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걸어도 좋을 일이다
-기억교실 운영위원 경빈이 엄마
김 우
“그냥 뭐 하는 일 없는 거 같은데도 바쁘네요. 기억교실에도 있고, (기억교실 일정이) 없는 날은 우리 가족 활동하고 있는 곳에 참여도 하고, 아닌 날은 다른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곳에도 연대하고요.” 4.16기억저장소에서 기억교실 활동하는 경빈이 엄마는 진도 팽목항 지킴이 활동이며 용산이나 광화문 피켓팅에도 되도록 참여하려고 한다. 슬픔과 아픔을 나누고 다독이려는 발걸음은 대림건설(현 디엘이엔씨) 강보경 씨 추모식, 부산의 스텔라데이지호 재판, 경동건설 정순규 씨 4주기 추모식으로 또 방영환 씨 분신 후엔 택시 노동자들이 리본 나누는 곳으로도 향한다.
버스 타고 전철 타고 서울 오는 길은 보통 2시간 반에서 3시간까지 걸린다. 이렇게 서울에 오면 한 군데라도 더 찾아보려는 경빈이 엄마다. “소녀상 지키느라 고생하는 학생들과 할머니도 만나야죠.” 모든 곳을 다 연대하기엔 ‘시간이 부족해서 한’일 듯한 경빈이 엄마다. 경빈이 엄마에게 연대란 ‘길 위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배우고, 그 목소리에 맞춰서 목소리를 내며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기 위한’ 것이다. ‘전국구’ 연대자 경빈이 엄마가 서울 올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분향소다.
“법원 (방청)도 계속해서 10년 차가 돼가고 있네요. 그냥... 쉽지 않네요.” 11월의 재판에선 세월호 침몰 시 구조를 하지 않은 해경 지휘부가 대부분 무죄를 받고, 특조위 활동을 방해한 조윤선 전 수석과 윤학배 전 차관은 징역형 집행유예 정도만 받았을 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먹먹한 거 같아요. 갔다 오면 의기소침해지고, 과연 희망이라는 게 있을까, 낙담하고 무겁고 우울해져요.”
“아이들 명예 회복과 책임자 처벌을 바라보면서 가는 건데 안 되니 억울하죠. 포기하면 아이 보기 부끄러울 거 같아요. 계속 싸우다 보면 언젠가는 바뀌지 않을까...”
대화하다 보면 경빈이 엄마는 곧잘 한숨을 쉬곤 했다. 없던 버릇이 참사 이후 생겨난 것이었다. “(한숨 쉬는 건) 전 잘 모르겠어요. 사는 게 녹록지 않네요. 지금 ‘나를 닮은 사람’ 인터뷰하는 거잖아요. 이런 사람들끼리 만나서 함께하다 보면 힘이 생기는데, 권력 있는 사람들이 하는 재판에 가면 힘이 빠지게 돼요.” 왜 권력자, 힘 있는 자 중에는 우리 편이 하나도 없을까, 생각이 든다는 얘기였다.
우리 편이 될 권력자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일은 영원히 오지 않을 일이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 시의 구절처럼 얼굴만 봐도 정겹고, 눈빛만 나눠도 힘이 나는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서 권력을 가지는 편이 오히려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수술을 받은 경빈이 엄마의 요즘 건강은 어떤지 물었다. “그냥 뭐 다 똑같지 않을까요? 다 똑같이 (세월호) 가족들이 힘들겠죠.” 경빈이 엄마는 청와대에서 노숙할 당시 다리가 후들거리며 갑자기 주저앉기도 하고, 잠을 못 잘 정도로 통증이 있었다. 빈혈이 심한 건가, 병원에 갔더니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경빈이 엄마는 치료가 먼저가 아니고 청와대 농성장에 가는 게 더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끝을 보겠다는 각오를 하고 올라간 터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세월호 가족협의회의 결정으로 안산에 내려왔고, 쓰러져서는 병원에 실려 갔다. 장기에 구멍이 나서 출혈이 심한 상황이었다. 급하게 수혈을 받으며 수술했는데 피가 장기에 협착이 돼서 위험했다. 큰 수술이었다. 커다란 상처는 단지 몸에만 남은 건 아니었다. “끝까지 대답도 없고, (농성장이 있는 청와대 광장에) 나와보지도 않고. 약속을 꼭 지키겠다던 문재인이 한 번쯤이라도 나와서 보거나 이야기를 해줄 줄 알았죠. (농성장을 철수하던 날은) 비참하고 비통하고 참담하고 서글퍼서 눈물이 많이 났던 날이죠.”
