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보고]
세월호참사 10주기 🎗️4.16기억문화제 서울에서 개최,
“피해자와 시민이 함께 변화시켜온 10년”
진실, 책임, 생명, 안전 “세월이 지나도 우리는 잊은 적 없다”
🟡 일시 : 4월 13일 (토) 오후 5:30
🟡 장소 : 서울 시청 앞
세월호참사 10주기를 앞둔 지난 2024년 4월 13일 토요일, 서울 시청 앞에서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세월호참사10주기위원회가 공동주관하여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4.16기억문화제를 개최하였습니다.
오후 3시 30분부터 사전행사로 시민참여형 부스가 열렸고,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 자유발언대 (“나의 노란리본" 오픈마이크)를 진행했습니다. 오후 5시 30분부터 본행사로 세월호참사 피해자와 이태원참사 피해자, 4.16연대 공동대표와 4.16세대의 발언을 들었으며, 가수 루시드폴, 떼루아 유스콰이어 합창단, 성악가 홍일, 4,160 서울시민대합창 <세월의 울림>의 공연을 보았습니다. 약 5천명의 시민이 현장에서 함께 해주셨습니다.
오후 3시 반부터 본행사에 앞서 시민참여형 부스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프레스센터 앞은 세시부터 가방에 노란리본을 단 많은 시민분들로 북적였습니다. 세월호참사 기억추모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나누고 노란종이배를 접는 부스,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대학생들의 사진전 등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다양한 부스들에 시민들이 참여했습니다.
안양 노란리본공방의 노란나비 입양소에서 직접 한지로 만든 노란나비를 나누어 참여한 시민들의 어깨와 머리에 각각 노란나비가 앉았습니다.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이 어디까지 밝혀졌는지 알리는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Q&A 부스가 운영되어 퀴즈와 함께 진상규명 현황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시민참여형 부스에는 세월호참사 뿐만 아니라 10.29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와 오송참사 시민대책위원회가 참여하여 참사의 진상규명 현황을 알렸습니다. 기억과 추모의 메세지를 남길 수 있는 기억과 생명의 나무에 시민들이 기억과 추모의 메세지를 남기고 보라색 리본과 초록색 리본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재난참사로부터의 안전과 함께 사회적 약자의 안전을 외치는 여성, 장애인 시민단체도 함께 했습니다. 기후재난으로부터의 안전, 기후정의를 외치는 환경단체들의 다양하고 참신한 부스들에도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버려지는 현수막을 재사용한 실크스크린 키링을 나누고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녹색교통 플랫폼을 알렸습니다. 생태도시를 함께 만드는 방법을 알리기도 하며, 참가한 시민들에게 안전사회를 위하여 재난참사를 기억할 뿐만 아니라, 기후재난을 대비할 국가의 책임을 알려 기후위기에도 관심을 가지고 함께 행동할 수 있는 계기를 주었습니다.
4시 16분에 맞춰,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 “나의 노란리본”오픈마이크가 진행되었습니다. 진행을 본 인권운동공간 활 랑희 상임활동가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모여 앉았습니다.
첫 발언으로 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희정 작가가 마이크를 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14년 6월부터 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희정이라고 합니다. 작가기록단은 올해 10주기를 앞두고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의 10년 활동 백서인 ‘520번의 금요일’과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를 함께 펴냈습니다. 기록하면서 가족들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이야기도 많이 듣게 됩니다.
올해 초 한 시민에게 이런 말을 듣고 마음에 깊은 울림이 왔습니다. 노란리본은 사람이 만든다. 사람 없이는 안되는 일이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노란리본이 언뜻 다 똑같아보이지만, 사실 똑같은 리본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건 다 사람이 하나하나 만드니까요. 세월호 관련 행사나 기억공간에 가면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저는 이 리본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분의 말씀을 듣는 순간, 세월호 가족들의 곁을 지켜온 시민들의 10년이 갑자기 눈앞으로 쏟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세월호 이전에, 우리 사회는 늘 죽음을 숫자로만 말하고 보상금을 주고 빠르게 끝내는 일로 인식했습니다. 거기에 슬픔의 고유성과 애도에 관한 이야기는 끼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재난으로 인한 고통과 애도의 의미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조금씩 열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가 유가족만이 아니라 생존자 가족까지 포괄해 함께 재난 피해자 운동의 긴 역사를 쌓아온 것은 한국사회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고, 그 운동의 한 축은 노란리본 시민들입니다.
그러니, 부디, 여기 오신 시민들이 품고 계신 세월호와 세월호 이후의 시간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가 더 흘러나오기를 바랍니다. 가족협의회 10년 백서를 펴내고, 스스로를 세월호 세대라고 지칭하는 청년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 10년간 한 번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 슬픔, 또 한 편에 그만큼 깊은 책임감을 품고 있더라고요. 제가 다 알 수 없던, 그래서 알고 싶어지는 그 이야기들의 존재를 어렴풋이 느끼며, 저는 세월호 10년 이후를 어쩐지 설렘을 품고 마주할 수 있을 것 깉습니다. 감사합니다."
환경운동연합의 배슬기 활동가는 "기억이 힘이 세다"며, 재난참사가 누군가를 절망에 빠뜨리는 모습이 마치 기후위기와 닮아있다며, 계속해서 기억하고, 행동하고, 질문하고, 싸우자고 외쳤습니다.
"안녕하세요. 환경운동하는 배슬기입니다. 저는 고3이었습니다. 학교가서 1교시 시작 전에 친구들과 다 같이 모여서 뉴스를 봤습니다. 전원구조. 그리고 여느때와 같이 수업이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몇교시가 지나고 나니 배에 탄 내 또래 친구들이, 그리고 사람들이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믿기지가 않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리더의 문제라고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보다 10년을 더 살아보니 세월호 참사와 비슷한 이상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는 거예요. 국가가 없습니다. 세월호를 포함한 모든 참사와 문제들에 국가가 없습니다. 제가 기후운동을 하고 있는데 기후문제도 비슷합니다. 기후재난과 기후불평등도 똑같은 모습이에요.
부유한 누군가, 부유한 기업이 왕창 배출한 온실가스는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또 그 기후위기는 지하에 사는 누군가를 절망에 빠뜨립니다. 그리고 그 참사까지의 시간 속에서 국가는 없었습니다. 기억은 힘이 셉니다. 그리고 기억할 것이 많아졌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만큼 조금 더 세졌습니다. 기억하고 행동하고, 계속 질문하고 싸우고 또 기억하겠습니다. 안녕!"
10년간 세월호참사 관련 진상규명을 위해 피해자 곁에서 '국가책임'과 '알 권리'를 위해 힘써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세월호TF 소속 류하경 변호사의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류하경 변호사는 지난 10년간 진상규명 운동의 의미를 전달하고 앞으로 계속 이어질 진상규명 운동에 대해 관심을 주실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이어서, 현재 의대정원확대에 의한 전공의 파업이슈로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것에 대하여, 보건의료노조의 송금희 수석부위원장의 발언이 있었습니다.
