는 모순덩어리였다.(402쪽)
잠수함 충돌설을 굳게 믿는 이들은 그 믿음에 부합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우제식’ 조사를 하며 공식 조사위원회의 자원과 인력과 시간을 과도하게 투입했다. 그렇게까지 했음에도 잠수함 충돌의 근거를 찾지 못했다면, 사참위는 잠수함 충돌설을 기각해야 했다.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은 수백만 시민의 염원이 담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책임을 맡은 조사위원회가 추구한 진상 혹은 진실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묻는다.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은 잠수함 충돌설 외에도 AIS 조작설, 세월호 CCTV 등 항해기록 조작설, 123정에 옮겨 탄 세월호 기관장 박기호가 ‘관청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는 주장, 2014년 4월 17일 해경이 세월호 선장 이준석을 집에 데려가서 재우게 된 경위 등 음모론의 확산과 연결된 각종 의혹들이 어떻게 제기됐고, 진상은 무엇인지도 정리했다.
‘구조 실패’ 분석의 결정판!
세월호가 침몰할 수밖에 없는 배였다면 그 배에 탄 승객들의 운명도 사고 당시 결정되었나? 참사는 불가피한 결과였나?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은 세월호가 예상보다 빨리 침몰한 것은 사실이지만 승객들이 배와 함께 희생돼야 할 이유는 없었다고 답한다.
2016년에는 알 수 없었던 해경지휘부의 움직임을 새로운 관점에서 분석하고 평가한 것은 이 책의 중요한 성과다. 기록팀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해경의 각급 상황실과 지휘부의 무능과 무책임, 해경 조직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한 해경 구성원들의 증언을 통해 “그날 해경의 실패는 조직적, 체계적이었다”고 강조한다.
상식적으로도 생각할 수 있는 “기본 중의 기본”을 이행하지 않은 것이 참사로 이어진 결정적 고리였다. 선장과 선원을 찾지 않았으니 침몰이 임박한 세월호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고, 승객을 대피시켜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123정과 해경지휘부가 바로 그 “기본 중의 기본”을 이행하지 못한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진상규명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돼야 했다.(605쪽)
선장과 선원을 찾지 않은 해경지휘부
해경지휘부가 저지른 가장 결정적인 잘못은 선장과 선원을 찾지 않은 것이었다. 흔히 선장과 선원들이 ‘도주’한 것을 참사의 핵심 원인으로 꼽지만 선장과 선원은 하늘로 솟거나 바다로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선장과 선원은 현장지휘함인 123정으로 옮겨 탔을 뿐이고, 해경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결국 그들을 도주하게 만들어준 것은 해경이었다.
‘큰 배는 쉽게 침몰하지 않는다’는 선입견에 빠져 안이한 태도로 일관하며 선장과 선원을 찾지 않고, 급박한 침몰 위험을 경고하는 현장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거나 분석하지 않았다. 상황실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고, 지휘부는 무능하고 무책임했다. 통신체계는 혼돈에 빠지고 상황실은 ‘아수라장’이 되어 지휘·보고 체계가 마비됐다. 어렵게 복원해 드러난 해경 통신체계의 혼란상은 눈으로 보면서도 차마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은 본청, 서해청, 목포해경 지휘부 가운데 코스넷 대화방을 제 눈으로 본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본청 지휘부의 지시가 123정을 비롯한 현장 구조세력에게 과연 전달되는지, 보고는 제대로 올라오는지, 털끝만큼이라도 궁금해한 지휘관이 있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날 해경의 지휘·보고 체계는 완벽한 실패로 끝났으며, 그러한 난맥상이 세월호 사고를 참사로 이끈 핵심 원인이라고 평가했다.
123정은 더 잘할 수 없었나
123정장 김경일은 세월호 선체에도, 바다 위에도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헬기와도 통신해서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다. 그런 그가 본청 상황실과 통화하고 목포해경 상황실로부터 목포서장의 지시를 전달받은 다음부터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소극적인 태도로 돌변했다. 그 이유를 찾는 것이 진상규명의 핵심 과제가 돼야 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해경지휘부는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사진과 영상 송출 및 보고 요구를 집요하게 되풀이했고, 123정장 김경일의 관심과 주의를 흩뜨리고 시간과 노력을 빼앗았다.
