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세월호참사 3천일을 맞아

2022-07-13

세월호참사 3천일을 맞아


4.16세월호참가 작가기록단 박희정

 

안녕하세요? 저는 4.16 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의 이름으로 유가족과 생존자의 목소리를 기록해온 박희정입니다. 2014년 4월, 세월호가 침몰하는 모습을 뉴스를 통해 본 수많은 시민들처럼, 저 또한 슬픔과 분노에 압도되었습니다. 죄책감과 무력감에 그저 무너지고 싶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우는 유가족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거리로 나왔습니다.

기록을 위해 첫 활동에 나선 날은 유가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국회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선 7월 중순이었습니다. 지금 이맘때와 비슷한 무더위 속에, 곡기를 끊고 국회에서 노숙하는 자식 잃은 부모들을 제 눈으로 보면서도 도무지 현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세월호참사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저는 그간 무심히 넘겨왔던 한국 사회의 재난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붕괴했을 때 전 고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성수대교 붕괴 후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접했습니다. 동문회 선배들이 만들어준 술자리에서 소식을 들었는데, 일순 정적이 흐른 뒤 사람들 사이에 “정말이야?” “말도 안 돼”라는 말이 메아리쳤던 기억이 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비현실적 현실은 오랫동안 그저 ‘안전불감증’이나 몇몇 비도덕적 개인들의 일탈행위로 설명되었습니다. 저에게 세월호참사는 그러한 상투적 말들을 넘어 재난을 일으키는 우리 사회의 구조를 보다 깊고 넓게 인식하게 해준 사건입니다. 기업의 이윤추구만을 우선시한 정부의 규제완화와 노동유연화 정책이 우리의 안전을 어떻게 위협할 수 있는지, 긴급 대응과 구조가 필요한 시간에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국가의 무능이 어떤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세월호참사는 참사 수습과 진실규명 과정에서 국가가 자행한 또 하나의 참사로 기억되어야 할 사건입니다.

서울시의회 앞으로 자리를 옮긴 기억공간 ‘기억과 빛’이 왜 광화문에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광화문은 ‘참사의 기억’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상징적 공간’이다.”

세월호참사의 기억공간이 왜 광화문에 설치되어야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야했기 때문입니다. 가족협의회의 답에는 광화문이 ‘세월호 침몰’이라는 물리적 사건 아니라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피해자와 시민들의 의지적 행동이 벌어진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기억투쟁’이라는 사건이 벌어진 곳입니다. 이 말은 세월호 참사를 잊으라는 사회적 압력이 거셌음을 방증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광화문이 어떤 곳인가요. 내 가족이 어째서 죽었는지 그 이유라도 알고 싶다고 대통령을 만나러 청와대로 향했던 유가족들이 결국 아무런 답을 듣지 못한 채 돌아 나와 주저앉아야 했던 곳.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피해자와 시민들이 경찰의 물대포를 뒤집어써야 했던 곳. 단식투쟁하는 유가족들 앞에 폭식투쟁이라는 폭력이 자행된 곳. 진실규명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쓴 피해자들의 눈물과 머리카락이 비처럼 뿌려진 곳. 다시 말해, 참사 이후의 참사가 벌어진 곳입니다.

참사 이후, 국가가 적극적으로 책임을 회피했기에 벌어진 또 다른 참사들을 증언하기 위해, 그리고 그것에 맞선 피해자와 시민들의 싸움을 기억하기 위해 광화문에는 기억공간이 설치되어야 합니다.

“광화문은 ‘참사의 기억’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상징적 공간’”이라는 가족협의회의 말에는 참사를 과거의 유물로 두지 말라는 뜻도 담겨있습니다. 과거를 끊임없이 현재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면서 현실의 정의롭지 못한 문제들을 바꿔내는 토대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 담겼습니다. 나는 말로 다 옮길 수 없는 깊은 고통에 시달려야 하지만, 나와 같은 일을 겪는 사람은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이것은 한 사람이 낼 수 있는 가장 크고도 아름다운 마음일 것입니다. 피해자들이 고통 속에서 길어낸 소중한 지식과 간절한 바람이 담긴 말을 한국사회가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시의회 앞으로 옮겨진 기억공간에는 세월호 모형과 그간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주요 재난에 대한 짧은 글, 그리고 세월호참사 희생자 304분의 작은 사진이 모셔져 있습니다. 아마도 처음 오신 분들은 그 단촐함에 놀랄 것 같습니다. 이 자그마한 공간을 위해 이 큰 싸움이 필요할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 안타깝습니다.

한편으로 이 작아 보이는 공간이 가진 큰 힘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억과 빛’ 안에서 희생되신 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의 찬찬히 만나가는 동안 우리는 말로써 전할 수 없는 세계와 마주하게 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우리의 곁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슬픔과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죽은 일입니다. 사람들이, 죽은 일입니다. 사람들이, 지금도 죽어가는 일입니다.

세월호참사가 일어나기 얼마 전 한국 사회에는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말이 사회를 뒤흔들었습니다. 2013년 12월 10일, 당시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고 나선 코레일 노조 조합원 4,200명을 직위해제한 사건을 보고 한 대학 학생이 붙인 대자보에서 시작된 물음이 한국사회로 번져갔습니다. 나는 안녕하지 못하다고, 이 사회는 진정 안녕한 것인지를 묻는 물음이 십대 청소년부터 다양한 사회적 위치의 사람들로부터 터져 나왔습니다. 우리 사회의 안녕에 대한 근본적 물음에 한국 사회가 제대로 화답하고 함께 머리를 모았다면 어땠을까요.

세월호참사는 한국 사회에 던져진 큰 물음입니다.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분명한 것은 기억공간의 삭제나 박제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가 마무리된 지금, 우리는 더 많이 고민하고 함께 이야기나누며 이제껏 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짚어내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