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활동 소식[활동보고] 2025 4.16연대 청년책모임 <재난 이후, 사회>, 세월호 이후 사회는 어떠한가?


🌿 4.16연대 청년책모임 <세계관 시즌 2> 후기:
책 <재난 이후, 사회>, 세월호 이후 사회는 어떠한가?


지난 2025년 6월, 4.16연대 청년책모임 <세계관>은 세월호참사 11주기를 맞이하여 재난참사를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깊숙이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세월호참사와 이태원참사 같은 재난참사를 중심으로, 참사 다음의 삶과 권리에 대해 사회학적, 법학적으로 다룬 책 <재난 이후, 사회>(서교인문사회연구실)를 함께 읽었는데요! 이 책을 중심 삼아 8주 동안 한 장씩 꼼꼼하게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 심도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1주차 : 프롤로그, 쏠-경진의 이야기 

차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

첫 주차에는 새롭게 모인 우리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정말 다양한 경로를 통해 4.16연대 청년 책모임에 오셨습니다. 어떤 분은 교양 수업에서 사회적 참사 이후의 인문학을 접하고 관심을 갖게 되어 발을 들이셨고, 또 어떤 분은 서교인문사회연구실에서 발행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 관련 자료를 보고는 '아, 이 모임에 꼭 참여해야겠다!' 하고 결심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 재난이 남긴 시간, 우리의 고백

우리는 책 프롤로그에 나오는 '10대의 쏠- 20대의 경진'의 이야기를 보면서, 학창 시절 우리에게, 그리고 지금의 우리에게 세월호참사와 이태원참사가 어떤 시간을 남겼는지 함께 이야기해볼 수 있었습니다. 한 분은 당시를 떠올리면서, 고3이라 공부에 집중해야 했지만 동시에 ‘내가 도대체 뭘 위해 공부를 하고 있나’ 생각했던 때를 솔직하게 고백해주셨어요. 아무것도 제대로 해결해주지 않은 채, 수학여행만 덜컥 전면 폐지해버리던 학교의 모습이 참 이상하고 기괴하게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 안전할 권리, 그리고 연결의 의미

이에 4.16연대 활동가는 10.29이태원참사 1주기 때 4.16연대가 '안전할 권리'를 외쳤던 문화제에서 가영어머님께서 해주신 발언을 함께 공유했습니다.

  • “우리 아이들은 안전하게 놀 권리가 있었고, 그것을 행사하려고 이태원에 갔지만, 참사 때도 참사 이후에도 계속해서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곧 할로윈데이가 다가오는데, 여러분은 할로윈을 마음껏 즐기세요. 우리는 여러분이 안전하게 할로윈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이 이야기에 교사이신 한 분은 아이들이 떠들고 뛰어다니는 게 가끔 불안하지만, 사실 그보다도 ‘아이들에게 누가 또 뭐라고 할까봐’ 더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 같다며, 우리의 자유가 지켜지면서도 안전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주셨습니다.

수학여행을 없애던 학교와는 달리, 10대의 '쏠'은 같이 위로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경진은 ‘참사에 대한 이야기가 쌓이기도 전에 애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다양한 감정, 기억, 이야기가 뒤섞이고 쌓이는 시간을 건너, 설령 "참사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함께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천천히 쌓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이 앞으로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읽어나갈 내용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세월호참사 이후 1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우리는 이렇게 만났습니다. '쏠-경진'의 말처럼,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새롭게 연결되고, 우리가 애도를 이어가는 여정으로서, 책모임 <세계관> 시즌 2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매주 목요일, 우리는 <재난이후사회>를 한 장씩 읽어 내려갔습니다. 매회 두 시간 반씩 진행했는데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그중에서도 핵심 주제를 중심으로 나누었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립니다.


2주차 1장 재난과 통치 
: (신)자유주의적 위험 관리인가 상호의존성에 기초한 체제 전환인가 : 정정훈>을 읽고,

재난을 통치 가능한 것으로 보는 시선

첫 장에서 정정훈 작가는 미셸 푸코의 관점을 빌려,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의 핵심인 ‘자유주의 안전장치와 위험 관리’의 작동 방식을 설명했습니다. 작가는 신자유주의적 국가는 재난을 사회 전체의 총체적 재앙이나 사회적 분란이 되지 않도록 ‘통치가능한 것’으로 보고 적절한 수준으로만 관리하려는 배열하려 한다고 설명합니다. 

