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연대 청년 책모임 <세계관> 시즌 3: “재난과 젠더” 후기
<피프티 피플>과 <퀴어한 장례와 애도>를 읽고
4.16연대 청년 책모임 <세계관>은 세월호참사 이후 새롭게 사회를 바라보게 된 우리의 관점을 더 확장시켜보고자, 세 번째 시즌에 ‘재난과 젠더’라는 주제를 선정하고 책 ‘피프티 피플(정세랑 작)과 ‘퀴어한 장례와 애도’(김순남 , 김현경 , 나영정 , 이유나)를 읽었습니다! 사회적 참사를 겪으며 스스로 되새긴 교훈과, 그 연대의 확장을 ‘젠더’의제로 펼쳐보고 적극적으로 연결성을 찾아보려는 여정이었는데요!
책<피프티피플>을 읽고 만나는 1번의 모임, <퀴어한 장례와 애도>를 익고 만나는 세 번의 모임, 그리고 <퀴어한 장례와 애도> 김순남, 이유나 작가님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참여해주신 4.16연대 청년모임 참가자분들의 후기를 공유합니다!
📚 첫 번째 책: 정세랑 <피프티피플>
📝첫 번째 모임: 2025.12.18.
✏ 작성자: 4.16연대 사무처 활동가 현아

안녕하세요, 책모임 운영자 현아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두터운 자료를 분석하는 '재난의 세계'에 삶과 동시에, '젠더'라는 렌즈로 세상을 읽어내는 세계를 살아왔습니다. '재난과 젠더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홀로 품어온 이 숙제를 이제 더이상 혼자 풀고 싶지 않아 <세계관>의 세번째 주제로 관련한 책들을 선정했습니다. 다행히 모임원분들은 너무나 반가운 기색으로 제 숙제를 함께 풀어보자며 기꺼이 받아들여주셨고요!
그러나 막상 책《피프티피플》을 펼쳤을 땐 고민이 앞섰습니다. 이 책은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들이대는 현미경이라기보다, 삶의 여러 장면을 간직한 앨범 같았거든요. 하지만 고민할 틈도 없이 50여 명의 인생을 조금씩 훔쳐보며 큭큭대다 보니 어느덧 모임 날이 와버렸고 나보다 현자이신 우리 모임원분들이 제 숙제를 대신 풀어줄 거라 기대하며 털레털레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성실한 모임원 분들이 제 숙제를 대신 풀어주시더라구요. 이제부터 모임의 첫날, 함께 나눈 감상들을 나눠보려 합니다.
'너는 필요해'라고 말하는 연결의 힘 :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 서사가 연결되고 교차되며.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에, 또한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인간이란, 인생이란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면 각자 이렇게나 심오한 것이군 하고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깊이에 적지 않은 감동마저 받았다.” — 무라카미 하루키, 《언더그라운드》 중 (모임원 '한량'님 공유)
모임 내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소설 속 캐릭터들을 "배윤나 님", "이설아 님"이라 부르며 존칭을 붙이고 있었더랬죠. 아마 이 세상에 어딘가에 살아가고 있을 법한 사람으로, 길을 걷다 어깨를 스치는 행인에 불과했을 이들이 사실은 각자 감당하기 벅찬 삶의 무게와 고유한 이름을 가진 주인공임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나와 상관없어 보이던 타인의 서사가 겹겹이 쌓이고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받는 책의 구조를 보며, 우리는 그 연결감의 끝에서 작가가 건네고 싶었던 것이 '보편적 인류애'가 아닐까 추측했습니다. 사회적참사를 기억하며 비로소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생명의 소중함’, “너는 필요해”(피프티피플 속 ‘배윤나’가 한 말)라는 말, 그리고 ‘사랑’인 것처럼요.
점점 타인을 이해할 기회가 줄어들고 혐오와 이분법이 쉬워진 세상에서, 너무나 쉽고 얕은 선택이나 언행을 저지르는 사람들로 인해 상처받고 인류애를 잃어갈 일이 많은 요즘, 타인의 마음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는 이 경험이 보다 고귀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어떤 대단한 이의 영웅서사를 읽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서사가 있는 평범한 사람들, 늘 위태로운 사회에 있는 우리들, 정상성과 비정상성으로 딱잘라 가를 수 없는 어느 가운데에서 머무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여성인지 남성인지, 장애가 있는지 없는지 가르는 것만큼이나 '재난을 겪은 이'와 '겪지 않은 이'를 나누는 선 또한 무의미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타인은 영원히 타인일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삶이라는 거대한 스펙트럼 위의 어느 방향에 위치하고 있을 뿐임을, 그 유동적인 연결성을 인지하는 것이야말로 타인을 이해하는 그 어려운 숙제를 해나가는 방법이 아닐까요? 그래서 “누가 나도 이 소설속 주인공들처럼 한편의 짧은 소설 주인공으로 써줬으면 좋겠다”고 넌지시 SF작가이신 참가자분에게 말했더니, SF속 괴물로 그려주시겠다고 답해주셔서 마음만 받겠다고 반려했지만요.
불안한 현실과 판타지적 결말 사이에서
책에는 평온하고 웃기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한 일상과 함께, 데이트 폭력, 가정폭력, 가습기살균제참사, 씽크홀, 건축현장 산재, 그리고 영화관 화재사건까지, 여러 사회적 죽음과 재난참사가 함께 묘사됩니다.