"반갑습니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수석부위원장 송금희입니다. 보건의료노조는 국사립대, 지방의료원, 특수목적공공병원 등을 포함한 보건의료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 간호조무사, 약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물리치료사 등 약 9만여 명의 조합원들이 활동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산업별 노동조합입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온 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빠트렸고 우리 모두에게 회복되지 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2024년! 대한민국은 또 다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깡그리 무시되는 참담한 사건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발표에 반발하며 지난 2월 20일,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진료 중단에 나선 지, 벌써 두 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안심하고 치료받아야 할 환자들의 수술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고, 각종 검사가 중단되었습니다. 응급을 요하는 환자들은 제때 치료받지 못해 결국 죽음에 이르고 있습니다. 부족한 의사들을 대신한 불법의료는 수십 년째 방치되고 있고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보건의료노조는 국민생명과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의사들의 집단 진료 거부사태를 중단하고, 조속히 환자 곁으로 돌아올 것을 요구합니다. 또한, 의대 증원만으로는 붕괴 위기로 치닫는 필수의료, 지역의료, 공공의료를 살릴 수 없습니다. 증원된 의사 인력이 국민 생명을 살리는 데 꼭 필요한 필수의료에, 그리고 지역에, 공공의료에 유입되게 하는 진짜 의료 개혁을 요구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가장 중요한 국정 과제이며 어떠한 이유로도 무시되어서 안 되는 가치입니다. 국민이 돈 걱정 없이 안전하게 치료받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의료체계를 만드는 것은 국가의 의무입니다. 보건의료노조는‘돈보다 생명’이라는 기치 아래 그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과 환자의 안전을 위한 의료체계를 만들기 위해 활동해 왔고 앞으로도 그 활동은 지속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2014년 무고히 희생된 304명의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하고 이 자리를 빌어 유가족분들께 다시 한번 그 날의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발언을 마무리하겠습니다. "
동물해방물결의 김도희 활동가는 생명이 우선되는 사회를 이야기하며, 그 생명에 모든 종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발언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탈육식과 종평등, 지구살림 운동을 하는 동물해방물결의 도희입니다. 모든 동물의 이용과 착취를 중단하라,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을 동등하게 대하라고 외치는 동물권 단체가 무슨 일로 여기 나왔는지 궁금하신가요?
왜냐하면 저희는 여기 계신 분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정의, 같은 세상을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법을 가지고 운동을 하는 변호사이기도 합니다. 세월호 집회 참석했다가 재판 받은 사람을 변호했던 때와 같은 마음으로 집회 현장에 동원되어 길바닥에 내동댕이 쳐져 죽어 간 방어와 참돔을 대신해 고발했습니다. 강제로 정신병원에 갇힌 사람을 구하기 위해 법원을 향했던 마음으로, 동물원에 감금되고 버려진 낙타와 원숭이들을 구하기 위해 검찰청에 갔습니다. 거리에 살면서 범죄와 빈곤에 무자비하게 노출된 사람의 억울함을 호소했던 마음으로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고래들의 권리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동물이나 식물은 인간없이도 살 수 있지만 인간은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 착각이 얼마나 우리를 오만하게 했는지는 도시를 집어삼키는 홍수가, 꺼지지 않는 산불이, 녹아내리는 빙하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재난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책임지는 자 하나없이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에 소극적인 모습, 동물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덮어놓고 수천 수만 명의 목숨을 생매장부터 하는 모습을 보면 국가권력과 자본권력이 개인과 개체들을 대하는 방식, 이들을 죽이고 살리는 통치의 방식이 정확히 겹쳐 보입니다.
바라건대 우리는 생명과 돌봄의 가치, 안전과 평화의 가치가 통용되는 사회, 공감을 넘어 응답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지구의 동료들과 함께 싸울 것입니다. 부디 재난과 불평등으로부터 기후재앙으로부터 죽음과 멸종으로부터 인간과 비인간이 모두 안전한 행성에서 살 수 있도록 저희의 노란리본과 함께 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14년에 8살이었고, 2024년이 되어 당시 단원고 학생들과 동갑이 되었다는 고양자유학교의 청소년들의 발언과 리코더 연주가 이어졌습니다. 한수연님은 세월호를 무겁게만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안민서님은 처음에는 너무 슬펐지만, 이제 더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왜 이제야 알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며, 잊지 않고 행동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한수연님 발언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 학교에서는 세월호 사건을 함께 추모하는 시간을 매년 갖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내가 ‘세월호’ 하면 떠올리는 키워드는 ‘노란 리본’과 ‘기억’, ‘조심스러움’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큰 종이배를 만들어 노란 풍선을 싣고, 노란 리본에 짧을 글귀를 써 학교를 두른 펜스에 매달고, 학생들의 사진을 뽑고 여러 간식들을 챙겨와 제사를 지내는 등의 추모 활동을 했다.
사건에 대해 잘 알진 못했지만 학교에서 하는 활동에 의무적으로 참여했고, 추모 활동을 여러 해 하면서도 세월호 사건에 대한 나의 생각은 확장되거나 깊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의 죽음을 다룬, 정치적인 사건이라는 생각에 학교에서 하는 추모 활동이 어렵고 무겁게 느껴졌고, 그런 시간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해도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어떤 추모 활동을 할지에 대해 회의 시간에 얘기했다. 어떤 추모 활동을 하면 좋을지 생각하면서 그동안 했던 활동들을 돌아보았다. 그동안 학교에서 여러 해 추모 활동을 해오면서 불편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4월만 되면 이 불편한 문제에 대해 진지한 표정으로 의무적으로 추모 활동을 했던, 이 불편한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말이다. 평소에는 전혀 생각하지 않다가 4월만 되면 의무적인 추모 활동을 하는 것 같아 가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이태원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다. ‘이태원과 할러윈은 무슨 잘못이 있냐’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이태원 참사를 보고 이태원이라는 장소를 당분간은 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던 게 생각났다. 한 번은 이태원역에 내려서 어떤 곳을 찾아가는데 이태원역이라고 써져있는 노선도를 보니 가슴이 철렁했다. 이태원이라는 말만 봐도 어딘가 불편했다. 이태원 참사, 세월호 사건 모두 기억하고 추모하자고 하는데 내 속에선 이 불편한 시간이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내가 계속 위처럼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는 4월 16일 세월호 사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등의 날이 ‘무거운 날’로만 기억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가벼운 날’로 기억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무거운 날’로만 기억된다면 이 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언급하는 것이 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 이 시기에는 내가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세월호를 기억하고 싶다."
