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신항 세월호 참관기]
‘미안합니다’
서울 성동구 박완신님
오늘은 세월호 참사 이후 1178일 세월호 아픔을 나누는 광화문 미사입니다.
이 미사는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저녁 7시 반에 2014년 세월호참사 이후 봉헌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미사에 참여하는 방법으로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옷에 리본을 달고, 가끔은 만들며 애도와 추모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달력에 적어놓은 7월 1일 목포 신항행 오전 8시 반 세월호 광장 집결!
“4.16연대와 목포 신항으로 함께 갑니다”
이 알림문자를 받았을 때는 ‘가고는 싶지만 지인도 없이 먼 거리인데 괜찮을까?’라는 불안과 ‘또 다시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라는 아쉬움 때문에 며칠을 혼자 고민했지만 막상 신항행 1호차에 오를 때에는 ‘팽목에서 만났던 검은 바다 속의 배가 아닌 아이들이 몸을 실었던 세월호를, 아니 그 아이들을 드디어 만나러간다’는 반가움과 그리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뵙는 분들과 그들로 자리가 채워진 우리의 목포 신항행 버스는 한가지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의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이유란 것은 찾을 수 없고 연대라는 이타적인 마음으로 충만하여 예민하고 낯설음의 어린마음을 위로해 주는 듯 했습니다.
일반시민들로서는 처음으로 제한구역 안으로 들어가 세월호의 모습을 가까이 보게 될 것이라며 생년월일을 적는 동안에도 그 의미를 알지 못했는데 겹겹이 쳐놓은 통제구역 라인은 이곳이 추모와 애도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이곳은 미수습자를 수습해야하는 현장이며 안전하게 수습될 수 있도록 긴장하고 서로를 격려해야하는 곳임을 명심하도록 했습니다. 통제라인 밖에서 눈물 흘리며 서성이다가 가까이 다가갔던 세월호는, 바다 밖으로 건져 올려져 땅 위에 비스듬히 옆으로 누워있어 실제보다 더 크고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여기저기 찢기고 녹슬고 구멍이 난 아픈 세월호는, 그 초라한 그 몸으로 언제까지 누워 있기만 할 것이냐는 말을 눈치 없이 듣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박영인 학생, 남현철 학생, 양승진 선생님, 권재근님과 그의 아들 혁규군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외침을 못들은 척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고 당시로 시간을 되돌려 희생자들을 구조하고 싶다는 바램과 신속하게 서둘러 마지막 한 사람까지 다 구조하고 싶다는 애탐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못함이라는 안타까움이 한이 되어 치가 떨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머리를 풀고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세월호를 지키고 있는 유가족들은 그 배에 마치 자식이 있는 것처럼 아니면 ‘내 자식이 타고 있었던’ 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옆에서 아이같이 웃고 계셨습니다. 아이들이 타고 있던 배 가까이에 있으면 ‘엄마’ ‘아빠’ 하던 내 자식과 함께 있는 것 같아서 일까요? 내가 지키지 못한 아이들을 이제라도 지키겠다는 각오와 책임감이 짙게 느껴졌습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사과대신 유감이라며 “왜 자꾸 그러냐”고 짜증을 냈었고 정작 원망해야할 사람을 제치고서 사건을 일으킨 그들은 도리어 화를 내며 그만하라고 용서하고 싶은 마음을 용서할 수 없게끔 이끌어 갔었습니다.
힘들고 지쳐 정말 그만해야 하는 사람보다 울며 통곡하며 사죄해야 할 그들은 마치 시원한 나무그늘에 앉아 “왜?” 하고 물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들의 잘못이 들통날까 전전긍긍 부끄러워 그만하라고 하는 것이었을까요? 이보다 더 가슴 아픈 상처를 많이 끌어안고 있기에 괴로워서 화를 내는 것이었을까요? 이유를 묻고 싶습니다.
또한 사고 이전의 평범했던 삶으로 돌아가기 힘든 유가족들을 위로합니다.
평탄치 않고 꽃길이 아닌 같이 편안해야 나도 편한, 힘든 길을 택하신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말 못하는 검푸른 바다는 몸으로 대신 사과합니다.
침묵 속에서 ‘미안합니다’ 라고.

