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은 사람[16일의 편지-2025년 9월]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의 호흡으로_4.16가족협의회 승묵이 엄마를 만나다

2025-09-16

단거리가 아닌장거리의 호흡으로 

4.16가족협의회 승묵이 엄마를 만나다

김 우

“왜 인터뷰 안 한다고 하셨어요?”
“제 성격이 나서는 거 좋아하지 않아서요. 모르겠어요. 감정이 아직 들쑥날쑥한 게 심해서. 지금 (인터뷰) 안 하면 계속 전화할 거 같아서, 미안함도 들고 해서 전화는 드렸지만 내키지는 않아요.” 

승묵이 엄마는 세월호 참사 이후 줄곧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뭔가를 하려고 마음먹었다가도 ‘지금 이런 상황에 이런 행동을 해도 될까?’ 하는 미안함으로 접게 되는 것도 많다. 무언가 즐거울 수 있는 것은 차단하면서, 주변과 스스로에겐 명랑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딜레마가 있다.

“원래 밝은 성격이었을 거 같아요.”
“맞아요. ‘초긍정’이었어요.”

승묵이 아빠가 주식으로 돈을 많이 잃었을 때도 “젊은 나이에 또 벌 수 있지,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승묵이 엄마였다. 아이들이 시험을 못 보고 와도 항상 괜찮다, 다음에 잘 보면 된다고 말하는 태도의 연장선이었다. 

“돈을 잃었어. 누군가에게 빌려주고 못 받았어. 큰돈이었어. 그러면 그 사람한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꼭 받아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모르는 사람한테도 후원하는데, 그 사람도 필요했겠지, 그러니까 그렇게 했겠지, 넘어가요. 저보다도 힘들어서 그렇게 했을 텐데.”
이건 초긍정 마인드가 아니라 석가모니의 제자 아난존자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큰돈을 갚지 않고 잠적해 버린 친구를 원망하기는커녕 절박한 사정이 있었을 거라며 용서하고, 친구의 어려움을 미리 헤아리지 못한 자신을 성찰하는, 대인배를 넘어 해탈의 경지에까지 이른 아난존자 말이다.

“어렸을 때는 어땠어요?”
“겁 많고 울기도 잘하고 근데 명랑은 했던 거 같은 그런 아이였어요. 그냥 착한 아이.”
165센티에 체격 좋은 승묵이 엄마는 고등학교 시절 부쩍 키가 큰 거란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운동을 했고, 800미터 중거리 육상 선수로 활약했다. 중학교 때 “넌 저렇게 조그만 애한테도 졌냐?”라고 야단치던, 친구의 아버지 말대로 조그만 애였다. 당시 경쟁자였던 그 친구는 170이 넘는 장신이었다. 운동을 하며 하고 싶은 걸 모두 중단하고 미뤄야 했던 승묵이 엄마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는 컴퓨터, 피아노, 서예, 공예, 책 읽기 등을 몰아쳐서 했다.

승묵이는 어땠을까? 그림, 컴퓨터, 한자, 악기 등 다방면으로 잘했는데 운동은 못 했다고 한다. 엄마를 닮지 않은 거다. 학년이 바뀌거나 졸업할 때 한마디씩 적어 나누는 롤링 페이퍼에 ‘너 고등학교 가서는 나서지 좀 마라’는 얘기가 있었다. 역시 엄마와 다른 거다.

“승묵이 성격은요?”
“엄청 좋았죠. 배려도 있었고. 리더십도 있고요.”
중2 때 담임과 상담을 하며, 적응을 못 해 전학을 많이 다니던 친구도 승묵이가 감싸준 덕에 안정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승묵이는 친구는 물론 어른과도 소통 잘하고, 엄마가 모르는 것도 조근조근 알아듣게 설명해 주는 아이였다. 네 살 터울인 여동생과도 엄청 사이가 좋았다. 이건 형제와 다툼 없이 자란 승묵이 엄마를 닮은 듯했다.
“오히려 동생이 깐죽거려서. 오죽했으면 제가 승묵이한테 ‘엄마가 몰래 나가줄 테니까 말 안 듣거나 덤비면 다른 데는 말고 엉덩이만 좀 몇 대 때려줘라’라고 했겠어요.”
승묵이는 동생을 때리기는커녕 슈퍼 일로 바쁜 부모 대신 잘 돌봐 주었다. 놀다가도 전화를 받으면 동생을 챙겨주러 집에 들어갔고, 주말이면 40분이 넘는 거리를 걸어와서 새벽에 셔터 내릴 때까지 부모를 도와줄 정도였다.
“맏이이고 남자인데도 애교가 많았어요. 애기 때부터 밖에서 있었던 일 조잘조잘 이야기하길 잘했고, 중고등학교 때까지도 그랬어요. 근데 엄마가 궁금해해도 친구들 가정사 얘기만큼은 하나도 안 했죠.”

