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은 사람[16일의 편지- 202년 8월] 4.16운동은 안전하게 살자는 기본의 약속-혜원 인터뷰

2024-08-15

4.16운동은 안전하게 살자는 기본의 약속-혜원 인터뷰 


김 우

사진 1. 은평구 카페 쓸의 재개발 반대 투쟁파티에서 친구들과 함께 춤을 추는 모습

혜원 님은 작년 5월 1일 4.16연대 사무처에 공식 입사했다. 2022년 11월 1일부터 서울시의회 본관 앞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활동했으니 새내기인 듯 새내기 아닌 활동가인 셈이다. 페미니즘 리부트 시절 불꽃페미액션(이하 불꽃) 활동을 같이했던 친구가 4.16연대 진상규명 팀에 있으며 기억공간 활동을 권유해서 시작했다. 

불꽃은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 이후 생겨난 페미니즘 단체다. 혜원 님에게 불꽃의 활동에 관해 물었다. 초기, 문제 제기하는 방식이 공격적이고 서툴렀던 측면이 있는데 사람들이 불꽃을 그 당시로만 기억하는 듯해 안타깝다고 했다. 여성들이 “넌 평생 모르고 살았잖아” 지적하면 남성들은 “내가 그걸 만들었어, 조장했어?” 억울해하며 받는 식이었다. 하지만 열을 내고 성내고 모이고 싸워도 단시간에 바뀌지 않는다는 성찰을 얻었고, 무작정 시비 걸기보다 상대는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귀 기울이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2020년대로 넘어오면서 누군가는 일단 내가 잘 살아야겠다며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얻는 방법을 찾았고, 또 누군가는 정신건강을 챙기고 주변과 마음을 나누며 명상하는 갈래로 들어섰다. 


혜원 님도 자신을 소모하며 얽매인 방식으론 오래 못 가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돌보며 적당한 선을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살아있는 한 놓고 싶지 않은 과제가 많다. 아버지가 딸을 고등학교까지만 보내고 결혼시키려고 부었던 결혼 자금이 대학 등록금으로 전환된 것도 이 사회가 변했기 때문이었고, 많은 이들의 노력이 이러한 변화를 일군 것이고, 바로 혜원 님이 그런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혜원 님이 모든 이를 아우르는 세상으로 가는 노력을 기울이고자 하는 건 언제고 변함없는 명제다. 

“기후 재난이 오지 않도록 다음 세대에게 그런 위기를 줄여주고 싶어요.” 

“성폭력이 퇴출될 수 있을까, 성차별이 없어질 수 있을까, 회의감이 들더라도 하지 않으면 아예 안 바뀔 테니. 불나방처럼 불 싸지르지 않고 꾸준히 하려고요.” 

페미니스트들이 지금 뭐라도 바뀌고 있는 게 있는지 회의적이면서도 끊임없이 운동한 결과 위에 우리가 있으니 ‘월 10만 원 후원보다 월 3천 원 붓는 느낌’으로 꾸준히 나아가려 한다. 

사진 2. 세월호참사 10주기 전국시민행진 '안녕하십니까' 일정 중 수원역 앞 광장 피켓팅에서 혐오 세력과 대치하며

혜원 님은 촛불집회 정국 때 교보문고에서 부러 알바를 했다. 부모님이 데모하는 거 안 좋아해서 광화문에 갈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아버지는 한국노총에서 일하며 줄곧 보수 성향인데도 혜원 님의 4.16연대 명함을 이동전화 투명 케이스 뒤에 꽂고 다니기도 하고, 혜원 님이 기억상점에서 파는, 가슴에 노란리본을 단 ‘수고했소’ 뜨개 인형을 생일 선물로 드렸더니 3개를 추가 주문하며 응원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민주당 지지 성향인데 혜원 님이 시민으로 정의로운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한다고 지지해 준다. N번방 사건 이후 총선 때 디지털 성폭력 관련 관점이 있는 비례정당 공보물을 내밀었더니 선뜻 “그럼 이번엔 변혁을 꿈꿔봐?”라고 말해서 혜원 님도 놀랐다고. 정치에 관심 없는 듯한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변혁이란 두 글자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4.16운동이 전반적으로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갖고 있다고 느꼈어요. 운영위원회에도 시민사회단체가 전방위적으로 들어와 있죠.”

세월호 참사는 시민사회 운동계에도 전환점이 됐지만 혜원 님의 생에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자신이 꿈꾸는 평등한 사회가 온다고 해도 ‘재난 참사 상황에서 아무도 구해주지 않고, 모두가 죽음을 지켜만 보는’ 세상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일단 살고, 살리는 세상이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4.16연대에서 회원 관리가 제 주업무인데 가입하는 이들이나 탈퇴하는 이들이나 다 죄송하대요.”

가입하는 이는 이제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하고, 탈퇴하는 이는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져서 탈퇴하지만 잊지 않을 것이고 여건이 좋아지면 돌아오겠다며 미안하다고 한단다. 

“모여서, 공동체로 함께 있어서 강하고 안전하다는 게 사회와 국가의 의미일 텐데 그게 아니라 함께 있기 때문에 더 무자비하고 더 책임을 떠넘길 사람이 많다는 걸 전 국민이 목격했잖아요. 그래서 모두가 미안하고 슬프고 잊지 말자고 얘기하는 듯해요.”


페미니즘 운동이 평등하게 살자는 평등의 약속이고 침해된 권리를 찾으려는 인권의 약속이라면, 4.16운동은 공동체 생활을 안전하게 하자는 인간 기본의 약속이라고 생각한다는 혜원 님. ‘기억은 슬픈 게 아니라 힘을 주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며 기억공간도 전국 각지에 더 생겨나길 바란다고 한다.

“4.16운동이나 노란리본을 달고 잊지 않겠습니다, 하는 건 철 지난 운동이 아니라 철을 안 타는 운동이라 생각해요.”

‘아직도’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안전을 위한 4.16운동은 철을 타지 않을뿐더러 철을 타서도 안 되는 운동이라고 일러주고 싶다는 혜원 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