푸코에 따르면, 이 배열은 오직 국가의 비율적 정상적 상태를 유지하도록 합니다. 여기서 '정상적 상태'란 통계적인 의미에서 인구의 정규 분포를 뜻하며, 이러한 통치 방식은 어떤 사망은 허용되고 내버려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의 특징은 국가가 ‘죽어도 무방한 인구’의 선을 명확히 긋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폐기되는 인간은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 이주민, 난민, 영세사업자, 빈곤한 자 등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 평등한 재난 대응, 취약성에 기반한 연결로서 인프라 

우리는  재난에 평등하게 대응하기 위해 버틀러가 언급한 ‘취약성에 기반한 인프라’는 어떻게 구축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 수 있을 것인지, 이야기해보기로 했습니다.

다양한 취약성을 지닌 분들이 모인 책모임이었던 만큼, 인프라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활발하게 나누어졌습니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 안에서 인프라가 자본의 필요에 의해 움직이면서, 여성, 장애인 등 배제되어온 사람들이 '소비자'로 포섭되어 시장이 확대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때, 단순히 소비자적 관점에서만 보면 권리적 측면에서 보장되지 못하는 모순이 생길 수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인프라 확충을 위해 취약성을 증명해야 하고, 줄 세움 당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수준의 자유주의를 넘어, 취약성을 노출하고 함께 돌보는 영역으로 나아와 기본적 필요의 영역을 인권기반의 인프라로서 확장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제안되었습니다. 특히 기존 제도 밖의 퀴어, 비전통적인 가족 구성에 대한 논의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행정상 동성혼 인정, 생활동반자법 입법, 가족구성권 보장 등의 움직임이 궁극적으로 안전에 대한 인프라를 넓히는 일이 될 수 있다는 흥미로운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세 번째 날, 우리는 백선우 작가의 <2장 인정이론의 관점에서 본 재난참사 유가족 운동>을 함께 읽었습니다.

사회 인정질서를 재 정립하는 사회변혁적 운동으로서의 인정 투쟁

작가는 이 장에서 악셀 호네트의 ‘인정 이론’을 주요하게 소개하며 재난 참사 유가족의 운동을 분석합니다. 호네트가 말하는 '인정'이란 단순히 서로의 행동이나 업적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해 주는 것을 넘어섭니다. 인정은 사회가 사회 그 자체로서 성립하고 유지되도록 만드는 필수 조건이며, 사회 속에 제도적으로 깊이 자리 잡고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규범적인 기대, 즉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과 인격성 자체를 훼손당하는 것을 호네트는 ‘무시(無視)’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유가족의 운동과 같은 인정투쟁이란, 훼손당한 인격성을 다시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한 운동으로서, 무너진 사회적 인정 질서에 맞서 싸우는 도덕적이고 규범적으로 정당한 투쟁입니다. 이 투쟁은 개인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것을 넘어, 기존 사회를 지탱하던 인정의 형식을 문제 삼아 새로운 인정 질서를 구축하려는 사회 변혁적인 힘이 됩니다.

누가 인정투쟁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호네트는 유가족이 권리 담지자로서 투쟁하는 근간을 ‘사랑’에서 찾습니다. 또한 시민 역시 정동의 정치화를 통해 심리적 고통을 완화하며 인정투쟁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가족 운동에는 공통적으로  자책이라는 동형적 구조가 나타납니다. 민주화운동 유가족이 열사의 뚜렷한 의지를 죄책감으로 이어받아 사회적 의무를 짊어진 것과 달리, 재난 희생자 유가족은 희생자의 뜻을 추측하며 안전권 회복과 사회 질서 재정립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기에 더 고난합니다. 호네트의 관점에서 무시로 인한 부정의는 그저 인지될 수 있는 가능성일 뿐이며, 이것이 인정투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시민의 연대와 지지라는 사회적 조건이 필수적임을 강조하며 장이 마무리됩니다.

연루와 연대의 시대

우리는 2장을 읽고 재난참사 운동에 시민으로서 함께하게 된 동기에 대해 깊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특히 유가족분들의 마음속에 ‘자책’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었고, 일면식도 없는 우리가 왜 죄책감을 느꼈는지에 생각을 확장해나갔습니다.  

