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발자취, 4권의 백서로 묶어낸 기록의 무게
-4.16시민백서 발간 소감-
박래군(4.16연대 대외협력위원장)
지난 4월 16일, 세월호참사 12주기를 앞두고 드디어 <4.16시민 10년의 기록>(이하 시민백서)이 발간되었다. 애초에는 4.16연대 10년에 맞추어서 발간할 예정이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1년 늦게 출간하게 되었다.
4권으로 구성된 시민백서를 받아드니 만감이 교차한다.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서 만든 국민대책회의, 그리고 세월호참사 1주기 뒤에 창립한 4.16연대의 그 시절이 생각났다. 재난참사와 관련해서는 전국적인 대응기구를 만들어서 움직였던 것도 처음이었다. 1천만 서명운동을 전개해서 실제 서명인원이 650만 명을 넘겨서 진상규명특별법을 만들었다. 박근혜 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이만큼의 서명과 활동으로 만들어낸 성과였다.
하지만, 그 뒤가 걱정이었다. 국민대책회의가 잘하고는 있다고 해도 오랜 세월 시민사회에서 대책기구를 만들어 운영해왔던 경험상 한시적이고, 임시적인 기구로는 지속적인 활동을 해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새로운 단체를 구상했다. 그것도 한국의 시민사회에서는 처음으로 피해당사자와 활동가, 시민들이 함께 하는 단체를 만든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
2015년 세월호참사 1주기는 시작부터 박근혜 정권과 전면적인 투쟁 속에서 진행했다. 한편으로는 4.16연대를 만들면서 한편에서는 정권과의 투쟁을 동시에 진행해야 했다. 드디어 6월 28일, 4.16연대는 창립되었고, 곧바로 나는 구속되었다. 원천봉쇄를 뚫고 1주기 추모대회를 주도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구속되면서도 “4.16연대를 지켜 달라.”고 호소했다. 갓 태어난 신생 조직을 두고 구속되는 상황이었으므로 걱정이 너무 컸다.
조직이 안정이 되어간다고 안심할 때 즈음에 조직의 위기가 찾아왔다. 비상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지고, 그 상황을 정리하는데 6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속이 새까맣게 탔다. 책임지는 자리에서 물러나 나는 그 뒤에는 4.16재단에 전념했다. 그러면서 4.16연대와는 불가근불가원의 거리를 유지하고 지냈다. 그 사이에 많은 이들의 고생으로 4.16연대는 살아남았고, 창립 10주년을 넘겼다.
이 시민백서는 그런 4.16연대의 기록이기도 하고, 4.16연대와 긴밀하게 움직였거나 느슨하지만 관련을 갖고 활동해왔던 이들의 기록을 모은 결과물이다. ‘세월호참사 10주기위원회’의 재정적 지원으로 백서를 만들기로 하고, 이태호 대표와 함께 공동편집위원장을 맡았다. 편집위원회는 공식적으로는 16차례의 회의를 하면서 백서 발간의 목표, 편집방향, 원고 수집, 교정과 교열 등의 과정을 해냈다. 공식적인 회의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원고 써줄 사람과 연락하고, 원고를 수정했고, 새로운 원고도 써야 했다.
4.16활동을 해왔던 단체와 지역의 담당자들에게 연락을 했을 때 반응은 갈렸다. 자신들의 기록을 기꺼이 정리해서 보내겠다고 한 분들은 오히려 적었다. 자신들이 한 활동이 별 게 없다, 초기에는 열심히 하다가 최근에는 활동이 거의 없어서 부끄럽다고 말하시는 분들을 설득해서 원고 작성 양식을 보낸 다음에 다시 독촉해야 원고를 받을 수 있었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입장이 4.16연대와 달라서 참여하지 않겠다는 분들을 설득하지 못한 일이다. 또 하나 안타까운 일은 예전에는 활발하게 활동하던 분들이 활동을 접은 뒤에 연락조차 안 되는 경우들이다. 여러 방면으로 연락을 하고자 했으나 끝내 선이 닿지 않아서 이번 시민백서에 그 지역의 활동은 넣지 못했다.