승묵이는 다정한 아들이었고, 따듯한 오빠였고, 듬직한 친구였다.

“저희 부부는 싸우거나 큰소리 낸 적 한번 없는데. 제가 시댁 어른들이나 친정 식구로 힘든 부분이 있을 때 승묵이에게 화풀이했던 것도 있던 듯해요. 힘들 때 감정을 밖으로 내비치지 말아야 하는데요.” 

승묵이에게 미안함으로 남은 게 무어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이었다. 힘들 때 아이에게 화낸 적 한번 없는 엄마가 어디 있을까 싶다. 수학여행 떠나기 전 3월 31일이 승묵이 생일이었는데 마침 그해에는 미역국조차 못 끓여준 것도 마음에 남았다. 엄마는 슈퍼 일로, 아빠는 슈퍼 일 하면서 다른 일까지 하느라 많이도 바빴는데, 그게 마지막 생일이 될 줄 몰랐다.

승묵이는 작곡하길 즐겼고,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진학을 목표로 준비 중이었다. 반복하는 거보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어 하는 스타일이라 학원보다는 개인 교습 쪽이 나을 듯해서 알아보던 중에 일을 당한 것이어서 안타까움도 크다.

“승묵이 작곡한 건 보셨어요?”
“승묵이 핸드폰에 있다던데 물건 오픈을 안 해봐서요... 겁이 나요.”
중학교 때부터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작곡해 온 곡들이 적지 않을 텐데 승묵이 엄마는 여태껏, 아직도, 열어볼 용기가 없다고 한다.
상실일까, 부정일까, 그래서 회피일까. 승묵이 엄마의 기억은 참사 이후 가물가물하게 가라앉아만 있다. 

“사람들이 진도 체육관 이야기를 하라고 해도 기억이 안 나요. 혼절한 기억만 있어요.”
“아이들이 살아 있을 거라고 체육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상황에 아이들은 찾아지지 않고, ‘저 엄마도 나 같은 심정으로 있겠구나, 안 됐구나’ 하는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우두커니 쳐다본 기억. 박근혜가 잠깐 왔다가 간 기억밖에. 그 당시를 물어보면 잘 모르겠어요.”
승묵이 엄마가 민주당사에서 점거 단식농성을 할 때 연도를 물어보아도, 며칠을 했는지 물어도, 심지어 어떤 연유로 했는지를 물어도 답은 비슷했다. 2015년인가 2016년이었나, 10일이었나 13일이었나, 우리가 밝히고자 하는 일에 도움이 돼야지 하고 합류했던 마음밖에는 기억에 없다고 했다. 물과 죽염만으로 버티던 그 힘겨운 시간의 기억이 그러한데 다른 일은 여북할까 싶다.

“지금도 그렇고 기억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치매인 줄 알고 올해 뇌 검사를 해봤더니 인지 능력이 저하돼서 그렇다고 해요. 머리가 나쁘다는 거죠. 스트레스 때문이라고요.”
책을 들여다봐도 이해가 잘 안되고, 상대와 이야기를 해도 저장되는 것 없이 단어 정도만 생각나는 정도라서 뇌 하드 트레이닝으로 외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이번 달부터 일본어 기초를 공부하고 있다.
“제가 기분이 처져 있으면 가족이 걱정하니까 최대한으로 밝게 있으려 노력해요. 그래도 요즘에는 감정 표현을 가끔 해요. 승묵이가 갑자기 보고 싶으면 신랑 눈치를 보면서도 ‘승묵이가 오늘은 보고 싶다’라고 내뱉죠.”
다행이다. 드러내 표현한다는 건, 안으로 꽁꽁 싸매고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다 훨씬 건강한 일이다. 몇 년 전엔 근종으로 자궁 적출 수술을 받았다. 정신과 약 외에 혈압약 정도를 먹으니 세월호 다른 부모들에 비해 양호하다고 생각하는 승묵이 엄마. “단식을 했을 때 혈압이 (내려가) 정상이었으니 저는 굶어야 하나 봐요”라고 웃기까지 한다.

승묵이 엄마는 이제 걷고, 뛰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운동도 시작했다.
“제가 인지는 떨어져서 이해하거나 감당하기 어렵지만 노력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는 것에 감사하죠. 진상을 규명할 때까지는 건강 챙기면서 하고 싶으니까요.”
승묵이 엄마의 외국어 기초 공부며 걷고 뛰고 오르는 운동을 다아~ 응원한다. 소진되기보다 살피고 채우며 함께 달릴, 우리의 장거리 달리기 투쟁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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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희생자 임경빈 군 구조 지연에 관한 항소심 대응 1인 시위 피켓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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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10주기 도보 행진 때 같은 반 부모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