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어요[16일의 편지-2026년 4월] 돌멩이 수프를 끓여요 (임정은 416기억행동by강서시민)

2026-04-14

‘돌멩이 수프’라는 이야기를 아십니까? 유럽에서 전해지는 민담입니다. 돌멩이가 단추로 바뀌기도 하고 등장인물이 살짝 달라지기도 하지만 주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겨울 어느 날 남루한 옷차림의 낯선 이가 마을에 찾아옵니다. 이방인은 하룻밤만 재워 달라며 이 집 저 집 찾아가지만 문전박대를 당합니다. 간신히 한 집주인이 나그네를 맞이합니다. 나그네는 집주인에게 보답으로 아주 맛있는 수프를 끓여주겠다고 합니다. 맹물에 돌멩이 하나(혹은 단추 한 개)만 넣고 말입니다. 어떻게 돌멩이만 갖고 수프가 되지? 온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나그네는 “아, 여기에 무를 넣으면 맛이 기가 막힐 텐데...”,, “고기가 한 덩어리 들어가면 끝내주겠군.” 등등의 혼잣말 같은 주문을 합니다. 이에 사람들이 앞다투어 한 가지씩 식재료를 내놓습니다. 이쯤 되면 다들 예상하시듯 이로써 온동네가 나누어 먹어도 충분한, 게다가 맛도 좋은 수프가 완성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마법 같은, 동화 같은 이야기로 보이지만 아주 사실적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2014년 이후 매년 416기억주간이 다가올 즈음이면 돌멩이 수프의 마법을 목격하거든요. 세월호 참사 직후에 우리는 손으로 쓴 팻말을 들고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왜 구하지 않았나?’,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라!’ 처절하게 외치며 거리 행진을 했습니다. 이후 1주기부터 매년 해를 거르지 않고 화곡역, 발산역 등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지역 거점에 모여 집회를 이어왔습니다. 코로나19 기간에는 집회가 어려운 만큼 점점이 간격을 두고 공항대로에서 피케팅을 하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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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맨손으로 모여 416기억행동문화제를 꾸준히 열어 온 이야기는 돌멩이 수프 끓이기와 비슷합니다. 예를 들어 다가올 12주기 4월 16일 문화제 준비 과정을 보면 이래요.

연초에, 그러니까 1, 2월쯤 서너 사람이 문화제 기획회의를 위해 모여요. 시민사회단체 대표이거나 진보정당의 당원 정체성으로 움직이는 활동가들도 있지만, 이 순간 여기 모인 우리의 공통점은 ‘동네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광화문이나 안산에 갈 수도 있지만,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세월호를 말하고 기억하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하니까요.

기획단 회의는 어디에서 하지? 아, 걱정할 필요 없어요. 시민자산화로 일군 ‘사람과공간’은 이런 일에 기꺼이 마음을 내어 주거든요. 동네부엌 좋은날 협동조합에서는 문화제 당일 일일 커피차를 운영한다고 손을 듭니다. 노동조합 네트워크와 연결된 강서양천민중의집은 공문을 들고 노조를 방문하며 문화제 후원과 참석을 홍보해 주시고요. ‘세기강양(세월호를기억하는강서양천시민모임)’의 이름으로 강서와 양천을 이어주는 지영 님과 계봉 님도 문화제 준비에 힘을 보태 주십니다. 수년 째 집회 신고를 맡아 준 것은 지역활동에 감초처럼 빠지지 않은 천수 님입니다.

“공연자들을 섭외한다고요? 제가 아는 연주자들이 있어요.” 혜숙 님의 전화 한 통으로 올해 문화제에는 가슴을 둥둥 울리는 북소리가 울려퍼질 예정입니다. 문화제 기획회의부터 회의록 작성 등 손이 가는 여러 가지 일들을 소리 없이 척척 맡아 주었던 화곡동 사는 청년 밤바는 일당백으로 수많은 일을 감당해 주고, 주변의 능력자 청년들을 연결, 연결, 소개해 주는 중개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수막 디자인부터 인쇄, 현수막 제작, 영상 촬영까지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음악적 완성도보다는 연대에 더 큰 뜻을 둔 강서시민합창단 단원들도 이즈음 부지런히 모여 연습을 시작하지요.

“저희 학교 학생들도 노래하기로 했습니다.” 시민합창단 단원이자 지역 발도르프학교 선생님이 어린이들과 함께 문화제에 오신대요. 야호!!!

‘희곡읽는화요일’ 희곡 동아리 회원님들은 짧은 낭독극으로 사전행사를 열어주기로 하셨어요. 매년 문화제를 위해 작품을 새로 쓰는 회원님들 열정도 대단하지요.

“공부에 바쁘겠지만 청소년들도 참여하면 좋겠어요. 청소년이 직접 발언하고 사회도 보면 어떨까요?” 발언할 청소년을 알아보고 섭외까지 나서는 건 마당발 선영 님입니다. 아, 선영 님은 앞서 말씀드린 시민합창단 지휘자도 겸하고 계셔요. 청년 당사자이자 동네 청년 상욱 님도 시민 발언자로 청년 지인을 추천해 주셨고요. 우연히 SNS를 보다 병역거부운동가 두부 님을 알게 되어 재빠르게 연락 드린 것도 럭키비키! 트럼프와 네타냐후가 일으킨 전쟁이 진행 중이고, 미국이 우리나라에까지 파병하라고 을러대는 시기에 반전운동가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것,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행동하자는 이 자리와 뜻이 일치합니다. 이 또한 돌멩이 수프의 기적이지요.

행사 당일에 필요한 장비도 매년 도움 주시는 곳이 있어요. 지역에 본부를 둔 공공운수 노조에서는 트러스라고 하나요? 무대구조물도 빌려 주시고, 음향기계를 싣고 와서 현장까지 날라다 주십니다. 아예 기기에 딱 붙어서 일일 음향이며 마이크를 봐 주시고요. 피켓팅이든 행사 스텝이든 현장에 도착하면 알아서 척척 자리 잡고 해 주시는 센스 넘치는 분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문화제에 필요한 비용에 모금해 주시는 지역 노동조합, 협동조합, 시민단체, 그리고 통장에 이름이 찍히는 후원자 한 분 한 분. 문화제에 참석하는 분들, 지나가며 노란 리본 가져가시거나 문화제를 지켜보는 시민들 모두가 소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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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돌멩이든 아니 더 쉽게 구할 수 있는 단추든 그것으로 수십, 수백 명이 먹을 수 있는 수프를 끓일 수 있다면 이보다 이로울 수 없습니다. 그때까지 멈출 수 없지요.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끝끝내 처벌하는 것을 지켜볼 것입니다. 생명을 존중하고 안전하고 평등하고 평화를 지키는 국가공동체가 바로 서는 것이 우리의 원입니다. 피해자의 넋을 위로하고 산 사람들의 슬픔을 덜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16기억행동by강서시민’은 돌멩이 수프의 나그네처럼 해마다 4월이면 문을 두드릴 것입니다. 함께 하자고. 떠난 사람들과 남은 자들의 마음을 모두 모아 거대한 것을 바꾸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