승객을 구조하는 데 훨씬 유리했던 초기 시간에 당장 영상과 사진을 촬영해 보내라는 지시가 쏟아진 것이다. … 김경일은 계속해서 사진을 찍고, 전화를 받고, 인터넷에 접속해 송신하고, TRS로 보고했다. 지시를 받은 시간과 지시를 이행한 시간을 빼면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시간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지휘부의 잘못된 지시는 김경일의 역량을 크게 잠식했을 것으로 보인다.(744-745쪽)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면죄부 받은 해경지휘부
기록팀은 해경지휘부에 대한 검찰 수사와 재판의 문제점도 짚었다. 해경지휘부에 대해 법원이 제시한 면책 근거, 즉 세월호가 선체 결함, 고박 불량, 과적, 수밀문 개방 등의 문제로 급격하게 침몰한 사실과, 선장과 선원들이 도주한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해야 했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검찰이 이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하지 않은 채 회피한 것은 재판 결과를 넘어 더욱 중요한 문제를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해경지휘부는 제일 먼저, 어떻게든, 무조건 선장과 선원을 찾아야 했다. 선장과 선원은 현장지휘함인 123정에 있었다. 해경이 그들을 도주하게 만들었다. 그들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장과 선원을 찾았다면, 도주를 막을 수 있었고, 침몰이 임박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검찰이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맞닥뜨리지 않은 것은 단지 소송 기술적인 선택이 아니라 ‘진실’에 대한 근본적 태도와 관련됐을 수도 있어 보인다. 있는 사실을 부정하고 외면하면서 ‘진상’을 ‘규명’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 다음,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진상규명이다. 책임을 묻는 것은 다음 문제다. 원칙에서 벗어나 처벌하려는 뜻만 앞세우다 보니 해경지휘부의 결정적 과실을 뒷받침할 수도 있는 사실들을 면책사유로 만들어주었다. (762쪽)
기록팀은 형사처벌을 ‘진상규명’의 목표로 삼은 듯한 우리 사회의 분위기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수사와 재판을 통한 진상규명을 추진하면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더 넓은 범위의 사회적 진실을 보지 못하게 되고, ‘범죄사실’을 직접 증명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이는 부분을 조사하는 데 소홀하게 된다.
유죄판결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진상을 규명했다고 할 수는 없는 반면 유죄판결을 받지 못하면 아무런 잘못도 없는 것 같은 착시현상이 확산될 수 있다. 더 큰 잘못을 저지른, 더 나쁜 사람을 찾아 형사처벌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10년간 싸워왔지만 해경지휘부가 전원 무죄를 받은 지금 우리 사회가 무겁게 돌아보아야 할 문제제기다.
법원이 해경지휘부를 무죄로 판결했다고 해서 그들의 무능과 무책임이 지워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판단이 가진 핵심 문제를 지적한다. 지휘부는 누구인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세월호 사고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가 성찰해야 할 문제다
해경지휘부에 대한 공소장과 판결문이 안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지휘관이 누구인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성찰이 없다는 점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해경지휘부는 있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다. 보고는 득달같이 요구하지만, 현장에서 보내오거나 하급자들이 전달해준 보고는 그저 듣기만 할 뿐이다. 적극적으로,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행동할 능력은 없다. 불확실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보내오면 의문을 제기하거나 확인하는 대신 그냥 ‘오인’해버린다. 지휘체계의 근간인 코스넷 대화방과 TRS가 작동하지 않고 ‘중구난방’이 돼, 상황실이 ‘아수라장’이 돼도 그저 지켜볼 뿐 바로잡지 않는다. 현장에서 할 일을 하지 않아도 그냥 두고 본다. 어떠한 목표도, 지침도 제시하지 않는다. … 그런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이 해경지휘부의 과실인데, 법원은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주었다. 이렇게 되면 지휘부는 위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하지 않을수록 안전하다.(763쪽)
탈출하려는 승객들의 발목을 잡은 선내 대기 방송의 족쇄에서 그들을 풀어줄 수 있는 약간의 자극이면 충분했다. 해경이 배에 올라 질서 있게 승객을 대피시켰으면 더 바랄 나위가 없었겠지만, 그것이 두려웠다면 그저 세월호에 다가가 123정에 달린 대공 마이크로 “승객들은 빨리 밖으로 나와 대피하라”고 방송하며 독려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바다로 나오기만 했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들어 승객을 구하려는 어선들과 어업지도선들이 있었고, 그 뒤에는 대형 상선들이 있었다. 바다는 잔잔했고, 날씨도 좋았다. 수온도 아주 차갑지 않아서, 구명복을 입고 바닷물에 떠 있기만 해도 세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도 참사로 이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현장에 있는 123정의 독자적 판단과 활동을 방해하며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조건을 계속 만들어내다가 결국 참담한 실패를 불러일으키고는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며 아래위로 책임만 전가하는 해경지휘부를 가진 것이 비극이었다.(783쪽)
4월 16일, 가장 절망적인 그날의 기록, 왜 읽어야 하는가?