매일 뉴스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접하면서도 동시에 밥을 먹고 일을 하는 우리의 일상과 꼭 닮아있죠. 우리 삶에 위험이 늘 함께하고 있다는 불안이 사실주의적으로 책 전체에 그대로 그려져있습니다. 하지만 영화관 재난 현장에서 모두가 협심해 살아남는 결말은 다소 판타지적으로 그려져 있어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 영화관에 갇혀있던 주인공들이 개인 역량이 강한 자들이라 살아남은 것 아니냐며, 외장재도 난연재가 아닌 부실공사였고(이명박때 소재관련 규제가 완화되었다는 깨알 정보도 알려주심) 화재 현장에 정규직이 아무도 없었고, 만약 화재가 실제로 일어났다면 다 죽었을 것이라고, 결말이 너무 유토피아적이고, 위안 아닌 위안이라고 날카로운 비판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공사현장의 비계가 무너지는 사고를 '내 책임'이라고 말하는 노무장의 모습에서, 대리 위안을 얻을 수 있었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과는 괴리된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시스템이 바뀌어야지 개인의 자책이 답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스웨덴의 도로 설계 사례를 들어 구조적 변화를 강조하신 분도 있었죠.
비판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 사람들의 서사를 이미 다 봐버린 독자로서, 이들이 죽었다면 마음이 너무 다쳤을 것 같다. 작가님이 모두를 살려준 배려가 고마웠다"는 고백도 오갔습니다.
나의 '판타지적 현실'
무엇이 판타지이고 무엇이 현실일까요? 며칠 전, 타고 가던 지하철에서 한 분이 쓰러지자 그를 주저 없이 도운 시민들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세월호 이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약속이 실천되는 판타지 같은 현실을 목격하곤 합니다.
제게도 판타지 같은 장면이 있습니다. 모임 시작 전 근황을 나눌 때, 개인적 근황을 나누는 저와 달리 지혜복 교사님 투쟁현장 연대, 세종호텔 복직투쟁 연대, 쿠팡과 SPC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 색동원 시설에 대한 연대 등을 당연하다는 듯 공유하는 이들이 제 눈앞에 모여있다는 사실 자체가 제게는 경이로운 판타지입니다.
이 '판타지적 현실'이 저의 오랜 숙제에 답을 주었습니다. "젠더와 재난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책 속 주인공들이 서로의 서사를 가로지르며 관계를 맺듯, 젠더도 재난도 결국 '정상성'이라는 오만한 기준으로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는 연대에서 만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서 더욱 기꺼이 서로의 스펙트럼 속으로 걸어 들어가 적극적으로 연루되어야만, 모두가, 여성도, 성소수자도 더 죽임당하지 않고 안전해질 수 있도록 시스템의 변화에 다다를 수 있다는 답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같이 숙제를 풀어주신 우리 현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두 번째 책: 정세랑<퀴어한 장례와 애도>
📝두 번째 모임: 2026.01.08.
✏ 작성자: 수영

이번 <세계관 시즌3> 두 번째 모임에서는 『퀴어한 장례와 애도』 1~3장을 읽고, 각자가 품고 있던 생각과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떠올랐던 질문들이 모임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장례와 애도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제도의 문제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사회가 당연하게 여겨온 장례의 형식과 절차가 실제로는 매우 제한적인 기준 위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혈연이나 법적 가족을 중심으로 설계된 장례 과정 속에서, 파트너나 가장 가까운 친구, 오랜 시간 돌봄을 나누어온 관계들은 쉽게 주변으로 밀려나며, 그 결과 슬퍼할 권리마저 스스로 숨기게 된다는 점에 공감이 모였습니다. 또한 죽음이 행정과 통계의 언어로만 처리되는 과정 속에서 고인의 삶은 숫자와 절차로 환원되고, 관계의 맥락이 쉽게 탈락된다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애도를 박탈당하는 생존 공동체에 대한 각자의 실제 경험을 나누며 현실감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한 참가자는 각자에게 생존을 가능하게 했던 공동체가 있었는지를 묻고 싶었다고 말하며, 퀴어 공동체 안에서 취약함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삶을 목격하는 동시에 생존돌봄에 직접 참여해 온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의 사례를 통해, 삶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조력이 필수적임에도 그 돌봄이 비용과 시간의 문제로만 관리되며 관계로는 쉽게 인정되지 않는 현실을 짚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퀴어한 장례와 애도를 가능하게 하는 공동체란, 효율이나 자격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실제로 지탱해 온 돌봄과 목격의 관계를 기억하고 인정하는 공동체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재난참사 이후의 애도 경험과도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한 참가자는 삼풍백화점 참사 등의 사례를 떠올리며, 유해를 확인하고 장례의 과정을 감당하는 역할이 성별과 가족 내 위계에 따라 다르게 배분되는 현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을 떠안고, 누군가는 애도의 자리에서 오히려 밀려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점이 공유되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애도 역시 효율과 감내의 문제로 전가되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었고, 애도는 누가 더 견딜 수 있는지를 가리는 과정이 아니라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슬픔을 마주할 수 있도록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퀴어한 애도의 문제와도 깊이 맞닿아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모임은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자리를 넘어, 각자의 삶과 경험을 통해 애도의 의미를 다시 묻는 시간이었습니다. 통계와 절차 너머의 삶과 관계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앞으로 어떤 애도의 장을 만들어가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함께 남길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모임: 2026.01.15.
✏ 작성자: 4.16연대 사무처 활동가 다예

안녕하세요, 4.16청년책모임 시즌3 운영했던 4.16연대 사무처 정옥다예 활동가입니다. 지난 1월 4일은 책모임 3기로서는 세 번째 만남, <퀴어한 장례와 애도>로는 두 번째 모임날이었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던 공기의 온기를 떠올리며 만남 현장을 조금 소개합니다.
이번 모임에서 가장 자주 등장했던 단어는 ‘애도’보다 ‘관계’였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는가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한 참여자는 기록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함께 찍은 사진 몇 장이 없어서 가까운 사이였음을 증명하지 못했던 사례, 반대로 일상의 기록 덕분에 관계가 인정받았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고립되지 않은 삶을 만든다는 것은 개인의 노력만이 아니라 사회가 발견하려는 의지를 갖는 일”이라는 문장을 오래 곱씹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보이지 않는 삶’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는 일이 왜 애도의 조건이 되는지 함께 생각하게 됐습니다.
