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자매 이영수 이야기 346p/문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저한테는 항상 세월호가 있었잖아요. (...) ‘문학이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계속했었거든요. 논문 주제를 고민하던 중에 세르게이 트레티야코프라는 작가를 발견했어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가능성이 있을 수 있고, 적어도 그 가능성에 관해 상상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나한테 좋은 일이고 당신에게 좋은 일이고 결국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 이라면, 사회가 힘을 다해서 공동의 일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저한테는 그 공동선이 '안전사회'라고 생각해요.
350./사회적참사에 응답하는 일 이태원참사 당일부터 혐오의 말들이 나왔잖아요. 어김없이요. '놀러 가서 죽었다.? '놀러 가서 죽어놓고 살아 있는 우리 한테 어쩌라는 거냐? 이런 말을 들으면 정말 마음에 못이 박히 는 느낌이에요. 하지만 비판 자체만 놓고 보면,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죽음에 대한 이 정도의 추모가 과연 정당한지, 죽음의 책임은 죽은 사람들 자신에게 있지 않은지라고 말하죠. (...) 영어에서, 또 러시아어에서도 같은데, ‘응답’과 '책임’은 같은 어휘의 뿌리를 공유하는 어휘예요. 응답할 수 없기 때문에 책임도 질 수 없는데, 죽음의 당위를 이리저리 재단한다는 건 얼마나 한계가 명확한 일인가요. 우리는 재난참사의 죽음과 각자의 방식으로 대화하고 있어요. 충격을 받고,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울고, 분노하고, 추모하고, 추모에 반대하고, 슬픔을 강요하거나 강요하지 말라고 하고, 평가하고. 재난에 의의를 입히는 전 산 사람들이죠.(...) 압도적 슬픔이 말을 걸어을 때 그걸 무시할 수는 있죠. 그렇지만 슬픔은 안길 사람을 찾지 못하면 유령처럼 떠들면서 계속 말을 걸 것이고, 형태를 바꿔가며 찾아올 거예요. 이 경우에, 응답할 책임은 오히려 우리한테 있 는게 아닐까 해요. 영원히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고요. |
형제자매 이영수 이야기 346p/문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저한테는 항상 세월호가 있었잖아요. (...) ‘문학이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계속했었거든요. 논문 주제를 고민하던 중에 세르게이 트레티야코프라는 작가를 발견했어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가능성이 있을 수 있고, 적어도 그 가능성에 관해 상상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나한테 좋은 일이고 당신에게 좋은 일이고 결국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 이라면, 사회가 힘을 다해서 공동의 일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저한테는 그 공동선이 '안전사회'라고 생각해요.
350./사회적참사에 응답하는 일 우리는 재난참사의 죽음과 각자의 방식으로 대화하고 있어요. 충격을 받고,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울고, 분노하고, 추모하고, 추모에 반대하고, 슬픔을 강요하거나 강요하지 말라고 하고, 평가하고. 재난에 의의를 입히는 전 산 사람들이죠. 그렇다면, 이렇게 근본적인 차원에서 재난참사가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대화가 계속돼야 해요. 압도적 슬픔이 말을 걸어올 때 그걸 무시할 수는 있죠. 그렇지만 슬픔은 안길 사람을 찾지 못하면 유령처럼 떠들면서 계속 말을 걸 것이고, 형태를 바꿔가며 찾아올 거예요. 이 경우에, 응답할 책임은 오히려 우리한테 있는게 아닐까 해요. 영원히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고요.
오지수 님의 이야기 378/어제까지 세월호 할 거야? 저는 사실 유가족도 아니고, 단원고 학생도 아니잖아요. "언제까지 세월호 할 거야?”라는 질문에는 왜 네가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의문도 포함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 제 위치에서 세월호를 계속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 계속 생각했어요. 그때 깨달았죠. 세월호참사와 관련해서 내 안에 해소되지 않은 무인가가 있구나, 그걸 외면하고 떠난다면 계속 찝찝한 채로 살게 되겠구나. 나도 이 참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 |
8월 30일 저녁 7시, 4.16연대 청년모임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 낭독과 이야기 청년 모임이 있었습니다.
여는 이야기 주제로, '세월호를 떠올리면 어떤 감정이 드나요?', '세월호 활동에 관심을 가진 계기(이유)는 무엇인가요?' 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참가자들은 '4월 16일 당시의 타임라인을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는 이야기, ' 국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났다.' 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태원 참사 이후로 반복되는 참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참사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국가 전체에서 세월호참사가 일어나는 것 같다' 고 하였습니다.
또 한 분은 참사 생존자들이 다른 참사 생존자를 만나서 연대하고 도움을 주려고 하는 모습에 귀감을 받아 세월호참사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어 세 분께서 인상깊게 읽는 구절을 낭독하였습니다.