이 고통의 기록을 정면으로 통과하지 않고서 우리는 그 어디로도 갈 수 없다. 참사의 기억은 미래로 향하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순응하려는 우리의 고개를 붙잡아 세운다. 이 책이 2016년에 기록했고 2024년에 새로 기록하고 있듯이, 세월호 참사는 규정을 지키지 않고, 관행을 멈추지 않고, 임무를 다하지 않은 이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들이 만들어냈다. 우리가 이 기록과 기억에서 도망치려 할 때, 하던 대로 하고 살던 대로 살려 할 때, 한국 사회는 2014년 4월 15일 세월호가 출항했던 그 밤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참사를 불러온 사회구조를 재생산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다. 한국 사회는 세월호의 기록과 기억을 붙들고서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10쪽) 접기
이 책은 특히 2017년 선체 인양 후 이뤄진 선조위와 사참위의 침몰 원인 조사, 특별검사의 수사, 해경지휘부에 대한 검찰 특수단의 수사와 재판기록은 물론 브룩스벨(BrooksBell)과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MARIN) 등 해외 전문기관의 조사와 시험, 대한조선학회의 공식 의견 등 지난 10년 동안 쌓인 모든 자료를 새로운 관점으로 검토·분석했다.
서문
세월호 사고 관련자 관계도 | 세월호 사고 관련 주요 재판 | 고소 · 고발 사건 결과 |
약칭 | 용어 설명 | 일러두기 | 화보
1부 그날, 101분의 기록
2014년 4월 16일, 병풍도 해상
1장 수학여행
늦은 출항 | 불꽃놀이
2장 사고 발생
맹골수도 | 급선회 | 첫 구조 요청 | 청해진해운이 맨 처음 한 일 | 기관부 선원, 도주 시작
3장 출동
쏟아지는 신고 전화 | 구명조끼 | “지금 침몰 중입니까?” | “나는 꿈이 있는데! 나는!” | 움직이지 않는 선원들
4장 해경
헬기와 123정 | 승객들
5장 도주와 탈출
선장과 선원들 | 지켜만 보는 123정 | 소방호스의 기적 | 특공대 | “애기, 여깄어요” | 창문을 깨다 | 침수
6장 전복
배에 들어오지 않는 해경 | “몰라요, 구조해준다는데” | 어업지도선, 어선, 화물차 기사
2부 “대한민국에서 제일 위험한 배”, 어떻게 태어났나
1장 비극의 시작
허위 계약서와 증선 인가 | 무리한 대출
2장 부실한 선박 검사와 운항 심사
방향부터 잘못된 증개축 | 부실한 선박 검사 | 한국선급의 변명 | 허울뿐인 시험운항과 운항관리규정
3장 무시된 경고 신호
누가 위험 신호를 읽어내야 했나
부록 먹이사슬
실소유자 유병언과 그 일가 | 청해진해운의 행방
3부 왜 침몰했나
1장 4월 15일 밤, 세월호는 여전히 취약하고 위험한 배였다
세월호의 화물칸 | 과적은 상습적이었다 | 화물 고박 불량도 상습적이었다 | 화물은 더 싣고 평형수는 빼고 |
사고 당시 세월호의 복원성 계산 | 결국 복원성이 문제였다 | 열려 있는 배 | 출항하지 말아야 했던 배
2장 마지막 항해
대각도 조타 가능성(1심 판결) | 조타 계통 고장 가능성(2심 판결) | 선조위의 솔레노이드 밸브 조사(2018년) |
좌현 방향 횡경사와 화물 이동 | 네덜란드 마린 연구소가 재구성한 세월호의 전복 | 침수와 침몰
3장 잠수함 충돌설
선조위의 외력설 조사 | 사참위의 잠수함 충돌설 조사 | 잠수함 충돌설의 기각
4장 세월호는 왜 침몰했는가
부록 AIS 항적을 둘러싼 의혹과 해소 과정
AIS | 누락 구간과 급선회 시점 | 선수 방향에 대한 의혹 | 해경이 본 “이동 중” | 세월호의 진짜 위치는 어디였나 |
AIS 항적 의혹의 해소
부록 세월호 CCTV를 둘러싼 의혹과 해소 과정
DVR 수거와 CCTV 영상 복원 | 풀리지 않는 의혹, “언제, 왜 꺼졌나?” | ‘DVR 바꿔치기 의혹’의 전개 |
‘CCTV 영상 파일 조작 의혹’의 전개 | 의혹의 해소
4부 왜 못 구했나
아리아케호 | 콩코르디아호 | 그리고 세월호
1장 승객을 버리고 도주한 선원들
세월호의 선원들 | 승객에 대한 선원의 의무 | ‘선내 대기’ 방송 | 선장의 도주와 선원들의 임무 |
선장을 대신한 간부 선원들의 책임
2장 진도VTS의 관제 실패
