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봄을 기억하는 촛불문화제&세월호참사 10주기를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람들 선포식 후기
- 배훈
세월호참사 추모는 방해하는 자들과의 싸움이었다
3월 22일 촛불문화제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세월호 기억공간에 자원 봉사자들과 모였다.
그런데 문화제를 위한 행사 장비가 도착하기도 전에 우리를 먼저 맞이한 것은 서울시의회 직원들이었다. 그들은 기억공간이 점유한 땅 가격이 평당 얼마이고 이게 다 국민 세금이라며 기억공간을 외곽으로 옮기는 게 합리적이지 않냐며 신경을 긁었다.
그동안 세금을 성실히 내며 열심히 살아왔고, 세월호참사와 같은 불행이 그 누구에게도 찾아오지 않도록 알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 뿐인데 세금 운운하는 이야기를 듣는 게 불쾌했지만,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문화제를 준비했다.
세월호참사 10주기를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람들
어려움을 뚫고 오후 6시부터 세월호 기억공간을 지키기 위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서울시의회 앞 인도에 일렬로 서서 10주기를 추모하고 기억공간을 지켜달라는 피켓을 들었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꽤 많은 분이 모여 1인 시위에 동참해주셨다. 대략 60여 명이 모였고 100여 미터 행렬의 1인 시위 길이가 만들어졌다.
이후 오후 7시 촛불문화제가 시작되었다.
여는 발언으로 <세월호참사 10주기를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람들> 박주희 운영위원장의 발언이 있었다. 박주희 운영위원장은 "우리는 다시 촛불을 들 수밖에 없었다. 국가권력과 정치인들이 세월호참사를 왜곡하고 지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정의를 지우고 왜곡하는 퇴행에 맞서 우리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한 치도 물러섬 없이 정의롭게 촛불을 지켜 낼 것이다. 그것은 10년 전 그날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끝끝내 지켜가겠노라는 다짐이다."라며 "세월호참사의 진실이 인양될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할 것"을 약속했다.
이어 416세월호 가족 협의회 강지은 회원조직부서장의 유가족 발언이 있었다. 발언 중 "10년 동안 허송세월하였다. 10년 동안 삶이 도둑맞았다." 라는 말이 가슴이 아팠다.
과연 세월호 유가족들의 10년의 삶을 빼앗아 간 자들은 누구일까? 왜 구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느냐는 너무나도 간단하고 명백한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진상규명을 해달라는 요구를 “10년 동안” 줄기차게 거부하고 막아선 그 자들은 누구일까? 수많은 약속을 했던 ‘정치인들’, 그들은 끝내 그 약속을 저버렸다. 그래서 유가족들은 10년의 삶을 부정당하고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곁에 서서 함께 하기 위해,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 행동하며 지역에서 세월호참사 10주기의 의미와 과제를 알려 나가고 10주기에 함께할 시민을 모으겠다고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이 준비된 용지에 자신의 다짐을 적어 세월호 리본에 붙이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4월 16일을 기억하고 행동할 것이다
이후 세월호참사 기억하기 거리 캠페인으로 광진, 서대문, 은평, 용산 지역에서 “세월호참사 10주기를 함께 하는 사람들”을 800명을 모았다. 시민들과 함께 세월호 다큐멘터리 <세 가지 안부> 상영회와 세월호 노란 리본 함께 만들기, 세월호 유가족간담회, 10주기 포럼 등을 4월 17일까지 쉼 없이 진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지역공동체가 단단해지고 깊어지기도 했다.
한 달 동안 잊지 못할 사람들을 만났다
세월호참사 10주기 캠페인을 하는 동안, 특히 힘들게 한 것은 막말 정치인과 잘못된 언론을 통해 들은 혐오적이고 거짓된 이야기를 하는 자들이었다. 캠페인 책상을 밀치고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자도 있었다. 경찰도 여러 차례 출동했다.
그러나 잊지 못할 사람들을 만나 큰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KBS 세월호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한 기자는 "너무 미안해 얼굴을 들 수 없다. 그러나 끝난 게 아니다. 우리도 방송국 앞에서 항의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함께 한 초등학생 자녀 학부모는 "우리 아이가 어제 집에 가서 저금통에 있는 돈을 여기에 기부하자고 했다. 그래서 오늘 모금에 동참하기 위해서 왔다."라며 소중한 마음을 보태었다.
"나도 97년생이라 마음이 힘들었다. 뭐라도 같이 하고 싶어 리본 만들기에 참여하게 됐다." 라며 미안해 하는 시민도 있었다. 함께 세월호참사 10주기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많은 시민들이 있어 든든하고 감사하다.
