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은 사람그래도 다시

2022-04-15

그래도 다시

-4.16공방 인터뷰


김 우 

다시 4월이다. 안산으로 갔다. 4.16공방은 희망목공방과 엄마공방을 아우르는 이름, 그 중 엄마공방의 엄마들을 만났다. 웅기 엄마, 은정 엄마, 지혜 엄마, 태민 엄마와 이야기 나눴다. 잠시 들른 동수 엄마, 수인 엄마와도 인사 나눌 수 있었다. 엄마공방이 엄마들의 사랑방 격이라 그랬다. 또 서울로 출발 전 수진 엄마, 주현 엄마도 짧게 만났다.


굉장한 장인급 손재주는 물론 활동력 또한 엄청나서 반대표는 기본이고 반대표‘짱’도 있는 곳이 엄마공방이다. 공방장, 매듭 팀장, 전 공방장, 라탄 등공예 팀장 등 ‘전 회원의 간부화’란 말이 떠오를 정도로 모두 한자리씩 맡아 묵묵히 책임을 다하고 있었다.

 

엄마공방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참사 이후 아이의 빈자리가 커서 집에 들어가기가 힘들고, 눈만 뜨면 밖으로 나와 투쟁하던 시간. 참사 이후 3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분향소 가족 대기실에 모였을 때 뭐라도 해본 게 퀼트였고 자수였다. 엄마들이 잠깐이라도 다른 일에 집중하며 힘든 시간 이겨내도록 옆에서 자원 활동가들이 도와주면서였다. 이제는 자격증을 따기도 해서 다른 곳에 강의도 나가 수업하며 세월호 참사를 알리고 있을 정도다.

 

엄마들과 얘기 나누는데 닭 울음이 들렸다. 지성 아빠 손주가 키우던 닭을 3마리 가져온 것 중 ‘박근혜’와 ‘김기춘’이라 이름 붙인 애들은 죽고 ‘최순실’이라 이름 지은 애가 살아있다고. 닭대가리가 생각나서 비록 이름은 험하게 붙였지만 귀하게 사랑 주며 키웠다. 팽목항에서 온 ‘진실이’와 ‘규명이’도 있고, ‘사월이’ ‘오월이’라는 길고양이도 키우는 동물농장이다.

이곳이 생명 존중의 공간이라는, 그저 하는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귀한 생명, 그 존귀함을 이 엄마들만큼 절절히 아는 이가 또 어디 있을까.

 


집에 있으면 우울하고 다른 사람 만나기도 힘든데 같은 사람 만나는, 숨통 틔는 공간이 엄마공방이다. 기억 용품을 판매해서 마련한 기금으론 소외된 사회적 약자를 돕기도 하고, 진상규명 투쟁기금에 보태기도 한다. 주민센터에서 동네 어려운 이웃을 소개받아 손길 내미는 것은 시민들에게 연대로 받은 힘을 마땅히 돌려주고 싶어서다. 


안산엔 고려인도 많이 사는데 과자 꾸러미 등을 챙겨 아이들에게 성탄절 방문을 하기도 한다. 주로 산타 할머니는 은정 엄마가 맡곤 한다. “‘말빨’이 좋아서지. 우린 산타 모자만 쓰고 ‘시다바리’만.”이라며들 웃는다. 저마다 잘하는 것을 더 잘하도록 북돋우며 서로 성장하는 곳이 바로 엄마공방이다.


엄마공방의 엄마들은 딱딱하고 무거울 수 있는 간담회 자리에 키트를 들고 출동해서 작업하면서 자연스레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돕는 노릇도 한다. 4월이면 ‘깨어있는’ 단체의 여러 요청이 더 많이 온다. 학교에도 학생 의견을 수렴해서 매듭 리본이든 팔찌든 퀼트 파우치든 기억 용품을 제작하는 수업을 하러 달려간다.


저마다 기억 용품에 자부심이 큰데 퀼트 팀은 그리운 마음 담아 한 땀한 땀 4~6개월씩 걸려서 만든 퀼트 작품 부심이 크다. 가슴으로 만든 작품 모두는 언제든 어디서든 전시를 요청하면 가지고 나가려고 공동 창고에 보관 중이다. 그 중 ‘늘 너희들과 함께’라는 작품은 250명의 아이 전부를 담으려고 노란 리본 안에 12개의 별자리를 수놓고, 리본 테두리에 12개의 탄생화를 바느질한 공동 작품이다.

매듭 팀은 뭐니 뭐니 해도 나비 브로치만큼 의미가 큰 것은 없다고 한다. 너무 만들기 힘들어서 물집이 잡히고 터지며 그 자리에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으로 한 마리 한 마리 탄생시키고 있다.


끝으로 8주기를 며칠 앞둔 엄마들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모두 ‘그래도 다시’를 이야기한다.

지혜 엄마는 박근혜 정권이야 그렇다 치고, 문재인 정권에선 함께하던 이들의 비난도 있어 버거웠다. ‘(가만히 있어도) 다해줄 건데 왜 이러냐.’는 나무람이었다. 윤석열 정권은 다시 박근혜 정권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현실이 엄혹할수록 그래도 다시 촛불의 마음으로 진실을 밝히는 일에 마음 모으고 힘을 합치는 때로 삼았으면 한다. 4월 9일 진상규명 국민대회에 많이 모인 시민들 모습엔 눈물이 났다. 잊은 듯하지만, 결코 잊은 게 아닌 마음을 확인하는 감동이었다.


태민 엄마는 시민들이 항상 기억은 못 하더라도 문득 떠올려주고 늘 노란 리본을 달고 노란 팔찌를 차면 좋겠다고 한다. “전 국민들이 다 차고 다녔으면 좋겠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더는 이런 아픈 경험을 하지 않도록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가는 데 동참하길 그치지 않길 바란다. 생명안전공원이 지어지면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공간을 모두가 찾아주길 또 바란다.


웅기 엄마는 5.18 어머니들을 보며 30년 40년 너무 길게 투쟁해 오신 게 안타깝고 감히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우리도, 그래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늘 가족 곁에서 함께해준 이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데 진상규명의 날이 올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해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주현 엄마는 해가 가면서 아이들에게 더 미안해진다고 한다. 덜 미안해지고 싶은데 정권 바뀌어도 해결된 건 없으니 책임의 무게가 더 무거워진단다. 8주기를 다시 뭉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고 인수위에 요청한 6대 과제 중 하나라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다짐이다.

 

다시 4월이다. 공방장인 수진 엄마는 이맘때가 생일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 말이다. 아이가 떠나기 전 엄마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손 편지를 주었다. 반 아이들 한 마디씩도 담은 축하 수첩도 받았다. 이젠 가보가 된 수첩과 편지다. 꽃이 피면. 더. 생각나는 아이와 아이들.


“생일이고 뭐고 뭐 없지. 그냥 지나가지.” 생일이면 케이크에 초를 꽂고 소원을 빌기도 하던데 그냥 생일을 지나 보낸다는 수진 엄마의 4월 소망이 있다면. 가족들이 한두 명이라도 더 나와서, 시민들이 한두 명이라도 더 함께해서 진상규명을 외쳤으면 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