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변화할 때까지 해야 하는 거예요."-김태훈 회원 인터뷰
김 우
김태훈 회원은 중등교사 임용시험을 준비 중인 회사원이다. ‘퇴근하고 나면 기진맥진’이지만 교사의 꿈을 놓지 않고 있다. “터질 게 터졌다.” 공교육 멈춤의 날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었다. 서이초의 경우가 기폭제가 됐지만 진작에 문제 제기돼야 할 일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폐지 방향으로 구도를 잡아서 학생 인권과 교권이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비치고, 그 와중에 교사 학부모 관계도 대립하는 구도로만 비치다 보니까. 그런 인식이 굳어지는 게 아닐지 걱정이에요.” 또 ‘하루로 파급력이 있을까?’ 잠시 뉴스에 나오지만 실제로 개선되는 건 없던 여러 경우를 볼 때 ‘어느 순간 묻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대학 시절 장학금 받아서 학비를 마련하고 학원 강사 일로 생활비를 벌었다. 입시 위주 교육의 문제점을 느꼈고, 여러 민원의 경험 역시 많았다. 그때부터 줄곧 강사만 했는데 어느 순간 조금 번아웃 비슷한 게 와서 올해부터 회사 일을 하고 있다. ‘서비스업을 하는 영리단체’에서 ‘쓴소리하면 안 되고, 웃어야 하고, 생활지도나 인성교육보다는 시험문제 잘 푸는 방법만 가르치는 지도’가 아쉽기만 했다. 잘못한 것을 뉘우치도록 혼내기보다 무미건조하게 행정적으로 처리하고, 최소한의 것을 하는 교사가 일 잘하는 교사가 되는 현실이었다. 강사 일을 계속하면서 시험을 병행하면 학원 강의를 통해서 아이들을 만나는 걸로 만족할 것 같아서 차라리 아이들 곁을 떠나있자는 생각으로 회사에 다니고 있다.
교사의 꿈은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학생들과 라포 형성이 잘 된, 열 살 많은 선생님과 평소 좋아하는 인디 음악 ‘덕질’을 함께하면서 움텄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런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자라오면서 뭔가 보고 배울 수 있는 직업인은 주변에서 교사밖에 없었다. 예비 교사인 김 회원은 공연예술을 좋아하는데 덕질 은사님에 이어 덕질 제자를 두게 돼서 뮤지컬을 함께 보러 다니기도 한다.
꿈꾸는 교사상은 ‘아이들 하나하나가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까지는 힘들더라도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만큼은 안 들고, 존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교사‘다.
세월호 참사는 고1 때 뉴스로 접했고, 당시 학교 자체가 집단 우울 분위기에 빠진 느낌이었다. 또 해마다 4월이 다가올수록 다운되는 게 있었다. 나름대로 기억해야겠다는 생각과 주변에 상기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고3 때는 세월호 배지를 사서 주변에 나눠주곤 했다. 박근혜 탄핵 이슈가 있던 시기엔 역사 교사서 국정화 시도에 염증이 느껴져 수능 끝나고도 계속 촛불시위에 나갔었다. 폭력적인 방법보다 촛불이라는 평화로운 아이템이 지닌 의미도 크다고 느꼈는데 현 정권이 이념논쟁을 한다며 동아시아 긴장을 부추기는 상황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올해 5월 4.16연대에 가입한 연유를 물었다. “세월호 참사가 어느 순간 익숙해진 느낌을 받아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차 교사가 될 사람인데... 아직 진상규명이 완전하게 된 것도 아닌데 말이죠. 생명안전기본법도 이제 국민동의청원 시작 와중이죠.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바라보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김 회원이 달고 있는 노란 리본을 보고 개인적으로 희생자와 관계있는지 묻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면 달고 다니지 말아야 하나, 일반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건 해야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태원 참사를 보면서도 이 사회는 나아진 게 없구나 싶다. “염증이라고밖에 표현이 안 되는 요즘이에요. 세월호 참사도 있었고, 이태원과 오송 참사도 있었고, 하물며 채상병 돌아가신 일도 있는데. 안전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없고 제도화가 아직도 안 됐다는 게 되게 속상하고 부끄러워 한숨이 많이 나와요.”
언제 적 일인데 아직도 세월호 타령이냐는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 “‘언제 적 일인데’라고 할 만큼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변화가 없음을 일깨워 주고 싶어요. 변화할 때까지 계속 기억하고,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상기시켜 줄 존재가 필요하죠. 변화할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라고 일러주고 싶어요.”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뭘 하든 모두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만큼 제도가 마련되고, 그럴 때까지 그냥 대단한 건 안 바라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상기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김태훈 회원이었다.