먼저 각자의 삶에서 산업재해나 재난참사를 마주할 때의 감정을 이야기했습니다. 반복되는 산업재해를 멈추지 못하거나, 먼 나라의 학살이 벌어져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내가 정말 연대를 하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무기력을 느끼기도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함께 자신의 위치성에 대해 털어놓으며 울거나 멋쩍어 웃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곧이어 민주화운동과 지금의 운동을 비교하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명확한 부조리와 그에 저항하는 뚜렷한 의지가 있어 목숨을 걸고 함께 싸울 수 있었던 민주화 시대와 달리, 우리는 지금 사회적 부정의를 뚜렷하게 느끼지 못하는 동시에, 모든 사회적 질서에 피해와 가해의 명확한 구분 없이 모두가 가담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나 스스로도 사회를 구성하는 데 일조하고 있음을 알고, 적극적으로 사회적 부정의를 바꾸기 위해 기꺼이 연루되고 ‘연대’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또한 무기력과 의구심, 자책에 대한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사랑'의 영역을 더 넓힐 수 있도록 이야기를 계속 쌓아가야 한다는 점에 도달했습니다.

🧠 네 번째 만남: 재난과 외상, 그리고 산재를 논하다

'외상'에 대한 개념 전복

네 번째 만남에서는 김현준 작가의 <3장 사회적 문화투쟁의 장으로서 재난 참사의 외상: 재난 참사와 외상의 문화정치학> 파트를 읽고 모였습니다. 작가는 ‘사회 없는’ 재난과 ‘문화 없는’ 외상이라는 기존의 접근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고통과 외상을 사회문화적 실재로서 이해할 것을 제안합니다. 특히, 외상을 자연 발생적이거나 스스로 해결 가능한 개인의 문제로 보는 관점에 맞서, 외상이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의 사회적 반응으로 구성되는 것이라며 기존 개념을 전복합니다. 외상을 사회적으로 구성할 때, 외상의 치유와 치료는 사회 자체를 바꿔나가야 할 과제와 연동된다고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 장을 읽고, 신자유주의 하에서 외상 이후 공동체적 치유가 어떻게 지워지고 개인적 치유가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한 분은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언급하며, 구조적 문제를 공동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그 스트레스를 개인이 감당하고 정신 상담 산업이 발달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산재의 사회적 외면

이어서 산업재해가 왜 사회적인 반응으로 구성되지 못하는가를 중심으로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공동체적 치유가 지워지고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되는 배경과 산재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의 일자리에 내몰리는 배경에 ‘능력주의’가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견이 오갔습니다. 웹툰 ‘송곳’의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고 해서 평생에 걸쳐 벌을 받을 필요는 없다”라는 대사를 공유하며, 안전하지 않은 일터가 '징벌'에 가깝다는 현실을 짚었습니다. 반면, 능력주의 뿐만 아니라, 성별, 국적, 장애 등 다양한 사회적 지위에 따라 같은 ‘징벌’적 환경에 놓이게 된다며, 고학력 중년 여성 노동자들이 성별 때문에 콜센터 등 안전하지 않은 일터로 밀려나는 경험도 나누었습니다.

어떻게 산재피해에 더 사회적으로 반응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현장노동자의 목소리를 더 들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건설 현장의 문제를 들여다보며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없애고, 어느 현장에 가더라도 똑같은 근로조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원칙이 세워져야 한다는 플랜트노조 위원장의 의견을 공유했습니다. SPC 산재 피해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면서, 재발 방지를 위해 강경하게 지켜볼 것이라는 다짐도 나누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로감독관 인원 확충이 필수적인데, 현재 인원 대비 산업 현장 수의 감독 비율이 현실적이지 않아 근로감독관이 과로에 시달리는 모순적인 상황임도 이야기했습니다.

진상규명의 새로운 의미

외상으로부터 회복과 치유에 있어 진상규명의 의미는 무엇인지도 함께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세월호참사 이전과 이후, 진상규명의 의미가 확실히 달라졌다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진상규명이란 단순히 사실 규명이 아니라, 이 사회의 부조리에 관한 고름을 터뜨리는 과정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즉,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에 대한 사회의 태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게 된 것입니다.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진상규명의 의미 중 하나가 아닐지 이야기했습니다. 예를 들어 산사태가 일어났을 때에도 다시 '자연재해이냐'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재난일 가능성을 검토하는 데부터, 그 이전의 진실과 의미의 연속선 위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그 의미를 확장했습니다. 