▲ [사진1] 목포신항을 방문한 서울지역 시민들

▲ [사진2] 희생자를 추모하고, 미수습자 모두 하루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하며 세월호 앞에서 묵념하고 있는 서울지역 시민들

▲ [사진3] 바다 밖으로 건져 올려져 땅 위에 비스듬히 옆으로 누워있어 실제보다 더 크고 무겁게 느껴지는 세월호
[목포신항 세월호 참관기]
‘미안합니다’
서울 성동구 박완신님
오늘은 세월호 참사 이후 1178일 세월호 아픔을 나누는 광화문 미사입니다.
이 미사는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저녁 7시 반에 2014년 세월호참사 이후 봉헌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미사에 참여하는 방법으로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옷에 리본을 달고, 가끔은 만들며 애도와 추모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달력에 적어놓은 7월 1일 목포 신항행 오전 8시 반 세월호 광장 집결!
“4.16연대와 목포 신항으로 함께 갑니다”
이 알림문자를 받았을 때는 ‘가고는 싶지만 지인도 없이 먼 거리인데 괜찮을까?’라는 불안과 ‘또 다시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라는 아쉬움 때문에 며칠을 혼자 고민했지만 막상 신항행 1호차에 오를 때에는 ‘팽목에서 만났던 검은 바다 속의 배가 아닌 아이들이 몸을 실었던 세월호를, 아니 그 아이들을 드디어 만나러간다’는 반가움과 그리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뵙는 분들과 그들로 자리가 채워진 우리의 목포 신항행 버스는 한가지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의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이유란 것은 찾을 수 없고 연대라는 이타적인 마음으로 충만하여 예민하고 낯설음의 어린마음을 위로해 주는 듯 했습니다.
일반시민들로서는 처음으로 제한구역 안으로 들어가 세월호의 모습을 가까이 보게 될 것이라며 생년월일을 적는 동안에도 그 의미를 알지 못했는데 겹겹이 쳐놓은 통제구역 라인은 이곳이 추모와 애도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이곳은 미수습자를 수습해야하는 현장이며 안전하게 수습될 수 있도록 긴장하고 서로를 격려해야하는 곳임을 명심하도록 했습니다. 통제라인 밖에서 눈물 흘리며 서성이다가 가까이 다가갔던 세월호는, 바다 밖으로 건져 올려져 땅 위에 비스듬히 옆으로 누워있어 실제보다 더 크고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여기저기 찢기고 녹슬고 구멍이 난 아픈 세월호는, 그 초라한 그 몸으로 언제까지 누워 있기만 할 것이냐는 말을 눈치 없이 듣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박영인 학생, 남현철 학생, 양승진 선생님, 권재근님과 그의 아들 혁규군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외침을 못들은 척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고 당시로 시간을 되돌려 희생자들을 구조하고 싶다는 바램과 신속하게 서둘러 마지막 한 사람까지 다 구조하고 싶다는 애탐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못함이라는 안타까움이 한이 되어 치가 떨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머리를 풀고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세월호를 지키고 있는 유가족들은 그 배에 마치 자식이 있는 것처럼 아니면 ‘내 자식이 타고 있었던’ 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옆에서 아이같이 웃고 계셨습니다. 아이들이 타고 있던 배 가까이에 있으면 ‘엄마’ ‘아빠’ 하던 내 자식과 함께 있는 것 같아서 일까요? 내가 지키지 못한 아이들을 이제라도 지키겠다는 각오와 책임감이 짙게 느껴졌습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사과대신 유감이라며 “왜 자꾸 그러냐”고 짜증을 냈었고 정작 원망해야할 사람을 제치고서 사건을 일으킨 그들은 도리어 화를 내며 그만하라고 용서하고 싶은 마음을 용서할 수 없게끔 이끌어 갔었습니다.
힘들고 지쳐 정말 그만해야 하는 사람보다 울며 통곡하며 사죄해야 할 그들은 마치 시원한 나무그늘에 앉아 “왜?” 하고 물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들의 잘못이 들통날까 전전긍긍 부끄러워 그만하라고 하는 것이었을까요? 이보다 더 가슴 아픈 상처를 많이 끌어안고 있기에 괴로워서 화를 내는 것이었을까요? 이유를 묻고 싶습니다.
또한 사고 이전의 평범했던 삶으로 돌아가기 힘든 유가족들을 위로합니다.
평탄치 않고 꽃길이 아닌 같이 편안해야 나도 편한, 힘든 길을 택하신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말 못하는 검푸른 바다는 몸으로 대신 사과합니다.
침묵 속에서 ‘미안합니다’ 라고.
▲ [사진1] 목포신항을 방문한 서울지역 시민들
▲ [사진2] 희생자를 추모하고, 미수습자 모두 하루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하며 세월호 앞에서 묵념하고 있는 서울지역 시민들
▲ [사진3] 바다 밖으로 건져 올려져 땅 위에 비스듬히 옆으로 누워있어 실제보다 더 크고 무겁게 느껴지는 세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