열 번째 봄을 기억하는 촛불문화제&세월호참사 10주기를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람들 선포식 후기
- 배훈
세월호참사 추모는 방해하는 자들과의 싸움이었다
3월 22일 촛불문화제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세월호 기억공간에 자원 봉사자들과 모였다.
그런데 문화제를 위한 행사 장비가 도착하기도 전에 우리를 먼저 맞이한 것은 서울시의회 직원들이었다. 그들은 기억공간이 점유한 땅 가격이 평당 얼마이고 이게 다 국민 세금이라며 기억공간을 외곽으로 옮기는 게 합리적이지 않냐며 신경을 긁었다.
그동안 세금을 성실히 내며 열심히 살아왔고, 세월호참사와 같은 불행이 그 누구에게도 찾아오지 않도록 알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 뿐인데 세금 운운하는 이야기를 듣는 게 불쾌했지만,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문화제를 준비했다.
세월호참사 10주기를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람들
어려움을 뚫고 오후 6시부터 세월호 기억공간을 지키기 위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서울시의회 앞 인도에 일렬로 서서 10주기를 추모하고 기억공간을 지켜달라는 피켓을 들었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꽤 많은 분이 모여 1인 시위에 동참해주셨다. 대략 60여 명이 모였고 100여 미터 행렬의 1인 시위 길이가 만들어졌다.
이후 오후 7시 촛불문화제가 시작되었다.
여는 발언으로 <세월호참사 10주기를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람들> 박주희 운영위원장의 발언이 있었다. 박주희 운영위원장은 "우리는 다시 촛불을 들 수밖에 없었다. 국가권력과 정치인들이 세월호참사를 왜곡하고 지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정의를 지우고 왜곡하는 퇴행에 맞서 우리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한 치도 물러섬 없이 정의롭게 촛불을 지켜 낼 것이다. 그것은 10년 전 그날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끝끝내 지켜가겠노라는 다짐이다."라며 "세월호참사의 진실이 인양될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할 것"을 약속했다.
이어 416세월호 가족 협의회 강지은 회원조직부서장의 유가족 발언이 있었다. 발언 중 "10년 동안 허송세월하였다. 10년 동안 삶이 도둑맞았다." 라는 말이 가슴이 아팠다.
과연 세월호 유가족들의 10년의 삶을 빼앗아 간 자들은 누구일까? 왜 구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느냐는 너무나도 간단하고 명백한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진상규명을 해달라는 요구를 “10년 동안” 줄기차게 거부하고 막아선 그 자들은 누구일까? 수많은 약속을 했던 ‘정치인들’, 그들은 끝내 그 약속을 저버렸다. 그래서 유가족들은 10년의 삶을 부정당하고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곁에 서서 함께 하기 위해,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 행동하며 지역에서 세월호참사 10주기의 의미와 과제를 알려 나가고 10주기에 함께할 시민을 모으겠다고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이 준비된 용지에 자신의 다짐을 적어 세월호 리본에 붙이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4월 16일을 기억하고 행동할 것이다
이후 세월호참사 기억하기 거리 캠페인으로 광진, 서대문, 은평, 용산 지역에서 “세월호참사 10주기를 함께 하는 사람들”을 800명을 모았다. 시민들과 함께 세월호 다큐멘터리 <세 가지 안부> 상영회와 세월호 노란 리본 함께 만들기, 세월호 유가족간담회, 10주기 포럼 등을 4월 17일까지 쉼 없이 진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지역공동체가 단단해지고 깊어지기도 했다.
한 달 동안 잊지 못할 사람들을 만났다
세월호참사 10주기 캠페인을 하는 동안, 특히 힘들게 한 것은 막말 정치인과 잘못된 언론을 통해 들은 혐오적이고 거짓된 이야기를 하는 자들이었다. 캠페인 책상을 밀치고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자도 있었다. 경찰도 여러 차례 출동했다.
그러나 잊지 못할 사람들을 만나 큰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KBS 세월호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한 기자는 "너무 미안해 얼굴을 들 수 없다. 그러나 끝난 게 아니다. 우리도 방송국 앞에서 항의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함께 한 초등학생 자녀 학부모는 "우리 아이가 어제 집에 가서 저금통에 있는 돈을 여기에 기부하자고 했다. 그래서 오늘 모금에 동참하기 위해서 왔다."라며 소중한 마음을 보태었다.
"나도 97년생이라 마음이 힘들었다. 뭐라도 같이 하고 싶어 리본 만들기에 참여하게 됐다." 라며 미안해 하는 시민도 있었다. 함께 세월호참사 10주기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많은 시민들이 있어 든든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