안민서님 발언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있던 날이 벌써 10년 전입니다. 2014년에 8살이었던 저는 지금 18살, 단원고 희생자분들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2015년부터 오늘까지 10번의 4월 동안 세월호 추모를 학교에서 해왔습니다. 한 학년씩 올라갈수록 세월호에 대해 아는 것은 더 많아졌습니다. 처음에 추모를 할 때는 바다에서 언니오빠들이 사고가 났다로 시작했는데, 이젠 너무나 많은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세월호 배 구조의 문제, 침몰 직후 대응들과 오보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의 눈물. 숨기고 숨기던 7시간 반. 차가운 바다에서 영문도 모른 체 기다려야했던 사람들. 세월호는 너무나 많은 것을 숨기고 있었고, 동시에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10년에 걸쳐 저는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슬픔이 몸을 지배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이야기들, 인터뷰들, 기록들을 보니 ‘왜 이제 알았나’ 싶었습니다. 여전히 숨 막힐 정도로 슬프고 아팠지만 계속 알아가고, 되뇌이며 살아가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년이 지나도, 몇 십년이 지나도. 누군가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제 좀 묻고 살자’ ‘그만할 때 되지 않았느냐’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18살의 아름다운 학생들이 차가운 바다에서 희생되어간 그 사건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끝까지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위해 소리쳐야합니다. 억울하게 희생된 희생자분들을 위해, 10년을 고통과 슬픔으로 살아온 유가족분들을 위해 우리는 기억하고 행동해야합니다.
누군가의 딸이었고 언니였고, 누나였고, 동생이었고, 아들이었고, 오빠였고, 형이었던 18살 희생자분들게 전합니다. 3일후면 전 당신들이 살아가지 못한 삶을 살게 됩니다. 졸업을 하고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있고, 정말 원하는 것을 위해 해외로 나가 살 수도 있습니다. 제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 모르지만 한 가지 약속하겠습니다. 당신들의 죽음을, 그 날의 바다를, 세월호를 잊지 않겠습니다. 어디에 있던, 어떤 것을 하던 잊지 않고 추모하며 살겠습니다. 그리고 알리겠습니다. 2014년 4월 16일 그 날의 일들을. 당신들은 부디 어디인지 모를 그곳에서 더 이상 추운 바다가 아니라 따뜻한 봄을 만끽하며 지내고 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남은 진상규명과 관련 일들은 여기에 있는 우리가 하겠습니다. 잊지 않고 행동하겠습니다. "
언론노조의 박상현 KBS본부장은 KBS의 세월호참사 피해자 권리 관련 다큐 불방결정에 대해서, 언론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는 현 정권에게, 기억과 추모는 우리의 권리이며 정쟁으로 삼지말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이어 학력, 학벌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는 투명가방끈 연혜원 활동가의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학력·학벌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는 투명가방끈 활동가 연혜원입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사망자 수는 총 304명입니다. 2022년 10.29 이태원참사 사망자 수는 총 159명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 노동건강연대에서 2023년 4월부터 2024년 3월까지 집계된 산재 사망 노동자의 수가 873명이라는 통계를 보았습니다. 어찌보면 참사는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참사가 이례적이지 않은 사회, 그리고 그 참사에 책임지지 않는 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한없이 슬픈 일인 것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학교에 수많은 안전 교육이 전면적으로 실시되었다는 이야기를 연극 <2014년 생>을 통해 알았습니다. 지진 대피 훈련, 화재 대피 훈련, 공습경보 대피 훈련, 성폭력 예방 교육, 성매매 예방 교육, 학교 폭력 예방 교육, 가정 학대 예ᅟᅡᆼ 교육, 감염병 예방 교육, 생존 수영, 심폐 소생술 및 응급 처치 교육, 생명 존중 자살 예방 교육을 학기별로 1~2회 이상 의무적으로 하고, 이외에도 연간 50회 이상 안전 교육을 수업 중에 실시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안전 교육이 많아졌으니 학교 교육은 안전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각지의 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아직 학생인권조례가 존재하지 않는 지역도 많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조례라는 이유로 강제성이 높지 않아, 학생인권조례가 존재함에도 이를 가르치지 않고 지키지 않는 학교도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안전 교육은 실시하면서 정작 학생인권조례는 무시하는 학교를 과연 안전을 가르치는 학교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안전은 인권을 보장받는 데서 시작됩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 진정한 안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학생·청소년으로 하여금 다시금 ‘가만 있으라’ 명령하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진정한 학생·청소년 인권은 학교가 정해주는 질서 밖을 상상하고, 학생·청소년이 학교와 사회를 적극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을 지니는 것을 의미하며, 학생인권조례는 그 시작을 다지는 일 중 하나입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기리고, 모든 참사의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지금 여기 모인 시민 여러분 학생인권조례가 존속하고, 나아가 학생인권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십시오. 나아가 학교 밖 아동·청소년의 삶을 지지해주십시오. 이윤, 성적 추구를 위해 안전과 생명을 도외시하는 체제를 그대로 둔 채로 안전교육을 하고 학생들을 통제하는 것으로는 우리는 절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아동·청소년의 인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야 말로 세월호 참사를 기리는 정신입니다. 발언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추어 천문인이라고 본인을 소개하신 시민분은 고래모양을 닮은 천체를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하는 천체로 선정한 과정을 알려주며, 세월호 참사로 아픔을 겪는 분들께 위안이 되길 바란다고 전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신월동에 살고 있는 이강민이라고 합니다. 천체관측을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 천문인입니다. 세월호 3주기를 앞둔 2017년 초에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하는 천체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부회장이셨던 최봉규 선생님께서 제안해 주셨고요. 뜻을 같이하는 아마추어천문인들이 온라인 공간에 모여 제안과 투표과정을 거쳐 NGC 4631이라는 은하를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하는 천체로 선정하였습니다.
<사진 참고>
NGC 4631은 그 모습이 고래를 닮아 고래은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은하입니다. 동반은하 하나를 등에 지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세월호 고래를 닮아 이 은하를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하는 천체'로 선정하였습니다. 인터넷에서 NGC 4631, 또는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하는 천체'를 검색해 주세요. 이 은하가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하는 천체로 선정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모쪼록 아이들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하는 아마추어천문인들의 노력이 유가족 분들은 물론 세월호 사건으로 아픔을 겪는 모든 분들께 위안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홍익대학교 학생인 성현지님과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소속 안나님의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사가 터졌을 당시, 온 국민이 슬퍼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제 지겹지 않냐는 말이 나오고, 그때 큰 사고가 있었지 정도의 이미지로 세월호에 대한 관심이 가라앉았습니다. 제가 중학교 올라갔을 당시 참사로 인해 수학여행이 금 지된 상태였습니다. 그때 사고를 슬퍼하는 친구들도 많 았지만 몇몇친구들은 세월호 때문에 수학여행 못가잖아. 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저는 세월호를 기억하고 연대합니다. 저에게 있어 세월호는 단순히 수학여행을 못가는 이유로 받아들 여질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참사가 얼마나 미해결 상태인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참사 당시 전 초등학생이었고, 현재 성인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관련자들의 무죄와 정부의 회피가 반복되었고 실질적인 해결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마저 무관심해지면 정말 세월호는 단순 "사고"나 "수학여행 못갔던 이유"로 기억에 남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인식 에 멈춘 변함 없는 사회가 저는 두렵습니다.