세월호참사에 관한 외상이론을 들여다보며, 노동과 하청, 진상규명까지 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는 후기와, 생명안전을 위해 ‘연대’가 매우 중요함을 다시금 느꼈다는 참석자의 후기로 자리를 마무리했습니다! 


⚖️ 다섯 번째 만남: 법적 책임을 넘어선 정치적 확장

헌재 판결과 법적 책임 회피의 수사학

네 번째 장인 <10.29 이태원 참사에서 법적 책임의 정치적 확장 (정정훈)>을 읽으며, 우리는 재난 참사 책임의 의미가 어떻게 확장되어야 하는지 논의했습니다. 작가는 10.29 이태원 참사 관련하여 제출된 세 편의 의견서(행정안전부 장관 법률 위반 의견서, 한상희 법률가의 생명권과 관련된 탄핵 의견서, 유가족협의회의 탄핵 의견서)를 중심으로 정치적 책임과 법적 책임을 연결하는 책임 의미의 확장을 시도합니다.

먼저, 헌법재판소는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의 탄핵을 기각하며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별도의 예방 조치를 요구하기 어렵다는 점, 생명권 보호 조치에 대한 성실 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사후 부적절한 발언이 있었더라도 국민의 신임을 박탈할 정도는 아니다라는 논리를 펼치며 법적 책임 회피를 위한 수사학을 보여주었습니다.

생명권 보호 의무와 책임의 확장

이에 헌재 판결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한상희 법률가의 <생명권과 관련된 탄핵의견서>는 법적 책임의 형식에서 정책적 책임을 묻기 위한 근거로 국민의 생명권 보호에 실패했다는 결과 책임을 제시하고, 구조적 책임에 대한 강조가 오히려 법적 책임 회피의 논리로 전유되는 문제를 극복하려 시도합니다.

또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의 탄핵 의견서는 죽음 이후, 사회적으로 가치 있게 애도할 권리에 대해 질문합니다. 컨트롤 타워의 부재가 구조 작업 실패뿐 아니라 생명이 박탈된 이후까지 이어졌음을 지적하며, 생명권 보호 의무는 살아있는 생명에만 한정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구들은 법의 경계선을 넘어, 신뢰와 회복을 위한 책임까지 확장되기를 제안합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리라는 믿음이 무너지는 것은 곧 국가가 무너지는 것과 다름없으며, 무너진 국가를 다시 세우고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국가를 재건하기 위한 시도로서 책임이 분명히 바로 세워져야 함을 강조합니다.

법의 정신과 제약 없는 자유

우리는 헌법 재판소가 '~\라고 보기 어렵고'라며 죄를 비껴나가도록 수용하는 것에 진절머리를 내면서, '죄형법정주의'와 관련하여 국민의 안전에 관한 법은 지향점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는 것인지 질문했습니다. 너무 당연한 것에 대해 규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인지, 혹은 규정하지 않은 것 자체가 (미국의 총기 소유처럼) 의도된 바인지 등 국가(법)가 지닌 제약 없는 자유에 대해 어떻게 제지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이는 법실증주의전체주의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한 분은 한나 아렌트의 개념을 소개하며, 법실증주의가 도덕적 판단과 비판적 사유를 약화시키고 비인간적인 전체주의적 명령 체계가 저항 없이 작동하도록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보았지만, 역설적으로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도덕 원리에 기반한 자연법 또한 전체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정치적 지향으로서 정치적 책임"과 구체적인 형법의 필요성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생명권에 대한 권리가 낮게 평가되는 현실에서, 어떤 정신을 법에 새길 것이며, 법의 정신을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를 물었습니다. (답은 요원했습니다🥲)

사실 이상민 장관에게 바랐던 것은 즉시 참사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책임지고 물러나는 자세가 아니었을까요? 처벌이 필요하게 되는 단계까지 밀고 가지 않는 세상이 상식이길 바랐던 것이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지며 논의를 마무리했습니다.