또 다른 분들은 퀴어와 장애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장례 공간의 접근성 문제를 짚어주셨습니다. 장례식장이라는 공간조차 누군가에게는 물리적, 사회적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애도 역시 특정 몸과 관계만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한 참여자의 “이 무거운 짐을 함께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서 안도했다”는 고백은 많은 분들의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책 속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는 권리’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떠난 이를 돌보는 사람을 다시 돌본다는 표현, 기억이 관계를 확장시키고 연쇄적인 돌봄으로 이어진다는 감각이 인상 깊었다는 나눔도 있었습니다. 고립과 은둔, 그리고 사회적 배제가 삶과 죽음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생각하며, 애도가 단지 슬픔의 표현이 아니라 공동체를 다시 엮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도 이어졌습니다.
동시에 보다 현실적인 고민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한 관계, 장례 절차에서 배제될 가능성, 제도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다양한 가족 형태들에 대한 걱정, 그리고 그래서 오히려 친구나 동료, 속한 커뮤니티 안에서 미리 장례를 이야기하고 준비해보는 경험들까지 다양한 사연 오고 갔습니다. 특히 이 날 함께 해주신 4.16연대 사무처 현슬기 활동가가 “내가 아끼는 사람을 위해 까다로운 조력자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남겨주셨는데, 개인적으로 책의 남은 내용을 읽는 데에 좋은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의례에 대한 논의도 흥미로웠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장례의 형식이 특정 가족 규범과 사회 질서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 틀을 조금씩 흔들어 보려는 다양한 시도들 (공동체 결혼식, 평어 사용 실험, 사회운동 속 애도 방식, 대자보 붙이기 같은 작은 저항들…) 이 모두가 ‘정해진 방식 너머의 애도’를 상상하게 했습니다. 누군가는 장례를 무료 급식처럼 열고 싶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음악이나 물건, 혹은 노동으로 애도를 표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각자의 상상은 달랐지만, 그 안에는 공통적으로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답게 기억해주길 바란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사회적 참사와의 연결도 떠올랐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개인의 일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기억할 때, 애도는 투쟁이 되기도 하고 연대가 되기도 합니다. 책에서도 그리고 우리의 경험 속에서도 퀴어의 죽음과 애도가 종종 사회적 싸움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무겁지만 따뜻했고 낯설지만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삶의 자리에서 온 사람들이 이렇게 솔직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돌봄이고 애도의 실천이 아닐까 싶습니다.
📝네 번째 모임: 2026.01.22.
✏ 작성자: 수민

이번 모임은 책 [퀴어한 장례와 애도] 전반에 대한 소감 및 저자와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책에 대한 소감으로는, 애도란 고인의 뜻을 반영하는 과정이기에 혈연가족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슬프고 엄숙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공유하였다. 실제로 사회적 참사를 애도하는 과정에서 유가족 뿐만이 아니라 시민들 역시 기억의 주체가 되어 연대하고 있으며 고인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등재하기도 한다. 그와 동시에, 사회의 ‘정상성’ 담론으로 인하여 생전에 시민의 자리를 부여받지 못하였던 이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사후에도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점도 공유하였다. 그에 대한 사례로는 미아리 화재 참사와 이태원 참사가 언급되었다. 희생자가 혹은 희생이 벌어진 지역이 ‘정상성’에 벗어난다는 사실이 그들의 죽음을 폄훼하는 ‘근거’가 되는 사회에 맞서고자 우리는 각자의 공간에서 ‘기억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이후 저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질문을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파괴해본 의례가 있는지 등 글을 쓰게 되기까지 저자가 겪은 경험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 또한, “퀴어한 장례”를 위해서는 가족이 되는 것 다시 말해 생활동반자법을 먼저 보장받아야 하는지 아니면 장례를 원하는 사람 누구나 장례를 할 수 있도록 장사법이 먼저 변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정상가족” 담론에서 벗어난 관계 역시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와 가족이 아닌 관계라 할지라도 고인에 대한 장례를 원하는 누구나 장례를 치르고 함께할 수 있는 제도 중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지, 둘 중 어떤 방향으로 사회를 설득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외에도 희생자를 배제시키지 않는 애도란 무엇인지, 장례 비용에 대해서 순수한 애도의 자격이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공적 애도와 사적 애도는 어떻게 구분되는지 등에 관한 질문도 있었다.
이렇게 4회차 모임은 마무리되었다. 장례와 애도가 퀴어해지기 위해 다시 말해 애도가 고인의 삶을 반영하는 과정이 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싸움을 이어가야 할지에 대하여 논의하는 시간이 되었다.
📝다섯 번째 모임: 2026.01.29.
✏ 작성자: 4.16연대 사무처 활동가 현아

[후기] 애도라는 낯선 영토에서, 세상의 속도를 늦추는 방해꾼이 된다는 것
책모임 시즌 3을 마무리하는 날, <퀴어한 장례와 애도> 저자 김순남, 이유나작가님을 모시고 저자와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작가님들에게 어떤 이유로 글을 쓰시게 되었는지, 작성하시면서 들었던 마음은 무엇이었는지, 재난참사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었는지 질문을 드리고 답을 나누었습니다.
1. 취약함의 증폭, 애도라는 영토에 진입하기
김순남 작가님은 코로나 시기, 변희수 하사의 죽음과 그해 세 명 정도의 활동가들을 연달아 떠나보내며 "삶의 불안정성과 취약성이 우리 곁에 너무 가까이 와 있다는 감각"을 느끼며 이 책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애도를 멀리 있는 의례가 아니라, 죽음을 통해 우리는 어떤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집중하며 책을 쓰려고 노력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는 삶의 방식부터 죽음 이후의 관계성까지 모든 부분이 '가족주의'라는 단단한 성벽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그 공고한 가족주의가 만들어내는 불평등 속에서, 어떤 죽음은 슬퍼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지워지곤 합니다.