저는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 "세월호 때문에" 라는 말을 하지 않는 사회를 바랍니다. 무관심이 세월호를 향한 왜 곡된 시선을 만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것이 제가 기억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들이 기억하고 연대하는 이유는 단지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두번다시 이런 참 사가 나지 않도록 막기 위함입니다. 관심은 연대를 넘어 사회를 바꾸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참사에 그만해도 된 다는 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민들이 계속 목소리를 내는 이상 몇 십 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은폐되는 진실 은 없을 것입니다. 저에게 노란 리본은 세월호를 잊지 앉고 멈추지 않겠다는 증표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에서 활동하는 안나입니다. 저의 기억을 꺼내 보려 해요. 10년 전 저도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뉴스가 나오고 학교는 수업을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학생과 교사가 함께 뉴스를 보면서 계속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상징이 노란색이 되고 반 친구들과 같이 수업시간 몰래, 쉬는 시간마다 색종이랑 리본으로 노란 리본을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그때가 제가 처음 겪은 집단행동 같아요. 학교와 교실 곳곳에 리본을 붙이고 다녔습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목격자였습니다. 4월이 되면 그때의 4월로 되돌아갑니다. 아픈 마음 슬픈 마음 화나는 마음 모두 섞여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목격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는 사회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재발방지대책을 만들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건 없었습니다.
우리는 노란리본을 가방, 옷, 핸드폰 어딘가 계속 붙이고 다닙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겠다는 약속입니다. 한편 여러 지역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행동들을 이어갑니다. 같이 노란리본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그러나 사회적 기억은 우리가 어디서 확인할 수 있나요. 그날의 진실이 모두 밝혀지지도 않았고 책임자 처벌은 피해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원래 광화문 광장에 있던 기억공간이 없어질 위기에 처하고 밀리고 밀려 서울시의회 앞에 왔습니다. 안산에 만들어질 4·16생명안전공원 공사가 밀리고 밀려 아직도 부지만 있는 상황입니다. KBS에서 세월호 관련 다큐가 4월 방송이 미뤄졌습니다. 참사를 기억한다는 것, 희생자와 피해자들과 함께하겠다는 약속,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 안전한 사회에서 안전한 삶 존엄한 삶을 살 권리에 대한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개인을 넘어 사회적, 국가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정당과 정권, 과거로 그 책임을 더이상 미루지 않고 정부, 국회, 사법부는 이 책임을 지길 촉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기억을 행동하겠습니다."
오픈마이크의 마무리와 함께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며, 애도를 희망으로 승화하는 의미를 담은 써클댄스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느티나무 아카데미에서 손을 내밀고 시민분들이 함께 원을 만들며 참여하였습니다.
사전행사를 마무리하고, 5시 30분, 세월호를 기억하는 대학생들의 율동공연과 함께 본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본행사는 변영주 감독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세월호참사와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과 함께 변영주 감독은 시청에 159명의 희생자를 모신 이태원참사 시민분향소가 있기 때문에 시청으로 장소를 선정했다며, 세월호참사와 함께 이태원참사를 기억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무대 앞에 (사)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의 참사 피해자가 함께 4.16기억문화제를 지켜보았습니다.
첫 발언으로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의 김종기 운영위원장(2-1 김수진 학생 아버님)은 “지난 10년동안 시민들이 함께 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실패하지 않았다”며, “굳이 세월호참사 등 재난참사 피해자들의 희생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우리사회가 아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느끼고” 있기에, “지금 이자리에 우리가 여기 모여있는 것을 희망삼아 10년, 20년 뒤에도 끝까지 싸우겠다"고 앞으로의 안전사회가 올 때까지의 행동을 약속습니다.
4.16연대 양경수 공동대표는 “10년 간 우리는 진실을 덮으려는 자와 싸웠지만, 부족함이 있었나 보다"며, “사회 곳곳의 위험이 아직 여전히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더욱 우리가 서로의 안전이 되어 사회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더 노력하자. 10년간 우리 멋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0년간 시민들의 힘으로 일궈온 변화를 바탕으로, 앞으로 일하다가 죽지 않는 사회, 일상을 살아가다 죽지 않는 사회를 위해 함께 나아가자고 외쳤습니다.
이어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고 이주영 아버님)은 10년 전 세월호참사 때에도, 2022년 이태원참사때에도, 정부는 없었다”며, 22대 국회는 이태원참사 특별법 제정과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가장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이행하는 모습으로 이전 국회의 퇴행을 속죄해야 햔다고, 현장에 온 시민과 22대 국회의원들에게 당부했습니다.
4.16세대 하제인 시민은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이태원참사 때 참사에 무책임한 정부를 보며 악몽이 반복되었고, 여전히 답답하고 여전히 역겹기까지 한 세상에 무력감을 느꼈던 10대들이 20대에 이태원참사를 겪으며 나와 주변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느꼈다"며 “더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4월"처럼, 더이상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지 않도록 우리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며 “10년뒤, 20년 뒤에도 기억하자"고 말했습니다.
발언을 마친 뒤 추모 공연으로 성악가 홍일, 떼루아 유스콰이어 합창단, 루시드폴, 4,160 서울시민대합창 <세월의 울림>이 함께 했습니다.
루시드폴은 노래 <아직 있다>를 부르며, 세월호참사를 생각하면서 만들었고, 누군가와 함께 부르는 것같기도 한 특별한 노래라고 설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서울 시민 200여명이 무대위에 올라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기위해 만들어진 노래 ‘가만히 있으라', ‘‘네버엔딩 스토리', ‘화인',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잊지않을게',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를 불렀습니다. 듣는 피해자와 시민들의 눈에는 슬픔과 위로, 감동이 함께하는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핸드폰라이트로 수천개의 별들이 도심을 채웠습니다.
지난 10년 간 세월호참사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는 4월16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피해자가 앞장서고 시민이 그 곁에서 함께 해왔습니다. 우리는 천만서명을 통해 재난참사 최초의 독립적인 국가조사기구를 만들었습니다. 피해자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진상규명의 발자취를 만들어왔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이전에 조명받은 적 없던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진실을 알 권리, 불처벌로부터 정의로울 권리, 기억과 추모의 권리, 배상을 받을 권리 등)를 확장해왔습니다. 이후 발생한 재난참사 피해자의 곁에 단단해진 우리가 새롭게 연결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바탕으로 서로의 안전이 되어 애도공동체를 만들어왔습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온 10년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서로 수고했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직 진실이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해경지휘부 전원 무죄, 기무사 책임자 전원 사면 등, 각 참사의 책임자에 대한 불처벌이 만연합니다. 정부는 세월호참사 및 2차 가해에 대한 책임인정과 공식 사과 및 안전사회를 위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권고를 무시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아직 진실과 정의, 안전에 대한 국가책임을 묻는 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은 힘이 셉니다.