(낭독 1)
80p 우리는 청년이고, 한창 힘쓸 때고 하니까, 우리가 먼저 나서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말했듯이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거지. 그때는 우리가 지금보다 더 어렸고, 뭘 하고 싶어도 방법을 몰랐으니까. 유가족분들도 우리한테 먼저 같이 하자고 이야기하기 어려웠을 것 같고. 또 한편으로는 지금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데 그런 걸 생각할 때인가 싶기도 해. …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 사회적으로 지위도 있어야지 내 말이 통할 것 같달까. 그냥 생존자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뭔가를 하고 싶진 않은 마음이 큰 것 같아. (생존자 최영진)
(낭독 2)
114p 부정적인 반응이나 악성댓글을 자꾸 보니까 상처받더라고요. … 나는 정말 잘살아야겠다, 성공해서 진짜 잘살아야겠다, 이런 마음으로 모든 걸 차단하고 앞만 보면서 살았어요. … 동생이 살지 못한 삶까지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 힘을 갖고 싶었어요. …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저는 돈에 대한 열망이 있었잖아요. … 엄마가 병원에 가시면서 그 생각이 바뀐 거예요. 병원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잖아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어요. 우리에게도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확들더라고요. 성공과 돈이 삶의 중심이 아니구나. 내가 행복해야 하는구나. (형제자매 김소영)
133p 대학생이 되고 사는 공간이 분리되면서 언니가 저를 케어해줄 일이 줄어들었어요. … 그 이후의 일은 제가 다 결정하고 혼자 헤쳐나가야 하잖아요. 그 상황에 1년은 적응을 못 했어요. 스스로가 한심하다고 느껴지는 거예요. 스물일곱이나 되어서도 자기 앞가림을 못 하고 있다는 게. 그러다 보니 지나온 삶을 돌아게 된 거죠. 이렇게 기대고만 있으면 내 삶의 반경이 좁아지는 구나를 깨달았어요.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주변 사람들도 내가 돌봐줄 수 있겠다. 혼자 세상을 살아갈 힘을 길러야겠다고 정말 크게 느낀 거예요. 난생처음으로. 그래서 독립 준비를 한 거죠. … 삶을 너무 같이 하는 건 서로에게 좋지 않겠다. … 애착이 심한 관계에서 그 상실감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거예요. 이미 지나온 상실이 너무 많은데. 누구 하나가 없어져도 이 상실감을 다른 사람들로 채워서 이겨나갈 수 있게 서로의 삶을 구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 나 혼자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지 언니도 나를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삶을 좀 더 꾸려나갈 거 같아요. 이제는 언니가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걸 했으면 좋겠어요. (형제자매 김소희)
177p 연대를 해야 한다는 말이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는데, 확실히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덜 외로운 거구나 싶어요. 가족한테만 의지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의지가 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거구나 싶어요. … 한 번 의지하고 나니까, 이 사람은 이 부분에서 의지가 되고 저 사람은 저 부분에서 의지가 되고. 편해진 것 같아요. … 의지가 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 이 사람한테는 이 면을, 저 사람한테는 저 면을 의지하면 되는 거구나. 내가 사람을 안 좋아한 게 아니라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실망해 왔던 거구나. (형제자매 이영은)
(낭독 3)
396p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겠다.’ 옆 학교 동아리 친구들과 노란 리본을 만들고 세월호참사에 대한 편지를 쓰기도 했지만 이 말에 공감하지 못했어요. 누구에게 어떤 책임을 묻고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모른 채 기억이 어떤 힘을 갖는 걸까 의문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기억하겠다고 말할 때 각자의 맥락과 생각이 있을 텐데 어떤 의미로 말하는 걸까? 너무 당연한 말이라 굳이 설명하지 않았던 걸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답을 듣지 못했어요. 익산에서 있었던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 많은 청소년이 나왔잖아요. 세월호참사에 대한 경험이 연결되어 있었다고 생각해요. 제 또래의 집단적인 경험이니까. 국가가 우리를 지켜 주지 않는다를 넘어, 국가가 우리를 위해 있지 않다'는 말이 모두의 뇌리에 남았다고 생각해요. 저의 추측이지만 이들의 분노와 무력감이 뭐라도 하고 싶게 만들었을 거예요. 십 대 때 세월호참사를 목격하고 현재 이십 대가 된 사람들에게 세월호참사는 지금 무엇으로 남아 있을까요? (20대 시민 구파란)
405p 세월호참사 때 기억한다는 말이 공허하게 느껴졌다고 했잖아요. 지금은 제가 이태원참사 활동에 연대를 하고 있어요. 연대자로서,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기억하겠다고 모이는 사람들이 너무 고마운 거예요. (웃음) 추모제 때 잠깐이라도 오고 분향소에서 한참 있다가 가는 사람들이 힘이 되더라고요.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 물어보고 기억을 공유하려는 사람들이, 우리 연대자들이 이야기할 때 듣겠구나 생각을 하게 돼요. 들을 뿐 아니라 같이 행동도 하지 않을까요? (20대 시민 구파란)
(낭독 4)
형제자매 이영수 이야기
346p/문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저한테는 항상 세월호가 있었잖아요. (...) ‘문학이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계속했었거든요. 논문 주제를 고민하던 중에 세르게이 트레티야코프라는 작가를 발견했어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가능성이 있을 수 있고, 적어도 그 가능성에 관해 상상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나한테 좋은 일이고 당신에게 좋은 일이고 결국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 이라면, 사회가 힘을 다해서 공동의 일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저한테는 그 공동선이 '안전사회'라고 생각해요.