💬 여섯 번째 만남: 재난 서사의 정치와 안전의 민주화

국가주의 재난서사 비판

다섯 번째 장인 <10.29이태원, 재난은 어떻게 서사화되었나: 국가주의 재난서사 비판>(전주희)을 읽으며, 우리는 재난 서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대항서사는 어떻게 시도될 수 있는지 모색했습니다. 10.29이태원참사는 처음부터 명백한 참사에도 불구하고, 역대 재난참사 중 가장 빠르게 재난 부정 서사가 구축되었습니다. ‘놀다 죽은’이라는 서사가 빠르게 유포되며 ‘주최자 없는 행사’라는 논리로 개인의 책임이 강조되고 재난의 자연화가 이루어졌습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 발언: ‘할로윈 데이는 축제가 아니라 현상’)

전 작가님에 따르면 이러한 재난 부정 서사의 핵심 매개는 ‘국가 애도 기간’이었습니다. 재난의 민주적 해결보다 국가적 위기 극복이 우선할 경우, ‘자기방어적 국가주의 이데올로기’가 강화되며, 국가는 정당성 수호를 위해 자기방어적 서사를 구축하고 피해 위치를 탈취합니다(피해와 가해의 위치 역전). 이때, '국가 애도 기간' 선포의 정당성과 '국가 책임 없음' 주장 사이의 모순적 공백에서 국가재난 서사의 갈림길이 생깁니다. 

그 갈림길에서 10.29이태원참사를 바라보는 국가주의 재난서사는 피해자 혐오로 귀결됩니다. 이태원 참사에서는 국가 애도 기간 시도에도 불구하고 국가 책임이 회피되었고, 국가 주도의 피해자 비난/혐오가 적극적으로 유포되었습니다.

대안적 생명정치와 안전의 민주화

작가는 국가 부재에 대한 책임을 국가에게 요구하는 과정이 국가 권력 강화로 귀결시키거나 피해-가해의 이분법적 논리를 강화할 위험을 안고 있음을 지적하며, 국가 권력을 강화하지 않고 국가 책임을 묻는 시민의 집단적인 역량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 질문합니다.

결론적으로, 작가는 대안적 생명정치를 통해 안전을 민주화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신자유주의적 생명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생존권과 애도, 삶과 죽음은 더 많이 연루되어야 합니다. 세월호참사 이후 강남역 여성살인사건, 구의역 김군 사망사고, 김용균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 사망사고 등을 거쳐 이태원까지 지속되는 전투적 애도 혹은 애도 시위는, 사회적 애도가 생명권력에 대항하는 공통의 지반 위에 놓여있음을 보여줍니다. 시민사회는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누군가 배제되지 않는지, 안전 구성 방식이 민주적인지 통제적인지 등을 끊임없이 검토하며 안전을 민주화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서사의 재창출, 상상력의 중요성

우리는 이 글을 읽고 어떻게 대안적인 재난 서사를 구성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레비나스의 '얼굴' 개념을 떠올리며, 피해자의 얼굴을 알게 된 후 연루를 거부할 수 없다는 개념은, 최초 국가주도의 애도기간 중 피해자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상황에서 느낀 다층적 경험에서 “얼굴을 알아야만 애도가 가능한가?”라는 의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어 정상성에 입각한 피해자를 알리기 위한 서사신자유주의적 서(사회적 가치를 인정받는 사람 '그는 살 만한 청년이었습니다', 모범청년 이미지)를 만드는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생각도 나왔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 피해자를 상상하고 감각할 수밖에 없지만, 중요한 것은 세대에 따라, 또 우리가 새롭게 문화를 구성해나가면서 어떤 서사가 용인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 즉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전투적 애도"라는 표현처럼, 강남역 등 다양한 사건에서 관통하는 애도의 정치가 생명 권력에 대항하는 공통의 지반 위에 놓여있으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서사를 엮어내고 퍼뜨리는 과정이 다양한 주체들을 초대할 수 있는 방법임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 일곱 번째 만남: 안전권의 민주화와 대항적 생명정치

안전권, 기본권으로의 길

마지막 장인 전주희 작가님의 <6장 피해 당사자의 권리로부터 모두의 안전권을> 파트를 읽으며, 우리는 안전권 기입 시도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신자유주의적-사회진화론적 생명정치에 대한 대항적 생명정치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세월호참사는 재난의 타자화를 넘어 한국 사회에 보편적 안전권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는 합의에 이르게 한 참사입니다. 