변칙 근무 | 흘려버린 초기 대응 시간 | 늦은 상황 파악 | 관제 실패의 의미 | 진도VTS의 세월호 교신
3장 상황 파악 못 하는 상황실
목포해경 상황실 | 무성의한 상황 파악 | 세월호와 교신하지 않은 목포해경 상황실 | ‘깜깜이’ 출동한 구조세력 |
어선 타고 간 구조대와 특공대 | 지휘부 보고 늦춘 본청 상황실 | 탈출 문의 무시한 서해청 |
통신체계도 모르는 상황실 | 본청 상황실의 안이한 인식
4장 지휘부의 난맥상
‘배로 볼 수도 없는’ 세월호 | 선장과 선원을 찾지 않다 | ‘큰 배는 쉽게 침몰하지 않는다’ |
현장에 가지 않은 지휘관들 | 현장 보고 무시한 지휘부 | 지휘체계 없는 다단계 구조본부 |
혼돈에 빠진 통신체계 | ‘아수라장’이 된 본청 상황실 | 책임 떠넘기는 책임자들 | 해경이 본 해경지휘부
5장 구조 실패
123정의 가능성과 의문 | “어떻게 선원인 줄 몰라요?” | 왜 가까이 가지 않았나 | 정말로 승객을 못 봤을까 |
123정은 더 잘할 수 없었나 | 김경일과 해경지휘부 재판
6장 정말 구할 수 있었나
구조세력과 시간 | 승객들은 탈출할 수 있었나
5부 다시 그날로 돌아가서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이 던지는 질문과 대답 | 왜 그날을 다시 기록하는가
감사의 글 『세월호, 그날의 기록』 후기 | 주
선조위 · 사참위 종합보고서 작성에 참여했고, 과학기술학의 관점에서 세월호 진상규명 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책소개
‘그날’을 만들어낸 원인과 ‘그날’의 실패에 집중한
부끄럽고 참담한 실패의 기록!
다시 ‘그날’이 돌아왔다.
그동안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에 얼마나 다가갔는가?
그동안 드러난 참사의 진상은 우리 사회를 생명과 안전의 가치를 지향하는 곳으로 바꾸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가?
2016년 『세월호, 그날의 기록』으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토대를 놓은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기록팀)이 지난 10년 동안 쌓인 질문을 다시 던지며, 진실의 조각들을 모아 분석한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을 내놓았다. 이 책은 특히 2017년 선체 인양 후 이뤄진 선조위와 사참위의 침몰 원인 조사, 특별검사의 수사, 해경지휘부에 대한 검찰 특수단의 수사와 재판기록은 물론 브룩스벨(BrooksBell)과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MARIN) 등 해외 전문기관의 조사와 시험, 대한조선학회의 공식 의견 등 지난 10년 동안 쌓인 모든 자료를 새로운 관점으로 검토·분석했다.
선원들은 세월호를 “대한민국에서 제일 위험한 배”라고 불렀다. 기록팀은 그 이유를 정밀하게 추적해 세월호 침몰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정리했다.
세월호가 오른쪽으로 급선회하면서 왼쪽으로 기울어진 최초의 원인은 무엇이었나? 그 원인은 길이 145.6미터, 높이 14미터, 무게 6,825톤에 달하는 거대한 여객선을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이었나?
476명이 탄 여객선이 먼바다에서 급격하게 침몰했다면 참사는 불가피한 것이었나?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은 해경이 구조에 실패한 원인을 새로운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날 해경지휘부가 무슨 일을 했고 무슨 일을 하지 않았는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이유는 무엇인지 짚으며 가장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할 해경이 가장 무책임하게 행동해 결국 구조에 실패한 과정을 밝혔다. 누가 잘못했는가’라는 질문에서 멈추지 않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을 서술의 중심에 놓는다.
