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은 사람[16일의편지-2023년 5월] 수인이 엄마가 무대가 편안한 이유 –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의 수인이 엄마

2023-05-16


수인이 엄마가 무대가 편안한 이유 –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의 수인이 엄마

김우


('장기 자랑' 공동체 상영회 자리에서 관객과 대화하는 수인이 엄마 사진)

9주기 때 마을에서 ‘장기 자랑’ 공동체상영을 했다. 이소현 감독, 영만이 엄마, 수인이 엄마가 관객과 대화하러 달려와 주었다. 4월 16일의 편지 ‘나를 닮은 사람’ 편은 호성이 엄마였는데 5월에도 심야 통화로 세월호 엄마인 수인이 엄마 이야기를 들었다.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 <장기 자랑>의 배역으로 또 다큐 ‘장기 자랑’으로 접한 수인이 엄마가 궁금했다. 그런 수인이 엄마와 수인이는 또 얼마큼 닮았을지 알고 싶었다. 

수인이를 만나기까지는 어려운 시간이 있었다. 첫 아이 유산 이후 시험관 아기 노력까지 기울이던 차였다. 수인이는 그런 시술을 통하지 않고 찾아와 주었다. 하지만 예정일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병원에 다녀온 날 밤에 아기가 목에 탯줄을 많이 감고 있는 꿈을 꾸었다. 불안해서 아침에 바로 병원에 달려가 초음파 검사를 해달라고 했다. 정말 탯줄은 출산 중 풀리는 정도를 넘어서 목을 감고 있었다. 질식사 위험이 있어 바로 수술해야 했다. 그렇게 수인이를 만났다.

책을 좋아하는 수인이 엄마는 10년 동안 육아 관련한 책을 읽으며 아기를 기다렸다. 또 수인이가 배 속에 있을 때도 아기일 때도 아이일 때도 책을 읽어주었다. 집의 책만으론 부족했다. 아이랑 제일 많이 간 곳이 도서관이었다. 초등학교 도서관이며 단원어린이도서관이며 화랑유원지 언저리 어린이도서관의 책을 거의 매일 섭렵했다. 수인이는 도서관 가는 걸 좋아해서 숙제를 먼저 해야 갈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아야 할 정도였다. 동네 사랑방이 된 집에 조카까지 불러서 구연동화처럼 책을 읽어주던 것이 지금 연극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지금도 우리 아이에게 이야기 들려준다는 기분으로. 습관이 돼서. 익숙하니까.” ‘이야기 또 들려주러 가야지’ ‘수인이가 어디서 또 듣고 있겠지’ 하는 마음이니 수인이 엄마는 무대가 편안하고, “아마추어지만 떨림 없이 반가운” 만남의 장이다.

(수인이 사진)

태어날 때 몸무게 4.8kg, 키 60cm이던 수인이는 걸음마 할 때도 발 크기가 145cm였다. “초등학교 때가 지금 키예요. 제가 어지간한 운동은 다 해봤어요. 키 크면 (운동부에서) 무조건 데려갔으니까요.” 그런 수인이 엄마를 닮아선지 수인이는 운동도 좋아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체육대회가 가까워지면 집 뒤의 산비탈을 달려 올라가곤 했다. ‘어지간한 운동’을 다해본 엄마에겐 자세나 ‘폼’을 물어 익히면서 말이다. “‘너 잘한다’ 그 소리 듣고 싶은 거죠. 애들 보고 있는 데서는 안 하고” 호수 위 우아한 백조처럼 ‘이 정도는 보통이지’ 한마디를 하려는 수인이의 물 밑 부단한 갈퀴질이 산비탈 달리기였다. 

중3이던 때는 고등학교 농구부에 들고 싶어서 기초 체력을 다지며 기본부터 혼자 연습했다. 경안고등학교 공원 농구 골대로 향하는 시간은 매일 밤이었고 1년 동안이었다. “너 농구 좀 해봤니?” “이런 건 기본이죠.” 이렇게 얘기했노라며, 입학해 농구부 동아리 테스트 통과 결과를 전하던 수인이의 말은 덤덤함이었지만 얼굴은 뿌듯함이었다. 