매순간 세월호를 기억하기는 어렵지만 일상에서 노란리본을 통해 우리의 기억과 다짐을 때때로 떠올리고, 우리의 기억이 힘이 세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직접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4월, 함께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노란리본으로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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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10주기 🎗️4.16기억문화제 서울에서 개최,
“피해자와 시민이 함께 변화시켜온 10년”
진실, 책임, 생명, 안전 “세월이 지나도 우리는 잊은 적 없다”
🟡 일시 : 4월 13일 (토) 오후 5:30
🟡 장소 : 서울 시청 앞
세월호참사 10주기를 앞둔 지난 2024년 4월 13일 토요일, 서울 시청 앞에서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세월호참사10주기위원회가 공동주관하여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4.16기억문화제를 개최하였습니다.
오후 3시 30분부터 사전행사로 시민참여형 부스가 열렸고,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 자유발언대 (“나의 노란리본" 오픈마이크)를 진행했습니다. 오후 5시 30분부터 본행사로 세월호참사 피해자와 이태원참사 피해자, 4.16연대 공동대표와 4.16세대의 발언을 들었으며, 가수 루시드폴, 떼루아 유스콰이어 합창단, 성악가 홍일, 4,160 서울시민대합창 <세월의 울림>의 공연을 보았습니다. 약 5천명의 시민이 현장에서 함께 해주셨습니다.
오후 3시 반부터 본행사에 앞서 시민참여형 부스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프레스센터 앞은 세시부터 가방에 노란리본을 단 많은 시민분들로 북적였습니다. 세월호참사 기억추모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나누고 노란종이배를 접는 부스,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대학생들의 사진전 등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다양한 부스들에 시민들이 참여했습니다.
안양 노란리본공방의 노란나비 입양소에서 직접 한지로 만든 노란나비를 나누어 참여한 시민들의 어깨와 머리에 각각 노란나비가 앉았습니다.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이 어디까지 밝혀졌는지 알리는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Q&A 부스가 운영되어 퀴즈와 함께 진상규명 현황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시민참여형 부스에는 세월호참사 뿐만 아니라 10.29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와 오송참사 시민대책위원회가 참여하여 참사의 진상규명 현황을 알렸습니다. 기억과 추모의 메세지를 남길 수 있는 기억과 생명의 나무에 시민들이 기억과 추모의 메세지를 남기고 보라색 리본과 초록색 리본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재난참사로부터의 안전과 함께 사회적 약자의 안전을 외치는 여성, 장애인 시민단체도 함께 했습니다. 기후재난으로부터의 안전, 기후정의를 외치는 환경단체들의 다양하고 참신한 부스들에도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버려지는 현수막을 재사용한 실크스크린 키링을 나누고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녹색교통 플랫폼을 알렸습니다. 생태도시를 함께 만드는 방법을 알리기도 하며, 참가한 시민들에게 안전사회를 위하여 재난참사를 기억할 뿐만 아니라, 기후재난을 대비할 국가의 책임을 알려 기후위기에도 관심을 가지고 함께 행동할 수 있는 계기를 주었습니다.
4시 16분에 맞춰,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 “나의 노란리본”오픈마이크가 진행되었습니다. 진행을 본 인권운동공간 활 랑희 상임활동가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모여 앉았습니다.
첫 발언으로 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희정 작가가 마이크를 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14년 6월부터 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희정이라고 합니다. 작가기록단은 올해 10주기를 앞두고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의 10년 활동 백서인 ‘520번의 금요일’과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를 함께 펴냈습니다. 기록하면서 가족들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이야기도 많이 듣게 됩니다.
올해 초 한 시민에게 이런 말을 듣고 마음에 깊은 울림이 왔습니다. 노란리본은 사람이 만든다. 사람 없이는 안되는 일이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노란리본이 언뜻 다 똑같아보이지만, 사실 똑같은 리본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건 다 사람이 하나하나 만드니까요. 세월호 관련 행사나 기억공간에 가면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저는 이 리본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분의 말씀을 듣는 순간, 세월호 가족들의 곁을 지켜온 시민들의 10년이 갑자기 눈앞으로 쏟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세월호 이전에, 우리 사회는 늘 죽음을 숫자로만 말하고 보상금을 주고 빠르게 끝내는 일로 인식했습니다. 거기에 슬픔의 고유성과 애도에 관한 이야기는 끼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재난으로 인한 고통과 애도의 의미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조금씩 열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가 유가족만이 아니라 생존자 가족까지 포괄해 함께 재난 피해자 운동의 긴 역사를 쌓아온 것은 한국사회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고, 그 운동의 한 축은 노란리본 시민들입니다.
그러니, 부디, 여기 오신 시민들이 품고 계신 세월호와 세월호 이후의 시간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가 더 흘러나오기를 바랍니다. 가족협의회 10년 백서를 펴내고, 스스로를 세월호 세대라고 지칭하는 청년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 10년간 한 번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 슬픔, 또 한 편에 그만큼 깊은 책임감을 품고 있더라고요. 제가 다 알 수 없던, 그래서 알고 싶어지는 그 이야기들의 존재를 어렴풋이 느끼며, 저는 세월호 10년 이후를 어쩐지 설렘을 품고 마주할 수 있을 것 깉습니다. 감사합니다."
환경운동연합의 배슬기 활동가는 "기억이 힘이 세다"며, 재난참사가 누군가를 절망에 빠뜨리는 모습이 마치 기후위기와 닮아있다며, 계속해서 기억하고, 행동하고, 질문하고, 싸우자고 외쳤습니다.
"안녕하세요. 환경운동하는 배슬기입니다. 저는 고3이었습니다. 학교가서 1교시 시작 전에 친구들과 다 같이 모여서 뉴스를 봤습니다. 전원구조. 그리고 여느때와 같이 수업이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몇교시가 지나고 나니 배에 탄 내 또래 친구들이, 그리고 사람들이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믿기지가 않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리더의 문제라고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보다 10년을 더 살아보니 세월호 참사와 비슷한 이상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는 거예요. 국가가 없습니다. 세월호를 포함한 모든 참사와 문제들에 국가가 없습니다. 제가 기후운동을 하고 있는데 기후문제도 비슷합니다. 기후재난과 기후불평등도 똑같은 모습이에요.
부유한 누군가, 부유한 기업이 왕창 배출한 온실가스는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또 그 기후위기는 지하에 사는 누군가를 절망에 빠뜨립니다. 그리고 그 참사까지의 시간 속에서 국가는 없었습니다. 기억은 힘이 셉니다. 그리고 기억할 것이 많아졌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만큼 조금 더 세졌습니다. 기억하고 행동하고, 계속 질문하고 싸우고 또 기억하겠습니다. 안녕!"
10년간 세월호참사 관련 진상규명을 위해 피해자 곁에서 '국가책임'과 '알 권리'를 위해 힘써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세월호TF 소속 류하경 변호사의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류하경 변호사는 지난 10년간 진상규명 운동의 의미를 전달하고 앞으로 계속 이어질 진상규명 운동에 대해 관심을 주실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이어서, 현재 의대정원확대에 의한 전공의 파업이슈로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것에 대하여, 보건의료노조의 송금희 수석부위원장의 발언이 있었습니다.