전 작가는 기본권으로서의 안전권은 바로 국가 책임에 대한 청구권을 보장을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강조합니다. 이 청구권은 단순한 보상이나 배상을 넘어, 안전을 위한 적극적인 예방적 조치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존 헌법에는 국가가 재난 안전관리를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는 있지만, 국민이 국가에 철저한 관리를 요구할 권리는 없다는 점이 비판되어 왔습니다. 이에 따라 세월호참사 이후 안전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이를 법제도에 반영하려는 실천이 이어졌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헌법에 안전권을 명시적으로 신설하려는 헌법 개정운동,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개정하거나 아예 생명안전기본법을 제정하려는 시도, 그리고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 등에 안전권을 중심으로 한 기본계획을 마련하려는 제도적 실천이 추진되었습니다.

2014년 이후 헌법 개정 시도를 중심으로 논의가 지속되었지만, 아직 헌법을 바꾸는 개혁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태원참사 유가족이 '생명안전기본법이 이전 정부에서 제정되었더라면, 더 나은 조건에서 출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국가 의무에 상응하는 국민의 안전권 명시적 규정 부재는 헌법재판소가 헌법을 보수적으로 해석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습니다. 안전권에 대한 요구가 시민권 차원에서 보장되지 못하면서 국가의 안전권력 강화로 이어질 위험 역시 현재 진행형입니다.

사회진화론적 생명정치에 대항하다

작가는 시민 주체를 호명하고 보편적 권리로서 안전권을 확장 구성하려는 시도가 지속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신자유주의적 안전권력을 해체하고 재구성하지 않는 한, 안전권의 온전한 실현은 위태로운 희망일 뿐입니다. 특히 사회진화론적 생명정치(생존 경쟁을 전제로 한 생명정치 체제)에 대항하기 위해, 안전권이 부재한 현실에서 안전권을 실천하는 운동은 대항적 생명정치 운동과 결합해야 한다고 작가는 강조하며 마지막 장을 마무리했습니다.

우리는 코로나19 시기에 정권 차원의 재난 수습 안에 동원되거나 제재에 순응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안전권력이 작동되는 과정을 이미 경험했음을 공유했습니다. 직업상 AI 파트에서 근무하는 한 분은 ‘신자유주의적 생명정치’라는 단어를 보고 떠올랐다며 산재 예방 AI를 연구했던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아리셀 참사를' 홍보 영상에 사용하자는 회사 지침을 접하며, 이 사회가 안전이라는 개념을 존엄성 외의 개념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에 회의감을 느꼈다고 고백했습니다.

혐오의 연속선과 대항의 방식

사회진화론적 생명정치와 연관 지어, 계급, 젠더, 장애 유무, 출신 등 다양한 권력 관계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받는 혐오가 재난 피해자들이 받는 혐오는 분배의 문제에 있어 연속선상에 있음을 떠올렸습니다. 특히 장애인이 위험에 처하는 것은 접근성의 문제임에도, 그 책임이 몸의 취약성을 가진 사람에게 미뤄진다며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그에 반해 대항적 생명정치 운동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에, 우리는 다양한 기억과 애도 행위, 몸을 드러내는 정치, 연대와 공동체의 형성 등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 이야기했습니다.

🙌 마지막 날: 작가와의 만남, 안전권과 대항 서사를 논하다

책모임의 마지막 날, 우리는 <재난 이후, 사회>의 공동 저자인 전주희 연구원님과 첫 모임에서 공감의 장을 열어주셨던 쏠-경진님을 모시고 작가와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먼저 참가자들은 책을 읽으며 들었던 소감과 질문을 전주희 작가님과 경진님에게 나누었습니다. ‘재난 유가족의 시민 지위가 흔들림에도 쉽게 정치적이라고 말하는 모순’, 국가가 기억을 장악할 때 강요당하는 침묵, 그리고 비극을 ‘그저 비극’으로만 느끼고 구조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의문 등 깊은 고민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전주희 연구원님이 제안해주신 ‘안전의 민주화’가 어떤 실천을 요구할까 하는 질문까지, 소감 나눔에 이어 작가님과의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Q. 왜 재난 참사에 있어 서사는 중요한가요?

