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돌보는 것이 나를 돌보는 것>
신입회원 지애 님을 만나다
김우
4.16연대의 신입 활동가이자 신입 회원 김지애 님. 지난 9월 중순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전에는 기독운동을 하는 단체의 활동가였다. 기독운동 단체에 있을 때도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나 이태원 참사 관련 담당자였다. 재난참사 의제를 더 공부하고 싶고, 다른 재난참사들과 연결 지으며 생명안전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싶어서 4.16연대를 선택한 야심 찬 새내기다.

지애 님은 내년 4월이면 ‘목사님’이 된다.
“목사라는 직업을 운동의 영역에서 열어가고 싶어요. 목회와 활동을 같이 하려고요.”
“체력적으로만 괜찮다면요. 스스로를 관리해야죠.”
이게 가능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애 님은 ‘이미’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평일엔 4.16연대 활동가로 살고, 주말엔 김포에 있는 교회 담임 목사로 청소년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하나를 선택할 일은 아니라서요. 활동도 목회라는 생각이고, 목사가 교회에만 묶여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요.”
‘무엇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알겠는데, 월화수목금금금의 생활에 지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나를 재점검하고, 나를 돌보는 일‘이기도 하다니 할 말이 없었다.
“성도도 없이 이름과 건물만 있는 개척교회를 물려받았어요.”
건물이 있대서 교회가 건물주인가 했는데 월세를 내야 하는 임대 건물이었다. 모금하고, 정기 후원을 권하고, 자신이 번 활동비로 운영비를 대 온 거였다.
“이렇게 산 지 4년 됐는데 다행히 목회 응원자가 늘어서 전보다 감당하는 몫이 줄었어요.”
쉽게 말하면 ‘투잡’이 아니라, 한 곳의 활동비를 다른 곳의 운영비로 ‘꼬라박은’ 거였다.
“청소년들이랑 재난참사 이야기 나누는 게 흥미로워요. 성서적 기반으로 지금 예수가 온다면 이 사회에서 어떤 이야길 던질까. 운동하는데 또 다른 돌멩이를 ‘탕탕탕’ 맞는 느낌이죠.”
‘지금 예수’ ‘청년 예수’의 모습은 어쩌면 지애 님을 닮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 예수’는 약자와 함께하며 헌신하는 이였으니 말이다.

지애 님은 97년생이다. 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식에서 희생자들 동갑내기로 발언하기도 했다. 희생자들 또래라서 생긴 트라우마는 없는지 물었다. 우리 사회 전체의 트라우마라고 생각하며 그것이 4.16연대로 온 이유이기도 하다는 답변을 돌려주었다.
“제가 경기도 화성에서 나고 자랐는데 씨랜드 화재 참사가 동네에서 있었죠. 2013년 공주사대부고 병영체험학습 참사에선 제 중학교 친구들이 생존자로 삶을 살아내고 있기도 하고요.”
“내 주변 재난참사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복귀하겠구나 생각했는데 삶이 무너져 내린 거더라고요. 다가갈 수 없는 미안함이 커요. 세월호참사는 단원고의 참사, 안산의 참사가 아니라 같은 또래로서 겪은 참사라는 생각도 들고요. 이태원 참사까지 마주하며 ‘이 사회에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는 건가?’하는 고민이 오래도록 이어져요.”
지애 님은 자신이 ‘생존자’라고 생각한다. 여러 재난참사에서 운이 좋아 비껴간 것일 뿐 언제든 화를 당할 수 있고, 실질적 생존자와 비슷한 ‘사회적 생존자’로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유가족만의 일, 희생자만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라는 생각이 바로 여러 활동의 계기이기도 했다.
호기심이 많고 하고 싶은 게 많던 지애 님. 영어를 배우고 영어로 말하는 걸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글 쓰는 것도 좋아해서 나중에 책을 내볼까 꿈꾸어 보기도 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하길 즐기기도 했다. 내겐 어떤 직업이 어울릴까, 궁리하던 지애 님의 결론은 선교사였다. 기독신앙이 중심 가치로 있고, 교회 다니는 것도 재밌으니 선교사라는 직업은 지애 님이 좋아하는 것을 다 녹여낼 직업으로 여겨졌다.
“수업을 잘못 들어갔어요. 1학년 때 감리교 사회선교 수업에 들어갔는데, 기독운동의 역사를 짚고 지금 운동을 재정의하는 수업이었어요. 5.18을 알게 되고, 87민주화운동이나 제주4.3을 알게 됐죠.”
