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은 사람처음처럼 언제나처럼-나승구 회원 인터뷰

2022-12-14

처음처럼 언제나처럼-나승구 회원 인터뷰


김 우

 “언제부터 4.16연대 회원 하셨어요?”

“처음 생길 때부터요.”

4.16연대의 처음부터 상임운영위원을 맡고, 위기 시기엔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지금도 감사위원장을 맡은 나승구 회원 아니 한 번도 다른 직함으로 불러본 적 없는, 나승구 신부님과 전화로 만났다. 

매월 강정생명평화미사에 고정적으로 가는데 어제와 오늘이 마침 그날이었다. 지켜가야 할 것을 온전히, 오롯이 지켜가는 나 신부님답게 길거리 미사를 집전하는 현장에 있었다. 해군기지가 지어지며 많은 이들이 ‘강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끝났다’고 떠난 자리가 나 신부님에겐 여전히, 아직도 찾아가야 하는 자리였다. 

“제주에 가시면 모처럼 바닷바람에 머리도 좀 식히고 그러실까요?”

이승만의 남한 단독 선거를 유일하게 막아낸 곳이기도 하고, 4.3이라는 학살의 통한이 서린 곳이기도 하지만 제주는 풍광이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해서 제주의 시간이 강정의 미사 집전과 더불어 쉼과 치유의 시간이 되었으면 싶어서 물은 거였다. 나 신부님은 제주에 와도 미사와 활동가 만남 외 어딜 돌아다닐 짬을 내보질 못한다고 답했다. 제주의 경치를 보며 돌아 다녀본 것은 35년 전 수학여행 때라고. 생명, 안전, 평화를 위한 곳, 스스로 있어야 할 곳에 있기 위해서 나 신부님은 분신술 대신 분초를 쪼개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엽다는 표현을 쓰면 실례이고 무례이겠지만, 반짝이는 소년 눈망울로 늘 웃는 동그란 얼굴의 나 신부님을 귀여운 신부님이라고 아니 말할 수가 없다. 언제부터 귀여우셨냐고 묻기는 그래서 늘 주변에 웃음을 주는 아재 개그 본능은 언제부터 발현된 것인지 물었다. “아버지가 엄하고 집안 분위기는 딱딱했어요. 그럴 때면 막내인 내가 흰소리했죠. 분위기가 누그러지는 게 좋아서 어릴 때부터 그게 버릇이 된 듯해요.” 내가 겪은 나 신부님은 귀엽고 재밌기만 한 게 아니라 온화함 그 자체다. 단점을 물으니 우유부단해서 유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라 하고, 장점을 물으니 빨리 결정 내리지 않는 신중함으로 아무도 버리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란다. 나 신부님의 장단점은 잇닿아 있는 것이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하고 큰 사고 안 치고 자랐다는 나 신부님께 신부라는 길을 선택한 건 크게 말을 안 들은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부모 말을 안 들은 게 아니라 예수님 말을 들은 거예요.”라 웃으며 답했다. 양화진 절두산성당에 다니며 순교자들이 산에서 목이 잘려 한강을 적시던 역사를 순교자 박물관에서 접했고, ‘열심히 사는 어른들’인 신부님과 수사님을 보며 ‘나도 저렇게 살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소탈하게 아이들을 사랑하고 조건 없이 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데 지금 나 신부님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으니 ‘소박하면서도 꾸미지 않고 그냥 날 것 같은 거’를 좋아한다고 답했다. 역시 지금 나 신부님 모습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누구를 모델로 삼아 마음에 담을 것인가 하는 결심은 일찍부터 그 사람 내면으로 스며드는 일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추구하는가 하는 선택 또한 그 사람을 완성해 가는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는 두려움과 자위의 논리로 무기를 갖는 대신 우애로 지켜야 한다는 나 신부님의 생각은 투명할 만큼 자명했다. 교육 운동으로 문화운동으로 우애를 키워야지 힘을 키워서 얻는 것은 위계질서일 뿐 평화는 아니라는, 나 신부님의 간단한 명제가 왜 이리도 구현되기 어려운 것일까. 안전과 생명의 문제를 이것 빼주고 저것에 양보하며 늘 뒷전에 두는 사회에서, ‘국가안보실 주도 범정부 방산 수출 협력체계’ 구축안을 국정과제로 추진하며 살상 무기 파는 걸 자랑하는 정부에서 답답함은 더해만 간다. 세월호 피켓팅에 시비 거는 사람이 준 것도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신부님, 요즘 망원역에서 세월호 피켓팅을 해도 욕하는 사람이 줄었어요, 없어요. 그만큼 영향력이 줄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처음에 특별법 얘기할 때 암담하고 캄캄한 심정이었잖아요.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도 했잖아요. 방해받고 절망스러운 상황에서요. 꾸준히 하다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지금 가족분들 잘 지켜드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래도. 나 신부님은 언제나처럼 담담하게 희망을 이야기했다.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 사회 건설에 왕도는 없다는 걸 다시금 새기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