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16일의 편지-2025년 6월] 바람과 노래가 한 소리로 어우러진 날

2025-06-16

바람노래한 소리어우러진 날

- 416합창단의 실상사 공연을 다녀와서


이철호 (LA 내일을여는사람들)

416합창단과 인연을 맺은 지 6년이 되었다. 2019년 416합창단의 미주 순회공연의 시작이 LA였고, 나는 그 공연 준비의 책임을 맡았었다. 세월호 참사로 아이들을 잃은 부모님들과, 그 뜻을 함께 하는 시민 단원들이 함께 하는 '길 위의 합창단'의 취지에 동감했기에 416합창단을 모셨다. 그 날 416합창단의 노래와 무대 구성을 보고, 그저 '문선대'가 아니라 전문 합창단임을 알고 더욱 팬이 되었다.

그 이후 한국에 들어올 때면 잊지 않고 합창단의 연습을 찾아 가거나, 기억약속문화제와 같은 자리의 공연을 찾아가는 덕질을 해오고 있다. 이번 한국 방문 기간 중 416합창단의 일정을 찾아보니 남원 실상사에서 하는 공연이 있었다. 합창단의 하루 일정을 함께 하는 것이 오랜 바람이었기에 이 공연을 따라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허락을 해 주셔서 합창단과 하루의 일정을 함께 하게 되었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길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 ‘노래하는 먹방집단’의 진면목을 직관했다.

새벽에 안산을 출발하여 자정이 다 되어 돌아온 하루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하늘은 눈이 부시게 푸르렀고, 으름나무 꽃 향기와 연둣빛 어린 나뭇잎의 빛은 가슴에 내려 앉았으며, 바람과 합창단의 노래가 한 소리로 어우러진 실상사 주변 여러 곳에서의 공연은 나의 마음 속에 깊게 스며들었다.

부모님들이 나눠 주신 아이들에 대한 기억과 꿈과 다짐은, 그 숲 한가운데 같이 했던 사람들을 울고 웃게 만들었다. 그 시간과 공간이 더 의미 있었던 것은 세월호 참사 십 년이 넘도록 여전히 실상사 경내에 세월호 추모 공간을 유지해온 실상사의 사람들과, 공연을 함께 하기 위해 발걸음을 한 실상사 이웃 공동체 사람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첫 곡 '푸르다고 말하지 마세요'부터 마지막 곡 '노래여 날아가라'까지, 구호 없이 가슴으로 내뱉는 외침은 자유롭게 앉은 사람들의 어깨를 넘어 실상사 담벼락을 넘어 멀리 흘렀다. 416합창단의  노란색 공연복은 그 외침에 색을 입혔다. ‘그리움 별이 되다’라는 문구가 찍힌 합창단의 공연복은 전투복이다. 대부분의 공연이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투쟁의 현장에서, 그리고 사회의 약자들을 응원하는 현장과 거리에서였으니 '전투복'이라 할 만하다 (전투복이라는 표현은 한 공연에서 희생자 박시찬 군의 아버지가 하신 말씀).

모든 싸움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시작한다. 그 싸움을 자신과는 다른 이유로 소외당하고 아파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 세상을 바꾸는 사회운동이 되는 것이고, 자신을 지키는 데서 끝나면 밥그릇 지키기가 되는 법이다. 이 분들은 아주 오래 전에 자신을 지키는 싸움의 테두리를 벗어났다.

메세지를 담은 어떤 형태의 예술도 일정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그저 프로파간다로 그치고 만다. 혼이 없는 프로파간다는 대중의 가슴에 꽂히지 못하고 귓전에 맴돌다 허공에 흩어진다. 416합창단의 모든 노래는 분명 강하고 분명한 메세지를 담은 공연이다. 하지만 그 노래는 듣는 사람과 주변 환경과 늘 아주 잘 어우러져 모두의 가슴에 남는다. 6년 전 LA에서의 공연이 그랬고, 이번 실상사에서의 공연이 그랬다. 6년 전에는 보랏빛 자카란다 꽃이 나와 416합창단을 이어주었고, 실상사에서는 으름나무 꽃 향기가 기억의 매개체가 되었다.

매달 서울시의회 앞 ‘기억공간’에서 열리는 4.16 기억약속문화제는 ‘내일’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내일을 향한 단단한 한 걸음, 그 한 걸음이 나의 일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혼자서 풀이해본다. 416합창단의 실상사 공연을 다녀와서, 유가족들의 의지가 강건하고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 길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닿는 곳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두터워졌다.

봄을 다 볼 수 없었고, 봄을 다 안을 수 없었던 희생자들의 영혼은 따뜻한 봄에 남지 못했지만, 그 봄바람에 남아, 2025년 실상사에서의 새 봄에 다시 오는 것을 느꼈다.

"우리의 숨은 눈을 통하여
마침내 붉은 열매가
우리를 넘어서 날아오를 때까지
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

- 나희덕 '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