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의편지[16일의편지-2023년 6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 4.16연대 상근 활동가인 뿔 회원

2023-06-16


6월 16일의 편지 ‘나를 닮은 사람’ 편은 ‘뿔’ 회원이다. 뿔이라는 별칭은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 “니가 하고 싶은 걸 열심히 하면 주머니 속 송곳처럼 튀어나올 거야”라고 해준 말에서 따왔다. 재능이 있으면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는 ‘낭중지추’의 뜻을 담기도 했지만, 한 글자라서 편하고 귀여운 이름이라서 마음에 든단다.

뿔은 4.16연대에서 작년 8월 1일부터 회계랑 회원 관리를 맡는 활동을 시작하며 회원 가입을 한 새내기 회원이다. 시민사회단체 상근활동은 처음인데 대학을 중퇴한 학력에도 가능한 건지 자신이 없어 망설이다가 4.16연대의 채용공고를 보고 비로소 용기를 냈다. 

“문재인 정부까지 끝나면서 왜 변한 게 없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던 와중에 공고를 본 거죠.” 

“국가나 행정의 시스템들이 사람들에게 마지막 세이프티 넷(사회안전망)이 되어줘야 하는데 그물코 속으로 송송 빠지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아요. 재난 참사 피해자들도요.” 

면접을 망쳐서 사실 떨어질 줄 알았다. 멋있는 말도 쓰면서 나름으로 열심히 공부해 온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세월호참사 피해자가 왜 국가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하냐?’는 질문을 받고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국가가 시민의 합의로 생겨난 거라면 시민의 권익과 이익 보호 이행 의무가 있다, 국가는 세월호참사 당시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하지 않고 분열시키려 했다,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수동태보다 더해서 능동적으로 피해자를 감시하는 데 주력한 국가의 폭력이었다고 더듬더듬 말했다. 뿔은 준비한 예시를 짚어가며 세세하게 정리한 내용을 펼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지만, 4.16연대의 면접자들은 청산유수 같은 달변이 아닌, 뜨겁고 따듯한 그이의 진정성을 보았을 것이다.

뿔은 97년생이다. 세월호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학생들과 나이가 같고, 7살에 입학해서 참사 당시엔 고3이었다. 참사의 진행 상황에 신경 쓰고 궁금해하는 뿔에게 ‘신경 쓰지 마라, 우린 고3이다’라는 식으로 충고하는 급우들의 태도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으면 뭐든지 해보자’는 변화를 불러왔다.

지금 ‘원대한 경제 목표’ 중 하나는 수입의 10%든 20%든 사회에 환원하는 것으로, 후원 단체를 1년에 2~3곳씩 늘려가고 있다. 맨 처음의 후원 단체는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이었다. 뿔의 사회적 관심과 참여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군인권센터, 한국여성의전화, 홈리스행동 등 많은 이들이 익히 알고 있는 곳에서부터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 고아권익연대 등 처음 들어볼 성싶은 단체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뿔에게 단체 후원이란 지지한다는 의견 표명을 넘어 시민으로 동료에게 내는 세금 같은 거다. 어린 시절부터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며, 학창 시절부터 사회문제에 관심 많은 ‘책벌레’였다는 뿔의 내면은 무소의 뿔처럼 단단해 보였다.

내가 자신 없는 분야 중 하나가 숫자를 만지는 거라서 운영팀 회계 활동이 어렵진 않은지 물었더니 지난 3년 반 동안 카드회사 콜센터에서 상담하면서 카드 변경이며 회원 관리며 회계 관련한 프로그램을 만져본 경험이 도움이 된다고 답한다. 

“활동하면서는 어때요?”

“좋아요!”

“진짜요?”

“네. 대개 뭐랄까요? 하고 싶었던 일이기도 하고, 행정이 받쳐주지 못하는 재난 참사 피해자들과 함께하는 운동이어서 더 좋은 것도 있고요. 사무처 동료와도 얘기했는데 좋은 어른들이 너무 많아요. ‘크면서 마주치지 못했던 어른들 다 여기 모여 있구나’ 그런 생각 때문에...” 

“시민단체다 보니까 인권에 대한 기본 생각들이 있고. 사무처 안에서 나 자신으로도 있을 수 있어서 더 좋아요.” 

“수평적인가요?” 

“너무요.”

대 만족이라는 뿔에게 사무처 분위기 등 개선했으면 싶은 거를 물었더니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게 없단다. 사무처 동료들을 많이 좋아하는데, 각각의 동료가 강점들이 크다고 자랑한다. 뿔은 조직 내에서 불편한 점을 공개적으로 이의 제기하는 걸 어려워하는데 ‘딱 걸리면 바로 얘기하고, 논의하고, 고치고, 다른 방안을 제시하는’ 동료들 덕을 크게 보고 있단다. 더할 나위 없이 좋고 행복하다는 뿔에게서 활기가 뿜뿜 뿜어져 나왔다.

뿔에게 세월호참사 10주기를 한 해 앞둔 마음을 물어보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바뀐 것이 없다,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다고들 하지만 4.16연대나 4.16가족협이 없었다면 이태원참사에 연대하는 사람들도 없었을 거라는 뿔. 시민의식을 쉽게 한 번에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뿔.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는 거죠. 아직 끝까지 가보지 않았잖아요.” 계속 존재하고, 계속 무언가를 하는 것이 사람이든 단체의 몫이겠다고 한다. 

뿔이 자신에게 하는 다짐의 메모를 엿보았다. 

“계속 숨죽이며 모아둔 힘이 어느 날 당신에게 나아가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가야만 한다. 그리고 설령 나아가지 못해도 다음번에, 그래도 안 되면 다음 다음번에 나아가면 된다. 중요한 건 나아가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