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은 사람[16일의 편지-2024년 12월] 다시는 떼어내지 못할 현수막을 걸다_황미경 회원

2024-12-16

다시는 떼어내지 못할 현수막을 걸다

    황미경 회원(세월호진상규명과안전한밀양을위한시민모임) 인터뷰 

김  우

황미경 회원은 밀양에서 생강, 도라지, 꾸지뽕 등 친환경 농사를 지어 청을 만들고 즙을 내는 일을 하고 있다. 딸아이가 정읍의 작은 농촌학교에 입학하며 시작한 귀농이 벌써 15년 차다. 황 회원은 세월호 참사 당시 밀양으로 옮겨갈 계획도 미루고 정읍에서 세월호 활동을 했다. ‘정권이 바뀔 때까지 세월호 문제가 가라앉지 않도록’ 책임을 다하고 싶어서였다. 당시에도 황 회원은 이미 두 가지를 알고 있었다.

“문재인 정권이 진상규명하지 않을 걸 알았어요. 신뢰가 없던 이유는 민주당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봤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계속 싸워야 (진상규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사실 갖고 있었어요.”

지역의 세월호 단체들과 같이 전북 지역 국회의원 순회 간담회를 했었다. 때는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 강제 해산 직전이었다. 특조위 활동 기한을 보장하라는 전북 시민의 서명을 받아서 순회 간담회를 진행하며 전북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실체를 파악하게 됐다. ‘심각하게 아는 게 없고’ 심지어는 논조가 새누리당과 똑같은 지경이었다. 법사위 소속인 단 한 명의 의원 정도가 특검의 진행 내용을 알고 있었다. 그 위원에게 물었다. 특조위 조사를 통해 국정원이 세월호참사와 관련이 있다는 근거 자료들이 나온다, 당시 사고 났을 때 국정원 행위와 지시 사항이 중요하다, 왜 민주당은 국정원 관련 침묵하냐는 질문이었다. 잘못 얘기했다가 국정원의 표적이 되거나 관변 단체의 표적이 되는 게 무서워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황 회원은 세월호참사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이미지로 선거에만 이용하려고 하는 이들의 실체를 보았다. 또한 일개 정치인이 결심해서 될 게 아니라 국민들이 밀고 나가야 떠밀려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진상규명이란 걸 깨달았다.

“사참위 종료 직후부터는 진상규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적극 알리고 있어요.” 밀양 지역으로 와서도 꾸준히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매달 16일에 하는 진상규명 촉구 거리행동의 담당자에게 사정이 생긴 뒤부터는 아예 황 회원이 주체가 됐다. 7주기 이후 노란리본공방을 만들었다면 8주기 이후엔 가족협의회 후원회를 만드는 식으로 활동을 하나하나 늘려 나가고 있다. 공방은 요즘 부정기적으로 ‘노랑 보라별’ 코바늘뜨기를 하고 있다. 한살림 가을걷이 잔치한마당에 생산자로 참여하면서 테이블을 차렸다. 노란 리본, 보라 리본, 경빈 엄마 국민 항소단 전단, 노랑별, 보라별을 테이블 한가득 펼쳤다. 창원에서 온 학부모들이 자신들도 바느질 방을 만드는 걸 논의해 보겠다고, 경남창원통일마라톤 대회에서도 알리고 나누겠다고 호응했다. 경남작가대회에선 진상규명 과제와 세월호 부모님들이 처한 상황에 관해 강연했다. 작가들의 반응 또한 뜨거웠고 기억 물품을 가져가서 지역에서 나누겠다고 했다. 연락처를 남기는 이들에겐 어김없이 세월호 소식을 전하고 있다. 참으로 종횡무진 활약하는 황 회원이었다.

“부‧울‧경 권역 모임이 있어 분기별 한 번씩 모여서 지역 상황을 공유하는데 대개 의지가 많이 돼요.” 지역 책임자의 외로움을 타지역 책임자가 위로해 주고 서로 힘이 돼 준단다. 올해 생명안전공원 문화제 참여도 권역 중점 사업으로 잡았기에 모여서 움직였다.

