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단체/연대[전문] 스텔라 데이지호 선원 가족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보내는 서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님께

 

 

촛불혁명에 힘입어 문재인정권이 집권한 지 60여일이 되었습니다. 처음 대통령이 당선될 때까지만 해도 저희 스텔라 데이지호 가족들은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대통령이 아니라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지만, 당선이 된다면 그 후에는 대책반을 만들어서 대응하도록 하겠다’는 말씀만 철석같이 믿고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들은 그동안 헛된 희망고문을 당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7월 11일, 청와대 사회혁신수석실 이하 정부부처에서는 가족들에게 사실상의 수색중단을 일방적으로 통보해왔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외교부 영사국장은 해난사고를 2주 이상 수색해준 사례는 거의 없었다면서 우리에게 엄청난 특혜라도 베풀어주었다는 듯한 태도를 보입니다.

 

해양수산부 해사안전국장은 현실적으로 배보상을 논할 시기이니, 선사와 잘 이야기해서 돈으로 마무리 지으라며, 공무원으로서 해서 안될 말을 당당히 합니다.

 

그러나 강경화 장관님! 주무부처인 외교부 장관으로서 이번 수색재개가 얼마나 엉터리로 진행되었는지 정확히 알고 계십니까?

 

최초에 해수부와 해경에 의해서 설정되었던 수색구역은 가족과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갑자기 축소되었습니다. 수색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가족들이 항의하자, 수색구역을 일부 확대조정하는 대신 수색선박이 항행하는 간격을 4km에서 8km, 즉 두 배로 벌려 듬성듬성 수색하면서 수색구역 전체를 대강 훑어버리고 수색을 완결했다고 주장합니다.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도 지난 6월30일 가족과의 면담에서 선원들의 생존가능성을 인정했습니다. 전문가들도 입을 모아 충분히 살아있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단 한사람이라도 안전 때문에 눈물 흘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던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우리에게 가족의 생명을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 있습니까?

 

실종선원 가족들은 장관님께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을 요청 드립니다.

 

1. 수색을 종료한다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해주십시오. 가족들은 정부가 또다시 합리적 근거와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수색종료 사실을 통보했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청와대가 주도하여 재개했던 집중수색을 갑자기 종료한다면 가족들은 적법한 권한을 가진 자로부터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습니다. 지난 5월 문자 한 통으로 수색종료를 통보해왔던 전 정권의 작태나 과장급 몇 명이 모여 일방적으로 수색종료를 통보하는 현 정권의 행태가 가족들에게 무엇이 다르다는 말입니까? 예산 10억이 없어서 국민생명과 안전을 포기하겠다는 것입니까?

 

그간 집중수색을 재개했다면서도 침몰선박에 탑재되어 있던 200여 개의 부유가능 물품 중 단 한 개의 부유물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길이 6.5m나 되는 구명보트의 하판조차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수색구역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수색을 종료하는 객관적이고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심해수색장비를 넣어 구명벌이 침몰 선박에 걸려 뜨지 못하여 남대서양 바닷속에 있다는 것을 사진으로 확인시켜주십시오. 해수면 위에 있던, 바닷속에 있던 끝까지 구명벌을 찾아 적어도 국민의 생사를 확인시켜 주는 책임있는 국가의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2. 사고해역 주변의 섬을 수색해 주십시오. 사고 후 100일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조류의 속도를 감안했을 때 2~3,000km 거리의 섬까지 표류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수색구역은 사고해역에서 500km 이내에만 머물렀습니다. 헬리콥터, 드론 등 섬 수색을 할 수 있는 장비를 투입하여 근처 모든 섬을 수색해야 합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가족들이 나서서 어떻게든 재원을 조달하여 섬수색 방도를 강구하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국민의 생명이 경각에 처해 있음에도 정부부처는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지만, 그래도 가족은 그들을 포기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에서는 국민 생명구조의 포기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3. 미초계기가 발견한 구명벌 추정물체에 대한 의혹을 명확히 밝혀주십시오.

지난 4월 8일 미 P-8 초계기 포세이돈 호가 ‘yellow-orange liferaft’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5시간이 지난 후에야 구조선박이 발견 좌표로 이동했고, 도착 시간은 이미 늦은 밤이었으며 그 후 이틀간 기상악화로 인해 수색이 불가했기 때문에 결국 구조에 실패하고 놓쳐버렸습니다.

외교부에서는 4월 9일부터 미 초계기가 촬영한 구명벌 사진을 전달해주겠다고 했었지만, 석 달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가족은 아무런 사진도 받지 못했습니다. 저희는 분명히 그 물체가 애타게 찾고 있는 구명벌이 맞다고 믿습니다. 외교부는 기름띠를 잘못 본 것일 뿐 구명벌이 아니라고 변명하고 있지만, 정작 기름띠라는 증거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루과이 MRCC에서는 미국으로부터 받은 구명벌 사진을 한국 공관에 넘겨주었다는 진술까지 나온 바 있습니다. 외교부는 처음의 약속대로 가족에게 구명벌 사진을 제공해주시고, 정말 구명벌이 아니라고 한다면 기름띠로 판독한 판독 영상을 제공해주십시오.

 

희망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잔인한 폭력입니다. 국가는 먼저 국민의 생명을 포기하면 안됩니다. 대한민국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나라입니까?

취임 당시부터 새로운 롤모델을 보여주셨던 장관님께서 이제 저희가 믿고 살 수 있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주시는데 앞장서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17년 7월 13일

스텔라 데이지호 선원 가족 일동

 

 

 

▲외교부 청사 앞 스텔라 데이지호 선원 가족들의 농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