"반갑습니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수석부위원장 송금희입니다. 보건의료노조는 국사립대, 지방의료원, 특수목적공공병원 등을 포함한 보건의료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 간호조무사, 약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물리치료사 등 약 9만여 명의 조합원들이 활동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산업별 노동조합입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온 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빠트렸고 우리 모두에게 회복되지 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2024년! 대한민국은 또 다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깡그리 무시되는 참담한 사건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발표에 반발하며 지난 2월 20일,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진료 중단에 나선 지, 벌써 두 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안심하고 치료받아야 할 환자들의 수술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고, 각종 검사가 중단되었습니다. 응급을 요하는 환자들은 제때 치료받지 못해 결국 죽음에 이르고 있습니다. 부족한 의사들을 대신한 불법의료는 수십 년째 방치되고 있고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보건의료노조는 국민생명과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의사들의 집단 진료 거부사태를 중단하고, 조속히 환자 곁으로 돌아올 것을 요구합니다. 또한, 의대 증원만으로는 붕괴 위기로 치닫는 필수의료, 지역의료, 공공의료를 살릴 수 없습니다. 증원된 의사 인력이 국민 생명을 살리는 데 꼭 필요한 필수의료에, 그리고 지역에, 공공의료에 유입되게 하는 진짜 의료 개혁을 요구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가장 중요한 국정 과제이며 어떠한 이유로도 무시되어서 안 되는 가치입니다. 국민이 돈 걱정 없이 안전하게 치료받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의료체계를 만드는 것은 국가의 의무입니다. 보건의료노조는‘돈보다 생명’이라는 기치 아래 그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과 환자의 안전을 위한 의료체계를 만들기 위해 활동해 왔고 앞으로도 그 활동은 지속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2014년 무고히 희생된 304명의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하고 이 자리를 빌어 유가족분들께 다시 한번 그 날의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발언을 마무리하겠습니다. "
동물해방물결의 김도희 활동가는 생명이 우선되는 사회를 이야기하며, 그 생명에 모든 종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발언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탈육식과 종평등, 지구살림 운동을 하는 동물해방물결의 도희입니다. 모든 동물의 이용과 착취를 중단하라,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을 동등하게 대하라고 외치는 동물권 단체가 무슨 일로 여기 나왔는지 궁금하신가요?
왜냐하면 저희는 여기 계신 분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정의, 같은 세상을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법을 가지고 운동을 하는 변호사이기도 합니다. 세월호 집회 참석했다가 재판 받은 사람을 변호했던 때와 같은 마음으로 집회 현장에 동원되어 길바닥에 내동댕이 쳐져 죽어 간 방어와 참돔을 대신해 고발했습니다. 강제로 정신병원에 갇힌 사람을 구하기 위해 법원을 향했던 마음으로, 동물원에 감금되고 버려진 낙타와 원숭이들을 구하기 위해 검찰청에 갔습니다. 거리에 살면서 범죄와 빈곤에 무자비하게 노출된 사람의 억울함을 호소했던 마음으로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고래들의 권리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동물이나 식물은 인간없이도 살 수 있지만 인간은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 착각이 얼마나 우리를 오만하게 했는지는 도시를 집어삼키는 홍수가, 꺼지지 않는 산불이, 녹아내리는 빙하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재난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책임지는 자 하나없이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에 소극적인 모습, 동물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덮어놓고 수천 수만 명의 목숨을 생매장부터 하는 모습을 보면 국가권력과 자본권력이 개인과 개체들을 대하는 방식, 이들을 죽이고 살리는 통치의 방식이 정확히 겹쳐 보입니다.
바라건대 우리는 생명과 돌봄의 가치, 안전과 평화의 가치가 통용되는 사회, 공감을 넘어 응답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지구의 동료들과 함께 싸울 것입니다. 부디 재난과 불평등으로부터 기후재앙으로부터 죽음과 멸종으로부터 인간과 비인간이 모두 안전한 행성에서 살 수 있도록 저희의 노란리본과 함께 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14년에 8살이었고, 2024년이 되어 당시 단원고 학생들과 동갑이 되었다는 고양자유학교의 청소년들의 발언과 리코더 연주가 이어졌습니다. 한수연님은 세월호를 무겁게만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안민서님은 처음에는 너무 슬펐지만, 이제 더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왜 이제야 알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며, 잊지 않고 행동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한수연님 발언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 학교에서는 세월호 사건을 함께 추모하는 시간을 매년 갖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내가 ‘세월호’ 하면 떠올리는 키워드는 ‘노란 리본’과 ‘기억’, ‘조심스러움’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큰 종이배를 만들어 노란 풍선을 싣고, 노란 리본에 짧을 글귀를 써 학교를 두른 펜스에 매달고, 학생들의 사진을 뽑고 여러 간식들을 챙겨와 제사를 지내는 등의 추모 활동을 했다.
사건에 대해 잘 알진 못했지만 학교에서 하는 활동에 의무적으로 참여했고, 추모 활동을 여러 해 하면서도 세월호 사건에 대한 나의 생각은 확장되거나 깊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의 죽음을 다룬, 정치적인 사건이라는 생각에 학교에서 하는 추모 활동이 어렵고 무겁게 느껴졌고, 그런 시간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해도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어떤 추모 활동을 할지에 대해 회의 시간에 얘기했다. 어떤 추모 활동을 하면 좋을지 생각하면서 그동안 했던 활동들을 돌아보았다. 그동안 학교에서 여러 해 추모 활동을 해오면서 불편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4월만 되면 이 불편한 문제에 대해 진지한 표정으로 의무적으로 추모 활동을 했던, 이 불편한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말이다. 평소에는 전혀 생각하지 않다가 4월만 되면 의무적인 추모 활동을 하는 것 같아 가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이태원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다. ‘이태원과 할러윈은 무슨 잘못이 있냐’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이태원 참사를 보고 이태원이라는 장소를 당분간은 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던 게 생각났다. 한 번은 이태원역에 내려서 어떤 곳을 찾아가는데 이태원역이라고 써져있는 노선도를 보니 가슴이 철렁했다. 이태원이라는 말만 봐도 어딘가 불편했다. 이태원 참사, 세월호 사건 모두 기억하고 추모하자고 하는데 내 속에선 이 불편한 시간이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내가 계속 위처럼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는 4월 16일 세월호 사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등의 날이 ‘무거운 날’로만 기억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가벼운 날’로 기억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무거운 날’로만 기억된다면 이 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언급하는 것이 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 이 시기에는 내가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세월호를 기억하고 싶다."