‘시혜적인 눈으로, 못 사는 어떤 도시에 가서 도와줘야겠다’던 관점이 부끄러워져서 해외 선교의 꿈을 접었다. 운동을 진지하게 마주하면서 사회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교를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바뀌었다. 도시산업 선교회 활동 속에 ‘노동자에게 예수를 알리려 하지 말고, 노동자 안의 예수를 찾아라’는 언어를 찾았다. 재난참사 가족을 만날 때도 ‘나의 모습으로 신앙을 전하기보다 가족들 안에 존재하는 신앙적인 메시지와 가치를 발견하려’ 한다. 사회적 약자의 손을 놓지 말라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라 느끼는 지애 님이었다.
지애 님과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갑자기 아프다가 갑자기 떠난 일이 있다. ‘제일 시끄럽고, 제일 덩치 크고, 제일 눈치 없던’ 친구여서 그랬을까, 빈자리 역시 크기만 했다. 친구들과 모여 떠난 친구를 추억하다 보니 ‘그냥 어디 계곡 앞에 캠핑 의자 깔아놓고 드립 커피 마시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잘 살아내고’ 다른 공간에 있는 친구와 언젠가 재회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천국이 무슨 소용이야, 사후 세계를 바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라는 생각까지 했는데요. 재난참사 피해자들이 바라는 ‘다른 세계에 있을 가족들’ 이야기를 들으며 천국이 있으면 좋겠다, 천국은 있다,라는 것으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단순히 교리라서 따르는 게 아니라 친구와 작별한 뒤 간절한 바람과 소망을 경험했기에 더욱더 유가족들의 마음에 공감하며 천국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됐다는 지애 님이 더 ‘목사다운’ 예비 목사로 다가왔다.
세월호참사 11년의 걸음들, 유가족과 시민들이 꿋꿋하게 내디뎌 온 값진 걸음에 함께하고 싶어서 4.16연대로 왔다는 지애 님. 생명안전운동으로 확장해 가는 발걸음에 함께하려고 예전에 활동한 단체까지 그만둔 거라는 지애 님에게 깜짝 놀랐다. 짧지 않은 시간에 분명 누군가는 잠시 지치기도 하지만 분명 누군가는 꾸준하며 또 분명 누군가는 이렇게 새로운 힘을 불어 넣는구나, 새삼스레 느꼈다. 82년생 김지영 아니 97년생 김지애의 잠재적 힘을 느꼈다.
<누군가를 돌보는 것이 나를 돌보는 것>
신입회원 지애 님을 만나다
김우
4.16연대의 신입 활동가이자 신입 회원 김지애 님. 지난 9월 중순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전에는 기독운동을 하는 단체의 활동가였다. 기독운동 단체에 있을 때도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나 이태원 참사 관련 담당자였다. 재난참사 의제를 더 공부하고 싶고, 다른 재난참사들과 연결 지으며 생명안전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싶어서 4.16연대를 선택한 야심 찬 새내기다.
지애 님은 내년 4월이면 ‘목사님’이 된다.
“목사라는 직업을 운동의 영역에서 열어가고 싶어요. 목회와 활동을 같이 하려고요.”
“체력적으로만 괜찮다면요. 스스로를 관리해야죠.”
이게 가능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애 님은 ‘이미’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평일엔 4.16연대 활동가로 살고, 주말엔 김포에 있는 교회 담임 목사로 청소년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하나를 선택할 일은 아니라서요. 활동도 목회라는 생각이고, 목사가 교회에만 묶여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요.”
‘무엇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알겠는데, 월화수목금금금의 생활에 지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나를 재점검하고, 나를 돌보는 일‘이기도 하다니 할 말이 없었다.
“성도도 없이 이름과 건물만 있는 개척교회를 물려받았어요.”
건물이 있대서 교회가 건물주인가 했는데 월세를 내야 하는 임대 건물이었다. 모금하고, 정기 후원을 권하고, 자신이 번 활동비로 운영비를 대 온 거였다.
“이렇게 산 지 4년 됐는데 다행히 목회 응원자가 늘어서 전보다 감당하는 몫이 줄었어요.”
쉽게 말하면 ‘투잡’이 아니라, 한 곳의 활동비를 다른 곳의 운영비로 ‘꼬라박은’ 거였다.
“청소년들이랑 재난참사 이야기 나누는 게 흥미로워요. 성서적 기반으로 지금 예수가 온다면 이 사회에서 어떤 이야길 던질까. 운동하는데 또 다른 돌멩이를 ‘탕탕탕’ 맞는 느낌이죠.”
‘지금 예수’ ‘청년 예수’의 모습은 어쩌면 지애 님을 닮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 예수’는 약자와 함께하며 헌신하는 이였으니 말이다.
