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어요[16일의 편지-2026년 1월] 곁의 마음으로 (4.16연대 김선우 사무처장의 편지)

2026-01-16

2026년 1월 16일, 곁의 마음으로


이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조금은 망설였습니다.
새해 인사로 시작하기엔 이미 시간이 조금 흘렀고, 사업계획을 설명하기에는 지금이 총회 준비 과정 속에서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사무처장으로서의 공식적인 말보다는, 한 사람의 활동가로서, 그리고 이 세월호 운동을 함께 만들어 가는 시민으로서 16일의 편지를 쓰려 합니다.

처음부터 거창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누군가의 곁에서 너무 쉽게 떠나지 말자는 마음,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가 버리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마음이 지금까지 저를 이 자리에 붙들어 두었습니다.

세월호참사 이후 우리는 수없이 많은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매번 현장에 나오는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조용히 후원을 이어 온 분들, 소식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 분들, 아이의 손을 잡고 기억공간을 찾았던 분들, “미안합니다”, “잊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을 조심스레 꺼내며 그저 고개를 숙였던 얼굴들까지. 그 작고 소소한 마음들이 모여 지금의 4.16연대를 만들어 왔다고 저는 믿습니다.

얼마 전, 사무처 활동가들과 워크숍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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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대구였습니다. 흔히 ‘보수의 도시’라 불리는 그곳에서 우리는 긴 이야기를 나누고, 대구 10미 중 3미를 먹고 돌아왔습니다.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 시간은 우리에게 꽤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워크숍은 무엇을 더 해보자고 다짐하는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서로를 다시 알아가고, 지금의 우리는 어디쯤 와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가고 싶은지를 서로에게 묻는 시간이었습니다. 잘해 온 일도 있었고, 의미는 있지만 점점 버거워진 방식도 있었으며, 말로 쉽게 꺼내지 못했던 피로와 망설임도 있었습니다. 4.16연대 활동가로 결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활동가들이 바라본 세월호 운동과 4.16연대의 모습을 진솔하게 나누는 시간도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이름으로, 생명존중 안전사회를 목표로 수많은 일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일’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건 아니었는지 조심스럽게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2026년을 조금 다르게 준비해 보려 합니다. 무언가를 더 얹기보다는, 지나온 과정을 차분히 곱씹어 보고, 지금 우리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를 다시 확인하는 해로 삼아 보려고 합니다.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 국가 책임을 묻는 일, 생명과 안전을 국가의 의무이자 시민의 권리로 만드는 일은 조금도 가벼워질 수 없습니다. 진상규명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이고, 국가 책임을 묻는 일 역시 멈출 수 없습니다. 이 중심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그 길을 가는 방식이 조금 더 시민의 마음에 가까워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문가의 언어보다 “왜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나요”라고 묻는 시민의 질문에서 출발하는 진상규명, 
사건을 기억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이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는 일상의 안전을 향한 기억 활동.
그리고 무엇보다 피해자 곁에서 너무 앞서지도, 너무 멀어지지도 않는 이웃으로 계속 남아 있으려 합니다.

저는 4.16연대가 사무처 활동가와 4.16시민들에게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라, 여전히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어서 존재하는 조직이기를 바랍니다. 
사무처장으로서 성과와 계획을 이야기해야 하는 사람이지만, 한편으로는 이 조직이 사람을 소모하지 않고, 마음을 닳게 하지 않으며, 오래 곁에 머물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랍니다. 그것이야말로 피해자 곁에 서겠다고 말해 온 우리가 끝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약속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원 여러분, 여러분이 보내주신 작은 마음들이 지금까지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길 역시 사무처 활동가만의 결심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세월호 운동이 지속 가능한 운동이 될 수 있도록, 완벽하지 않은 선택과 때로는 실패할지도 모르는 시도들을 함께 견뎌 주시기를 조심스럽게 부탁드립니다.

따뜻한 국밥처럼 누군가의 속을 조용히 데워 주는 일.

세월호참사 피해자 곁에서, 그리고 안전한 사회를 바라는 시민의 마음 곁에서 그 자리를 쉽게 떠나지 않는 일. 조급해하지 말며 방향은 분명히 잡고, 생명과 안전의 가치를 다시 사회 한가운데로 가져오는 일. 2026년에도 우리는 그 일을 계속해 보려 합니다.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곁에 있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연대의 마음으로, 4.16연대 사무처장 김선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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