10년 동안 쌓인 기록을 토대로
그날로 돌아가서 쓴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은 정상적인 배였다면 작은 소동으로 끝났을 기계적 결함이 불과 101분 만에 침몰로 이어진 과정을 분석했다. 이와 함께 선조위와 사참위가 잠수함 충돌설을 기각하는 대신 번번이 애매모호한 답을 내놓은 과정을 정리하고 비판했다.
사참위가 실망스러운 결론을 내놓고 끝난 2022년, <진실의 힘>은 기록팀을 새롭게 구성했다. 국가 차원의 공적 조사가 진행될수록 오히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의 열망과 의지가 흐려지고 실망이 커지는 것을 보면서 『세월호, 그날의 기록』을 더 확장, 심화하고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을 제대로 정리해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증언과 기록을 통해 생생하게 재현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은 2014년 4월 16일 8시 49분 세월호가 급격히 우회전한 순간의 조타실 상황, 승객들을 버리고 가장 먼저 도주한 기관부 선원들의 대화, 해경 경비정을 본 선원들의 행동, 학생들의 문자대화와 동영상 내용뿐 아니라,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해경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담았다.
10시 35분, 가라앉아버린 배에 갇혀 있을 승객을 구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이 홍보에 필요한 ‘멋진’ 장면을 확보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린 해경 본청 경비안전국장과 서해청 상황담당관의 통화내용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해경의 민낯을 드러낸다.
본청: 아, 그러니까 진작 좀 내려서 그림이 됐어야 되는데 지금 그게 문제란 말이에요. 못 올라가면 우리가 올라가갖고 유도한 걸 보여줬어야 되는데.
서해청: 지시는 해놨는데 아직 이행을 안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본청: 지금 거기 승객들은 거의 다 나왔어요? 배에서?
서해청: 예, 그런데 지금 119에서 학생 하나가 안 나왔다고 119 쪽으로 전화가
왔다고 했는데 지금 확인이 안 되고 있습니다.
본청: 그러니까 그러면 대부분 다 나왔다는 얘기에요? 선내에는 없다는 얘기예요?
서해청: 예. 그전부터 계속 기울어지면서 사람이 나와 있었기 때문에, 내부 수색은
정확하게 안 했는데, 거의 다 나온 걸로 지금 확인이 되는데, 문이 안 열린다는 전화는 한 번 받았다고.(590쪽)
“대한민국에서 제일 위험한 배”의 탄생
세월호는 4월 16일 아침 무엇을 계기로, 또 어떤 조건의 연쇄 속에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기울어졌고 101분 만에 가라앉고 말았나? 2014년 4월 15일 화요일 밤, 마지막으로 인천항을 떠날 때 어떤 상태였나? 배의 무게중심은 얼마나 높았나? 화물과 평형수는 어떻게 실려 있었나? 배의 기관실은 어떻게 관리했나? 세월호는 출항해도 괜찮은 배였나?
청해진해운이 18년 된 낡은 선박을 일본에서 도입하며 서류의 수치를 조작하고, 무리하게 증개축한 과정, 운항 허가, 시험운항, 실제 운항과 4월 15일 밤 출항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검토해서, 선원들 스스로 “대한민국에서 제일 위험한 배”라고 부를 만큼 세월호가 위험하고 취약하게 된 경위를 하나하나 짚었다.
증개축 내역이 바뀔 때마다 도면을 수정하고, 신성선박설계가 한국선급에서 교체 도면을 재승인받는 일이 반복됐다. 너무 “여러 번”이었다. … 도면 승인 과정이 번거로워지자 청해진해운은 “승인이 되지 않은 도면”으로 증개축을 진행해버렸다. (224-225쪽)
증개축과 복원성계산서 승인 후에도 운항관리규정 승인, 운항할 때마다 해야 하는 복원성 계산, 화물량 확인, 고박 상태 검사 등 위험한 배가 사고를 일으키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운항관리규정 승인 과정은 해경을 접대하는 자리로 변질되고, 화물량과 고박 상태 검사, 복원성 계산은 배 바깥에서 육안으로 대충 흘수선만 확인하는 것으로 무력화됐다. 결국 청해진해운이 이익을 내기 위해 화물을 과적하고 그 대신 평형수를 빼내는 방식으로 운항하는 것을 잡아낼 수 없었다.
