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16일의 편지-2025년 11월] 이제야 세월호를 시작합니다.

2025-11-16

팽목기억캠프를 다양한 시선에서 담았습니다. 유숙 님이 원고를 보내주신 메일 하단에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내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 하나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라는 문구가 있더라고요. 이 문구만큼 유숙 님이 세월호참사를 생각하는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문장이 어디있을까요. 유숙 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4.16연대 사무처 정옥다예



이제야 세월호를 시작합니다.

- 팽목항 기억캠프에서 배운 돌보는 시민성 -


4.16 세종시민모임 정유숙


세월호 11주기가 지났지만, 저는 그 시간을 멀리서만 바라보았습니다. 아이들 만나는 학교 현장에서 봄꽃 피는 4월마다 애도의 시간을 가져왔지요. 허나 슬픔의 심연에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사실을 전달하는 정도에 그쳤어요. 그러다 우연처럼, 어쩌면 늦은 부름처럼 4.16 세종시민모임이라는 울력에 기대어 팽목항에 걸음했습니다.

기억순례길을 걷는 노란 깃발이 바람에 펄럭입니다. 대구시민상주모임과 세월호를기억하는제주청소년모임(이하 세제모)이 그려내는 노란 행렬이 이어진 마음 같아 좋았어요. 생각을 가다듬으며 꽁무늬쯤 걷다 보면 어귀마다 버스가 멈춰 기다리고 있었지요. 우리의 속도와 숨을 배려하면서요.

기억전시관을 둘러보고, 성당에도 들러요. 사진속 얼굴들과 이름 하나하나를 오래 보았습니다. 방파제 ‘기억의 벽’에 마련된 추모 그림과 글들도 읽어요. 붉은 등대, 하늘나라 우체통, 빛바랜 깃발들. 너울대는 파도 저 너머 그날의 고통을 가늠하다가 이내 멈춥니다. 떨어지는 빗방울과 바람. 자연은 참 무상하기도 하지. 아니 무심하기도 하지. 

노란 리본이 흔들리는 팽목항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멈춰있지 않았어요. 누군가는 꽃을 심고, 누군가는 밥을 짓고, 누군가는 미사를 드리고 누군가는 해풍에 삭는 깃대를 교체합니다. ‘잊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그곳에 있습니다. 길고 긴 기다림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서로를 돌보는 일상의 힘 덕분이었을까요.

기억순례길을 걷는 노란 행렬

무려 8년 동안 홀로 팽목항을 지켜왔다는 우재군의 아버님이 차려낸 저녁. 감정을 다잡으며 함께 간 아홉 살 딸아이와 밥을 먹습니다. 가장 큰 슬픔을 겪은 사람들. 그리고 그 손을 잡은 사람들. 그들이 만든 이 공간의 깊이와 머물렀을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쉽지 않았어요. 빗줄기가 거세져 기억캠프는 강당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긴 시간 소식을 기다리며 간절한 마음으로 가족들이 생활했던 곳이고 오늘 우리가 하룻밤 묵을 곳이기도 하지요. 

북놀이패 장단에 들썩이다가 오카리나 연주에 훌쩍이다가, 박성언 밴드의 노래 ‘기억들이 모여 우리가 된다, 우리들이 모여 희망이 된다’를 소리 높여 함께 부릅니다. 울다 웃다 함께 부르는 노래는 놀라운 힘이 있어요. 적당한 말과 표정을 찾지 못해 마주하지 못했던 유가족분들의 얼굴을 바라볼 용기가 생겼거든요. 세제모의 노래와 군무(!) 공연까지 이어지자 함께 소리 내던 저도 어느새 여기에 말을 얹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슬픔이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감정이 되고 나의 문제가 되니 이제 저도 여기서 빠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세월호 이후를 함께 사는 사람들’입니다.

비가 그친 아침의 팽목항은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애진 아버님은 장작을 자르고, 우재 아버님은 또 아침을 차려요. 저마다 분주하게 서로를 돌보는 일상을 시작합니다. 스피커에서는 노래가 흐르고 하룻강아지 나라와 제 딸 아이는 마당을 신나게 뛰어다녀요. 어제와 달리 고요하고 평온한 바다, 이 잔인하도록 찬란한 아침이 얼마나 많이 흘렀을까요. 작별인사를 하며 비로소 어머님 아버님을 안아드릴 용기가 생기더군요. 손부끄럽지만 단감 한봉지와 아이 용돈까지 받아 듭니다. 서로의 삶에 스며들어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능력, 이것이야말로 시민성의 또 다른 이름인지도 모릅니다. 하룻밤 사이 저는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되었는지도요.

목포로 건너가 인양된 선체를 마주했습니다. 의혹과 해명의 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하도에 새로운 공간이 마련되어 더 많은 이들이 세월호를 기억하고 생명안전을 고민할 수 있게 된다니 조금은 안도했습니다.

세종으로 돌아오는 길도 역시 멀어요. 그러나 앞으로를 생각하면 한달음 길입니다. 기억은 멈춘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으로 지속되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누군가의 고통 앞에 어떻게 설 것인가. 타인의 아픔에 응답할 수 있고 더 많은 이들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그리하여 서로를 돌보는 시민들이 더 많아지는 것이 세월호 이후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늦었지만 이제 저도 함께 합니다.

4.16 세종시민모임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