가장 보람을 느낀 일을 물었더니 노란 펼침막을 걸던 일을 회상했다. 유민 아빠가 단식할 때 시민들은 릴레이 단식을 하며 노란 펼침막을 걸었다. 정읍은 전라도에서 그런 플래카드가 가장 빨리 강제로 떼어지는 곳이었다. 한 달 만에 펼침막이 떼어지자, 황 회원은 ‘다시는 떼어내지 못할 현수막을 걸겠다’는 다짐을 하며 다음 주기를 준비했다. 학생들은 펼침막 신청서를 프린트해서 학교에서 돌리고, 시민들은 펼침막 접수 파일을 많은 상점에 비치하며 접수를 도왔다. 그 결과 열흘 만에 2,000장이 넘는 신청이 있었다. 신청자들에게 시에서 강제로 떼려 하면 같이 항의하자고 했었고, 4월이 지났으니 떼겠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는 일제히 항의 전화를 했다. 소식은 파도를 타듯 전라북도를 넘어섰다. 전국에서 항의 전화가 빗발쳤고 시장, 비서실, 담당 도시과, 시청 민원실의 전화가 마비됐다. 3일 만에 시장이 백기를 들었다. 권위적인 유지들이 돈 주고 공천받아 단체장이 되고 의원이 돼서 군림하는 지역 사회에서 시민들이 들고일어나 승리의 경험을 한 것이었다. ‘세월호 진상규명과 안전한 정읍을 위한 시민모임’ 회원이 운영하는 인쇄소에서 일손 보태 끈을 묶어가며 같이 만든 펼침막이었다. 거리에 같이 걸었듯이 항의 전화도 같이 걸어 철거를 막아낸 것은 함께 기적을 일군 것이기도 했다. 해서 3주기 때는 기증받은 이팝나무 304그루를 심을 땅을 시에 요구해서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옆 부지를 받아낼 수 있었다. 이팝나무의 꽃말은 생명과 사랑. 주민이 천명 넘게 와서 천년을 간다는 이팝나무를 심었다. 역시 주민들이 소머리국밥 천인 분을 만들고 반찬을 후원했다. 5대 종단의 어르신들도 와서 인사를 했다. 이팝나무 심은 곳을 시에서 ‘이팝로’라고 알아서 지정해 주기까지 했다.

“내장산 가는 길, 외지인과 시민들 많이 가는 길에 세월호 현수막 구간은 지금도 있어요. 시민들이 지켜준 거예요.” 황 회원은 정읍을 떠나왔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풀을 베며 이팝로의 나무를 가꾸고 있고, ‘세월호 현수막 구간’의 노란 펼침막을 새로 신청받아 교체하며 늘 같은 자리에서 나부끼게 하고 있다.

비상계엄 후 밀양에선 국민의힘(이하 국힘) 지역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사죄를 요구하며 촛불집회를 매일 이어갔다. 정당별 펼침막을 읍면동별 2개씩 걸 수 있으니, 민주당과 진보당의 협조를 구해서 47장을 추가 인쇄해서, 계엄을 규탄한다, 국힘도 탄핵 행동하라는 펼침막으로 지역을 ‘도배’했다.

“이번 기회에 검찰도 국민들이 손을 볼 수 있기를 바라요. 검사들이 제대로 수사했어야 할, 한이 맺힌 수사들이 많죠. 세월호며 이태원이며 검찰의 과오를 개혁된 검찰에서 제대로 수사하는 국면으로 이슈화되길 희망해요.”

“세월호를 국민들이 다시 한번 과제로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거죠. 탄핵은 될 텐데, 우리가 앞으로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국면에서 진상규명이 안 된 사건의 피해자들이 조명되길 바라고, 사회적 참사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성과를 역사적 교훈으로 만들었으면 해요.”

검찰 개혁은 시대적 과제라는 황 회원이 또박또박 말하는 야심 찬 꿈이었다. 꿈을 현실로, 희망을 역사로 만들어가는 것은 길을 내고 다져가야 할 우리 모두의 몫일 터이다.

황 회원에게 끝으로 하고 싶은 한마디를 물었다.

“세월호 활동의 동력은 미안함과 아이들에게 했던, 당시의 약속이에요.”

“팽목에서 그해에 아이들에게 했던 약속은요. 아, 눈물 날 거 같은데... ‘얘들아, 미안하다. 부모님들과 끝까지 함께할게’였어요.”

“부모님들께 전하고 싶어요. 보이든 보이지 않든 함께하고 있지, 하고 믿으시고. 우리 함께하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