“지나고 나니까 노력 많이 한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좀 더 놀릴 걸.” 책 읽기를 좋아하고 독후감도 잘 써서 선생님에게 칭찬받으며 운동까지 잘하던 것도 ‘최선의 노력’을 강조한 엄마의 강요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미안함이다.

“이제껏 했던 거 내려놓을래요. 공부하는 것도 줄이고 더 놀고 싶고.” 

“그래. 네가 행복해지는 게 엄마의 가장 큰 바람이니까.” 

초4 때 수인이의 갑작스러운 선언에 대답은 선선히 하면서도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 게 좋을지 고민도 돼서 상담받았다. 노산이었던 탓에 젊은 엄마들하고 달리 키워서 아이가 힘든 건 아닌지 자문하기도 했다. 당시 상담해 준 이가 기도하라고, 사랑한다고 말하며 안아주라며 내준 ‘숙제’가 지금도 고맙다. 그때부터 3,654일×2회씩 꼬박꼬박 수학여행 가는 아침까지 수인이를 안고 “사랑한다”고 마음 다해 인사할 수 있어서, 사랑하는 마음 표현하고 전할 수 있어서 참 고맙다.

중2 때는 수인이 엄마가 암에 걸린 동생을 간병하고 돌아오면 게임에 눈을 뜬 수인이가 밤새도록 컴퓨터 게임에 매달리고 있었다. 학교에서 졸더라는 소리 들리지 않도록 하라고 했더니 새벽까지 게임을 하고 한 시간 자고 일어나서 학교에 갔다. “정말 열심히 하더라고요. 2학년 끝까지 하더니 어느 날은 이제 게임 안 할 거예요”라며 11개월 만에 정리했다. 

‘최선의 노력’은 수인이 엄마가 말로 강요한 게 아니라 그저 몸으로 실천한 것이었을 뿐이었다. 과학이며 사회는 잘하지만, 수학은 부족했던 수인이를 위해 이비에스 보면서, 서점에 가서 참고서 들춰보면서 “공부해서 가르쳤던” 수인이 엄마였다.

(다큐 '장기 자랑' 포스터. 노란리본 극단은 이후에도 <기억 여행> <연속, 극>으로 연속해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남편은 성인군자고 나만 나쁜 년이야.” <그와 그녀의 옷장>에 나오는 수인이 엄마의 대사다. “우리는 살날이 창창한데 조부모님은 언제 돌아가실지 몰라서 챙기고 싶어서. 빠듯한 살림을 나누다 보니까” 정작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들어주며 살지 못했다. 대학로 초연 때 남편과 딸아이가 보러 왔었다. “집사람이 굉장히 조신한 사람입니다”라는 게 남편이 마이크 들고 한 첫마디였다. “함부로 하고 던지고 따지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그 말이 싫었다. “조신하다는 말을 싫어하게 됐어요. 그것에 가둘려고 하는 것 같아서, 세뇌시키는 거 같아서”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착하다, 성격 좋다는 말을 많이 듣고 지냈다. “어지간하면 분란이 일어나는 것보다는 ‘내가 봐주는 거야’ 하면서 맞춰주는 그게 당연시 돼가는 느낌. 못 느끼고 살았는데 하나씩 하나씩 느껴지는 게 내가 조금씩 나빠지고 있구나, 다행이구나” 싶다는 수인이 엄마. “불편한 거 같아요.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면서 내 마음이 불편해지는 부분도 있어요.” 상대방 말만 잘 들어주던 삶에서 조금씩 불편함을 느끼는 수인이 엄마를 응원한다. 

물론 배어있는 성실감과 책임감이야 어디 갈까 싶기도 하지만 이제 노란리본 극단의 단장도 내려놓았으니 더 자유롭게 무대에 서서 세월호 4.16운동을 펼쳐가길 기대한다. “저 그냥 계속 이렇게 갈 거 같아요. 특별한, 원대한 계획이 있어서 따로 극단을 채릴 건 아니어서.^^ 어지간하면 이어서 계속 하는 거죠. 어떤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모르겠지만 누가 되지 않는다면 이대로 계속 갈 거예요. 무대에서 해주고 해야 될 이야기가 많아서요. 앞으로도 수인이가 많이 들어줘야 할 듯해요.” 수인이 엄마가 수인이에게 들려줄 이야기,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귀기울여 계속 계속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