세월호가 4월 15일에 출항하기까지 있었던 일은 승객의 생명을 걸고 하는 모래뺏기 놀이와 같았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모래더미 가운데 꽂아놓은 막대기가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야금야금 모래를 자기 쪽으로 빼내는 놀이였다. 청해진해운과 하청업체들, 한국선급, 한국해운조합과 운항관리자, 선장과 선원, 해경 등은 승객 수백 명이 타는 배를 가운데 올려두고 주위의 모래를 빼내듯이 배를 변형시키고, 과도하게 화물을 싣고, 서류를 꾸미고, 규제를 무력화했다. … 위험한 놀이를 끝낼 위치에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국 놀이는 막대기가 쓰러질 때까지 계속됐다.(788쪽)
세월호는 왜 침몰했나?
세월호가 오른쪽으로 급격히 선회하면서 왼쪽으로 기울어진 직접 원인은 기계적 결함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침몰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 기록팀의 평가다. 정상적인 배였다면,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은 배가 약간 기울어진 채 크게 원을 그리며 선회하는 정도의 소동으로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제 힘으로는 물 위에 떠 있지도 못하는 “배 아닌 배”는 작은 고장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오른쪽으로 빠르게 선회하면서 왼쪽으로 과도하게 기울어졌고, 부실하게 고박한 화물들이 함께 쏠리면서 복원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세월호가 101분 만에 빠르게 침몰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열려 있는 배”였다는 점이다. 수밀문과 맨홀을 열어놓은 채 운항하던 선원들이 그 상태로 방치하고 빠져나간 것이 빠른 침몰의 원인이자 “304명의 생사를 가른 결정적 순간 중 하나”였다.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은 세월호 침몰의 책임을 4월 16일 아침에 고착된 솔레노이드 밸브에 물을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일본에서 들여온 배를 결국 그런 상태가 되도록 만들고 4월 15일 밤 지극히 위험한 상태에서 출항시킨 후 수밀구획을 열어두는 등 관행적으로 선체를 관리한 조직과 제도에 더 큰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잠수함 충돌설’, 근거가 있나?
“열린안” 또는 “외력설”이라고도 불린, 미상의 수중물체가 세월호에 충돌해서 배를 쓰러뜨리고 사라졌다는 이 주장은 근거가 있는 것이었나?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은 결국 잠수함 충돌을 의미하는 이 주장이 과연 믿을 만한 것이었는지, 객관적 증거와 사실에 기초한 의혹이었는지 하나하나 따져 물은 다음, 잠수함 충돌설은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강조한다.
세월호를 전복시킬 만한 큰 힘을 가하면서도 세월호 외판이나 핀안정기를 크게 망가뜨리지는 않는 잠수함, 세월호를 우현으로 빠르게 회전시키는 동시에 좌현으로 빠르게 기울게 만드는 잠수함, 오래 누적된 복원성 문제를 가려버릴 만큼 명확한 충돌의 증거를 남긴 잠수함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 세월호를 침몰시킨 잠수함은 오직 상상의 세계에서 존재했을 뿐 컴퓨터가 가상(假想)으로 만들어낼 수조차 없는 모순덩어리였다.(402쪽)
잠수함 충돌설을 굳게 믿는 이들은 그 믿음에 부합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우제식’ 조사를 하며 공식 조사위원회의 자원과 인력과 시간을 과도하게 투입했다. 그렇게까지 했음에도 잠수함 충돌의 근거를 찾지 못했다면, 사참위는 잠수함 충돌설을 기각해야 했다.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은 수백만 시민의 염원이 담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책임을 맡은 조사위원회가 추구한 진상 혹은 진실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묻는다.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은 잠수함 충돌설 외에도 AIS 조작설, 세월호 CCTV 등 항해기록 조작설, 123정에 옮겨 탄 세월호 기관장 박기호가 ‘관청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는 주장, 2014년 4월 17일 해경이 세월호 선장 이준석을 집에 데려가서 재우게 된 경위 등 음모론의 확산과 연결된 각종 의혹들이 어떻게 제기됐고, 진상은 무엇인지도 정리했다.
‘구조 실패’ 분석의 결정판!
세월호가 침몰할 수밖에 없는 배였다면 그 배에 탄 승객들의 운명도 사고 당시 결정되었나? 참사는 불가피한 결과였나?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은 세월호가 예상보다 빨리 침몰한 것은 사실이지만 승객들이 배와 함께 희생돼야 할 이유는 없었다고 답한다.
