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은 사람[16일의 편지-2025년 6월] 좋은 사람을 만나는 보람을 얘기하는, 좋은 사람- 4.16연대 1번 회원 오세범

2025-06-16


좋은 사람을 만나는 보람을 얘기하는, 좋은 사람

4.16연대 1번 회원 오세범님 인터뷰

김 우


 오세범 회원은 55년생이다. 공부를 시작한 지 15년 만이던 57세에 사법 시험에 합격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엔 60세로, 변호사 개업한 지 2달 된 ‘초짜’였다. 뉴스 영상으로 접한, 살려 달라고 울부짖던 아이들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구하지 못한 안타까움과 미안함 역시 컸다. 도울 방법을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유가족 옆에서 얘길 들어줘야겠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변호사 일보다 오랫동안 해온 변호사 사무소 상담실장 노릇에서 답을 찾은 것이다. ‘세월호참사 피해자 지원 및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법률상담지원단’의 중앙지원팀장을 맡았다. 안산과 진도의 텐트에서 세월호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다. 이후로도 한 달에 최소 세 번은 안산으로 가서 상담했고, 반별 담임 변호사제로 전환한 뒤엔 단원고 2학년 1반을 담당하고 있다.
오 회원에게 담임 변호사라는 건 담임 교사 비슷한 책임감을 부여한다고 한다. 박근혜 탄핵 집회에서도 세월호 가족들이 제일 선두에 있으니, 옆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오 회원 역시 앞에 설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까지 같이 행진하는 것까지 마치고 세월호 가족들이 버스에 모두 올라타면 손을 흔드는 것까지 늘 함께했다.
“제가 나이가 많으니까. 가족들이 친동생 같기도 해요.”
공감하고 이야기 들어주고 지칠 때 조금이라도 힘이 돼주고픈 마음이었다.


"416연대 회원 번호 1번이셔요. 가입의 계기가 있을까요?”
“제가 1번인지는 몰랐어요. 유가족과 유대 관계는 형성돼 있었고요. 전국의 공감하는 시민들과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오 회원은 화랑유원지의 합동분향소에서 분향 후 방문록에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라고 썼다. 자신도 모르게 ‘결코’라는 말을 썼다. 수많은 희생을 잊어선 안 되고 잊을 수도 없지만, 우리 사회에 구멍이 나 있는데 메꾸지 않으면 안전 사회로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명안전의 문제는 보수나 진보, 여야의 문제가 아니며, 국가의 기본 존재 이유를 묻는 사건이 바로 세월호참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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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이태원참사가족대책위 사무실에서

일시적인 슬픔으로 끝낼 게 아니라 시스템을 만들어 예방하고, 피해자 관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체제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2015년 대한변호사협회에 생명존중 재난안전 특별위(이하 특별위)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초대 부위원장을 맡았고 2대 위원장을 역임했다. 특별위는 이태원참사는 물론 최근 산불에까지 집단재난에 대응해 생명안전 활동 중이다. 30명 정도의 위원 중 젊은 변호사도 많고, 서로 성장하며 지지, 지원하고 있다.

세월호참사 이후의 변화를 물었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더 넓어지고 따듯해진 거 같다고 한다. "변호사라고 하면 논리적이고 냉철한 걸로 생각하는데 책이나 글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부딪히면서 느끼는 공감 능력의 영역이라 여기거든요.”
사회적으로는 생명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고 느낀단다. 똑같다고들 하지만 공무원이며 일반 시민들의 의식은 확연히 달라지고 있단다. 

오 회원은 아파트 동 대표를 거쳐 주민자치회에서도 여러 역할을 맡고 있다. 주민들이 풀뿌리 민주주의 생활 속에서 토론하고 해결하며 민주적인 관계를 익히는 훈련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주민자치회 독서회에서 오 회원의 별칭은 ‘새봄’이다. 세범이라는 이름과 발음이 비슷해서이기도 하지만, 백발의 머리에도 어려워하지 말고 다가서 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서로는 나이나 직업이나 학력과 관계없이 마을에서 실천하는 것으로 평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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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꽃밭에서

세월호참사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 같이 활동하고 같이 밤새고 같이 울고 같이 추모식에 갔듯이. 대한변호사협회 안에서 함께하는 변호사들 속에서, 자치회 구성원 중에서 남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도우려고 손을 내미는, 사심 없이 헌신적인, ‘천사가 따로 없는’ 사람들을 만나는 보람이 크다. 나의 문제를 넘어 연대하는 세월호 부모님들과 공동체를 위해 헌신적인 사람들을 보는 일, 함께하는 일이 오 회원의 ‘세상 사는 맛’이다.  

“잘 나고 이런 게 아니라 어려운 가운데도 남을 생각하고 고통을 피하지 않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죠. 그런 사람이 꽤 많구나, 교류하고 공감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이에요.”
"우리 사회가 위기에도 쓰러지지 않고 휘청거릴지언정 한발 한발 밝게 나가는 것에 그런 한 분 한 분이 다 고마워요.” 

오 회원의 카톡 대문 문구는 ‘나로 인해 이 세상의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행복할 수 있다면’이다. 그이가 2012년에 올려놓고 바꾸지 않는 이유는 게을러서가 아니다. 문구 안에서 그이의 신념을 느꼈다면, 쉬 바꾸지 않는 것에선 쉬 변하지 않는 그이의 집념을 엿보았다. 끈질기고 한결같고 변함없는 사람, 오세범 말이다.
지치지 않고 걸어가는 세월호 가족들, 사람에 대한 공감 능력을 잃지 않고 연대하는 시민들이 있어 세상은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오 회원. 그이가 계속 이야기하는, 살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좋은 사람에 그이 역시 ‘핵심으로’ 포함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