안민서님 발언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있던 날이 벌써 10년 전입니다. 2014년에 8살이었던 저는 지금 18살, 단원고 희생자분들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2015년부터 오늘까지 10번의 4월 동안 세월호 추모를 학교에서 해왔습니다. 한 학년씩 올라갈수록 세월호에 대해 아는 것은 더 많아졌습니다. 처음에 추모를 할 때는 바다에서 언니오빠들이 사고가 났다로 시작했는데, 이젠 너무나 많은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세월호 배 구조의 문제, 침몰 직후 대응들과 오보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의 눈물. 숨기고 숨기던 7시간 반. 차가운 바다에서 영문도 모른 체 기다려야했던 사람들. 세월호는 너무나 많은 것을 숨기고 있었고, 동시에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10년에 걸쳐 저는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슬픔이 몸을 지배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이야기들, 인터뷰들, 기록들을 보니 ‘왜 이제 알았나’ 싶었습니다. 여전히 숨 막힐 정도로 슬프고 아팠지만 계속 알아가고, 되뇌이며 살아가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년이 지나도, 몇 십년이 지나도. 누군가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제 좀 묻고 살자’ ‘그만할 때 되지 않았느냐’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18살의 아름다운 학생들이 차가운 바다에서 희생되어간 그 사건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끝까지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위해 소리쳐야합니다. 억울하게 희생된 희생자분들을 위해, 10년을 고통과 슬픔으로 살아온 유가족분들을 위해 우리는 기억하고 행동해야합니다.
누군가의 딸이었고 언니였고, 누나였고, 동생이었고, 아들이었고, 오빠였고, 형이었던 18살 희생자분들게 전합니다. 3일후면 전 당신들이 살아가지 못한 삶을 살게 됩니다. 졸업을 하고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있고, 정말 원하는 것을 위해 해외로 나가 살 수도 있습니다. 제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 모르지만 한 가지 약속하겠습니다. 당신들의 죽음을, 그 날의 바다를, 세월호를 잊지 않겠습니다. 어디에 있던, 어떤 것을 하던 잊지 않고 추모하며 살겠습니다. 그리고 알리겠습니다. 2014년 4월 16일 그 날의 일들을. 당신들은 부디 어디인지 모를 그곳에서 더 이상 추운 바다가 아니라 따뜻한 봄을 만끽하며 지내고 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남은 진상규명과 관련 일들은 여기에 있는 우리가 하겠습니다. 잊지 않고 행동하겠습니다. "
언론노조의 박상현 KBS본부장은 KBS의 세월호참사 피해자 권리 관련 다큐 불방결정에 대해서, 언론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는 현 정권에게, 기억과 추모는 우리의 권리이며 정쟁으로 삼지말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이어 학력, 학벌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는 투명가방끈 연혜원 활동가의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학력·학벌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는 투명가방끈 활동가 연혜원입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사망자 수는 총 304명입니다. 2022년 10.29 이태원참사 사망자 수는 총 159명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 노동건강연대에서 2023년 4월부터 2024년 3월까지 집계된 산재 사망 노동자의 수가 873명이라는 통계를 보았습니다. 어찌보면 참사는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참사가 이례적이지 않은 사회, 그리고 그 참사에 책임지지 않는 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한없이 슬픈 일인 것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학교에 수많은 안전 교육이 전면적으로 실시되었다는 이야기를 연극 <2014년 생>을 통해 알았습니다. 지진 대피 훈련, 화재 대피 훈련, 공습경보 대피 훈련, 성폭력 예방 교육, 성매매 예방 교육, 학교 폭력 예방 교육, 가정 학대 예ᅟᅡᆼ 교육, 감염병 예방 교육, 생존 수영, 심폐 소생술 및 응급 처치 교육, 생명 존중 자살 예방 교육을 학기별로 1~2회 이상 의무적으로 하고, 이외에도 연간 50회 이상 안전 교육을 수업 중에 실시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안전 교육이 많아졌으니 학교 교육은 안전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각지의 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아직 학생인권조례가 존재하지 않는 지역도 많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조례라는 이유로 강제성이 높지 않아, 학생인권조례가 존재함에도 이를 가르치지 않고 지키지 않는 학교도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안전 교육은 실시하면서 정작 학생인권조례는 무시하는 학교를 과연 안전을 가르치는 학교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안전은 인권을 보장받는 데서 시작됩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 진정한 안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학생·청소년으로 하여금 다시금 ‘가만 있으라’ 명령하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진정한 학생·청소년 인권은 학교가 정해주는 질서 밖을 상상하고, 학생·청소년이 학교와 사회를 적극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을 지니는 것을 의미하며, 학생인권조례는 그 시작을 다지는 일 중 하나입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기리고, 모든 참사의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지금 여기 모인 시민 여러분 학생인권조례가 존속하고, 나아가 학생인권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십시오. 나아가 학교 밖 아동·청소년의 삶을 지지해주십시오. 이윤, 성적 추구를 위해 안전과 생명을 도외시하는 체제를 그대로 둔 채로 안전교육을 하고 학생들을 통제하는 것으로는 우리는 절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아동·청소년의 인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야 말로 세월호 참사를 기리는 정신입니다. 발언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추어 천문인이라고 본인을 소개하신 시민분은 고래모양을 닮은 천체를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하는 천체로 선정한 과정을 알려주며, 세월호 참사로 아픔을 겪는 분들께 위안이 되길 바란다고 전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신월동에 살고 있는 이강민이라고 합니다. 천체관측을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 천문인입니다. 세월호 3주기를 앞둔 2017년 초에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하는 천체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부회장이셨던 최봉규 선생님께서 제안해 주셨고요. 뜻을 같이하는 아마추어천문인들이 온라인 공간에 모여 제안과 투표과정을 거쳐 NGC 4631이라는 은하를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하는 천체로 선정하였습니다.
<사진 참고>
NGC 4631은 그 모습이 고래를 닮아 고래은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은하입니다. 동반은하 하나를 등에 지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세월호 고래를 닮아 이 은하를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하는 천체'로 선정하였습니다. 인터넷에서 NGC 4631, 또는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하는 천체'를 검색해 주세요. 이 은하가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하는 천체로 선정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모쪼록 아이들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하는 아마추어천문인들의 노력이 유가족 분들은 물론 세월호 사건으로 아픔을 겪는 모든 분들께 위안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홍익대학교 학생인 성현지님과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소속 안나님의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사가 터졌을 당시, 온 국민이 슬퍼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제 지겹지 않냐는 말이 나오고, 그때 큰 사고가 있었지 정도의 이미지로 세월호에 대한 관심이 가라앉았습니다. 제가 중학교 올라갔을 당시 참사로 인해 수학여행이 금 지된 상태였습니다. 그때 사고를 슬퍼하는 친구들도 많 았지만 몇몇친구들은 세월호 때문에 수학여행 못가잖아. 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저는 세월호를 기억하고 연대합니다. 저에게 있어 세월호는 단순히 수학여행을 못가는 이유로 받아들 여질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참사가 얼마나 미해결 상태인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참사 당시 전 초등학생이었고, 현재 성인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관련자들의 무죄와 정부의 회피가 반복되었고 실질적인 해결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마저 무관심해지면 정말 세월호는 단순 "사고"나 "수학여행 못갔던 이유"로 기억에 남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인식 에 멈춘 변함 없는 사회가 저는 두렵습니다.