이렇듯 원고를 수집하는 과정이 어려웠고, 원고 수집 다음에는 수정과 교정, 교열 보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직장도 다니고 자신의 일들로 바쁜 편집위원들이 일일이 교정작업까지 하면서 해내느라 연차도 사용하는 등의 노력들이 더해져서 겨우 원고가 완성된 게 3월이었다. 거기에 내가 맡은 원고도 쓰지 못하고 시간만 끌면서 더 늦어지기도 했다. 이런 점은 참 죄송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민백서는 4권 1질로 구성되었다. 1권에서는 총론 격의 글들을 모았다. 4.16연대의 10년의 역사를 담았다. 2권은 부문 단체들의 활동을 모았다. 24곳 단체들이 2014년부터 지금까지 어떤 활동을 펼쳐왔나를 볼 수 있다. 3권은 국내 지역 활동을 모았다. 전국의 79곳 지역활동 기록이 담겨 있다. 4권은 재외 동포들의 활동 기록이다. 훨씬 더 많은 곳을 담고 싶었지만 10곳의 활동만 담겼다.
이렇게 만들어진 시민백서는 그 자체로 4.16연대 역사 기록이다. 4.16운동의 역사를 중간 정리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2권에서 4권까지의 기록들은 얼마나 많은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4.16 세월호참사를 붙들어 안고 시민들이 노력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기록들은 소중하다. 이렇게 남기지 않으면 그대로 묻혀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미처 책자에 담지 못한 소중한 기록은 아카이브로 담아서 필요한 분들이 접속해서 볼 수 있게 하고, 자료는 계속 업데이트해 가려고 한다.
시민백서가 나오기까지 연락하고, 원고를 모으고, 교정과 교열, 편집 작업을 해주신 편집위원님들, 그리고 4.16연대 사무처 활동가들의 노력이 정말 컸다. 그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계속 약속을 어기는 편집위원회를 마지막까지 믿고 책자를 편집해주신 ‘디자인사과나무’ 관계자에게도 깊이 감사드린다.
이제 10년의 기록을 묶어냈는데, 20년의 기록은 어떻게 묶일까? 벌써 <4.16시민 20년의 기록>이 궁금해진다. 그때에는 지금보다 충실한 기록들이 모여져 더 풍성해지리라. 20년을 맞는 4.16연대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함께 만들어갈 새로운 10년에 이 시민백서가 참고자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2년 동안의 편집위원장 자리에서 내려앉게 되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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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발자취, 4권의 백서로 묶어낸 기록의 무게
-4.16시민백서 발간 소감-
박래군(4.16연대 대외협력위원장)
지난 4월 16일, 세월호참사 12주기를 앞두고 드디어 <4.16시민 10년의 기록>(이하 시민백서)이 발간되었다. 애초에는 4.16연대 10년에 맞추어서 발간할 예정이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1년 늦게 출간하게 되었다.
4권으로 구성된 시민백서를 받아드니 만감이 교차한다.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서 만든 국민대책회의, 그리고 세월호참사 1주기 뒤에 창립한 4.16연대의 그 시절이 생각났다. 재난참사와 관련해서는 전국적인 대응기구를 만들어서 움직였던 것도 처음이었다. 1천만 서명운동을 전개해서 실제 서명인원이 650만 명을 넘겨서 진상규명특별법을 만들었다. 박근혜 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이만큼의 서명과 활동으로 만들어낸 성과였다.
하지만, 그 뒤가 걱정이었다. 국민대책회의가 잘하고는 있다고 해도 오랜 세월 시민사회에서 대책기구를 만들어 운영해왔던 경험상 한시적이고, 임시적인 기구로는 지속적인 활동을 해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새로운 단체를 구상했다. 그것도 한국의 시민사회에서는 처음으로 피해당사자와 활동가, 시민들이 함께 하는 단체를 만든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
2015년 세월호참사 1주기는 시작부터 박근혜 정권과 전면적인 투쟁 속에서 진행했다. 한편으로는 4.16연대를 만들면서 한편에서는 정권과의 투쟁을 동시에 진행해야 했다. 드디어 6월 28일, 4.16연대는 창립되었고, 곧바로 나는 구속되었다. 원천봉쇄를 뚫고 1주기 추모대회를 주도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구속되면서도 “4.16연대를 지켜 달라.”고 호소했다. 갓 태어난 신생 조직을 두고 구속되는 상황이었으므로 걱정이 너무 컸다.
