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투쟁과 희망의 길은 아름답다.
대전시민의눈/활동가 우은영
박봉규 / 밴드프리버드 Bass “제대로 된 진실규명은 하나도 없고 점점 잊혀가는게 너무 아쉽고 슬픕니다”
박상운/ 밴드프리버드 Drum “과거사로 만들어 버린 이땅의 모든 정치인들을 규탄한다 절대 잊지 말자 잊어버린 역사는 반복될 뿐이다”
2014년 참사 직후 그들은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어설프게 짐을 챙겨 거리로 뛰쳐나갔다.
그 첫 번째로 아무런 연고도 없고 잠자리 또한 편할 리 없는 강원도로 향했다. 도착지에 돗자리 비스름한 깔판을 깔고 노래를 부르며 “참사의 아픔을 함께해 주세요”라고 시작했고 일정의 종착지인 포항을 향해 가며 다음 목적지인 동해에서도 노래로 호소했다. 두 해 째에는 “참사라는 아픔은 없어야 됩니다” 라고 외침이 바뀌었고 호남선의 끝자락인 국도 1호선을 향해가며 길 위에의 노래를 슬프게 이어갔다.
그렇게 세 번째 해, 네 번째 해.. 공연을 이어온 게 열 번째이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에야 그 세월이 온전하지 않았다는 걸 느꼈나 보다. 하기야 모진 그 세월 동안 변한 건 두 번의 대선과 그사이 지선, 총선이 있었고 그 성과(?)에 뜻 모를 압박(壓迫)들과 지랄 맞은 협치(協治)의 부조화는 그들을 더 거세고 차디찬 길바닥으로 10년이라는 기간 내내 모질게 내몰았다.
세월호참사 직후부터 시작된 전국 투어는 호남 지역을 비롯해 전국을 안 가 본 곳이 없을 정도여서 깊숙한 곳 어딘가에도 그들이 심어 놓은 리본들이 곳곳이 자리 잡고 있다. 음악으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시작된 세월호 진상 규명 투어는 그렇게 10년의 세월 속에 이들의 얼굴 주름 속에 함께 자리하고 있다.
7주기에는 목포신항으로.. 8주기에는 팽목항으로...
9주기에는 목포로.... 10주기를 맞아 세월호의 목적지였던 그곳 제주로 밴드 프리버드도 향했다. 3주기 이후로 다시 찾아간 제주도엔 세월호 참사의 아픔과 슬픔을 기억하고 함께하는 이들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다.
80여 개 지역을 함께했던 故)고충환 님의 세월호 불도장(火印)은 전국에 5만여 개가 나누어져 그들의 가슴속에 새겨졌다.
2017년 박근혜는 탄핵이 됐다. 국민들의 분노 그 한가운데에는 세월호가 있었다. 세월호의 무게를 업고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지만 결국 세월호를 과거사로 만들었으며 박근혜의 사면 또한 문재인 정부에서 이루어져 버렸다.
정치권에 대한 해갈(解渴)에의 바람은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지쳐있는 민중에게 또 다른 갈증만을 줄 뿐인 지금이지만 앞으로 또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해야만 한다. 4월 혁명이 그러하듯, 5월 광주 와 6월 항쟁이 그러하듯..오롯이 민중의 가치로서 외쳐야 한다. 그렇기에 여전히 투쟁과 희망의 길은 아름답다.
임도훈 / 밴드프리버드 Vocal “2014년 4월 16일 이후로 우리 사회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반복되는 참사는 그 결과입니다. 세월호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의 첫 걸음입니다”
송인재/ 밴드프리버드 Guitar “공공성 이라는 가치의 부재는 국가시스템이나 기득권들의 가치가 아닌 오롯이 민중들의 가치로서 외쳐야한다는 것을 다시 느낀 모진 10년의 세월이 흘러갑니다. 진상규명을 방해했던 기만과 허울 뿐 인 모든 공권력에 대해 규탄 합니다. 투쟁”
여전히 투쟁과 희망의 길은 아름답다.
