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은 사람낮은 담에서 만나다-김원 님 인터뷰

2022-09-15

낮은 담에서 만나다-김원 님 인터뷰


김 우

보물섬 대안학교에 다니는 16살 김원 님은 4.16연대의 단체회원인 ‘세월호를 기억하는 제주 청소년 모임’(이하 세제모)의 대표를 맡은 보물 같은 친구다. 세제모는 지난 4월 제주에서 8주기 행사를 진행하고 이후로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일상적 실천을 하자고 꾸린, 중‧고교생 모임으로 7월 4일이 창립일이다. 초동 주체는 보물섬학교의 5명과 볍씨학교의 3명으로 총 8명이었는데 지금은 동백작은학교까지 포함 총 41명이다. 세제모의 회원은 월 2,000원의 회비를 내는데 학교 부모님을 비롯한 후원회원들이 매달 5만 원씩의 후원회비를 걷어 지원한다. 

지원과 격려에 힘 받아서 각기 버스로 1시간 반은 넘게 가야 만날 수 있는 여건인데도 활발한 활동을 함께 펼쳐가고 있다. ‘제주의 안전은 내가 지킨다’ 활동은 배를 직접 타며 이전에 비해 얼마나 안전해졌는지 점검하는 활동이다. 얼마 전엔 팽목예술제 공연에도 참여했다. ‘민들레 바람’이라는 세제모 자작곡도 부르고 ‘벗들이 있기에’ 노래에 맞춰 율동도 했다. 같은 날 안산 생명안전공원 행사가 겹쳤는데도 육지에서 10명이 넘게 와주었다. 

세제모의 대표는 김원 님이 하고 싶어서 자원했다. 학교에서 회장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보람이 크거나 스스로 잘한다는 느낌이 없었다. 하지만 8주기 행사 때 총괄 노릇을 맡으면서는 몰랐던 것을 보고 경험하며 재밌고 좋았다. 세월호 참사는 보물섬 학교로 전학을 한 초등학교 2학년 때 계기 수업을 통해 알았는데 8주기 행사를 통해 본격적인 고민이 깊어졌다. 이제는 육지까지 나가서 너른 세상을 배우고 있다.

몇 달 뒤 졸업인데 학교의 센터에 남아서 진로를 고민하며 공부하려 한다. 구체적인 꿈은 아직 없지만,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언제 행복한지를 물었더니 친구들이랑 놀고 맛있는 거 먹고 잠자고 놀러 갈 때라고 한다. 잠자는 거 빼고는 모두 친구와 함께하는 일이다. 학교에 다니면서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었고, 무엇보다 친구들이랑 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니 동기 6명이 모두 센터에 남게 되는 상황부터도 분명 행복이다. 

아빠는 놀이치료 심리상담사, 엄마는 사회복지사. 아빠는 활기차고 엄마는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주는데 두 분 다 자식들을 마음 깊이 들여다보고 이해해준다. 초등 6학년, 4학년인 남동생은 둘이서 많이 싸워도 누나 말은 잘 들어준다. 김원이라는 이름은 부모님이 지어주셨는데 낮은 담 垣(원)자를 쓴다. 예전 얕은 바닷가에 자연 지형을 파괴하지 않고 쌓은, 낮은 돌담인 갯담을 이용해서 물고기를 잡던 게 떠오른다. 돌로 만든 그물인 제주 갯담 안에 멸치 떼가 들면 먼저 발견한 사람이 “멜 들었저!” 외쳐서 동네 사람이 모두 나와서 같이 잡던 풍경 말이다. 낮은 담은 폐쇄가 아니라 개방이고, 고립이 아니라 소통이고, 독점이 아니라 공유다. 꽃나무 하나조차 혼자 보고 즐기는 게 아니라 나누는 구조가 바로 낮은 담이다. 공동으로 소유하고 공동 분배하는 공동체 문화 나눔의 정신이 김원이라는 이름자에 배어있다는 ‘느낌적 느낌’이다. 강요는 하지 않되 “이런 학교도 있어.” 대안학교를 소개하고, 대학입시에 줄 세우지 않는 부모님이니 더욱 그런 ‘혐의’가 짙다.

김원 님과 지난 7월 16~17일 4.16 활동가 전국 워크숍에서 만났었다. 워크숍에선 토론 내용이 어렵긴 했는데 전날 공부하고 와서 이해도를 높였단다. 세제모는 율동 공연에서도 퀴즈대회에서도 상큼발랄해서 단연 돋보였는데 워크숍 전에 기억교실까지 갔다고 한다. 세월호 가족협의회 어머님의 담담한 설명을 들으면서 ‘저렇게 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있었을까.’ 싶었고, 기억교실이 나사 하나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보전 보관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내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됐다면 부모님이 어떻게 하셨으면 좋겠어요?”

“행복하게 살면 좋겠어요.”

“나를 잊고요 아니면 기억하면서요?”

“저 잊으면 안 되죠.”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 행복하게 살기. 우리의 과제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9월 17일 ‘노란리본이 노란리본을 만나다’ 행사로 딱 두 달 만에 만나게 된다. 정부는 힘이 센데, 뭐든지 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8년이 될 때까지 밝혀낸 게 없어 이해가 안 된다는 김원 님. 그러니까 지금 나와 우리의 몫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김원 님. 그래서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는 김원 님. 꽉 찬 알곡 같은 열여섯 김원 님과 재회가 기다려진다.