저는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 "세월호 때문에" 라는 말을 하지 않는 사회를 바랍니다. 무관심이 세월호를 향한 왜 곡된 시선을 만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것이 제가 기억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들이 기억하고 연대하는 이유는 단지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두번다시 이런 참 사가 나지 않도록 막기 위함입니다. 관심은 연대를 넘어 사회를 바꾸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참사에 그만해도 된 다는 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민들이 계속 목소리를 내는 이상 몇 십 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은폐되는 진실 은 없을 것입니다. 저에게 노란 리본은 세월호를 잊지 앉고 멈추지 않겠다는 증표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에서 활동하는 안나입니다. 저의 기억을 꺼내 보려 해요. 10년 전 저도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뉴스가 나오고 학교는 수업을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학생과 교사가 함께 뉴스를 보면서 계속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상징이 노란색이 되고 반 친구들과 같이 수업시간 몰래, 쉬는 시간마다 색종이랑 리본으로 노란 리본을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그때가 제가 처음 겪은 집단행동 같아요. 학교와 교실 곳곳에 리본을 붙이고 다녔습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목격자였습니다. 4월이 되면 그때의 4월로 되돌아갑니다. 아픈 마음 슬픈 마음 화나는 마음 모두 섞여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목격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는 사회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재발방지대책을 만들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건 없었습니다.
우리는 노란리본을 가방, 옷, 핸드폰 어딘가 계속 붙이고 다닙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겠다는 약속입니다. 한편 여러 지역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행동들을 이어갑니다. 같이 노란리본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그러나 사회적 기억은 우리가 어디서 확인할 수 있나요. 그날의 진실이 모두 밝혀지지도 않았고 책임자 처벌은 피해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원래 광화문 광장에 있던 기억공간이 없어질 위기에 처하고 밀리고 밀려 서울시의회 앞에 왔습니다. 안산에 만들어질 4·16생명안전공원 공사가 밀리고 밀려 아직도 부지만 있는 상황입니다. KBS에서 세월호 관련 다큐가 4월 방송이 미뤄졌습니다. 참사를 기억한다는 것, 희생자와 피해자들과 함께하겠다는 약속,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 안전한 사회에서 안전한 삶 존엄한 삶을 살 권리에 대한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개인을 넘어 사회적, 국가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정당과 정권, 과거로 그 책임을 더이상 미루지 않고 정부, 국회, 사법부는 이 책임을 지길 촉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기억을 행동하겠습니다."
오픈마이크의 마무리와 함께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며, 애도를 희망으로 승화하는 의미를 담은 써클댄스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느티나무 아카데미에서 손을 내밀고 시민분들이 함께 원을 만들며 참여하였습니다.
사전행사를 마무리하고, 5시 30분, 세월호를 기억하는 대학생들의 율동공연과 함께 본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본행사는 변영주 감독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세월호참사와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과 함께 변영주 감독은 시청에 159명의 희생자를 모신 이태원참사 시민분향소가 있기 때문에 시청으로 장소를 선정했다며, 세월호참사와 함께 이태원참사를 기억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무대 앞에 (사)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의 참사 피해자가 함께 4.16기억문화제를 지켜보았습니다.
첫 발언으로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의 김종기 운영위원장(2-1 김수진 학생 아버님)은 “지난 10년동안 시민들이 함께 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실패하지 않았다”며, “굳이 세월호참사 등 재난참사 피해자들의 희생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우리사회가 아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느끼고” 있기에, “지금 이자리에 우리가 여기 모여있는 것을 희망삼아 10년, 20년 뒤에도 끝까지 싸우겠다"고 앞으로의 안전사회가 올 때까지의 행동을 약속습니다.
4.16연대 양경수 공동대표는 “10년 간 우리는 진실을 덮으려는 자와 싸웠지만, 부족함이 있었나 보다"며, “사회 곳곳의 위험이 아직 여전히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더욱 우리가 서로의 안전이 되어 사회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더 노력하자. 10년간 우리 멋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0년간 시민들의 힘으로 일궈온 변화를 바탕으로, 앞으로 일하다가 죽지 않는 사회, 일상을 살아가다 죽지 않는 사회를 위해 함께 나아가자고 외쳤습니다.
이어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고 이주영 아버님)은 10년 전 세월호참사 때에도, 2022년 이태원참사때에도, 정부는 없었다”며, 22대 국회는 이태원참사 특별법 제정과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가장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이행하는 모습으로 이전 국회의 퇴행을 속죄해야 햔다고, 현장에 온 시민과 22대 국회의원들에게 당부했습니다.
4.16세대 하제인 시민은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이태원참사 때 참사에 무책임한 정부를 보며 악몽이 반복되었고, 여전히 답답하고 여전히 역겹기까지 한 세상에 무력감을 느꼈던 10대들이 20대에 이태원참사를 겪으며 나와 주변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느꼈다"며 “더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4월"처럼, 더이상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지 않도록 우리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며 “10년뒤, 20년 뒤에도 기억하자"고 말했습니다.
발언을 마친 뒤 추모 공연으로 성악가 홍일, 떼루아 유스콰이어 합창단, 루시드폴, 4,160 서울시민대합창 <세월의 울림>이 함께 했습니다.
루시드폴은 노래 <아직 있다>를 부르며, 세월호참사를 생각하면서 만들었고, 누군가와 함께 부르는 것같기도 한 특별한 노래라고 설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서울 시민 200여명이 무대위에 올라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기위해 만들어진 노래 ‘가만히 있으라', ‘‘네버엔딩 스토리', ‘화인',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잊지않을게',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를 불렀습니다. 듣는 피해자와 시민들의 눈에는 슬픔과 위로, 감동이 함께하는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핸드폰라이트로 수천개의 별들이 도심을 채웠습니다.
지난 10년 간 세월호참사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는 4월16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피해자가 앞장서고 시민이 그 곁에서 함께 해왔습니다. 우리는 천만서명을 통해 재난참사 최초의 독립적인 국가조사기구를 만들었습니다. 피해자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진상규명의 발자취를 만들어왔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이전에 조명받은 적 없던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진실을 알 권리, 불처벌로부터 정의로울 권리, 기억과 추모의 권리, 배상을 받을 권리 등)를 확장해왔습니다. 이후 발생한 재난참사 피해자의 곁에 단단해진 우리가 새롭게 연결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바탕으로 서로의 안전이 되어 애도공동체를 만들어왔습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온 10년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서로 수고했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직 진실이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해경지휘부 전원 무죄, 기무사 책임자 전원 사면 등, 각 참사의 책임자에 대한 불처벌이 만연합니다. 정부는 세월호참사 및 2차 가해에 대한 책임인정과 공식 사과 및 안전사회를 위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권고를 무시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아직 진실과 정의, 안전에 대한 국가책임을 묻는 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은 힘이 셉니다.
매순간 세월호를 기억하기는 어렵지만 일상에서 노란리본을 통해 우리의 기억과 다짐을 때때로 떠올리고, 우리의 기억이 힘이 세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직접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4월, 함께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노란리본으로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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