2016년에는 알 수 없었던 해경지휘부의 움직임을 새로운 관점에서 분석하고 평가한 것은 이 책의 중요한 성과다. 기록팀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해경의 각급 상황실과 지휘부의 무능과 무책임, 해경 조직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한 해경 구성원들의 증언을 통해 “그날 해경의 실패는 조직적, 체계적이었다”고 강조한다.
상식적으로도 생각할 수 있는 “기본 중의 기본”을 이행하지 않은 것이 참사로 이어진 결정적 고리였다. 선장과 선원을 찾지 않았으니 침몰이 임박한 세월호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고, 승객을 대피시켜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123정과 해경지휘부가 바로 그 “기본 중의 기본”을 이행하지 못한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진상규명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돼야 했다.(605쪽)
선장과 선원을 찾지 않은 해경지휘부
해경지휘부가 저지른 가장 결정적인 잘못은 선장과 선원을 찾지 않은 것이었다. 흔히 선장과 선원들이 ‘도주’한 것을 참사의 핵심 원인으로 꼽지만 선장과 선원은 하늘로 솟거나 바다로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선장과 선원은 현장지휘함인 123정으로 옮겨 탔을 뿐이고, 해경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결국 그들을 도주하게 만들어준 것은 해경이었다.
‘큰 배는 쉽게 침몰하지 않는다’는 선입견에 빠져 안이한 태도로 일관하며 선장과 선원을 찾지 않고, 급박한 침몰 위험을 경고하는 현장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거나 분석하지 않았다. 상황실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고, 지휘부는 무능하고 무책임했다. 통신체계는 혼돈에 빠지고 상황실은 ‘아수라장’이 되어 지휘·보고 체계가 마비됐다. 어렵게 복원해 드러난 해경 통신체계의 혼란상은 눈으로 보면서도 차마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은 본청, 서해청, 목포해경 지휘부 가운데 코스넷 대화방을 제 눈으로 본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본청 지휘부의 지시가 123정을 비롯한 현장 구조세력에게 과연 전달되는지, 보고는 제대로 올라오는지, 털끝만큼이라도 궁금해한 지휘관이 있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날 해경의 지휘·보고 체계는 완벽한 실패로 끝났으며, 그러한 난맥상이 세월호 사고를 참사로 이끈 핵심 원인이라고 평가했다.
123정은 더 잘할 수 없었나
123정장 김경일은 세월호 선체에도, 바다 위에도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헬기와도 통신해서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다. 그런 그가 본청 상황실과 통화하고 목포해경 상황실로부터 목포서장의 지시를 전달받은 다음부터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소극적인 태도로 돌변했다. 그 이유를 찾는 것이 진상규명의 핵심 과제가 돼야 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해경지휘부는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사진과 영상 송출 및 보고 요구를 집요하게 되풀이했고, 123정장 김경일의 관심과 주의를 흩뜨리고 시간과 노력을 빼앗았다.
승객을 구조하는 데 훨씬 유리했던 초기 시간에 당장 영상과 사진을 촬영해 보내라는 지시가 쏟아진 것이다. … 김경일은 계속해서 사진을 찍고, 전화를 받고, 인터넷에 접속해 송신하고, TRS로 보고했다. 지시를 받은 시간과 지시를 이행한 시간을 빼면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시간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지휘부의 잘못된 지시는 김경일의 역량을 크게 잠식했을 것으로 보인다.(744-745쪽)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면죄부 받은 해경지휘부
기록팀은 해경지휘부에 대한 검찰 수사와 재판의 문제점도 짚었다. 해경지휘부에 대해 법원이 제시한 면책 근거, 즉 세월호가 선체 결함, 고박 불량, 과적, 수밀문 개방 등의 문제로 급격하게 침몰한 사실과, 선장과 선원들이 도주한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해야 했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검찰이 이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하지 않은 채 회피한 것은 재판 결과를 넘어 더욱 중요한 문제를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해경지휘부는 제일 먼저, 어떻게든, 무조건 선장과 선원을 찾아야 했다. 선장과 선원은 현장지휘함인 123정에 있었다. 해경이 그들을 도주하게 만들었다. 그들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장과 선원을 찾았다면, 도주를 막을 수 있었고, 침몰이 임박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검찰이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맞닥뜨리지 않은 것은 단지 소송 기술적인 선택이 아니라 ‘진실’에 대한 근본적 태도와 관련됐을 수도 있어 보인다. 있는 사실을 부정하고 외면하면서 ‘진상’을 ‘규명’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 다음,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진상규명이다. 책임을 묻는 것은 다음 문제다. 원칙에서 벗어나 처벌하려는 뜻만 앞세우다 보니 해경지휘부의 결정적 과실을 뒷받침할 수도 있는 사실들을 면책사유로 만들어주었다. (762쪽)
기록팀은 형사처벌을 ‘진상규명’의 목표로 삼은 듯한 우리 사회의 분위기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수사와 재판을 통한 진상규명을 추진하면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더 넓은 범위의 사회적 진실을 보지 못하게 되고, ‘범죄사실’을 직접 증명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이는 부분을 조사하는 데 소홀하게 된다.