대전시민의눈/활동가 우은영
박봉규 / 밴드프리버드 Bass “제대로 된 진실규명은 하나도 없고 점점 잊혀가는게 너무 아쉽고 슬픕니다”
박상운/ 밴드프리버드 Drum “과거사로 만들어 버린 이땅의 모든 정치인들을 규탄한다 절대 잊지 말자 잊어버린 역사는 반복될 뿐이다”
2014년 참사 직후 그들은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어설프게 짐을 챙겨 거리로 뛰쳐나갔다.
그 첫 번째로 아무런 연고도 없고 잠자리 또한 편할 리 없는 강원도로 향했다. 도착지에 돗자리 비스름한 깔판을 깔고 노래를 부르며 “참사의 아픔을 함께해 주세요”라고 시작했고 일정의 종착지인 포항을 향해 가며 다음 목적지인 동해에서도 노래로 호소했다. 두 해 째에는 “참사라는 아픔은 없어야 됩니다” 라고 외침이 바뀌었고 호남선의 끝자락인 국도 1호선을 향해가며 길 위에의 노래를 슬프게 이어갔다.
그렇게 세 번째 해, 네 번째 해.. 공연을 이어온 게 열 번째이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에야 그 세월이 온전하지 않았다는 걸 느꼈나 보다. 하기야 모진 그 세월 동안 변한 건 두 번의 대선과 그사이 지선, 총선이 있었고 그 성과(?)에 뜻 모를 압박(壓迫)들과 지랄 맞은 협치(協治)의 부조화는 그들을 더 거세고 차디찬 길바닥으로 10년이라는 기간 내내 모질게 내몰았다.
세월호참사 직후부터 시작된 전국 투어는 호남 지역을 비롯해 전국을 안 가 본 곳이 없을 정도여서 깊숙한 곳 어딘가에도 그들이 심어 놓은 리본들이 곳곳이 자리 잡고 있다. 음악으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시작된 세월호 진상 규명 투어는 그렇게 10년의 세월 속에 이들의 얼굴 주름 속에 함께 자리하고 있다.
7주기에는 목포신항으로.. 8주기에는 팽목항으로...
9주기에는 목포로.... 10주기를 맞아 세월호의 목적지였던 그곳 제주로 밴드 프리버드도 향했다. 3주기 이후로 다시 찾아간 제주도엔 세월호 참사의 아픔과 슬픔을 기억하고 함께하는 이들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다.
80여 개 지역을 함께했던 故)고충환 님의 세월호 불도장(火印)은 전국에 5만여 개가 나누어져 그들의 가슴속에 새겨졌다.
2017년 박근혜는 탄핵이 됐다. 국민들의 분노 그 한가운데에는 세월호가 있었다. 세월호의 무게를 업고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지만 결국 세월호를 과거사로 만들었으며 박근혜의 사면 또한 문재인 정부에서 이루어져 버렸다.
정치권에 대한 해갈(解渴)에의 바람은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지쳐있는 민중에게 또 다른 갈증만을 줄 뿐인 지금이지만 앞으로 또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해야만 한다. 4월 혁명이 그러하듯, 5월 광주 와 6월 항쟁이 그러하듯..오롯이 민중의 가치로서 외쳐야 한다. 그렇기에 여전히 투쟁과 희망의 길은 아름답다.
임도훈 / 밴드프리버드 Vocal “2014년 4월 16일 이후로 우리 사회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반복되는 참사는 그 결과입니다. 세월호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의 첫 걸음입니다”
송인재/ 밴드프리버드 Guitar “공공성 이라는 가치의 부재는 국가시스템이나 기득권들의 가치가 아닌 오롯이 민중들의 가치로서 외쳐야한다는 것을 다시 느낀 모진 10년의 세월이 흘러갑니다. 진상규명을 방해했던 기만과 허울 뿐 인 모든 공권력에 대해 규탄 합니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