2. 제도가 가두고 자본주의가 지우는 죽음들
가까운 이들의 장례를 치르며, 또 책을 써가며 뼈저리게 느낀 것은 “제도가 산 사람만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와 그를 애도하려는 자도 갈라놓는다”는 사실입니다. 사회는 ‘진짜 가족’인지 아닌지만 따지며 우리의 유대를 가짜 취급하고, 정작 그 울타리 안에 있는 유가족들에게는 "이제 그만하라"며 슬픔의 양과 기간을 통제합니다.
이유나 작가님은 여기에 숨은 자본주의적 죽음의 재현 방식을 비판하셨습니다. 한국 사회는 “노동 시장의 생산성에 의한 보상만이 정상적”으로 인정받아왔기에, 상실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멈춰 서는 ‘느린 시간’에 대한 기본적인 인정이 부재합니다. 장애인권 활동가 수영님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매분 매시간 매일의 장례라면, 그들을 향한 애도는 단순히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삶의 속도에 밀려버린 존재들을 다시 우리 삶의 한복판으로 소환하는 일 그 자체처럼 느껴진다고 의견을 더했습니다.
김순남 작가님의 말씀처럼 “자본주의의 속도를 멈추게 하는 것 자체가 애도”이며, 그 힘은 9.11 사태 당시 '순수한 우정'이라는 프레임이 사실은 조력자의 삶을 지우는 억압의 논리였음을 격파했던 것처럼, 관계의 실질을 증명해내는 것에서 나옵니다. 유나님은 최근 참사 지원법들이 피해 당사자의 범위를 공동체까지 넓혀가고 있는 것 역시, 자본주의적 논리를 타파하고 ‘멈춤과 회복의 시간’에 대한 보상을 쟁취하려 했던 참사 운동의 값진 성과라고 짚었습니다.
3. 협상에서 발명으로: 응답하는 존재들이 지켜내는 이름
작가님들은 “왜 죽었는가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확인하는 장치”로서 장례와 애도를 다시 만나보기를 시도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증언을 통해 알게 된, 고인의 삶을 온전히 확인하고 남기는 일은 장례식장이라는 완강한 제도, 혹은 고인을 지우려는 세상과 싸워야만 하는 일, 그리고 차별을 마주하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순남 작가님은 애도가 남겨진 이들이 벌이는 ‘치열한 협상의 과정’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어려운 협상이 실제로 가능했던 이유는, 누군가가 끝내 피하지 않고 서로의 슬픔에 응답해왔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나 차별적인 제도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동력은 기꺼이 상주가 되려 하고, 멈춰 서서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네트워크가 있기에 존재합니다. 정은 님은 이 지점에서 죽음 당사자에게만 쏠려 있던 시선을 이제는 “장례 이후의 남겨진 삶을 감내하며, 그 고통을 동력 삼아 세상을 바꾸려 애쓰는 ‘애도의 주체’들”에게로 옮겨와야 한다고 짚어주셨습니다.
애도의 주체들이 협상을 통해 지키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이름'입니다. 가족 관계의 이름으로만 불렀을 때 지워지는, 그가 누구를 사랑했고 어떤 공동체와 연결되었는지, “우리가 살았던 모습 그대로의 이름”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애도는 이미 주어진 답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응답하는 주체들이 고유한 삶의 맥락을 끝까지 지켜내며 새로이 발명해내는 사건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안전 역시, 서로가 언제 위험한지 바로 체크하고 연결될 수 있는 ‘생활동반자법’ 같은 다정한 관계망 위에서 비로소 발명될 수 있을 것입니다.
4. 망했다는 말 뒤에 숨은 '급진적 사랑'
이유나 작가님은 “우리는 보호장치가 없다고 하더라도 살아낸다”는 것이 퀴어들의 유산이라고 하셨습니다. 제도가 있건 없건 서로에게 응답하는 존재들이 이미 애도의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는 것이지요.
김순남 작가님이 인터뷰한 20대 생존 돌봄자의 이야기가 계속 맴돕니다. 친구를 마지막까지 지키며 “인생은 망했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의 고통을 알아버린 이상 함께하는 것 말고 무엇이 가능한가”라고 말했다는 그 말. 김순남 작가님은 이를 “급진적인 수용”이라 부르셨습니다. 인터뷰 내내 웃음 짓던 그 마음이야말로 “함께 끝까지 가겠다는 의지”라는 사랑의 진짜 정치적인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5. 가족주의적 순수함을 깨고 자본주의의 속도를 멈추는 애도로 삶을 들여다보기.
여성과 퀴어, 재난참사를 연결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가족구성권연구소 한솔 님이 나눠주신 것처럼, 세월호가 있었기에 강남역 앞 여성의 죽음이 정치화될 수 있었고 청년 여성들의 운동이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재난과 젠더를 연결하는 건 단순히 '여성이 취약하다'는 말을 넘어, 재난의 뿌리에 있는 가부장성을 읽어내고 그 회복 과정에서 평등한 돌봄과 애도 공동체의 역할을 찾아내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죽음을 바라보게 된 건, 역설적으로 우리 삶의 자리가 어떠한지, 우리가 정말 사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확장의 과정이었습니다. “우리는 조금 더 문란해져야 한다”는 책 속 구절처럼, 우리는 사랑을 더 인정하고, 생산과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삭제되었던 존재들을 삶의 한복판으로 소환하는 이 ‘불편한 멈춤’에 기꺼이 동참하며, 세상의 속도를 늦추는 다정한 방해꾼이 되고 싶습니다.