유죄판결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진상을 규명했다고 할 수는 없는 반면 유죄판결을 받지 못하면 아무런 잘못도 없는 것 같은 착시현상이 확산될 수 있다. 더 큰 잘못을 저지른, 더 나쁜 사람을 찾아 형사처벌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10년간 싸워왔지만 해경지휘부가 전원 무죄를 받은 지금 우리 사회가 무겁게 돌아보아야 할 문제제기다.
법원이 해경지휘부를 무죄로 판결했다고 해서 그들의 무능과 무책임이 지워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판단이 가진 핵심 문제를 지적한다. 지휘부는 누구인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세월호 사고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가 성찰해야 할 문제다
해경지휘부에 대한 공소장과 판결문이 안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지휘관이 누구인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성찰이 없다는 점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해경지휘부는 있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다. 보고는 득달같이 요구하지만, 현장에서 보내오거나 하급자들이 전달해준 보고는 그저 듣기만 할 뿐이다. 적극적으로,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행동할 능력은 없다. 불확실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보내오면 의문을 제기하거나 확인하는 대신 그냥 ‘오인’해버린다. 지휘체계의 근간인 코스넷 대화방과 TRS가 작동하지 않고 ‘중구난방’이 돼, 상황실이 ‘아수라장’이 돼도 그저 지켜볼 뿐 바로잡지 않는다. 현장에서 할 일을 하지 않아도 그냥 두고 본다. 어떠한 목표도, 지침도 제시하지 않는다. … 그런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이 해경지휘부의 과실인데, 법원은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주었다. 이렇게 되면 지휘부는 위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하지 않을수록 안전하다.(763쪽)
탈출하려는 승객들의 발목을 잡은 선내 대기 방송의 족쇄에서 그들을 풀어줄 수 있는 약간의 자극이면 충분했다. 해경이 배에 올라 질서 있게 승객을 대피시켰으면 더 바랄 나위가 없었겠지만, 그것이 두려웠다면 그저 세월호에 다가가 123정에 달린 대공 마이크로 “승객들은 빨리 밖으로 나와 대피하라”고 방송하며 독려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바다로 나오기만 했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들어 승객을 구하려는 어선들과 어업지도선들이 있었고, 그 뒤에는 대형 상선들이 있었다. 바다는 잔잔했고, 날씨도 좋았다. 수온도 아주 차갑지 않아서, 구명복을 입고 바닷물에 떠 있기만 해도 세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도 참사로 이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현장에 있는 123정의 독자적 판단과 활동을 방해하며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조건을 계속 만들어내다가 결국 참담한 실패를 불러일으키고는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며 아래위로 책임만 전가하는 해경지휘부를 가진 것이 비극이었다.(783쪽)
4월 16일, 가장 절망적인 그날의 기록, 왜 읽어야 하는가?
이 고통의 기록을 정면으로 통과하지 않고서 우리는 그 어디로도 갈 수 없다. 참사의 기억은 미래로 향하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순응하려는 우리의 고개를 붙잡아 세운다. 이 책이 2016년에 기록했고 2024년에 새로 기록하고 있듯이, 세월호 참사는 규정을 지키지 않고, 관행을 멈추지 않고, 임무를 다하지 않은 이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들이 만들어냈다. 우리가 이 기록과 기억에서 도망치려 할 때, 하던 대로 하고 살던 대로 살려 할 때, 한국 사회는 2014년 4월 15일 세월호가 출항했던 그 밤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참사를 불러온 사회구조를 재생산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다. 한국 사회는 세월호의 기록과 기억을 붙들고서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10쪽) 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