조직이 안정이 되어간다고 안심할 때 즈음에 조직의 위기가 찾아왔다. 비상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지고, 그 상황을 정리하는데 6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속이 새까맣게 탔다. 책임지는 자리에서 물러나 나는 그 뒤에는 4.16재단에 전념했다. 그러면서 4.16연대와는 불가근불가원의 거리를 유지하고 지냈다. 그 사이에 많은 이들의 고생으로 4.16연대는 살아남았고, 창립 10주년을 넘겼다.
이 시민백서는 그런 4.16연대의 기록이기도 하고, 4.16연대와 긴밀하게 움직였거나 느슨하지만 관련을 갖고 활동해왔던 이들의 기록을 모은 결과물이다. ‘세월호참사 10주기위원회’의 재정적 지원으로 백서를 만들기로 하고, 이태호 대표와 함께 공동편집위원장을 맡았다. 편집위원회는 공식적으로는 16차례의 회의를 하면서 백서 발간의 목표, 편집방향, 원고 수집, 교정과 교열 등의 과정을 해냈다. 공식적인 회의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원고 써줄 사람과 연락하고, 원고를 수정했고, 새로운 원고도 써야 했다.
4.16활동을 해왔던 단체와 지역의 담당자들에게 연락을 했을 때 반응은 갈렸다. 자신들의 기록을 기꺼이 정리해서 보내겠다고 한 분들은 오히려 적었다. 자신들이 한 활동이 별 게 없다, 초기에는 열심히 하다가 최근에는 활동이 거의 없어서 부끄럽다고 말하시는 분들을 설득해서 원고 작성 양식을 보낸 다음에 다시 독촉해야 원고를 받을 수 있었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입장이 4.16연대와 달라서 참여하지 않겠다는 분들을 설득하지 못한 일이다. 또 하나 안타까운 일은 예전에는 활발하게 활동하던 분들이 활동을 접은 뒤에 연락조차 안 되는 경우들이다. 여러 방면으로 연락을 하고자 했으나 끝내 선이 닿지 않아서 이번 시민백서에 그 지역의 활동은 넣지 못했다.
이렇듯 원고를 수집하는 과정이 어려웠고, 원고 수집 다음에는 수정과 교정, 교열 보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직장도 다니고 자신의 일들로 바쁜 편집위원들이 일일이 교정작업까지 하면서 해내느라 연차도 사용하는 등의 노력들이 더해져서 겨우 원고가 완성된 게 3월이었다. 거기에 내가 맡은 원고도 쓰지 못하고 시간만 끌면서 더 늦어지기도 했다. 이런 점은 참 죄송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민백서는 4권 1질로 구성되었다. 1권에서는 총론 격의 글들을 모았다. 4.16연대의 10년의 역사를 담았다. 2권은 부문 단체들의 활동을 모았다. 24곳 단체들이 2014년부터 지금까지 어떤 활동을 펼쳐왔나를 볼 수 있다. 3권은 국내 지역 활동을 모았다. 전국의 79곳 지역활동 기록이 담겨 있다. 4권은 재외 동포들의 활동 기록이다. 훨씬 더 많은 곳을 담고 싶었지만 10곳의 활동만 담겼다.
이렇게 만들어진 시민백서는 그 자체로 4.16연대 역사 기록이다. 4.16운동의 역사를 중간 정리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2권에서 4권까지의 기록들은 얼마나 많은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4.16 세월호참사를 붙들어 안고 시민들이 노력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기록들은 소중하다. 이렇게 남기지 않으면 그대로 묻혀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미처 책자에 담지 못한 소중한 기록은 아카이브로 담아서 필요한 분들이 접속해서 볼 수 있게 하고, 자료는 계속 업데이트해 가려고 한다.
시민백서가 나오기까지 연락하고, 원고를 모으고, 교정과 교열, 편집 작업을 해주신 편집위원님들, 그리고 4.16연대 사무처 활동가들의 노력이 정말 컸다. 그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계속 약속을 어기는 편집위원회를 마지막까지 믿고 책자를 편집해주신 ‘디자인사과나무’ 관계자에게도 깊이 감사드린다.
이제 10년의 기록을 묶어냈는데, 20년의 기록은 어떻게 묶일까? 벌써 <4.16시민 20년의 기록>이 궁금해진다. 그때에는 지금보다 충실한 기록들이 모여져 더 풍성해지리라. 20년을 맞는 4.16연대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함께 만들어갈 새로운 10년에 이 시민백서가 참고자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2년 동안의 편집위원장 자리에서 내려앉게 되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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