4.16연대 청년 책모임 <세계관> 시즌 3: “재난과 젠더” 후기
<피프티 피플>과 <퀴어한 장례와 애도>를 읽고
4.16연대 청년 책모임 <세계관>은 세월호참사 이후 새롭게 사회를 바라보게 된 우리의 관점을 더 확장시켜보고자, 세 번째 시즌에 ‘재난과 젠더’라는 주제를 선정하고 책 ‘피프티 피플(정세랑 작)과 ‘퀴어한 장례와 애도’(김순남 , 김현경 , 나영정 , 이유나)를 읽었습니다! 사회적 참사를 겪으며 스스로 되새긴 교훈과, 그 연대의 확장을 ‘젠더’의제로 펼쳐보고 적극적으로 연결성을 찾아보려는 여정이었는데요!
책<피프티피플>을 읽고 만나는 1번의 모임, <퀴어한 장례와 애도>를 익고 만나는 세 번의 모임, 그리고 <퀴어한 장례와 애도> 김순남, 이유나 작가님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참여해주신 4.16연대 청년모임 참가자분들의 후기를 공유합니다!
📚 첫 번째 책: 정세랑 <피프티피플>
📝첫 번째 모임: 2025.12.18.
✏ 작성자: 4.16연대 사무처 활동가 현아

안녕하세요, 책모임 운영자 현아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두터운 자료를 분석하는 '재난의 세계'에 삶과 동시에, '젠더'라는 렌즈로 세상을 읽어내는 세계를 살아왔습니다. '재난과 젠더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홀로 품어온 이 숙제를 이제 더이상 혼자 풀고 싶지 않아 <세계관>의 세번째 주제로 관련한 책들을 선정했습니다. 다행히 모임원분들은 너무나 반가운 기색으로 제 숙제를 함께 풀어보자며 기꺼이 받아들여주셨고요!
그러나 막상 책《피프티피플》을 펼쳤을 땐 고민이 앞섰습니다. 이 책은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들이대는 현미경이라기보다, 삶의 여러 장면을 간직한 앨범 같았거든요. 하지만 고민할 틈도 없이 50여 명의 인생을 조금씩 훔쳐보며 큭큭대다 보니 어느덧 모임 날이 와버렸고 나보다 현자이신 우리 모임원분들이 제 숙제를 대신 풀어줄 거라 기대하며 털레털레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성실한 모임원 분들이 제 숙제를 대신 풀어주시더라구요. 이제부터 모임의 첫날, 함께 나눈 감상들을 나눠보려 합니다.
'너는 필요해'라고 말하는 연결의 힘 :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 서사가 연결되고 교차되며.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에, 또한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인간이란, 인생이란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면 각자 이렇게나 심오한 것이군 하고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깊이에 적지 않은 감동마저 받았다.” — 무라카미 하루키, 《언더그라운드》 중 (모임원 '한량'님 공유)
모임 내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소설 속 캐릭터들을 "배윤나 님", "이설아 님"이라 부르며 존칭을 붙이고 있었더랬죠. 아마 이 세상에 어딘가에 살아가고 있을 법한 사람으로, 길을 걷다 어깨를 스치는 행인에 불과했을 이들이 사실은 각자 감당하기 벅찬 삶의 무게와 고유한 이름을 가진 주인공임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나와 상관없어 보이던 타인의 서사가 겹겹이 쌓이고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받는 책의 구조를 보며, 우리는 그 연결감의 끝에서 작가가 건네고 싶었던 것이 '보편적 인류애'가 아닐까 추측했습니다. 사회적참사를 기억하며 비로소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생명의 소중함’, “너는 필요해”(피프티피플 속 ‘배윤나’가 한 말)라는 말, 그리고 ‘사랑’인 것처럼요.
점점 타인을 이해할 기회가 줄어들고 혐오와 이분법이 쉬워진 세상에서, 너무나 쉽고 얕은 선택이나 언행을 저지르는 사람들로 인해 상처받고 인류애를 잃어갈 일이 많은 요즘, 타인의 마음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는 이 경험이 보다 고귀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어떤 대단한 이의 영웅서사를 읽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서사가 있는 평범한 사람들, 늘 위태로운 사회에 있는 우리들, 정상성과 비정상성으로 딱잘라 가를 수 없는 어느 가운데에서 머무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여성인지 남성인지, 장애가 있는지 없는지 가르는 것만큼이나 '재난을 겪은 이'와 '겪지 않은 이'를 나누는 선 또한 무의미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타인은 영원히 타인일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삶이라는 거대한 스펙트럼 위의 어느 방향에 위치하고 있을 뿐임을, 그 유동적인 연결성을 인지하는 것이야말로 타인을 이해하는 그 어려운 숙제를 해나가는 방법이 아닐까요? 그래서 “누가 나도 이 소설속 주인공들처럼 한편의 짧은 소설 주인공으로 써줬으면 좋겠다”고 넌지시 SF작가이신 참가자분에게 말했더니, SF속 괴물로 그려주시겠다고 답해주셔서 마음만 받겠다고 반려했지만요.
불안한 현실과 판타지적 결말 사이에서
책에는 평온하고 웃기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한 일상과 함께, 데이트 폭력, 가정폭력, 가습기살균제참사, 씽크홀, 건축현장 산재, 그리고 영화관 화재사건까지, 여러 사회적 죽음과 재난참사가 함께 묘사됩니다.