"세상이 변화할 때까지 해야 하는 거예요."-김태훈 회원 인터뷰
김 우
김태훈 회원은 중등교사 임용시험을 준비 중인 회사원이다. ‘퇴근하고 나면 기진맥진’이지만 교사의 꿈을 놓지 않고 있다. “터질 게 터졌다.” 공교육 멈춤의 날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었다. 서이초의 경우가 기폭제가 됐지만 진작에 문제 제기돼야 할 일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폐지 방향으로 구도를 잡아서 학생 인권과 교권이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비치고, 그 와중에 교사 학부모 관계도 대립하는 구도로만 비치다 보니까. 그런 인식이 굳어지는 게 아닐지 걱정이에요.” 또 ‘하루로 파급력이 있을까?’ 잠시 뉴스에 나오지만 실제로 개선되는 건 없던 여러 경우를 볼 때 ‘어느 순간 묻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대학 시절 장학금 받아서 학비를 마련하고 학원 강사 일로 생활비를 벌었다. 입시 위주 교육의 문제점을 느꼈고, 여러 민원의 경험 역시 많았다. 그때부터 줄곧 강사만 했는데 어느 순간 조금 번아웃 비슷한 게 와서 올해부터 회사 일을 하고 있다. ‘서비스업을 하는 영리단체’에서 ‘쓴소리하면 안 되고, 웃어야 하고, 생활지도나 인성교육보다는 시험문제 잘 푸는 방법만 가르치는 지도’가 아쉽기만 했다. 잘못한 것을 뉘우치도록 혼내기보다 무미건조하게 행정적으로 처리하고, 최소한의 것을 하는 교사가 일 잘하는 교사가 되는 현실이었다. 강사 일을 계속하면서 시험을 병행하면 학원 강의를 통해서 아이들을 만나는 걸로 만족할 것 같아서 차라리 아이들 곁을 떠나있자는 생각으로 회사에 다니고 있다.
교사의 꿈은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학생들과 라포 형성이 잘 된, 열 살 많은 선생님과 평소 좋아하는 인디 음악 ‘덕질’을 함께하면서 움텄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런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자라오면서 뭔가 보고 배울 수 있는 직업인은 주변에서 교사밖에 없었다. 예비 교사인 김 회원은 공연예술을 좋아하는데 덕질 은사님에 이어 덕질 제자를 두게 돼서 뮤지컬을 함께 보러 다니기도 한다.
꿈꾸는 교사상은 ‘아이들 하나하나가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까지는 힘들더라도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만큼은 안 들고, 존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교사‘다.
세월호 참사는 고1 때 뉴스로 접했고, 당시 학교 자체가 집단 우울 분위기에 빠진 느낌이었다. 또 해마다 4월이 다가올수록 다운되는 게 있었다. 나름대로 기억해야겠다는 생각과 주변에 상기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고3 때는 세월호 배지를 사서 주변에 나눠주곤 했다. 박근혜 탄핵 이슈가 있던 시기엔 역사 교사서 국정화 시도에 염증이 느껴져 수능 끝나고도 계속 촛불시위에 나갔었다. 폭력적인 방법보다 촛불이라는 평화로운 아이템이 지닌 의미도 크다고 느꼈는데 현 정권이 이념논쟁을 한다며 동아시아 긴장을 부추기는 상황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올해 5월 4.16연대에 가입한 연유를 물었다. “세월호 참사가 어느 순간 익숙해진 느낌을 받아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차 교사가 될 사람인데... 아직 진상규명이 완전하게 된 것도 아닌데 말이죠. 생명안전기본법도 이제 국민동의청원 시작 와중이죠.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바라보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김 회원이 달고 있는 노란 리본을 보고 개인적으로 희생자와 관계있는지 묻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면 달고 다니지 말아야 하나, 일반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건 해야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태원 참사를 보면서도 이 사회는 나아진 게 없구나 싶다. “염증이라고밖에 표현이 안 되는 요즘이에요. 세월호 참사도 있었고, 이태원과 오송 참사도 있었고, 하물며 채상병 돌아가신 일도 있는데. 안전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없고 제도화가 아직도 안 됐다는 게 되게 속상하고 부끄러워 한숨이 많이 나와요.”
언제 적 일인데 아직도 세월호 타령이냐는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 “‘언제 적 일인데’라고 할 만큼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변화가 없음을 일깨워 주고 싶어요. 변화할 때까지 계속 기억하고,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상기시켜 줄 존재가 필요하죠. 변화할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라고 일러주고 싶어요.”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뭘 하든 모두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만큼 제도가 마련되고, 그럴 때까지 그냥 대단한 건 안 바라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상기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김태훈 회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