지애 님은 97년생이다. 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식에서 희생자들 동갑내기로 발언하기도 했다. 희생자들 또래라서 생긴 트라우마는 없는지 물었다. 우리 사회 전체의 트라우마라고 생각하며 그것이 4.16연대로 온 이유이기도 하다는 답변을 돌려주었다.
“제가 경기도 화성에서 나고 자랐는데 씨랜드 화재 참사가 동네에서 있었죠. 2013년 공주사대부고 병영체험학습 참사에선 제 중학교 친구들이 생존자로 삶을 살아내고 있기도 하고요.”
“내 주변 재난참사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복귀하겠구나 생각했는데 삶이 무너져 내린 거더라고요. 다가갈 수 없는 미안함이 커요. 세월호참사는 단원고의 참사, 안산의 참사가 아니라 같은 또래로서 겪은 참사라는 생각도 들고요. 이태원 참사까지 마주하며 ‘이 사회에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는 건가?’하는 고민이 오래도록 이어져요.”
지애 님은 자신이 ‘생존자’라고 생각한다. 여러 재난참사에서 운이 좋아 비껴간 것일 뿐 언제든 화를 당할 수 있고, 실질적 생존자와 비슷한 ‘사회적 생존자’로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유가족만의 일, 희생자만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라는 생각이 바로 여러 활동의 계기이기도 했다.
호기심이 많고 하고 싶은 게 많던 지애 님. 영어를 배우고 영어로 말하는 걸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글 쓰는 것도 좋아해서 나중에 책을 내볼까 꿈꾸어 보기도 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하길 즐기기도 했다. 내겐 어떤 직업이 어울릴까, 궁리하던 지애 님의 결론은 선교사였다. 기독신앙이 중심 가치로 있고, 교회 다니는 것도 재밌으니 선교사라는 직업은 지애 님이 좋아하는 것을 다 녹여낼 직업으로 여겨졌다.
“수업을 잘못 들어갔어요. 1학년 때 감리교 사회선교 수업에 들어갔는데, 기독운동의 역사를 짚고 지금 운동을 재정의하는 수업이었어요. 5.18을 알게 되고, 87민주화운동이나 제주4.3을 알게 됐죠.”
‘시혜적인 눈으로, 못 사는 어떤 도시에 가서 도와줘야겠다’던 관점이 부끄러워져서 해외 선교의 꿈을 접었다. 운동을 진지하게 마주하면서 사회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교를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바뀌었다. 도시산업 선교회 활동 속에 ‘노동자에게 예수를 알리려 하지 말고, 노동자 안의 예수를 찾아라’는 언어를 찾았다. 재난참사 가족을 만날 때도 ‘나의 모습으로 신앙을 전하기보다 가족들 안에 존재하는 신앙적인 메시지와 가치를 발견하려’ 한다. 사회적 약자의 손을 놓지 말라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라 느끼는 지애 님이었다.
지애 님과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갑자기 아프다가 갑자기 떠난 일이 있다. ‘제일 시끄럽고, 제일 덩치 크고, 제일 눈치 없던’ 친구여서 그랬을까, 빈자리 역시 크기만 했다. 친구들과 모여 떠난 친구를 추억하다 보니 ‘그냥 어디 계곡 앞에 캠핑 의자 깔아놓고 드립 커피 마시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잘 살아내고’ 다른 공간에 있는 친구와 언젠가 재회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천국이 무슨 소용이야, 사후 세계를 바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라는 생각까지 했는데요. 재난참사 피해자들이 바라는 ‘다른 세계에 있을 가족들’ 이야기를 들으며 천국이 있으면 좋겠다, 천국은 있다,라는 것으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단순히 교리라서 따르는 게 아니라 친구와 작별한 뒤 간절한 바람과 소망을 경험했기에 더욱더 유가족들의 마음에 공감하며 천국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됐다는 지애 님이 더 ‘목사다운’ 예비 목사로 다가왔다.
세월호참사 11년의 걸음들, 유가족과 시민들이 꿋꿋하게 내디뎌 온 값진 걸음에 함께하고 싶어서 4.16연대로 왔다는 지애 님. 생명안전운동으로 확장해 가는 발걸음에 함께하려고 예전에 활동한 단체까지 그만둔 거라는 지애 님에게 깜짝 놀랐다. 짧지 않은 시간에 분명 누군가는 잠시 지치기도 하지만 분명 누군가는 꾸준하며 또 분명 누군가는 이렇게 새로운 힘을 불어 넣는구나, 새삼스레 느꼈다. 82년생 김지영 아니 97년생 김지애의 잠재적 힘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