매일 뉴스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접하면서도 동시에 밥을 먹고 일을 하는 우리의 일상과 꼭 닮아있죠. 우리 삶에 위험이 늘 함께하고 있다는 불안이 사실주의적으로 책 전체에 그대로 그려져있습니다. 하지만 영화관 재난 현장에서 모두가 협심해 살아남는 결말은 다소 판타지적으로 그려져 있어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 영화관에 갇혀있던 주인공들이 개인 역량이 강한 자들이라 살아남은 것 아니냐며, 외장재도 난연재가 아닌 부실공사였고(이명박때 소재관련 규제가 완화되었다는 깨알 정보도 알려주심) 화재 현장에 정규직이 아무도 없었고, 만약 화재가 실제로 일어났다면 다 죽었을 것이라고, 결말이 너무 유토피아적이고, 위안 아닌 위안이라고 날카로운 비판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공사현장의 비계가 무너지는 사고를 '내 책임'이라고 말하는 노무장의 모습에서, 대리 위안을 얻을 수 있었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과는 괴리된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시스템이 바뀌어야지 개인의 자책이 답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스웨덴의 도로 설계 사례를 들어 구조적 변화를 강조하신 분도 있었죠.
비판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 사람들의 서사를 이미 다 봐버린 독자로서, 이들이 죽었다면 마음이 너무 다쳤을 것 같다. 작가님이 모두를 살려준 배려가 고마웠다"는 고백도 오갔습니다.
나의 '판타지적 현실'
무엇이 판타지이고 무엇이 현실일까요? 며칠 전, 타고 가던 지하철에서 한 분이 쓰러지자 그를 주저 없이 도운 시민들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세월호 이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약속이 실천되는 판타지 같은 현실을 목격하곤 합니다.
제게도 판타지 같은 장면이 있습니다. 모임 시작 전 근황을 나눌 때, 개인적 근황을 나누는 저와 달리 지혜복 교사님 투쟁현장 연대, 세종호텔 복직투쟁 연대, 쿠팡과 SPC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 색동원 시설에 대한 연대 등을 당연하다는 듯 공유하는 이들이 제 눈앞에 모여있다는 사실 자체가 제게는 경이로운 판타지입니다.
이 '판타지적 현실'이 저의 오랜 숙제에 답을 주었습니다. "젠더와 재난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책 속 주인공들이 서로의 서사를 가로지르며 관계를 맺듯, 젠더도 재난도 결국 '정상성'이라는 오만한 기준으로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는 연대에서 만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서 더욱 기꺼이 서로의 스펙트럼 속으로 걸어 들어가 적극적으로 연루되어야만, 모두가, 여성도, 성소수자도 더 죽임당하지 않고 안전해질 수 있도록 시스템의 변화에 다다를 수 있다는 답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같이 숙제를 풀어주신 우리 현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두 번째 책: 정세랑<퀴어한 장례와 애도>
📝두 번째 모임: 2026.01.08.
✏ 작성자: 수영
이번 <세계관 시즌3> 두 번째 모임에서는 『퀴어한 장례와 애도』 1~3장을 읽고, 각자가 품고 있던 생각과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떠올랐던 질문들이 모임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장례와 애도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제도의 문제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사회가 당연하게 여겨온 장례의 형식과 절차가 실제로는 매우 제한적인 기준 위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혈연이나 법적 가족을 중심으로 설계된 장례 과정 속에서, 파트너나 가장 가까운 친구, 오랜 시간 돌봄을 나누어온 관계들은 쉽게 주변으로 밀려나며, 그 결과 슬퍼할 권리마저 스스로 숨기게 된다는 점에 공감이 모였습니다. 또한 죽음이 행정과 통계의 언어로만 처리되는 과정 속에서 고인의 삶은 숫자와 절차로 환원되고, 관계의 맥락이 쉽게 탈락된다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애도를 박탈당하는 생존 공동체에 대한 각자의 실제 경험을 나누며 현실감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한 참가자는 각자에게 생존을 가능하게 했던 공동체가 있었는지를 묻고 싶었다고 말하며, 퀴어 공동체 안에서 취약함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삶을 목격하는 동시에 생존돌봄에 직접 참여해 온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의 사례를 통해, 삶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조력이 필수적임에도 그 돌봄이 비용과 시간의 문제로만 관리되며 관계로는 쉽게 인정되지 않는 현실을 짚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퀴어한 장례와 애도를 가능하게 하는 공동체란, 효율이나 자격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실제로 지탱해 온 돌봄과 목격의 관계를 기억하고 인정하는 공동체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재난참사 이후의 애도 경험과도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한 참가자는 삼풍백화점 참사 등의 사례를 떠올리며, 유해를 확인하고 장례의 과정을 감당하는 역할이 성별과 가족 내 위계에 따라 다르게 배분되는 현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을 떠안고, 누군가는 애도의 자리에서 오히려 밀려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점이 공유되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애도 역시 효율과 감내의 문제로 전가되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었고, 애도는 누가 더 견딜 수 있는지를 가리는 과정이 아니라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슬픔을 마주할 수 있도록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퀴어한 애도의 문제와도 깊이 맞닿아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모임은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자리를 넘어, 각자의 삶과 경험을 통해 애도의 의미를 다시 묻는 시간이었습니다. 통계와 절차 너머의 삶과 관계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앞으로 어떤 애도의 장을 만들어가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함께 남길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모임: 2026.01.15.
✏ 작성자: 4.16연대 사무처 활동가 다예
안녕하세요, 4.16청년책모임 시즌3 운영했던 4.16연대 사무처 정옥다예 활동가입니다. 지난 1월 4일은 책모임 3기로서는 세 번째 만남, <퀴어한 장례와 애도>로는 두 번째 모임날이었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던 공기의 온기를 떠올리며 만남 현장을 조금 소개합니다.
이번 모임에서 가장 자주 등장했던 단어는 ‘애도’보다 ‘관계’였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는가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한 참여자는 기록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함께 찍은 사진 몇 장이 없어서 가까운 사이였음을 증명하지 못했던 사례, 반대로 일상의 기록 덕분에 관계가 인정받았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고립되지 않은 삶을 만든다는 것은 개인의 노력만이 아니라 사회가 발견하려는 의지를 갖는 일”이라는 문장을 오래 곱씹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보이지 않는 삶’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는 일이 왜 애도의 조건이 되는지 함께 생각하게 됐습니다.