전주희 작가님은 구조적인 원인을 이야기할 때 모든 자료를 항공샷처럼 종합하여 실체가 있는 것처럼 알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어떤 참사 조사 보고서든 사실의 공백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진상 규명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전 작가님은 진상 규명이 바로 그 질문의 답을 구성하는 과정이기에 서사가 중요하며, 진상규명은 여러 주체에 의해 반복해서 쓰여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을 중심으로 서사가 쓰여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누군가 공들여 쓴 원인 규명 결과를 이성적으로 이해할수록 감정도 더 짙어집니다. 반드시 얼굴을 알아야만 슬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지금 바로 슬퍼하지 않아도 됩니다.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작업을 통해 감정도 함께 깊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Q. 재난참사 피해자의 곁에서 연대하는 길, 그 원칙은 무엇일까요?

전 작가님은 오늘의 당사자성이 내일의 당사자주의가 될 수 있고, 이론은 원칙이 아니기에 운동은 패배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는 그 사이를 진동하며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재난 당사자 운동과 사회운동 사이에는 긴장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이 긴장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재난참사 피해 당사자는 활동가이지만 사회운동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진다며,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 승인하면서 쟁점과 긴장을 가져갈 것인가라고 강조했습니다. 갈등의 해결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갈등을 민주화하는 방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Q. 우리는 타인으로서, 서사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요?

쏠-경진님은 "안 될 거 없죠!"라고 답하며, "내가 너무 오바하는 것은 아닐까" 검열할 필요 없이 자신이 느낀 대로 내 중심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태원 참사에서처럼 퀴어만이, 혹은 유가족의 언어로만 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며, 유가족 역시 두 번째 주체성으로서 당사자성을 획득한 사람들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우리는 결국 타인으로서 서사에 참여할 수밖에 없지만 그 층위는 다르며, '위험의 외주화' 문제처럼 어느 순간 그 책임을 나누며 당사자성을 가지는 지점도 있다고 공감했습니다. 덜 슬프면 덜 슬픈 대로 모든 감정이 들어와야 한다고 강조하며, 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을 동시대인이라고 정의하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동시대인으로 참여하고 애도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져야 검열을 덜 하게 된다는 것에 공감했습니다.

Q. ‘생명권력에 대항하는 공통의 지반’은 무엇인가요?

전주희 연구원님은 이 질문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시민의 안전과 노동의 안전이 분절되어 있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 라는 팻말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라는 맑스의 말처럼, 공장 문 앞에서 민주주의가 막힌 현실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강남역에서 시작하여 구의역 사망 참사에 포스트잇이 붙기 시작했듯, 시민이 함께 싸우는 모습이 있었기에 유가족들이 기업이 강요하는 모욕적 패턴을 깰 수 있었으며, 이는 세월호 유가족의 지속적인 드러남이 영향을 주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전주희 연구원님은 청년-여성-노동 키워드가 연결되는 이유는, 신자유주의적 생명권력의 핵심이 인구 집단에 대한 보편적 통치가 아니라 특권 집단을 갈라치기하고 선별, 배제하며 위계화하는 방식으로 통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마무리하며

한 참가자는 '서사의 물질성'에 영감을 받아, 매일 노란 팔찌를 차는 나는 어떤 물질성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하며 '내가 서사 자체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진동해야 한다’는 말에서 재난 참사 운동에 있어 한 가지 관점에 편향되는 것을 경계하고 여러 관점에서 대안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겠다고 느꼈습니다.


맺음말: 진동과 연루를 향한 다짐 ✨

8주간의 책모임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재난 이후의 사회가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들을 함께 끌어안았습니다. '죽어도 무방한 인구'를 가르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부터, 인정투쟁으로서의 유가족 운동, 그리고 외상을 사회적 실재로 구성하는 문제까지, 매 순간 깊은 고민과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특히 마지막 작가와의 대화에서, 우리는 운동에 대한 이상적인 원칙을 세우기보다 ‘끊임없이 진동해야 한다’는 통찰을 얻었습니다.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관점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우리 모두가 목격자이자 침묵했던 자, 곧 사건의 연루자임을 확인하며, 서사를 대신 쓸 수는 없을지라도 서사의 구도를 바꾸고 대항 서사를 만드는 질문을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다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책모임은 안전의 민주화라는 목표를 향해 우리가 기꺼이 연루되고 연대하며, 사랑의 영역을 계속해서 넓혀가야 함을 알려준 소중한 여정이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4.16연대 청년모임 참가자분들, 그리고 서교인문사회연구실의 전주희 연구원님과 경진님께 감사드립니다!

4.16연대 청년책모임 <세계관>은 12월에 다시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