물론 잊을 수 없이 남은 건 상처만은 아니었다. 당시 지역과 해외에서 보내주던 핫팩처럼 따듯함을 넘어 뜨거웠던 연대의 열기가 심장에 남았다. ‘진짜 마음에 뭐 하나가 꽉 막혀있는 느낌’의 저들이 고구마라면 곧 연대 시민이 사이다였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할 거 없이 국가의 권력자들은 번번이 힘을 뺏어가지만, 매양 연대 시민들이 힘을 북돋워 주니, 또 저버릴 수 없는 아이들과의 약속이 있으니, 경빈이 엄마는 진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렇게 지치지도 않고 걸어가는 경빈이 엄마 곁에 우리가 한 번 서봐도 좋을 일이다. 언제든 ‘기억과 약속의 길’을 예약해서 경빈이 엄마와 같이 걸어도 좋을 일이다. 기억교실에서 출석을 부르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약전을 읽고 단원고로 가는 거다. 추모 조형물이며 오바마가 보내 주었다는, 지금은 엄청 많이 자란 나무도 돌아보는 거다. 그 앞에서, 나이 먹기를 멈춘 아이들 대신 나이를 먹어가는 우리가 나잇값을 할 일은 무얼까 생각해 보는 거다. 4.16기억전시관이며 생명안전공원 터를 돌아보며 아이들의 등·하굣길과 아이들이 놀러 다니던 곳을, 아이들의 길을 걸어보는 거다. 민주시민교육 수료의 학구열을 불태워도 좋을 계절이다.
같이 걸어도 좋을 일이다
-기억교실 운영위원 경빈이 엄마
김 우
“그냥 뭐 하는 일 없는 거 같은데도 바쁘네요. 기억교실에도 있고, (기억교실 일정이) 없는 날은 우리 가족 활동하고 있는 곳에 참여도 하고, 아닌 날은 다른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곳에도 연대하고요.” 4.16기억저장소에서 기억교실 활동하는 경빈이 엄마는 진도 팽목항 지킴이 활동이며 용산이나 광화문 피켓팅에도 되도록 참여하려고 한다. 슬픔과 아픔을 나누고 다독이려는 발걸음은 대림건설(현 디엘이엔씨) 강보경 씨 추모식, 부산의 스텔라데이지호 재판, 경동건설 정순규 씨 4주기 추모식으로 또 방영환 씨 분신 후엔 택시 노동자들이 리본 나누는 곳으로도 향한다.
버스 타고 전철 타고 서울 오는 길은 보통 2시간 반에서 3시간까지 걸린다. 이렇게 서울에 오면 한 군데라도 더 찾아보려는 경빈이 엄마다. “소녀상 지키느라 고생하는 학생들과 할머니도 만나야죠.” 모든 곳을 다 연대하기엔 ‘시간이 부족해서 한’일 듯한 경빈이 엄마다. 경빈이 엄마에게 연대란 ‘길 위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배우고, 그 목소리에 맞춰서 목소리를 내며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기 위한’ 것이다. ‘전국구’ 연대자 경빈이 엄마가 서울 올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분향소다.
“법원 (방청)도 계속해서 10년 차가 돼가고 있네요. 그냥... 쉽지 않네요.” 11월의 재판에선 세월호 침몰 시 구조를 하지 않은 해경 지휘부가 대부분 무죄를 받고, 특조위 활동을 방해한 조윤선 전 수석과 윤학배 전 차관은 징역형 집행유예 정도만 받았을 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먹먹한 거 같아요. 갔다 오면 의기소침해지고, 과연 희망이라는 게 있을까, 낙담하고 무겁고 우울해져요.”