또 다른 분들은 퀴어와 장애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장례 공간의 접근성 문제를 짚어주셨습니다. 장례식장이라는 공간조차 누군가에게는 물리적, 사회적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애도 역시 특정 몸과 관계만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한 참여자의 “이 무거운 짐을 함께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서 안도했다”는 고백은 많은 분들의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책 속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는 권리’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떠난 이를 돌보는 사람을 다시 돌본다는 표현, 기억이 관계를 확장시키고 연쇄적인 돌봄으로 이어진다는 감각이 인상 깊었다는 나눔도 있었습니다. 고립과 은둔, 그리고 사회적 배제가 삶과 죽음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생각하며, 애도가 단지 슬픔의 표현이 아니라 공동체를 다시 엮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도 이어졌습니다.
동시에 보다 현실적인 고민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한 관계, 장례 절차에서 배제될 가능성, 제도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다양한 가족 형태들에 대한 걱정, 그리고 그래서 오히려 친구나 동료, 속한 커뮤니티 안에서 미리 장례를 이야기하고 준비해보는 경험들까지 다양한 사연 오고 갔습니다. 특히 이 날 함께 해주신 4.16연대 사무처 현슬기 활동가가 “내가 아끼는 사람을 위해 까다로운 조력자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남겨주셨는데, 개인적으로 책의 남은 내용을 읽는 데에 좋은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의례에 대한 논의도 흥미로웠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장례의 형식이 특정 가족 규범과 사회 질서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 틀을 조금씩 흔들어 보려는 다양한 시도들 (공동체 결혼식, 평어 사용 실험, 사회운동 속 애도 방식, 대자보 붙이기 같은 작은 저항들…) 이 모두가 ‘정해진 방식 너머의 애도’를 상상하게 했습니다. 누군가는 장례를 무료 급식처럼 열고 싶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음악이나 물건, 혹은 노동으로 애도를 표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각자의 상상은 달랐지만, 그 안에는 공통적으로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답게 기억해주길 바란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사회적 참사와의 연결도 떠올랐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개인의 일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기억할 때, 애도는 투쟁이 되기도 하고 연대가 되기도 합니다. 책에서도 그리고 우리의 경험 속에서도 퀴어의 죽음과 애도가 종종 사회적 싸움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무겁지만 따뜻했고 낯설지만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삶의 자리에서 온 사람들이 이렇게 솔직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돌봄이고 애도의 실천이 아닐까 싶습니다.
📝네 번째 모임: 2026.01.22.
✏ 작성자: 수민

이번 모임은 책 [퀴어한 장례와 애도] 전반에 대한 소감 및 저자와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책에 대한 소감으로는, 애도란 고인의 뜻을 반영하는 과정이기에 혈연가족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슬프고 엄숙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공유하였다. 실제로 사회적 참사를 애도하는 과정에서 유가족 뿐만이 아니라 시민들 역시 기억의 주체가 되어 연대하고 있으며 고인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등재하기도 한다. 그와 동시에, 사회의 ‘정상성’ 담론으로 인하여 생전에 시민의 자리를 부여받지 못하였던 이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사후에도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점도 공유하였다. 그에 대한 사례로는 미아리 화재 참사와 이태원 참사가 언급되었다. 희생자가 혹은 희생이 벌어진 지역이 ‘정상성’에 벗어난다는 사실이 그들의 죽음을 폄훼하는 ‘근거’가 되는 사회에 맞서고자 우리는 각자의 공간에서 ‘기억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이후 저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질문을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파괴해본 의례가 있는지 등 글을 쓰게 되기까지 저자가 겪은 경험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 또한, “퀴어한 장례”를 위해서는 가족이 되는 것 다시 말해 생활동반자법을 먼저 보장받아야 하는지 아니면 장례를 원하는 사람 누구나 장례를 할 수 있도록 장사법이 먼저 변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정상가족” 담론에서 벗어난 관계 역시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와 가족이 아닌 관계라 할지라도 고인에 대한 장례를 원하는 누구나 장례를 치르고 함께할 수 있는 제도 중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지, 둘 중 어떤 방향으로 사회를 설득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외에도 희생자를 배제시키지 않는 애도란 무엇인지, 장례 비용에 대해서 순수한 애도의 자격이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공적 애도와 사적 애도는 어떻게 구분되는지 등에 관한 질문도 있었다.
이렇게 4회차 모임은 마무리되었다. 장례와 애도가 퀴어해지기 위해 다시 말해 애도가 고인의 삶을 반영하는 과정이 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싸움을 이어가야 할지에 대하여 논의하는 시간이 되었다.
📝다섯 번째 모임: 2026.01.29.
✏ 작성자: 4.16연대 사무처 활동가 현아
[후기] 애도라는 낯선 영토에서, 세상의 속도를 늦추는 방해꾼이 된다는 것
책모임 시즌 3을 마무리하는 날, <퀴어한 장례와 애도> 저자 김순남, 이유나작가님을 모시고 저자와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작가님들에게 어떤 이유로 글을 쓰시게 되었는지, 작성하시면서 들었던 마음은 무엇이었는지, 재난참사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었는지 질문을 드리고 답을 나누었습니다.
1. 취약함의 증폭, 애도라는 영토에 진입하기
김순남 작가님은 코로나 시기, 변희수 하사의 죽음과 그해 세 명 정도의 활동가들을 연달아 떠나보내며 "삶의 불안정성과 취약성이 우리 곁에 너무 가까이 와 있다는 감각"을 느끼며 이 책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애도를 멀리 있는 의례가 아니라, 죽음을 통해 우리는 어떤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집중하며 책을 쓰려고 노력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는 삶의 방식부터 죽음 이후의 관계성까지 모든 부분이 '가족주의'라는 단단한 성벽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그 공고한 가족주의가 만들어내는 불평등 속에서, 어떤 죽음은 슬퍼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지워지곤 합니다.