350./사회적참사에 응답하는 일
이태원참사 당일부터 혐오의 말들이 나왔잖아요. 어김없이요. '놀러 가서 죽었다.? '놀러 가서 죽어놓고 살아 있는 우리 한테 어쩌라는 거냐? 이런 말을 들으면 정말 마음에 못이 박히 는 느낌이에요. 하지만 비판 자체만 놓고 보면,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죽음에 대한 이 정도의 추모가 과연 정당한지, 죽음의 책임은 죽은 사람들 자신에게 있지 않은지라고 말하죠. (...) 영어에서, 또 러시아어에서도 같은데, ‘응답’과 '책임’은 같은 어휘의 뿌리를 공유하는 어휘예요. 응답할 수 없기 때문에 책임도 질 수 없는데, 죽음의 당위를 이리저리 재단한다는 건 얼마나 한계가 명확한 일인가요.
우리는 재난참사의 죽음과 각자의 방식으로 대화하고 있어요. 충격을 받고,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울고, 분노하고, 추모하고, 추모에 반대하고, 슬픔을 강요하거나 강요하지 말라고 하고, 평가하고. 재난에 의의를 입히는 전 산 사람들이죠.(...) 압도적 슬픔이 말을 걸어을 때 그걸 무시할 수는 있죠. 그렇지만 슬픔은 안길 사람을 찾지 못하면 유령처럼 떠들면서 계속 말을 걸 것이고, 형태를 바꿔가며 찾아올 거예요. 이 경우에, 응답할 책임은 오히려 우리한테 있 는게 아닐까 해요. 영원히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고요.
형제자매 이영수 이야기
346p/문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저한테는 항상 세월호가 있었잖아요. (...) ‘문학이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계속했었거든요. 논문 주제를 고민하던 중에 세르게이 트레티야코프라는 작가를 발견했어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가능성이 있을 수 있고, 적어도 그 가능성에 관해 상상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나한테 좋은 일이고 당신에게 좋은 일이고 결국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 이라면, 사회가 힘을 다해서 공동의 일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저한테는 그 공동선이 '안전사회'라고 생각해요.
350./사회적참사에 응답하는 일
우리는 재난참사의 죽음과 각자의 방식으로 대화하고 있어요. 충격을 받고,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울고, 분노하고, 추모하고, 추모에 반대하고, 슬픔을 강요하거나 강요하지 말라고 하고, 평가하고. 재난에 의의를 입히는 전 산 사람들이죠. 그렇다면, 이렇게 근본적인 차원에서 재난참사가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대화가 계속돼야 해요. 압도적 슬픔이 말을 걸어올 때 그걸 무시할 수는 있죠. 그렇지만 슬픔은 안길 사람을 찾지 못하면 유령처럼 떠들면서 계속 말을 걸 것이고, 형태를 바꿔가며 찾아올 거예요. 이 경우에, 응답할 책임은 오히려 우리한테 있는게 아닐까 해요. 영원히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고요.
오지수 님의 이야기
378/어제까지 세월호 할 거야?
저는 사실 유가족도 아니고, 단원고 학생도 아니잖아요. "언제까지 세월호 할 거야?”라는 질문에는 왜 네가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의문도 포함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 제 위치에서 세월호를 계속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 계속 생각했어요. 그때 깨달았죠. 세월호참사와 관련해서 내 안에 해소되지 않은 무인가가 있구나, 그걸 외면하고 떠난다면 계속 찝찝한 채로 살게 되겠구나. 나도 이 참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
낭독을 듣고 참가자들은 '기억공간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다양하다. 어린 사람들은 이 참사에 대해 모른다. 기억이 이어진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 '사회가 사회적 참사를 개인의 일이라고 말하며 사람들에게 무력감을 주려고 한다. 거기에 대항하는 일이 사회적참사를 기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진상규명을 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고 하였는데 참사가 반복되고 있어서 참담한 심정이다. 그러나 국가는 바뀌지 않았지만 세월호참사를 계기로 시민들은 말하고 연대하고 힘을 내는 뱡향으로 변화하였다.' 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최양다음 님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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