“아이들 명예 회복과 책임자 처벌을 바라보면서 가는 건데 안 되니 억울하죠. 포기하면 아이 보기 부끄러울 거 같아요. 계속 싸우다 보면 언젠가는 바뀌지 않을까...”
대화하다 보면 경빈이 엄마는 곧잘 한숨을 쉬곤 했다. 없던 버릇이 참사 이후 생겨난 것이었다. “(한숨 쉬는 건) 전 잘 모르겠어요. 사는 게 녹록지 않네요. 지금 ‘나를 닮은 사람’ 인터뷰하는 거잖아요. 이런 사람들끼리 만나서 함께하다 보면 힘이 생기는데, 권력 있는 사람들이 하는 재판에 가면 힘이 빠지게 돼요.” 왜 권력자, 힘 있는 자 중에는 우리 편이 하나도 없을까, 생각이 든다는 얘기였다.
우리 편이 될 권력자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일은 영원히 오지 않을 일이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 시의 구절처럼 얼굴만 봐도 정겹고, 눈빛만 나눠도 힘이 나는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서 권력을 가지는 편이 오히려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수술을 받은 경빈이 엄마의 요즘 건강은 어떤지 물었다. “그냥 뭐 다 똑같지 않을까요? 다 똑같이 (세월호) 가족들이 힘들겠죠.” 경빈이 엄마는 청와대에서 노숙할 당시 다리가 후들거리며 갑자기 주저앉기도 하고, 잠을 못 잘 정도로 통증이 있었다. 빈혈이 심한 건가, 병원에 갔더니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경빈이 엄마는 치료가 먼저가 아니고 청와대 농성장에 가는 게 더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끝을 보겠다는 각오를 하고 올라간 터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세월호 가족협의회의 결정으로 안산에 내려왔고, 쓰러져서는 병원에 실려 갔다. 장기에 구멍이 나서 출혈이 심한 상황이었다. 급하게 수혈을 받으며 수술했는데 피가 장기에 협착이 돼서 위험했다. 큰 수술이었다. 커다란 상처는 단지 몸에만 남은 건 아니었다. “끝까지 대답도 없고, (농성장이 있는 청와대 광장에) 나와보지도 않고. 약속을 꼭 지키겠다던 문재인이 한 번쯤이라도 나와서 보거나 이야기를 해줄 줄 알았죠. (농성장을 철수하던 날은) 비참하고 비통하고 참담하고 서글퍼서 눈물이 많이 났던 날이죠.”
물론 잊을 수 없이 남은 건 상처만은 아니었다. 당시 지역과 해외에서 보내주던 핫팩처럼 따듯함을 넘어 뜨거웠던 연대의 열기가 심장에 남았다. ‘진짜 마음에 뭐 하나가 꽉 막혀있는 느낌’의 저들이 고구마라면 곧 연대 시민이 사이다였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할 거 없이 국가의 권력자들은 번번이 힘을 뺏어가지만, 매양 연대 시민들이 힘을 북돋워 주니, 또 저버릴 수 없는 아이들과의 약속이 있으니, 경빈이 엄마는 진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렇게 지치지도 않고 걸어가는 경빈이 엄마 곁에 우리가 한 번 서봐도 좋을 일이다. 언제든 ‘기억과 약속의 길’을 예약해서 경빈이 엄마와 같이 걸어도 좋을 일이다. 기억교실에서 출석을 부르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약전을 읽고 단원고로 가는 거다. 추모 조형물이며 오바마가 보내 주었다는, 지금은 엄청 많이 자란 나무도 돌아보는 거다. 그 앞에서, 나이 먹기를 멈춘 아이들 대신 나이를 먹어가는 우리가 나잇값을 할 일은 무얼까 생각해 보는 거다. 4.16기억전시관이며 생명안전공원 터를 돌아보며 아이들의 등·하굣길과 아이들이 놀러 다니던 곳을, 아이들의 길을 걸어보는 거다. 민주시민교육 수료의 학구열을 불태워도 좋을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