2. 제도가 가두고 자본주의가 지우는 죽음들
가까운 이들의 장례를 치르며, 또 책을 써가며 뼈저리게 느낀 것은 “제도가 산 사람만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와 그를 애도하려는 자도 갈라놓는다”는 사실입니다. 사회는 ‘진짜 가족’인지 아닌지만 따지며 우리의 유대를 가짜 취급하고, 정작 그 울타리 안에 있는 유가족들에게는 "이제 그만하라"며 슬픔의 양과 기간을 통제합니다.
이유나 작가님은 여기에 숨은 자본주의적 죽음의 재현 방식을 비판하셨습니다. 한국 사회는 “노동 시장의 생산성에 의한 보상만이 정상적”으로 인정받아왔기에, 상실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멈춰 서는 ‘느린 시간’에 대한 기본적인 인정이 부재합니다. 장애인권 활동가 수영님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매분 매시간 매일의 장례라면, 그들을 향한 애도는 단순히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삶의 속도에 밀려버린 존재들을 다시 우리 삶의 한복판으로 소환하는 일 그 자체처럼 느껴진다고 의견을 더했습니다.
김순남 작가님의 말씀처럼 “자본주의의 속도를 멈추게 하는 것 자체가 애도”이며, 그 힘은 9.11 사태 당시 '순수한 우정'이라는 프레임이 사실은 조력자의 삶을 지우는 억압의 논리였음을 격파했던 것처럼, 관계의 실질을 증명해내는 것에서 나옵니다. 유나님은 최근 참사 지원법들이 피해 당사자의 범위를 공동체까지 넓혀가고 있는 것 역시, 자본주의적 논리를 타파하고 ‘멈춤과 회복의 시간’에 대한 보상을 쟁취하려 했던 참사 운동의 값진 성과라고 짚었습니다.
3. 협상에서 발명으로: 응답하는 존재들이 지켜내는 이름
작가님들은 “왜 죽었는가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확인하는 장치”로서 장례와 애도를 다시 만나보기를 시도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증언을 통해 알게 된, 고인의 삶을 온전히 확인하고 남기는 일은 장례식장이라는 완강한 제도, 혹은 고인을 지우려는 세상과 싸워야만 하는 일, 그리고 차별을 마주하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순남 작가님은 애도가 남겨진 이들이 벌이는 ‘치열한 협상의 과정’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어려운 협상이 실제로 가능했던 이유는, 누군가가 끝내 피하지 않고 서로의 슬픔에 응답해왔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나 차별적인 제도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동력은 기꺼이 상주가 되려 하고, 멈춰 서서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네트워크가 있기에 존재합니다. 정은 님은 이 지점에서 죽음 당사자에게만 쏠려 있던 시선을 이제는 “장례 이후의 남겨진 삶을 감내하며, 그 고통을 동력 삼아 세상을 바꾸려 애쓰는 ‘애도의 주체’들”에게로 옮겨와야 한다고 짚어주셨습니다.
애도의 주체들이 협상을 통해 지키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이름'입니다. 가족 관계의 이름으로만 불렀을 때 지워지는, 그가 누구를 사랑했고 어떤 공동체와 연결되었는지, “우리가 살았던 모습 그대로의 이름”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애도는 이미 주어진 답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응답하는 주체들이 고유한 삶의 맥락을 끝까지 지켜내며 새로이 발명해내는 사건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안전 역시, 서로가 언제 위험한지 바로 체크하고 연결될 수 있는 ‘생활동반자법’ 같은 다정한 관계망 위에서 비로소 발명될 수 있을 것입니다.
4. 망했다는 말 뒤에 숨은 '급진적 사랑'
이유나 작가님은 “우리는 보호장치가 없다고 하더라도 살아낸다”는 것이 퀴어들의 유산이라고 하셨습니다. 제도가 있건 없건 서로에게 응답하는 존재들이 이미 애도의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는 것이지요.
김순남 작가님이 인터뷰한 20대 생존 돌봄자의 이야기가 계속 맴돕니다. 친구를 마지막까지 지키며 “인생은 망했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의 고통을 알아버린 이상 함께하는 것 말고 무엇이 가능한가”라고 말했다는 그 말. 김순남 작가님은 이를 “급진적인 수용”이라 부르셨습니다. 인터뷰 내내 웃음 짓던 그 마음이야말로 “함께 끝까지 가겠다는 의지”라는 사랑의 진짜 정치적인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5. 가족주의적 순수함을 깨고 자본주의의 속도를 멈추는 애도로 삶을 들여다보기.
여성과 퀴어, 재난참사를 연결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가족구성권연구소 한솔 님이 나눠주신 것처럼, 세월호가 있었기에 강남역 앞 여성의 죽음이 정치화될 수 있었고 청년 여성들의 운동이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재난과 젠더를 연결하는 건 단순히 '여성이 취약하다'는 말을 넘어, 재난의 뿌리에 있는 가부장성을 읽어내고 그 회복 과정에서 평등한 돌봄과 애도 공동체의 역할을 찾아내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죽음을 바라보게 된 건, 역설적으로 우리 삶의 자리가 어떠한지, 우리가 정말 사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확장의 과정이었습니다. “우리는 조금 더 문란해져야 한다”는 책 속 구절처럼, 우리는 사랑을 더 인정하고, 생산과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삭제되었던 존재들을 삶의 한복판으로 소환하는 이 ‘불편한 멈춤’에 기꺼이 동참하며, 세상의 속도를 늦추는 다정한 방해꾼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