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아 님의 선택
김 우
박현아 님은 93년생으로 대안학교의 교사다. 올해 학교 수업으로 진도, 군산 등지의 역사 탐방이 있었다. 삼국시대며 일제강점기며 미군 기지며 세월호 참사며 시기별로 또 사안별로 돌아보는 발걸음이었다. 군산에는 미군 기지 확장을 이유로 정부가 주민들을 모두 쫓아낸 하제마을이 있다. 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600년 넘겨 살아온 팽나무 밑에서 열리는 ‘팽팽 문화제’에도 참여했다. 배움은 책상머리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현아 님의 4.16연대 회원가입 계기는 바로, 이 역사 탐방에 있었다. 진도 탐방을 앞두고 학생들, 교사들과 세월호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고, 4월 12일쯤 안산 기억교실을 방문했다. 처음으로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며 느낀 바가 컸다. 학생들이 안산 기억교실에 방문하는 걸 걱정하거나 비난하는 어른들로 속상하다는 말씀을 들었다. “아이들이 언니와 오빠들을 기리려고 오는 건데 왜 안 좋게 보는 걸까요?” 현아 님 역시 세월호 참사는 어느 정당에 유·불리한 정치적인 사안으로 몰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좋다, 나쁘다’로 판단할 일이 아닌데 이런 현장 교육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교사로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동안 세월호 참사를 ‘알고는 있지만, 기억은 하고 있지만, 적극적인 활동이나 행동이 없었음’을 성찰하는 시간이 됐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인 만큼 반성은 더 컸다. ‘뒤에서 힘쓰고 계신 분들’을 후원하고 싶은 마음으로 4.16연대를 선택했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서 4년 전 선택한 첫 직장인 대안학교. 그 선택 이유도 물었다. 사범대를 다니던 현아 님은 일반 학교에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입시에만 초점을 맞춰서 경주마처럼 달려야 하는 아이들의 삶과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에 고민이 깊었다. 정신과 약을 먹을 만큼 아파하는 아이들, 학교에서의 배움보다 사교육이 앞서는 현실이 가슴 아팠다. 현아 님은 아이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이 바르게 크도록 하는 데 부모와 교사 등 어른의 역할이 있다고 믿는다. 교사 대 아이의 비율이 높아 세세하게 살피기 어렵고, 자칫 방치하기 쉬운 일반 학교보다 대안학교를 선택한 까닭이었다. 경쟁심을 보이며 어둡고 산만하던 아이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놀 줄 모르던 아이도 순수하고 주체적인 아이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하게 보람을 느낀다. 미디어에서 벗어나 술래잡기와 전래놀이에 땀을 흘리며 노는 아이다운 아이를 보는 기쁨이다.
역사 탐방을 다녀온 뒤 아이들이 후기를 썼다. 현아 님이 동행한 아이들은 초등 저학년생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 혹은 아기일 적의 일이라 먼 얘기일 수도 있는데 저마다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담긴 글을 썼다. ‘누군가한테는 얼굴도 모르는 단원고 학생일 뿐이다. 그런데 그 부모님들한테는 평생을 같이한 아이였다’며 부모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글도 있었다.
현아 님과 학생들은 기억교실에 가면서 단원고에도 들렀는데 9주기를 앞두고 꽂아놓은 노란색 바람개비에 8주기로 적기도 한 것을 보며 그 무신경함에 속상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때 하겠다고 했던, 하기로 했던 많은 것이 무산돼서 힘이 빠지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이제 그만해야 한다’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저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늘어나야죠.”
“기억해야, 제대로 해결해야 이태원 참사 같은 비슷한 사건들이 반복되지 않죠.”
그럼에도 아니 그러니까 더. 기억하고 힘을 보태겠다는 현아 님이었다.
현아 님의 선택
김 우
박현아 님은 93년생으로 대안학교의 교사다. 올해 학교 수업으로 진도, 군산 등지의 역사 탐방이 있었다. 삼국시대며 일제강점기며 미군 기지며 세월호 참사며 시기별로 또 사안별로 돌아보는 발걸음이었다. 군산에는 미군 기지 확장을 이유로 정부가 주민들을 모두 쫓아낸 하제마을이 있다. 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600년 넘겨 살아온 팽나무 밑에서 열리는 ‘팽팽 문화제’에도 참여했다. 배움은 책상머리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현아 님의 4.16연대 회원가입 계기는 바로, 이 역사 탐방에 있었다. 진도 탐방을 앞두고 학생들, 교사들과 세월호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고, 4월 12일쯤 안산 기억교실을 방문했다. 처음으로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며 느낀 바가 컸다. 학생들이 안산 기억교실에 방문하는 걸 걱정하거나 비난하는 어른들로 속상하다는 말씀을 들었다. “아이들이 언니와 오빠들을 기리려고 오는 건데 왜 안 좋게 보는 걸까요?” 현아 님 역시 세월호 참사는 어느 정당에 유·불리한 정치적인 사안으로 몰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좋다, 나쁘다’로 판단할 일이 아닌데 이런 현장 교육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교사로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동안 세월호 참사를 ‘알고는 있지만, 기억은 하고 있지만, 적극적인 활동이나 행동이 없었음’을 성찰하는 시간이 됐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인 만큼 반성은 더 컸다. ‘뒤에서 힘쓰고 계신 분들’을 후원하고 싶은 마음으로 4.16연대를 선택했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서 4년 전 선택한 첫 직장인 대안학교. 그 선택 이유도 물었다. 사범대를 다니던 현아 님은 일반 학교에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입시에만 초점을 맞춰서 경주마처럼 달려야 하는 아이들의 삶과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에 고민이 깊었다. 정신과 약을 먹을 만큼 아파하는 아이들, 학교에서의 배움보다 사교육이 앞서는 현실이 가슴 아팠다. 현아 님은 아이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이 바르게 크도록 하는 데 부모와 교사 등 어른의 역할이 있다고 믿는다. 교사 대 아이의 비율이 높아 세세하게 살피기 어렵고, 자칫 방치하기 쉬운 일반 학교보다 대안학교를 선택한 까닭이었다. 경쟁심을 보이며 어둡고 산만하던 아이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놀 줄 모르던 아이도 순수하고 주체적인 아이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하게 보람을 느낀다. 미디어에서 벗어나 술래잡기와 전래놀이에 땀을 흘리며 노는 아이다운 아이를 보는 기쁨이다.
역사 탐방을 다녀온 뒤 아이들이 후기를 썼다. 현아 님이 동행한 아이들은 초등 저학년생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 혹은 아기일 적의 일이라 먼 얘기일 수도 있는데 저마다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담긴 글을 썼다. ‘누군가한테는 얼굴도 모르는 단원고 학생일 뿐이다. 그런데 그 부모님들한테는 평생을 같이한 아이였다’며 부모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글도 있었다.
현아 님과 학생들은 기억교실에 가면서 단원고에도 들렀는데 9주기를 앞두고 꽂아놓은 노란색 바람개비에 8주기로 적기도 한 것을 보며 그 무신경함에 속상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때 하겠다고 했던, 하기로 했던 많은 것이 무산돼서 힘이 빠지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이제 그만해야 한다’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저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늘어나야죠.”
“기억해야, 제대로 해결해야 이태원 참사 같은 비슷한 사건들이 반복되지 않죠.”
그럼에도 아니 그러니까 더. 기억하고 힘을 보태겠다는 현아 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